금앵전3
<1부 –3>

11세 가을 날 

장이 열리면 성심댁을 따라, 여종의 옷으로 갈아 입고 따라 나섰다.
방에만 들어앉아서 글이나 쓰고, 바느질이나 하느니 목메고 콱 죽는 것이 낫지.

장이 열리면 전국의 보부상들이 온갖 신기한 것 들을 들고 와 물건을 팔았다.
이것은 저어기 전라도의 나전칠기 장인이 눈이 멀어가며 만든 머시기이며, 저어기 신라시대 왕족의 귀걸이를 녹여 만든 금 가락지
은나라 시대의 머시기 저시기 도자기 조각, 조잡한 비녀들 
협잡하는 소리, 싸우는 소리, 
물건 잘 팔고 신난 상인의 호탕한 웃음소리. 
조용한 절간 같은 사랑채 보다 훨씬 살 맛이 난다!
 
”자 이것은 금강산에서 잡은 호랑이 가죽일세!. 
작년에 온놈이 판게 지리산 호랑이 가죽이였다고? 
지리산 호랑이 가죽이랍디까?! 
이 냥반아! 금강산것은!그 영험함이! 이보게?
산신의 실제 가죽일 수도 있다는게지!, 
 
그래 그래 작년에 온 놈이  든 꺼죽이 지리산산신이라칩세!
아~아시다시피 지리산 산신은 여인네 아닌가! 
기골이 자앙대한 금강산 남신의 줄기를 받은 
이 호랭이 가죽만 하겠나! 생각들 좀 해보게!“

”말이 안되는데요! 사냥꾼한테 죽으면 그게 산신입니까!
그리 약해 빠졌다면 그 꺼죽을 가진들 무슨 소용입니까?"
도통 말이 되지 않는 소리에 못 참고 빽 소리를 질러버리는 원이였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하고 구경꾼들이 수군대자, 보부상의 얼굴이 순간 구겨졌다. 아랑곳 앉고 눈치 없이 원이는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호랭이 줄무늬가 다 그렇지, 그게 금강산표인지, 여어기 뒷산에서 잡은 것인지 어찌 안다요, 표식이라두 있수?!“

 ”내... 내 발에 붙은 흙이! 이노마! , 내 두 두 눈으로 그 산맥을 보고 건너고! 니가 그 ..아냐!“ 
욹그란 붉그락 해지는 얼굴에, 
겁을 먹은 원이는 뒤로 한걸음 물러났지만 
기세는 앞으로 향했다.

”아니 궁금해서 묻는건데 왜 화를 내고 그럽니까!“

”죄송합니다. 애가 말질 하는 것 을 워낙 좋아하여, 이만 가보겠습니다."
뒤늦게 심부름한 물건들을 산 성심댁이 내 목을 낚아 채서 그곳을 서둘러 떠났다.

”궁금한 것을 묻지도 못하요!! 그리고 거짓말은 나쁜거잖수!“ 
하고 질질 끌려가면서도 원이는 골을 잔뜩 내었다.  
 
성심댁은 나를 한번 귀찮다는듯 쓰윽 보더니,
오늘 막둥이네 국밥이나 먹으러 가자. 
소 잡았다고 고기도 잔뜩 넣었다더라. 하고 원이를 능숙하게 달랬다.

그 말에 금방 씩씩 대던 것을 잊고, 
국밥 생각만하며 신이 나서 뛰어갔다.

사람이 북적북적, 한 참을 기다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먹으려는데, 
땀에 흠뻑젖은 아저씨가 자리가 없다며 같이 앉자고 비집고 들어왔다. 
아까 그 보부상이였다. 

”니년 질문하는 통에 기운이 빠져가지고, 
일찍 밥먹으로 왔다 이 기집종아.“

”아니 이 협잡꾼 아재가!, 
그래서 같이 안게 해드리 잖아요! “ 
한마디도 지지 않고 노려 보자, 아재는 물끄러미 원이를 바라보았다.

”종년이 저리 눈이 맑으면 사는거시 고달픈데,협잡꾼이라는 말도 알고
똑똑하면 사는게 힘들어 이년아!"

"... 그런데 궁금한게 있습니다. 정말로 금강산의 불정대가 그리 아름답습니까, 천심절벽을 반공에 세워두고, 은하수 한 굽이를 촌촌히 베어 내어 실같이 풀은 물결을 볼 수 있는 곳입니까?"

"관동별곡도 아는 천것 인게야..?, 너 살기 여간 쉽지 않겠다..." 

”국밥 왔다, 밥먹어라 원이야. 
먼길 오시느라 시장 하셨을 텐데, 드십시오.“
성심댁은 대화의 줄기를 끊으려하였다.
그러나 평양서 온 박씨 보부상의 수다를 막기는 부족하였다.
  
박씨는 아까의 일이 내심 억울 했는지, 아니면 관동별곡도 아는 원이가 기특했는지 금강산에 대한 수다를 이어갔다. 
그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산등성이의 기세가 어찌 미쳐버렸는지,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연이 얼마나 잔인한 곳 인지를 빼어난 말솜씨로 풀어내며 원이의 혼을 쏙 빼어 놓았다.
  
