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앵전
<1부 1>
3세의 기억
-곱디고운 한복을 입은 어미였다.
어느 무서운 아주머니에게서 거세게 뺨을 맞던,
순간 마주친 어미의 나를 바라보던 울듯한 미소.
-수염난 영감이 내가 니 아비노라 하였다.
그게 어떤 건지 알길이 없어 수염을 세게 잡아 당겼다.
어미에게 엄청 혼이 났다.
-“이제 너는 ‘원이‘ 란다“ 이름이 생겼다고 했다.
-단감이 홍시가 될 무렵, 어미는 배가 불렀다.
동생이 생겼다 하였다.
5세 말의 기억
-큰 대궐로 이사를 하였다. 아비의 집이라고 하였다.
들어가는 커다란 입구에서도
한참을 굽이굽이 들어갔다.
북쪽의 구석에는 작은 연못을 낀
아담한 한 채의 공간이 나왔다.
연못 옆에는 아름드리 풀이 가득 달린 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연못 위로 정자가 놓여 있었다.
너무 좋아 거기를 다섯바퀴는 뛰었을 거다.
“작지만 이쁜 감옥이네” 라며 어미는 작게 웃었다.
그게 무슨 말이요 물으니,
어미는 여자 인생이 감옥이라 하였다.
“이 감옥, 저 감옥 그저 머물다 가는거지...”
6세의 기억
어미는 여간 책을 많이 읽었다.
우리에게도 재미난 책들을 밤이면 밤마다
호롱불 키고 읽어주었다.
책속의 용감한 여인네들은 전쟁도 나가고,
산신도 호령하며,
멋진 도령과 결혼도 하였다.
여인과 결혼을 한 이도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내내 마음이 듫끌었다.
꿈에서는 신나게 금강산 호랑이를 두드려 잡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멋진 도령이, 옆나라의 왕자라며 청혼도 했다.
아비덕에 좋은 숙과 식을 얻었다 했다.
그러나 어미와, 나 애기 동생은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 같았다.
마당을 쓸고, 밥을 가져다주는 어른들은 우리나,
어미에게 한마디 말도 걸지 않았다.
어미는 매사 그러려니 하였고, 나는 갈수록 화가 났다.
전에는 작은 방에 어미랑 꼭 붙어 자다가
어미 단장 할 동안, 옆방의 분내나는 어미 친구들이
나를 꼭 안고 놀아주곤 했었다.
마당 쓸고 장작패던 아범과도 친했고,
부엌으로 달려가면,
행랑어멈이 손에 절편을 쥐어주곤 했다.
모두가 한 식구 였다.
저녁나절 불피우러 또 모르는 아주매미가 왔다.
옆에 턱을 괴고 앉아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 왜 나를 모른체 하우?”
굵은 나뭇가지를 두손으로 꺾으며 장작불속으로
집어 넣던 아주머니는
기가 찬 듯 나를 바라 보더니, 이내 무시했다.
그리고 일을 마치자 빨랫거리들을 들고 밖을 나섰다.
“ 왜 말을 안하우!” 뿔이 날대로 난 나는 아주머니를
계속 쫓아갔다.
“ 어휴 증말, 내가 관기년 딸 비위까지 맞추리?”
팽하고 성질을 부리더니,
나를 문안으로 밀치곤 대문을 꽝닫고 나가버렸다.
서러워서 한참을 우니, 어미가 나왔다.
“관기가 머유, 왜 나를 다 모른체 하는데에!”
하고 앉은채로 흙밭에서 땡강을 부렸다.
어미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다, 저녁먹구 새로 나온
책 읽어주까? 하고 말았다.
수염난 영감탱이는 한달에 한번 어미를 찾았다.
그러면 어미는 정자에 상을 차리고, 가야금을 텄다.
영감탱이는 안에서는 아버님이라 부르고,
밖에선 대감마님 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어느쪽으로도 부르고 싶지 않아,
심통난 얼굴로 입을 꼭 다물었다.
이야기속의 멋진 남자들과는 달랐다.
늙고 무서웠다.
심통이 쌓일 대로 쌓인 나는 어미가 동생에게
한눈이 팔린 틈을 타
담을 넘어, 이전 집을 찾아 헤멨다.
3시간 4시간 남짓을 헤매어 걸었나,
익숙한 기운이 풍기는 대문 앞에섰다.
크고 화려하고 멋진문, 문을 드나드는 이 중,
이내 아는 얼굴이 보였다.
어찌 여기까지 찾야왔나며,
행랑어멈이 나를 꼭 붙잡았다.
“어차피 여기로 돌아올거, 뭐 벌써오냐 이것아,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연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였다.
“다시 오면 좋다!, 거기는 막 다 나 무시하고,
어미도 무시하고, 사람들이 모옷됐어!”
“원이야, 천 것은 자존심이 없단다,
목숨만 있을 뿐이지,”
어른들은 알 수 없는 말들만 하는 멍청한 존재들이다. 정말이지.
