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대한 단상


 





 

 

우연히 펼친 페이지부터 무턱대고 읽어내려간다.

작가와 인사도 없이

그의 아주 내밀한 곳을 파고드는 느낌

이제 막 용솟음치기 시작한 뜨거운 피를 쥐고 

넘쳐 흐르는 것을 바라보는 느낌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손에 든 네 모습은

아름다웠다.

내가 좋아하는 편집자가 좋아하는 작가 배수아가 번역한 그 책을 

넌 차분히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오후의 햇볕이

너의 왼쪽 실루엣을 비춘다.

 

사랑하지 않지만 나는

너를 아름다워하고

웃을 때 입술 사이로 가지런히 빛나는 너의 하얀 이를

넋놓고 바라본다. 

너와 나 사이의 공기에는

어떤 언어도 놓여있지 않고

 

너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사진 같아서

난 셔터 누르는 것을 잊는다.

내 눈이 널 이미 기억해버려서

 

네 덕분에 나의 연분홍 시집을 찾아들고는

이미 죽은 작가를 만나 그의 얘기를 엿듣는다.

내가 할일은 오직 시인의 일대기를 읽고

그의 이야기에서 나의 죽음과 너의 아름다움을 찾는 일

 

나는 세상을 바라보며

사라지고 폐허가 된 건물들 사이에서

홀로 피어난 너를 담아냈다.

그리고 너는 나를

죽은 나를 웃으며 바라봤다.

 

작품 등록일 : 2025-03-04
최종 수정일 :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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