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이는 담배연기로 물든 노란벽지에 씹던 껌을 붙였다.
‘새 껌이라, 아직도 세번은 더 씹을 수 있겠네‘
숙이의 최애는 롯데 껌이 였다.
해태껌보다는 좀더 비싸고 달았기 떄문이다.
”숙이 아직 방이니?”
밖에서 애타게 자신을 찾는 소리에 숙이는 서둘러 문지방을 나섰다.
마루에는 꼬메다만 겨울 이불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숙이는 바닥에 주저 앉아 마져 이불들을 꼬메기 시작했다.
숙이의 어머니 귀남은 게으른 사람이였다.
숙이의 기준으론 그러했다.
겨울이불도 숙이가 채근해서 장롱속의 것들을
입추가 훨씬 지나서야 꺼내놓은 사람이였다.
귀남은 음식을 만드는 일에만 열정적이였다.
그외의 집안 살림은 도통 관심이 없어서,
집안 여기 저기, 먼지나 때로 가득했다.
그걸. 치우는건 장녀 숙이 몫이였다.
숙이는 귀남의 이런부분을 가장 혐오했다.
귀남은 큰 가마솥에 닭을 대엿마리 푹 집어넣고는
밥을 짓기 시작했다.
식구는 귀남의 남편 길성과 딸 4명으로,
숙이를 제외 하곤 다들 입이 짧아서 음식이 남기 마련이였다.
그 중 귀남의 음식에 가장 관심이 없는 사람은 길성이였다.
길성은 힘든 논일을 마쳐도, 백김치에 막걸리 한병이면 족한 사람 이였다.
동생들은 모두 집안 살림들을 나몰라라 했다.
둘째는 거울 앞에만 붙어있는 사람이였다.
잘나지도 않은 얼굴을 한참 요리조리 분칠하더니,
점심때 나가서는 통금 직전에야 들어오는 날라리.
셋째는 책 밖에 모르는 아이라, 항상 책상앞에 코를 밖고 있었고,
식구들 모두 내심 그 모습을 흐뭇해 했다.
“쟈는 뭐라도 될년이여” 라고 귀남은 동네에 자랑하곤 했다.
넷째는 작고 큰 사고를 치는 아이였다.
“넷째도 딸이랴?” 라고 읇조리며 휙 돌아서버리는 시어머니 등이, 귀남은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서운했다.
그 서운함은 넷째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남은 집안일은 모두 숙이의 몫이였다.
구석구석 해야 할 일들이 그득한데, 그게 보이는게 자신 뿐이라는걸 숙이는 잘 알고 있었다.
‘어휴 시키느니 앓지,’
어차피 동생들이 돕는 매무새는 성이 차지 않아서
직접 하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니가 이중 제일 현명혀.”
지나가는 말이라도, 아버지의 말은 숙이에게 자부심을 주었다.
길성은 매사에 무심한 사람이였다.
길성의 부모는 이북 사람으로 6.25때 어린 길성의 손을 잡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 전라도 금성에 터를 잡았다.
함경북도에서 사범학교를 나왔던 길성의 아버지는 금성 토백이들과 잘 섞이지 못했고,
항상 고향을 그리워 하시다 일찍 세상을 여의 셨다 .
길성과 함께 나주에 내려 왔던 형제지간들과, 사촌들은 그 시절에 지식인 층이였다 .
그들은 세상 바뀌는 꼴이 맘에 안든다며, 남북간의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지식인들이 환영 받는 다는 북으로 향했다.
부의 묘소가 금성땅에 남아있어, 길성은 그 묘자리를 지키느라
형제 자매들과 함께 가지 못했다.
농사 밖에 모르는 시골나부랭이들과 길성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입만열면 유식한 척이여‘ 라며 배척 당하기 일 수 라
길성은 막걸리를 마실때를 빼곤 입을 열지 않았다.
동네 맞선 자리가 들어왔고, 길성의 어머니는 귀남이 얼굴이 퉁실허니, 아들 나을 상이라며 결혼을 서둘러 성사시켰다.
바램과 달리 귀남은 딸만 넷을 낳았고, 넷째가 나오고 여섯달 뒤
길성의 어머니도 세상을 여의셨다.
길성은 귀남에겐 정이 없었다.
결혼도, 아이도, 길성의 의지가 아니였다.
