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쪽글
월요일 출근길 편의점에 들러 커피우유를 샀다. 좋아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하나씩 일을 해치웠다. 주말 동안 번잡했던 마음, 못다한 사랑,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은 곳에 숨겨둔 채.

오랫동안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다. 가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이렇게 생각했다. 살아남았다고. 지금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큰 위안이었다. 

지금 나는 내 인생 중 가장 좋은 시절을 살고 있다. 내집은 아니지만 나만의 공간이 있다.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동생들도 제 앞가림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자꾸만 같은 패턴으로 길을 잃어버리는 나를 나무라지 않고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친구도 있다. 지금 지나고 있는 상황이 네가 힘들어서 그렇다고. 안정된 시간이 오고 걱정이 사라지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좋은 시간이 오는 걸 기다리면서 현재를 살면 된다고. 혼자서 도저히 풀리지 않던 문제를 들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힌트가 생긴 것 같았다. 이제부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나의 몫이었다.

아직도 가끔 나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오늘의 시간, 오늘의 사람, 오늘의 감정에 모든 것을 쏟는다. 그 어떤 여한을 남겨두지 않겠다는 욕심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에 전부를 건다. 대부분은 끝이 좋지 않았다. 내일의 태양이 뜨면 다시 내일을 살아가야 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순 없었다.

왜 이렇게 자랐을까. 나는 왜 이런 사람일까. 끝없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지난 이야기를 가감없이 적었다. 오래 전 하리라 마음 먹은 일을 더 늦기 전에 풀어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적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어 괴로웠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쓰는 사람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이제야 안다. 과거의 이야기를 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으니까. 무엇을 적을지, 내 글이 어떻게 보일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2~3명이 보는, 거의 비공개에 가까운 블로그에 썼던 이야기를 엮어서 공개하게 되었다. 계속 쓰기 위해서. 제대로 써보기 위해서.

나는 아직도 무엇도 용서하지 못했다. 한때는 사과받고 싶기도 했고 분노한 적도 있었다. 가족들이 개개인의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오래된 짐보따리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나에겐 살아가야 할 오늘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이 남아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기로 마음 먹었던 건 2011년이었다. 휘황찬란한 빛이 스며나오는 문이 이제 막 열리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내 인생은 2011년부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니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연애를 했던 20살부터. 외부 세계에 많은 것을 의탁했던 나는 내 안의 것을 들여다 보지 못했다. 인생은 어떤 식으로든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온 모든 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게 남겨진 숙제는 나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 뿐이다. 데미안에서 나온 글귀처럼, 내 속에서 솟아나는 것을 살아내고 싶다. 욕망을 외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회피하지 않으며, 자기 확신이 부족한 나를 껴안고 살고 싶은 미래에 나를 데려가야지. 되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갈 나를 끊임없이 상상해야지.

나는 나의 삶이 나날이 더 좋아지기를 
희망한다.

2023. 10
작품 등록일 : 2025-01-27
최종 수정일 :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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