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지의 시작은 친구의 몇 마디에서 비롯되었다. 어제 네가 경찰차를 타고 가는 것을 봤다. 그따위 것을 왜 나에게 전하는가? 걱정을 빙자한 조야한 관심 같은 것은 청소년기에 불과한 나이라도 모두가 공공연히 간파하고 있는 사실 아닌가. 어떻게든 남의 불행을 유추해내기 위해 모가지를 쭉 내밀고 귀를 바짝 세운 것들. 내 불행의 열거로 그 조야한 욕구가 충족된다면 못 말할 것도 없다. 수감될 예정이었다. 이제 네가 원하는 대로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정보의 주동자, 정보의 신이라도 된 것만 같은 때를 신나게 즐겨라. 하지만 더 방대하고 상세한 이야기를 실은 글을 이야기의 당사자인 내가 직접 쓸 것이다.
경제사범이 되었다. 등록도 하지 않고 유사투자자문을 한 것이 걸렸다. 그것 참, 누가 등록하고 한단 말인가. 오히려 그런 것들이 더욱 미덥지 않다.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잡놈들이 머리에 무스만 멋드러지게 바르고 양복 차림을 하고 팔짱을 끼고 일타 강사인 것처럼, 주식에 통달한 것처럼, 그런 꼴을 하고 나름의 텔레비전 방송에 나가기도 한다는 것이 기가 찰 따름이다. 수치를 모르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오늘의 추천주는 동X화성' 입니다. 주가가 한 2% 뛰면 멍청한 인간들은 단톡방에서 '와! 대단하십니다', '역시 최고십니다 형님', '주식판에서는 하루 5%만 먹어도 신이라던데요' 어이구 씨발, 대단할 사람이 그리도 없더냐. 주가가 -15% 폭락하면 '이유 있는 조정이겠죠, 믿습니다' 지랄병이 났다. 내가 주식에 통달했으면 그따위 방송질이나 하고 앉아 있을 여유가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그런 한심한 단톡방 같은 것은 일체 만들지 않았다. 머저리같은 인터넷 방송도, TV방송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투자자문을 할 자격이 없기도 했지만 이러나저러나 주가가 떨어지면 인생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 허가를 받으면 내 본체도 추락할 따름이다. 나는 나의 허상만 추락하는 것을 택했다.
자본주의의 지배 하에는 사기의 방법도 갖가지라 나름의 독창적인 방법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단톡방으로 유사투자자문을 하는 것은 귀찮은 것들이 너무 많이 걸려들어서 싫다. 분명히 나보다 주식에 대해 잘 아는 놈들도 있다. 그런 놈들은 연습이 귀찮아서, 종목 찾는 게 귀찮아서 일단 남의 '픽'을 들은 다음에 분석한다. 이런 족속들은 시비걸 줄만 안다. '240일선을 이탈했는데 혹시 이 종목의 추천 근거가 무엇인지요?' 어이구, 지랄한다. 그렇게 잘 알면 혼자 하시지요. 괜히 나의 어린 양들에게 혼란만 주고 말이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오가는 것이 문제가 있다. 특히나 대화가 오가는 방식에서는 완벽한 사기를 위해선 '바람잡이'가 필수적이다. 일당백을 해가며 사기를 칠 만큼의 의지가 있지도 않다. 그러나 바람잡이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도 아니다. 바람잡이 역할은 공짜로 해주나? 남의 주머니 사정까지 걱정할 생각은 없다. 별다른 소통 없이 사기 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온라인 사이트를 하나 정해야 한다. 소비벽이 있는 사람들이 몰려 있을수록 좋다. 그렇지만 그 소비가 아이돌이나 배우 등을 향해 있는, '덕질'이 존재이유인 아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주식투자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어도 제대로 시작할 생각은 덜하다. 그런 것을 공부할 시간에 화끈하게 현금서비스나 2, 3금융권 대출을 받아서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써재낀다. 존경스럽다. 그런 사람들 중 일부는 수감 중에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머리가 팽글팽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출소 후에 '이런저런' 일을 함께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형 사이트일수록 좋고, 세분화 된 게시판이 많을 수록 좋다. 그런 곳에는 재테크와 관련된 게시판이 있게 마련이니. 그렇지만 대형 사이트에서는 인간들의 머릿수가 많은 만큼 벌어들이는 돈도 커지고, 그만큼의 리스크로 들통날 이유도 많아지고, 그 사이트 특유의 은어와 말투를 공부해서 평범한 '유저'로 둔갑해야 한다. 귀찮다. 내가 본 바로는 이상하게 거대한 사이트일수록 정체불명의 은어가 난무한다. 돈만 들고 나르면 뒷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름 없이 닉네임으로만 존재하는 경제사범에 불과한 상태로 상황이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감이 과한 상태로 박제될 위험도 있다.
