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문답

 

 하지라 낮이 길어 한밤까지 안 기다리고 시를 올려보겠습니다. 

 

 좀 긴 시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교리문답 

 

 

 

 

 

 여기에 진짜로 있는 건 뭐예요? 

 

 

 휘어진 트랙을 돌며 때때로 고개를 젖혔다.

 생각했다.

 맙소사 별이 꼭 내 빠르기에 맞춰 따라 뛰는 것 같잖아

 

 

 별은 맹렬한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우주의 바다로 되돌아가는 영원한 이안류. 

 

 

  이것들은 다 뭐지?

 다 ‘있는’ 건가?

 이 무엇들이? 

 별의 배를 가르고 쏟아지는 빛

 박하잎을 코끝에 비빈 것처럼 알싸한 

 별의 피 냄새를 맡았습니다. 

 네 번 들이켜고, 길게 내쉬고 

 산소를 의식하면서 의심합니다.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어떤 것들도?

 아무것들이?

 

 

 별빛 때문에 별을 가장 믿을 수 없었습니다. 

 쏟아진 빛일뿐 

 ‘쏟아진 별빛을 눈에 담는다

 쏟아진 물은 담을 수 없다’ 

 말이란 다 가짜 같아서 

 

 벽에 붙은 벌레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면 

 속엣것이 터져 나왔습니다.

 닦아낸 피는 검게 변해 

 마치 벌레 같았습니다. 

 

 

 어떤 거대한 손가락이 별을 저리도 많이 눌러 두었는지 

 

 

  뛰고 뛰고 뛰고 또 뛰어도 

 속도는 결국 느려질 뿐  

 운동장 테두리를 혼자 도는 방법으로는 

 원심력을 일으킬 순 없는 겁니다. 

 

 중심이 뻥 비어 있었습니다. 

 

 

 귓속으로 희미한 이명이 불고 

 밤의 이파리들이 일제히 숨을 참으면 

 별빛은 깜빡이지 않고

 촛불도 흔들리지 않고 

 산 중턱에 선 첨탑의 초록색 불빛만이  

 고깔 모양의 영역을 공중에 분사합니다.

 어느새 운동장은 텅 비어 있는데 

 가장자리에 가만히 서서 묻게 됩니다. 

 알 수 없지만 그러하리라고 믿게 되는 것 

 그런 건 도대체 어디에 존재합니까? 

 

 

 경기 규칙도 없는데 

 저는 같은 경로만 뱅뱅 돕니다. 

 그러면 별자리도 따라 돌고 그럼 그건

 천체가 휘휘 돈다고도 할 수 있겠고 또한 그것은 

 온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고있는 것이라고도 

 말을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빠르게 심장이 뛰는 김에 들뜬 채도 해볼만 하겠지만 

 

 중심은 내가 아닙니다 돌기만 할뿐. 

 돌아버리면서 매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별을 볼뿐. 

 즉 별도 지독히 같은 나를 볼뿐. 그러니 우리의 관계는 

 착각 속의 페이스 메이커.  

 

 

  오늘은 달 귀퉁이가 옴폭 뜯어 먹혔습니다. 

 그 모양이 아기 요람을 닮았습니다.  

 요람에 누운 아기는 통통한 팔을 모빌로 뻗고선 

 밤새 잠들지도 못하잖아요. 

 

 누가 잡히지도 않는 걸 보란듯이 걸어 두었죠?

 

 손가락 끝이 평생 얼얼하라고 띄워 둔 오너먼트 

 아기들의 부릅 뜬 눈에 비치는 환영 모빌. 

 

 

 별은 짜디짠 땀을 흘리면서

 소금 결정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뒤를 돌아 본 탓에 새하얗게 질린 얼굴처럼. 

 발밑까지 폭우가 차오르는 것처럼.  

 

 

 저기 황토색 흙 한 가운데 

 납작하게 엎드린 마스크는 

 발굴 직전의 뼈와 같아 보여 

 드러난 부분보다 파내야할 부분이

 많은듯 의미심장하지만 

 그건 가짜입니다, 단언컨데 

 이러한 종말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뛰어나가지 않았습니다.