이번 이야기는 진실이 였다. 문인들의 멋들어진 허상의 글과는 다른 직접 느끼고 겪은 진실. 국밥이 어디로 들어가는 지도 모르고, 원이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절벽 끝자락에 나는 상서로운 산삼을 따려 
얼마나 많은 심마니가 죽는지, 그리고 그리 딴 산삼이 헐값에 팔리고도 
다시 산에 오르는 천한 것들의 애처로운 삶.
허나 그 미치게 아름다운 절경 속, 산신이 주는 드물디 드문 은혜에 
숙명이라 여기며 험한 길을 다시 나서는 순응의 삶.


”아버지! 나는 금강산에 갈테요!“
큰 소리로 웃던 아비는, 
그럼 사냥꾼한테 시집 보내야 겠구나 라고 했다.


12세 여름 날 

”아버지, 물고기 낚는 법을 배울래요!, 
혹시 어부한테 시집가고 싶을 수도 있으니!“

”내 너같이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계집아이는 처음 본다.“ 
아버지는 격이 없이 아이처럼 때를 쓸수록 나를 좋아 했다. 

”저 아이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것입니다. 영감"
어머니는 다소곳이 앉아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튕기더니 웃으며 말했다. 
”한상이를 시켜 알려주리“ 

”나도 친구 있어요, 매실 아범 이라구“ 
명희는 원이의 말이, 지아비의 오해를 살까 서둘러 말을 보텐다.

"강원군영의 관비입니다. 어릴때 부터 저와 동무들과 알고 지낸 성실하고 충직한 자 이온데, 그 집 아이들이 원이와 비슷한 나이라, 어느새 친해진 모양이에요." 

”그럼 남장을 하고 나가거라. 
계집아이가 빨래터도 아닌 물가에서 놀면 사내들과 어울리면 말이 돌기 십상이다. 그리고 한상이와 항시 같이 있거라.“ 


오한상 아저씨는  집의 오랜 식객이였다. 
훈련도감 군관 이였던 아버지와 함께  청나라를 수행하는 길을 여러번 다닌,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사이였다고 했다. 
 
이 후 뒷배도 없고 정치에 관심도 없어 중앙관리직에서 밀려나 강원감영중군으로 발령받아 떠내려온 아버지를 한상은 묵묵히 따라왔다. 
 
아버지는 한상을 시켜 기본적인 호신술을 나에게 가르쳤다. 
”저 아이는 집에 가만히 있을 아이가 아니네, 
야생마같이 날뛰는 아이니 기운을 뺴놔야지. 아니면 이리저리 사고를 치기 십상이니. 그러려면 자신을 지키는 방법정도는 알아야 할거야. 
아들에게서 해야할 걱정을 딸에게 하다니 이거 참 허허.“

새벽에는 한상을 따라 산에서 이리뛰고 저리뛰었다.
남의 힘을 이용해 사람을 넘어 뜨리고 목을 조르는 법도 배웠다. 
그걸 다 배우고 나야, 강가로 가서 매실 아범과 고기잡는게 허락되었다. 
 
물고기 잡는게 배우고 싶었겠나고! 
매실아범이랑, 똘이랑 석이랑 강가에서 놀고 
고기 꾸어 먹으려고 수 쓴거지! 

이렇게 산에서 심하게 굴려지구 지칠대로 지쳐서 강가로 가면 
그늘을 찾아 누워 자기가 바빴다. 
그리고 한 식경 잤나 싶으면 한상이 나를 깨워 집으로 끌고 가 버렸다. 

계획은 대 실패였다. 젠장!



13세. 겨울과 봄

그 해 겨울, 집안이 한동안 어수선하였다. 
많은 식솔들이 나갔고, 집안 내에 비싼 것들도  팔아야했다. 

아버지의 숙부님이 아주 많은 노름 빚을 졌다고 했다. 
그 추문으로 나라에서 받은 전답도 내놔야 했고, 아버지는 직책도 내려놓아야 했다. 주변에선 김씨 집안이 몰락했다며 수근댔다.

아버지는 살 길을 모색 해야했다. 
당장의 빚만 갚으면, 집을 지킬 수 있고 나중에 가문의 이름으로 제자들을 양성하며 다시 명성을 쌓고 살아가면 된다. 

이런 아버지에게 이제 막 청나라 무역에 뛰어드려는 신흥 상단의 행수가 찾아왔다.

이미 자리를 잡은 의주 만상들 틈에서 새로 길을 뚫으려면, 청나라 관원들과 낯이 익고 사행 절차를 훤히 아는 사람이 필요 했다. 
행수는 파격적인 보수를 제시했다. 

마흔이 훌쩍 넘은 아버지에게는 체력적으로도 체면적으로도 쉬운 선택이 아니였다.

허나 내심, 청나라를 수행했던 시절을 그리워 했던 아버지는 결국 체면 보다는 실리를 선택하였다. 


이는 체면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큰어머니, 정희를 무너뜨렸다.
부인인 자신에게 어떠한 상담도 없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 천한 무인 집안으로 시집온 것이, 평생 지켜온 자존심을 굽히는 일이였다. 그런데 남편이라는 작자가 장사치의 종노릇 이라니! 
극심한 분노가 치밀었다. 