그렇지만 그게 홀로 남은 어머님에 대한 도리였어서.
농사일이 끝나면 북녘땅을 바라보며, 자신의 지기지우였던 사촌형들과이 대화들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담배를 줄창 피우다, 술 한잔 찌끄리면, 이내 잠이 들었다.
부부사이에도, 자식들과도 길성은 말이 없었다.
그 중 숙이만은 예외였다. 여간 머리가 비상한 아이라,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서, 많은 설명을 하지않아도 되었다.
일머리도 좋고 손도 빨라서, 농사일을 거들러 와도
열손이 오는것 보다 나았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였다. 길성의 마음은 항상 북녘에 가 있었다.
식구들은 아버지가 있어도, 아버지의 존재를 애닳아했다.
숙이는 아버지의 인정이 좋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림을 도맡아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머니 보다 나아’
이상한 경쟁심이 고된 집안일 속에서도 숙이를 살게 했다.
해가 다져서야 화장이 잔뜩 번진 둘째가 들어왔다.
”왔엉~~“ 애교섞인 인사를 건네더니 이내 작은 방으로 쏙 들어갔다.
’저년은 이불꼬메는거 보이지도 않나‘ 속으로만 말을 삭이고,
숙이는 눈만 흘기다 다시 이불을 꼬맨다.
그러다 불연듯 생각난듯 방쪽으로 소리를 지른다.
”야! 셋째 공부하니까 방해하지말고 조용히해!“
”아 뭐래~! 넷째는!”
“몰라, 어디서 동네 장독이나 안깨면 다행이지. 밥때되면 기어들어오겠지.”
밥 푸는 향이 고슬하게 마당을 뒤덮었다.
가을 끝자락 어스름녘에 식구들 모두 마당에 모였다.
길성은 세숟갈이나 펏나, 고봉밥을 한참을 남기고는 곧장 큰방으로 들어가 담배를 폈다.
귀남은 매번 서운했지만, 매번 참았다. 다 아들을 못나아서야.
그리고 입 짧은 다른 딸 자식들을 타박했다.
“숙이처럼 좀 팍팍 먹으라고!”
“아니 먹을 장정도 없는데 왜이렇게 많이 만든건데? 닭도리탕을??”
둘째가 앙칼지게 대꾸해 본다.
이내 주걱이 둘째의 머리를 친다.
“왜 나만가지고 그래! 맞는 말도 못해?”
“다 쳐먹었으면 설거지나 해, 이년아!”
둘째는 설거지를 시끄럽게 하더니, 팽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휴 한심해’ 숙이는 식사를 마친후, 마루에 남은 이불들을 차곡차곡 개어서 넣고 실가지들을 정리했다.
설거지를 대충 마친 둘째보다 한참을 늦게 들어온 숙이는 둘째가 자신이 붙여놓은 껌을 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야. 그거 내껌 이야.”
“단물 한번 빠진건데 뭐 어때, 내가 내일 백통 사줄께”
”니가 뭔 돈이 있어서, 돈생기면, 사방천지로 뛰어당기는게!“
”아니 이집구석은 치사한 사람들만 있나!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숙이는 지금껏 둘째에게 쌓였던 불만이 터져나왔다.
둘은 머리채를 잡고 드잡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셋째는 조용히 보던 책만 들고 밖으로 나갔다.
넷째는 싸우는 소리가 난 작은 방을 슬쩍보더니, 둘째가 떠넘긴 설거지만 달그락 거렸다.
“이년들이 밤늦게 왠 굿판들이야!!” 부엌서 남은 음식을 먹던,
귀남은 큰소리에 서둘러 작은 방 문을 벌컥 열었다.
“여보! 이 기집애들 좀 좀 말려보소!!, 좀 혼구녕좀 내주라고!“
저녁 내 줄창 담배를 피우던 길성은, 뜻하지 않는 소음에 긴 한숨을 쉬었다.
길성은 느릿하게 일어서더니, 두루마기를 입었다.
밖에 놓여있던 막거리 한병을 들고, 문을 나서더니 부모님 산소가 있는 뒷산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딸들은 서로잡은 머리 카락을 놓고 싸움을 멈췄다.
둘째는 시팔조팔만 찾다가, 이내 거울을 보며 남은 화장을 지웠고, 첫째는 세수를 하러갔다.
귀남은 공허한 눈으로 대문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식구들이 남긴 음식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