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앵전2

<1부_2>

 

 

8세 봄 날 


세 살 터울인 동생 련이는 몸이 약했다. 
그래서 같이 놀기엔 영 마뜩찮았다.
담을 넘을때마다, 그 앞까지 따라와서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

바깥으로 나가선 성심댁 따라 
산에 나물을 캐러가기도 했고, 
전에 살던 기방의 매실아범이 가느다란 실로 
강에서 물고기 낚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동네 여자아이들은 어미들이 나와 놀지 말라고 하니까
나를 본채 만채 했다.
화가 잔뜩 나서, 두 손에 흙을 잔뜩 모아 뿌렸다. 
호로첩년의 자식이라며 그 집 어매가 빗자루로 나를 때렸다

서러움이라는 것도 계속 찾아오니 익숙 해졌다.
이제는 애들을 마주치면, 한번 쏘아보곤 돌아보지 않았다.

니네 아니여도 나 이뻐해주는 사람 있다! 
놀아주는 사람도 있다! 물론 다 어른들이지만.

산이랑 강에는 재밌는 것 천지 였다.
첩년 자식이라고 욕하는 아낙네들도 없고 
자연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다. 
산에 나는 버섯들 중
독이 있는것들은 생긴 것이 유독 이뻣다.
생선은 배앓이로 끝나는 놈과, 
거품을 물고 죽게 되는 놈 다 따로 있었다.

매실아범이 겉보기에 화려할수록 독이 시다며, 
사람도 그렇다고 했다.
”탓은 못하지, 지들로 살라고, 
그렇게 태어나버렸으니 살라고“

매실아범의 어미는 관기였다고 했다.
나면서부터 거기였고, 당연한 듯 주어진 일들을 하며 살았다고 했다.
”어미는 어딨어?“ 
”.... 죽었지."
아범은 강가 깊숙이 들어가서, 대나무 바구니로만 툭툭 물고기를 담아냈다.

”그게 보여?  그른데 저짝 아자씨들처럼 
큰 그물을 쓰면 더 많이 잡힐거 아니야, 아니면 같이 하든지?“

”누가 노비랑 같이 하겠냐 이것아.“

나랑 같은 처지구나. 
많은 실 없는 질문에도 대답해주는 매실 아범이 좋았다.

매실아범은 자식이 셋이였다. 
첫째 석이랑 둘째 똘이는 나보다 훨씬 위였는데 
곧잘 동네 농사일을 도왔다.
막내 딸인 매실이는, 내 동생 련이랑 동갑이였다.

매실아범은 매실이가 관기로 뽑힐까 두려워, 
아이가 열다섯이 되기전에는 돈을 모아 
양인의 신분을 사리라 마음 먹었다 했다.
그래서 열심이 물고기를 잡아 높으신 어르신들께 드리는 거라고.
왠지 모르게 매실이 부러웠다.


심통이나서 빨리 집으로 가버렸다.

나도 매실 아범 딸 할래!  철 없는 소리하며 하루종일 툴툴대다 
결국 어머니께 회초리를 맞았다. 
동생은 문틈으로, 쌤통이라는 듯 눈을 흘겼다. 
얄미워서 죽을 것 같았다. 


9세 여름 아침 나절
  
한달에 두어번은, 아버지라 부르기 싫은 
수염난 영감탱이에게 붓글씨를 배워야 했다. 
”향후, 이 집안의 차녀로 개가 시킬것이니, 
집안의 명성에 누가 되어서는 안된다.“
  
붓을 보고 종이짝만 한참 처다 보았다.

'첩년의 자식, 첩년의 자식 하고 다들 싫어하는데 누가 나를 데려간답니까?' 라고 속으로만 속삭였다.

수염 난 영감탱이는 무섭게 생겼다. 
어릴때는 말만 걸면 무서워서 울어버렸다.


매실아범을 따라 고기잡으러 갈 수 없게되어 
잔뜩 심통이나서인지, 날이 더워서인지
그날은 수염난 아저씨를 똑바로 보았다.

”글은 배워 무엇합니까? 어차피 관기 자식이니, 옳타구나 때 차면 관에다 넘기면 그만 아닙니까? 나으리 말 대루 시집보낸다 쳐요,
어느 눈삔놈이 저를 데려간다 쳐요, 그럼 애만 잘나으면 돼지, 글이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불호령이 나올줄 알았던, 아저씨의 입에선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얕게 웃으며 나를 바라 보았다.
처음 보는 따뜻한 시선 이였다. 

