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 아침엔 비올듯 날이 흐리더니 또 갑자기 맑아졌습니다.
한 번 더 가버릴 여름의 끝자락이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매일 전화 오던 엄마에게서 오늘은 어떤 소식도 들리지 않습니다.
"응~ 그냥 심심해서~"
"아빠는 일 나갔고 **이는 독서실 갔어~"
자신보다 가족들의 소식을 먼저 알려주시는 엄마.
"엄마는 뭐했어?"
"나야 뒹굴뒹굴하지~"
거실 바닥을 닦고, 가족들이 샤워를 하고 나오면 부스의 물기를 닦아내고, 부엌에서 반찬을 만들었단 이야기는 늘 빠져있습니다.
집에 가보면 내가 몰랐던 엄마의 요리들이 밥상 위에 잔뜩 올려져 있으니까요.
가끔 엄마에게 놀러 가자는 말을 하면 엄마는
"아빠 저녁 준비해야지 어딜 가~" 누군갈 위해 거절하시거나 또는
"아유, 귀찮어~" 잔뜩 찡그린 대답을 하셨죠.
엄마랑 같이 쇼핑가서 샀던 귀걸이 포장지에는
2020년 9월이라는 날짜가 찍혀있습니다.
그날에 엄마와 데이트 했던 나를 부러워합니다.
엄마랑 단 둘이 커다랗고 깨끗한 쇼핑몰에서 손잡고 걸어다녔을 우리 둘의 뒷모습.
매장 앞을 서성였을 엄마와 다 커버린 딸,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엄마
오늘은 더없이 행복한 토요일 오후입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누구도 아닌 엄마에게
편지하고 싶었습니다.
5년 전, 남자에게 차이고 쓸쓸한 마음이 되어
파주의 대형 카페에 앉아 엄마께 편지를 쓰던 저는 이제 과거에 있습니다.
올 가을 초입의 향기를 느끼며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기쁜 마음으로 재즈를 들으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엄마만을 생각하며
좋아하는 글을 씁니다.
이런 행복을 주신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 한 번쯤 제대로 해야할 텐데요
지난 번 아빠 생신 기념으로 드린 손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엄마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지나갔을까요.
생각해보니 증오했던 아빠에게 더 많은 편지를 드린 것 같아서
어째선지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립니다.
막상 편지지에 한 글자도 쓰지 못했던 건 저였는데도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세상에서 가장 안쓰러운 우리 엄마
매일 휴대폰 너머 들리는 사랑해~ 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내 목소릴 똑 닮은 소리에
나도 사랑해~ 라고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가끔은 엄마가 언젠가 말하지 못하게 될 말을
미리 몽땅 들려주시는 것만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오늘은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부끄러운 마음보다 용기를 앞세워
"엄마, 사랑해~" 라고 말해야겠습니다.
사랑을 물려주신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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