노동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억 단위의 사기를 치고 몇 년 수감되는 편이 좋다. 교도소에서도 일이야 하겠지만 어찌되었든 연봉은 샐러리맨보다 높다. 교도소를 나가면 공권력에 털린 돈을 제외하고도 남은 동산과 부동산이 있을 것이다. 그걸 쓰고, 다시 한다. '다시 한다.' 투자자문 자격을 얻고 공인되어 버리면 이 단계가 불가능하다. 1회의 시도에 매장되는 수가 있다. 최대한 한 탕을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게 엎어진다면 쫄딱 망하는 수밖에. 돈은 돈대로 제대로 못 챙기고, 죄질은 더욱 나쁘게 인식되어 형량만 주구장창 늘어날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공범자'가 있을 것이고 사기치는 금액의 단위도 개인 사기꾼과는 단위 자체가 다를 것이다. 물론 번듯한 직업이기에 사기 쪽으로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기 일지를 읽으면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결론은 좋은 사이트를 하나 찾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크지도 않은데 돈에 관한 욕심은 가득한 인간들로 드글드글한 곳이었다. 이상한 용어를 자주 사용하지도 않았다. 말투도 좆같지 않았고. 다만 인간들이 무기력하고 의욕이 부진해 보였다. 사기 치기에 적합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런 인간일수록 잘만 건드리면 쉬이 넘어온다. 욕망은 가득한 주제에 돈을 열심히 벌 의욕도 없는 상태이고, 사기에 적극적으로 당해줄 의욕도 없는 상태다. 부러움을 사야 한다. 그렇게 전략은 시작되었다.
글을 쓴다. 평범한 일상글들을 말이다. 재테크 게시판 같은 곳에는 일체 접촉하지 않는다. 우선 나의 자금들을 총동원해서 사치를 시작한다. 비싼 오마카세, 호화로운 호텔, 스포츠카(사실 렌트다) 등이 들어간 일상 사진을 업로드한다. 모르는 것에 대한 고민글을 쓰는 척 '등기치는' 것에 관한 질문도 몇 번 올렸다. 물론 이미 실거주하는 자택이 있는 것처럼 쓴다. 괜한 감성사진을 올릴 때도 감초를 하나씩 곁들인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멋진 물건. '와 혹시 저건 뭐야?', '시가야.' 이러면 호화 호텔 사진에는 관심이 없었던 골방 흡연자들에게도 돈깨나 있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본다. 그런 다음에는 '싱글'임을 강조한다. 사기칠 대상이 여성이건 남성이건 관계없이 꼬드길 수 있는 마법의 단어다.
술 마시는 사진은 필수다. 술 사진은 두세 번을 올린다. 처음에는 무리해서 비싼 술을 선정한다. '늘 먹는 것' 같은 말을 그 사이트 언어로 윤색해서 올리는 작업을 거치고, 다음으로는 20~30만원선의 무난한 가격대의 술을 골라잡는다. '싸게 빨리 갈려고 간만에 사 봤는데 나쁘지 않네.' 물론 사이트의 분위기에 따라 문장을 윤색할 필요가 있다. 다음부터는 첫 날에 수십 장을 찍어둔 비싼 술을 매번 다른 날인 것처럼 능력껏 올린다. 병을 재활용하거나 실제 자산으로 반복해서 구입하거나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이깟 술 가격은 미래에 벌어들일 돈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간중간에 물밑작업을 미리 시작했어도 나쁘진 않지만, 나름대로 네임드가 되고 나서 시작해도 나쁘지 않다. 이제 물밑작업을 시작한다. 대놓고 투자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오늘 일당은 180, 누워서 돈 버는 것도 지루하다, 호텔에 누워서 일하다가… 오늘은 15분만에 일을 끝내고 외출… 그런 방식으로 노동하기 싫은 인간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쯤 되면 대놓고 직업이 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구구절절 답하지 않는다. 나 주식 해. 주식으로 돈 많이 번 사람 이미지를 구축한다. 물론 트레이딩 기술 같은 것은 전혀 올리지 않는다. 그냥 주식으로 돈 많이 번 사람 이미지만 잔뜩 써 갈겨두어도 그만이다.
분명히 이 일지를 보면서 귀가 솔깃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행은 물론 본인의 역량 차이이다. 나보다 더한 역량을 가졌다면 조직적으로 일을 행할 수도 있을 것이고(이미 완료 후 목돈만 남긴 채 모든 상황 종료되었을 수도 있다), 나보다 역량이 덜하다면 범죄자 욕을 한바탕 늘어놓고 정신승리를 하면서 경멸하면 된다. 그리고 하던 대로 최저임금과 유사한 임금을 받기 위해 출근을 하면 된다. 불로소득이 없는 보통의 백수라면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나조차도 말문이 턱턱 막히는 존재들이다.