아니다 처음 눈을 마주 했다는게 맞았겠다. 
그 무서운 영감탱이는 내내 나를 그리 바라보고 있던 게구나.

”아니라곤 말을 못하겠구나. 나으리 아니고 이 아비는 ..청년시절 군관으로써 청국을 방문할 일이 많았다. 

그곳은 온갖 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잔뜩 있었단다.
어떤 나라의 여인들은, 집안에만 있지 않고 장사도 하며, 싸움도 하며, 
남자 못지않게 자유로이 살더구나. 

허나, 이 조선땅은 그러하지는 못하지. 여인이 지켜야 할 도리와 삶이 
가혹하다면 가혹하다.

그렇다고 나의 어머니의 시대의 삶과, 
너의 시대의 삶이 같다고 할 순 없구나. 아비가 말할 수 있는 건, 그래도 너는 더 나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 나은 배움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향한 막연한 미움들이 순간 쓸모가 없어졌다. 

첩에게 자식을 두어, 이 세상에 내놓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말이다.
어쨰서 높으신 양반께서는 그리 배움도 많고 본것도 많으신데 
일부종사하지 않으시고, 비난 받는 삶을 나와 동생에게 준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사이가 좋지 않다 들었다.
정확히는 명문가 문인 출신의 큰어머니가 아버지의 무인집안을 경멸한다 했다고 소문이 파다했다.
큰어머니의 아버지가 비명횡사 하시고, 가세가 많이 기울었고 
격이 떨어지는 집안과는 혼인할 의사가 없다며, 
버티던 큰어머니는 20살이 되어서야 처지를 수긍하고, 
이 집안으로 시집을 오셨다고 했다. 

둘사이에  세 번의 의무적 합방 후, 
집안의 장남 ‘희준’이 생겼다. 
이 후로 집안의 큰 경조사를 제외하곤 부부는 
철저히 내외 했다. 

큰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오라버니‘희준’과 보냈다. 



<큰어머니, 임정희> 

정희는 살갗을 내보이며 빨래하는 여인들을 세상에서 가장 혐오했다. 

정희의 친부는 허벅다리를 드러내놓고 빨래하던 천것과 사통하였다. 
  
그 천 것은 아직 어린 정희에게 니 아비 고추도 안선다며, 
스지도 않는걸 애써 받는다며, 니 어미일을 덜어주는 거라니까? 
하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렇게 못배우고 무식한 인간과 사통한것이 나의 아버지라니!
많은 배움은 아랫도리의 욕정을 이기지 못하는 구나.
정희는 천박한년 감히 자신에게 말을 걸게한 상황을 만든 자신의 아비를 용서하지 못했다.


친부가 언제나 그러하듯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밤, 
정희는 어머니 대신 아비를 기다렸다. 
그리고 새벽녁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가 걱정되서 
자신의 몸종과 골목어귀까지 나갔다. 
그곳에서 말과 함께 낙상한 아비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정희는 아버지가 그대로 죽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날로 어머니는 빨래어멈을 멍석에 말아 죽기전까지 두둘겨 패서 
마을 바깥으로 멀리 내다 버렸다. 


시집 와서 세 번의 밤 모두, 
정희는 옷을 벗지 않고 일을 치루웠다.

내가 만든 피조물, 아들 희준은 완벽한 존재였다. 
순수한 결정체인 이 아이를 
천박하고 비천한 여인들에게 오염되지 않게, 아랫도리의 정사에 휩쓸리지 않도록 키워내야 했다.
  
희준이 13살이 되던 해였다. 
동네의 중인 출신의 솜씨좋은 바느질 어멈이 
희준이 자신의 딸을 구석으로 데려가 속곳에 손을 넣었다 했다. 
 
바느질 어멈은 새벽녘 급하다던 일감을 서둘러 마무리하여 가져다주러왔다가 같이 온 딸이 사라졌다 했다. 

양반 댁에서 수선을 떨 수야 없어서, 나지막이 딸을 찾아 불렀다했다. 

바느질어멈의 딸은 동네에서 좀 모자란 애로 통했다. 
그래서 지어미가 13살이 되도록 
곁에서 떼내지 못하고 어디든 데리고 다녔다. 
동네에 호로 잡놈들이 많다면서. 