 

 

  모서리에 아까 펜스를 무지막지하게 때려 대던

 축구공이 숨어 있었네요. 

 저는 그때 축구공이 미웠습니다. 

 텅텅 울리는 텅스텐적 비명소리 

 금속의 울음도 괴로운 것입니다. 

 펜스에 공을 차지 마시라고 

 현수막으로 애원하고 있었으니까. 헌데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는 바람 빠진 축구공.

 텅 빈 그물 헐빈해진 철조망 네트. 

 마른 물고기처럼 짜그라진 빈 페트병. 

 이제보니 모두가 가짜처럼 측은할 뿐입니다.  

 

 

 진짜? 

 

 

 아아, 피곤해집니다. 

 위가 꽉찬 모기라도 전기 벼락을 맞으면 

 벽에 흔적을 안 남겨요. 

 신생아라면 흑백 모빌이 더 적당합니다. 

 저 농담 짙은 밤하늘 구멍 뚫린 흰 별 붉은 별

 늦게 도착한 부고입니다. 천년 전부터 

 없었던 가짜.

 이건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에요. 

 

 우리는 이것들은 어디에서 압니까? 

 

 

  여기를 힘껏 이등분해 보겠습니다.  

 알아요 아니까 묻지 마십시오. 

 질문에 질문으로 좀 대답하지도 마시고요. 

 결계를 온몸으로 끊어내는 

 단거리 주자가 된 기분. 

 환호도 깃발도 아무 일도 없습니다.

 

 저 천정을 집어 놓은 압정들은 무척 낡았군요.

 녹 냄새가 납니다.

 피와 녹은 같은 성분이니까, 빈혈로 어지러우면 

 녹슨 부위를 핥으면 됩니다. 

 

 이거 실은 아무 말이에요.

 

 

 별은 불타는 돌. 가장 빛나는 별은 인공위성. 

 그 어떤 진지한 질문도 우스갯소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좋기만 합니다. 충분히 예상한 바이고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답해 보세요.

 이만 끝내고 싶습니다. 

 

 

 더는 뛸 수도 없고 걷기도 싫증 난지 한참인데 

 어째서 이곳을 벗어날 수 없나요

 믿을 수가 없지만 그러하리라고 아는 것만을 우리는  

 왜 결국 믿게 되나요 

 잘 보세요 물음표는 달지 않았습니다. 

 

 

 별빛은 빛이라고 하기엔 너무 미미하게 

 배어 나오는군요

 쏟아진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군요.  

 

 

 아! 저기,

 발광하는 목걸이를 두른 개들이 

 번개 다발처럼 쏟아져 들어오네요. 

 

  축구공처럼 튀어 나가며 

 펜스에 부닥치기 전에 유연하게 몸을 틀며

 트랙 따윈 아랑곳않고 잔디마저 마구 짓밟으며. 

 

 

 개들과 목줄을 쥔 주인들의 회합이

 저를 이 원반 밖으로 밀어내 줍니다. 

 

 뒤돌아본 운동장은 중심과 변두리의 경계랄 것 없는 

 형형색색의 형광 카오스로 가득하였습니다. 

 

 

 이것이 어느 누구의 뜻도 아니라는 사실을

 저는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번쩍번쩍 빛나는 개들을 두 손 가득 만지려 

 모은 손으로 쪼그려 앉는 주인들 

 저토록 인공적인 불빛.

 여기있다고 점멸하는  

 부드러운 침냄새를 풍기는 살아있는 빛, 빛, 빛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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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어디에 출품되거나 책으로 엮어질 경우 내용이 지워질 수 있습니다. 

 

 

 

작품 등록일 : 2023-06-21
언니 시 너무 좋아요
나도 이런 부드럽고 중구난방같지만 주제가 담긴 시를 쓰고싶다
sapienc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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