자, 이쯤에서 글에 반드시 첨가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반드시'에 방점을 찍어도 무방하다. 처음부터 자본금이 없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증명이랄 것도 아니고 어필만 하면 된다. 초등학생 때 주식투자를 했다? 절대 안 된다. 금수저로 오인당한다. 이것은 불행 대결의 서막이다. 그 사이트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회원들보다 비참한 허상 하나를 만들어낸다. 부유한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쉽다. 부자인 척 하는 것은 어렵지만 가난한 척 하는 것은 손쉽기 그지없다. 과거형으로 서술하면 되니 일은 수월하다. 노력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열심히 어필한다. 주식 공부라는 노력을 했다. 이거면 된다. 주식 실패담도 곁들여주면 금상첨화다. 숱한 실패를 겪은 후의 찬란한 결과물들은 이전의 포스팅들에 여실히 남아 있지 않은가.
어차피 나는 같은 방식의 사기를 되풀이할 생각이 없기에, 조금 더 구체적인 방법을 남긴다. 사이트가 어느 정도 큰 경우에는 이미 주식이나 제태크에 관련된 네임드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픽'을 제공하면서 유저들에게 쏠쏠한 용돈벌이를 시켜주는 네임드가 있을 수도 있고, 사이트에 강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어 회원들을 떠먹여가며 강의글을 쓰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물론 나와 같은 부류의 사기쟁이들도 있을 것이다. 단톡방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서 열심히 짜깁기 강의글을 써재끼고 있다거나, 조작된 수익 인증을 하고 있다거나.
그러나 이 단계에서 착실한 네티즌과 사기꾼을 가려낼 필요는 없다. 일단 투자에 강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착실한 네티즌과 사기꾼의 글을 모두 읽고 있을 것이다. 이로써 대형 사이트가 좋은 이유가 명백해진다. 이미 유명한 주식 고수들의 기성 팬들도 끌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주식 고수는 찬양의 대상인 연예인이 아니고, 유일신도 아니며, 모방해서 체화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굳이 한 사람의 글만을 읽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과 동류가 되는가? 간단하다. 주로 '수익 자랑' 글에 찾아가면 간단하다. 댓글로 '나도 오늘 이걸로 먹고 나왔어. 잘 가더라.' 하고 남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사이트의 성향에 맞게 윤문한다. 이 단계쯤 오면 이미 나의 온라인 상에서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돈과 관련된 지식에 목마른 자들은 이런 댓글 하나 지나치지 못한다. 가끔 내 댓글에 기작성자가 답댓글이라도 남겨주면 완벽하다. 자연스럽게 그 사이트의 주식 네임드 그룹에 속하게 된 것이다. 물론 연대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해서도 안 된다. 괜히 머저리같은 사기꾼과 엮이면 골치가 아파진다. 진짜 주식 고수와 너무 많이 말을 섞을 경우에는 나의 수상한 행각이 발각될 수도 있다. 말을 섞을 경우에는 '공부하면 다 되더라' 같은 노력을 강조하는 불필요한 한담만 나누거나, '나랑 진입시점 같다' 같은 보여주기 식의 실력 과시만 있으면 충분하다.
지금부터는 언행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미 내 주위 사람들은 나의 덕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간간히 드러낸다. 여기에서 눈치 빠른 사람들은 나의 미래 행각을 내다보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 인간들은 남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범죄자로 확정 지을 만한 용기는 없다. 그리하여 굳이 이 시점에서 타인의 개입이 일을 망칠 확률은 낮다.) 이래서 대형 사이트에는 위험도 따른다는 것이다. 돈 머리는 조금도 없는 주제에 약삭빠르기만 한 족속들이 있을 확률도 증가한다.
픽 같은 것은 주지 않는다. 자신이 주식 투자에 실제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남을 팔아서 픽을 주는 것은 괜찮다. 괜찮긴 하다. 괜찮기는 한 그 수준이다. 확실치도 않은 픽 제공까지 갈 것도 없고 후행하는 문장만 나불대도 괜찮다. '엄마한테 카카X 주식 사라고 추천해서 몇억 넣으셨는데 어제 다 팔라고 했어.' 이런 말은 때에 따라 미증유의 영향력을 가지고 온다. 잘 조작된 인증까지 첨부할 가치는 전혀 없다. 그저 말만으로도, 진짜 고수들조차도 감격하는 경우마저 벌어진다. 특히나 그 주식이 전날 폭등했다가, 오늘 폭락한 경우. 사실이든 아니든 사람들의 감정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 공부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공부하면 고점이 보이는구나. 나는 어제 고점에서 샀는데 씨발새끼. 이런 새끼들 배나 불려줬네. 이 고수가 털었다고? 좆됐네 진짜. 지금이라도 공부를 해야지. 이 사람 진짜 잘하네. 나가 뒤져라... 어떤 반응이라도 상관없다. 나는 시장의 상황에 맞는 말을 했고, 가면 갈수록 신뢰도와 평판이 오른다. 사람들 개개의 선망과 원망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신뢰도가 높아지면 굳이 증거물은 필요하지 않다. 친목이 금지된 사이트일지언정 가난뱅이들의 마음이 돈의 흐름에 동하는 것까지 금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익명 사이트라도 문맥의 특징을 유추하여 나를 찾아내는 사람들마저 발생하기 시작한다.
*
픽션임.
작가 돈주기
|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