바느질 어멈은 도련님방 뒤쪽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딸아이를 발견하였다. 
어멈은 온전한애도 아닌데 거길 스스로 갔겠냐며, 도련님이 끌거 간것이라 주장하였다.

희준은 새벽녘 뇨가 마려워 잠이 깨, 
이미 그득한 요강을 뒤로하고 뒷간으로 갔으며,
문앞을 서성이던, 그 집 딸이 갑자기 치마를 들어 올리더니 만져보라 한적은 있으나, 자신은 무서워서 방안으로 쏙 들어갔다며
속곳에는 손을 넣은적 없다며 
엎드려 펑펑 울었다. 

‘아, 내 순진한 아들을 어찌 한단 말이고.’

바느질 어멈에게는 내 아들이 그럴일 없으니 
향후 이 일이 추문처럼 퍼질시, 치도곤을 치를 것이라 잘 타이르고, 
딸 처신부터 똑바로 하라고 훈계도 잊지 않았다.
황당한 표정의 바늘어멈은 다시는 이 집안의 일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소문을 내지도 않았다. 
정희는 마을에서 평판이 상당히 좋은 마님이였다. 
마을이 힘들면 아낙네들에게 일거리를 주거나, 곡식을 나눠주었고, 
성실히 일하는 여종들에게도 배품을 아끼지 않았다. 
입을 잘못 놀렸다간 내가 매장이다. 
 
정희는 천 것들의 속내가 역겨웠다. 
어찌 하면 귀한 집안의 순진한 남정네를 꾀어내어 새끼를 배고 주저 앉으려 하는지 혐오스럽기 짝이 없었다.

일천즉천.

어미라는 터가 천하면 그 씨앗은 무엇을 뿌려도 천한 것이다.
밥줄 부지하겠다고 천한 씨를 세상에 뿌리다니.
도저히 상상못할 짐승들이로다.

이제는 서당으로 오가는 길도 위험했다.
내노라하는 스승들도 수소문하여 집으로 직접 초빙 하였다. 
그리고 희준의 마실을 오가는 길은 항시 덕구아범을 대동 하도록 하였다.
 
그날 이후 희준의 거처에는 남종 내지는 중년의 여종들만 두었고, 
여종들은 나이가 많아도 한여름에도 목까지 천으로 감고 살갗을 가린 채 일을 해야 했다. 

”너의 부인이 아닌 여인의 살갗을 보는 일도, 
만지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양반가 사내로서의 도리이다.“ 

”네.. 어머니 네.“
  
남편인 종수는 이 상황을 매우 못 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훈육은 종수의 몫이 아니였다. 

인간은 그리 현학적인 존재가 아니다. 
동물에 가깝지. 
그래서 자신의 아들이 한짓도 종수는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놈은 궁금해서 만졌을 것이고, 
그 기집아이는 만지라고 내주었을 것이다.

돌아가신 종수의 어머니도, 정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였다. 
갑갑하기 짝이 없던 나의 어머니.

’골방에 틀어박혀 망상만 키워내는 여인내들 같으니라고.‘

 종수는 숨 쉴곳을 찾아 별채로 향했다. 



10세 겨울 날 

한  달에 한번 오던 아버지는, 
부쩍 별채에 자주 오셨다.
아버지는 별채의 정자에서 온갖 서책 들을 들고 와 우리와 함께 읽었다. 

삼국지연의, 서유기, 홍루몽....
책 속에는 환상의 세상이 가득 하였다. 

아버지는 같은 양반내들의 세속적 취향을 
곧잘 비난하곤 하였다. 
    
”아니 서책이란게 재미가 있어야지. 
두보, 왕유, 이백, 시에서 조차 나라의 안위이니,
안분지족니 , 누가 누가 어려운 말쓰기 대결이라도 하나.
평상시에는 재산불리거나 계집질밖에 관심 없는 인간들이 
그런 시가 최고라며 읊조릴 때 마다 
부아가 치미는 구나. “

아비는 양반내들은 등한시하는 통속류들도 
잔뜩 쌓아 놓아 우리와 평을 나누곤 하였다. 
우리들은 여러모로 아버지의 숨겨진 취향이자 
취미였다. 세상에는 드러낼 수 없는.




작품 등록일 : 2026-08-17
최종 수정일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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