이를 모를리 없는 아버지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우리에게 향할 것을 걱정하였다. 한상에게 나의 어머니 명화와 두 딸의 안위를 부탁했다. 

”내 부인이 명분이라는 이름 아래,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가 없네. 꽉 막힌 사람이니. 혹여 무슨 일이 생기거 들랑, 셋을 데리고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멀리 떠나있게.“ 

상당량의 금전을 한상에게 남긴 후, 
가장 추웠던 어느 날 
아버지는 상단을 따라 나섰다.

한동안은 아버지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큰어머니에게 우리는 애초에 없는 존재 였었다.

그녀의 근심은 오로지 아들인 희준의 입신 양명이 아버지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방해받지는 않을 지 전전긍긍 하는 것 뿐이였다. 

그 해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겨울이란 것은 아침부터 밤까지 깜깜하고 시리게 추워, 당연히 산에도 강에도 갈 수 없었다.

꼼짝없이 방에 갖혀, 어미 그리고 동생 련이와 보내야 했다. 

산으로 들로 싸돌아 다니느라, 깡마르고 까만 나와는 다르게 
련이는 어릴 때 보다는 조금은 건강해졌고 
통통해진 볼도 발그래 하였다.

련이는 나와 노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시장통에서 싸운 이야기, 강에서 본 큰 쏘가리, 
봄에 캐온 쑥에 섞여있던 큰 여치에 놀라 다들 기절한 이야기, 
이것들을 마구마구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진달래꽃마냥 붉은 볼이 더 붉어지며 손벽을 쳤다. 
나의 최고의 관객.

몰래 나갈 때 마다 일러바치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그럴 때 마다 얄미워서 원. 뭐 다 좋을 순 없으니까.
 
겨울밤은 어미가 가을 내 아껴둔 군밤도 구워주고, 
가장 재밌었던 여자 장군 이야기도 다시 읽어주는, 
호롱불 밑이 가장 따뜻한 그런 계절이였다.

그러다가 고뿔이 한차레 마을을 휩쓸었고, 
련이는 여지없이 고뿔에 걸리고 말았다. 

열이 펄펄 끓고, 어미가 련이 몸을 젖은 천으로 닦고  옷을 다시 입히고 
다시 닦고 옷을 다시 입혀도 그날은 열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 나절 노복이 땀으로 흠뻑젖은 연이를 들쳐메고 서둘러, 대문을 나서던날, 마실을 다녀오던 희준은 련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보게되었다. 
땀에 젖어 눌러 붙은 머리, 붉게 물든 뺨. 
연약하디 연약한 작은 새같던 존재.

그 뒤로 희준은 어미 눈을 피해 틈이 나면 별채 주변을 맴돌았다.
그렇다고, 문 밖도 나서지 않는 련이를 마주할 일은 만무 했다.

봄의 초입 무렵, 어미는 련이의 약을 지으러 
한약방으로 떠났고, 련이만 홀로 방에서 서책을 읽고 있었다. 
희준은 큰 기침을 했고, 소리를 듣고 나온 련이에게 들고 온 약과를 건냈다.  속에 품은지 오래되어 찐득찌득하고, 잔뜩 뭉그러진.
 
한참을 쑥스러워 하다, 
내가 니 오래비라며 운을 뗏다. 
련이는 밝게 미소 지으며 만나서 반갑다 하였다. 
오라비는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은 비밀이라며, 
누구에게도 자신이 온 것을 말해선 안된다고 했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비밀을 만든다.
언니도 한상아저씨와 비밀을 만든다.  
이제 자신도 비밀이 생겼다.
련이는 기뻤다. 

가세가 기운탓에 큰 대궐에 북적이던 
식솔들은 줄었고,  큰어머니는 살림을 추스르느라 무척 바빠지졌다. 
어머니도 련이의 약값을 충당하려, 소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기방 시절 동무였던 기생들이 가끔 인편으로 노리개감을 보내왔다.

어머니는 솜씨가 좋았다. 
비단 한자락 한뼘, 매듭실 몇 타래, 
그리고 삯이 될 엽전 몇 닢. 
부피가 작아 소매에 감추기도 어렵지 않았다. 
완성된 노리개는 다시 소매춤에 넣어 
아무도 모르게 문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어머니가 바늘과 매듭에 매달려 있는 사이, 
련이는 혼자 마당을 서성이는 날이 늘었다. 
그리고 담장 너머에서 똑같이 서성이는 
희준과 마주치는 일도 잦아졌다.  

둘은 요리조리 사람들 눈을 피해, 숨박꼭질을 했다.
둘이 두손 꼭 붙잡고 식솔들 눈을 피해 달아나거나, 둘이 서로 달아나거나, 대궐 구석 구석에 사람 손이 닿지 않는곳이 그들의 안식처이자 놀이터였다.

아버지에게서 오는 서찰은
멀어지는 거리만큼 느리게 왔다.
그렇게 모두들 종수의 부재에 익숙해져 갔다.


작품 등록일 : 2026-08-18
최종 수정일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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