4시간을 걸려 온곳에는 반각도 못 머무르고,
금세 아비의 집으로 끌려 들어갔다.
어미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며 혼내키려다,
울음만 삼키더니 나를 꼭 안고만 말았다.
그 날 밤 처음 보는 비단옷을 휘감은 아주머니가
시종들과 함께 우리를 찾아왔다.
어미는 바닥에 무릅을 꿇고, 싫다는 나도 꿇어 앉혔다.
“큰어머니시란다... ”라고 나에게 속삭였다. ‘큰.. 어머니? 그건 또 무어람‘
“어머님 돌아가시고, 널 들이는걸을 반대 하는이가 없어져, 그 냥반이 널 냉큼 데리고 오더구나.
나 역시 그게 마음이 저어하지는 않았다.
딸자식들이야 어미출신 따라, 열다섯이 지나면
다시 관으로 내보낼터.
그대야 여기 머무른다 하여도 바깥양반 장난감이니
내 뭐라하겠느냐.
소란만 피우지 않는다면야.
허나, 기껏 거둔 길고양이가 밖으로 드나들며,
말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일세.”
비단 옷의 큰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것을
멈추더니, 신호를 주는 듯 몸을 바깥 쪽으로 돌렸다.
큰 어머니 옆에, 표정없이 서있던 중년의 여시종이
어미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고개숙인 어미의 턱을 들리더니,
손으로 거세게 뺨을 내리쳤다.
짝 소리와 함께 힘없이 돌아가던 어미의 얼굴,
그 모든 상황들에 놀라 눈만 동그랗게 떴다.
“여기 언제까지 머물지는 알 수 없으나,
처신 잘하시게.”
큰어머니와 시종들이 떠나고 나서도,
어미는 붉은 뺨을 내버려둔채
한참을 바닥에 꿇어있었다.
그 밤은 나의 신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7세의 기억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어미의 뺨을 때렸던,
표정없던 중년의 여인,
성심댁은 이 대궐속에서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아이의 감으로
나를 안타까이 여기는 눈빛을 읽었달까
그녀는 나에게 곁을 주었다.
성심댁만 보면 치대며, 종알종알 하루종일 말을 걸었고, 성심댁은 그런 나를 물리치지 않았다.
그리고 방에 놀러가, 옆에서 같이 새끼를 꼬면,
곧잘 자기 이야기를 해주곤 하였다.
성심댁의 부모님은 소작하던 농부셨다.
심한 가뭄이 든해, 빌린 땅의 빚을 갚지 못해,
어릴 때 큰어머님 댁으로 팔렸다고 했다.
그리고 큰어머님이 이 집안으로 시집올 때
혼수로 같이 오게 되었다.
처녀적 큰어머니는 고상한 아가씨였다고 했다.
아씨를 모시는 일은 농사일보다 백배는 수월하였고,
더 이상 배를 곪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고 했다.
집안 어르신은 성심댁을 보며, 다리와 골반이 튼실하여, 좋은 씨밭이 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머슴으로 있던 성심이와
소마냥 접을 붙였다.
아이 셋은 낳자마자 모두 죽었다고 했다.
쓸모 없다며 내쫓기려던걸,
지금의 큰마님이 똘똘하니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어느날 현 마님, 구 아씨는 성심댁 에게 물었다고 했다.
“그래도 여인은 울타리가 필요하다던데,
좋은 놈을 찾아주리.”
“자식복도 없는 년을 어떤놈이 좋다 하겠습니까,
그냥 아씨만 모시다 가겠습니다.”
하고 성심댁은 마다 했다.
큰마님은 우리한테만 서릿발 같고,
성심댁한테는 햇살같구나.
“그럼 지금 서방은 누구요?” 덕구아범이랑 살잔수?“
성심댁은 하하 하고 크게 웃더니
내 등짝을 짝하고 쳤다.
덕구아범은 화전민으로 살다
산사태로 처자식 다 여의었다.
살 길을 잃어 막막하다가,
연이 닿아 대감마님댁에 들어왔다고 했다.
덕구아범은 우직하고 말이 없는 사내였다.
산사태가 났을 때 큰 나무밑에 깔리고는
사내구실을 못하는 처지라고 들었다.
온동네방네 남의 일 떠드는 이는 어디나 있으니,
어린 나는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를
눈치도 없이 내뱉었다.
”덕구 아범은 사내구실을 못한다던데?“
성심댁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내 볼을 꼬집었다.
”그게 좋아 사는기다. 밤일 지겹다. 취미도 없구.“
죽은 아이들은 모두 딸이였다고 했다.
셋다 겨우 태어났고, 몸도 아주 많이 약했다고 했다.
마지막아기는 6달을 겨우 넘겼었는데,
살아도 자신마냥 소접붙이로 살 것 같아
제 손으로 죽였다고 했다.
”나같은 종년들이 많아, 다들 쉬쉬해서 그러지.“
동생은 나면서부터 몸이 약했다.
혹시 어미가 성심댁 마냥 동생을 죽일까봐
한동안 밤이면 밤마다 안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