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라서(書)] 코오롱 나이트 트래킹: 정치적 색채 짙은 야간 공포 산행(19)
★Laura 2021-01-16
지난 가을에 코오롱스포츠는 ‘상쾌한 밤공기를 맞으며 서울 산길을 트래킹하자’면서, 나와 같은 우매한 시민들을 꼬드겨 정치적 색채가 짙은 야간 공포 산행을 강요했다. 그리고 나는 혼비백산하여 하산하자마자 정성들여 코오롱을 욕하는 글을 써 두었다.

원래 일찌감치 이 글을 업로드하려 했지만, 나는 ‘코오롱을 팔로우하신 분들 중 포토제닉상 수상자에게 충북 괴산 코오롱 캠핑장 무료 2박 쿠폰을 드려요!’에 눈이 멀어, 수상 발표가 날 때까지 그들의 인스타 계정을 팔로우해놓느라 미처 뒷담화를 할 수 없었다. 코오롱측에서 트래킹 참가자들의 사진을 마음대로 찍으려고 만든 미끼 상품인 것을 알았지만, 괴산 코오롱 캠핑장은 시설이 꽤 잘 돼 있는 곳이라 탐이 났다.

내가 신청했던 프로그램 이름은 “나이트 하이커 - 상쾌한 밤 도심에서 걷는 인문학 트래킹.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서울의 문화와 감성을 함께 걸으며 경험!” 이었다.

코스 선택 메뉴에서는 서울 도심에 있는 산 중에 가장 난이도가 낮다는 남산을 골랐다. 준비물에 쓰여 있던 랜턴은 당연히 무시하였다. 남산에 깔린 수천개의 가로등이 24시간 길을 밝혀 줄 텐데, 괜히 야간 트래킹 느낌 내려고 쇼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저능한 나의 큰 착각으로써, 남산은 대단히 큰 산이고 코오롱측에서는 나같은 서울 토박이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이기 위해 조선왕조 500 년과 남조선 공화국 근현대사 250년을 통틀어 딱 49명만 알고 있을 것 같은 험한 산길로 안내했다.

남산 아랫자락인 이태원에서 나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할땐 좋았는데, 얼마 후 칠흑처럼 어둡고 곳곳에는 나무 뿌리가 엉겨있어 넘어지기 딱 좋은 가파른 흙길이 나왔다. 미끄러운 바위들과 나무뿌리를 피해 간신히 네 발로 울며 기어올라간 끝에, 남산 중턱 쯤에서 빌어먹을 ‘인문학 강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인문학 트래킹’이라는 말 대신 ‘반일감정 고취 트래킹’ 이라고 바꾸어야 하겠다. 인문학은 인간의 문화와 사상을 탐구하고 배우는 학문인데, 어찌된 일인지 코오롱에서는 트래킹 내내 시종일관 일본이 일제강점기때 서울을 얼마나 수탈했는지 알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했다.

출발 전날이 되어서야 참가자들에게 공유된 계획서 한 켠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빼곡히 “일제의 식민 통치, 친일, 독재 등 근현대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는 의미 깊은 경험 제공” 이라 써 있기는 했는데, 덤벙대는 성격 탓에 당시에는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 ‘비판적인 역사관’ 마저도 천 년 가까이 조선땅을 괴롭혀 온 지금의 중국인들의 수탈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고작 50년간 수탈을 한 일본의 ‘나쁜 놈들’ 에 대해서만 집중 언급된다.

트래킹 프로그램을 이끄는 대장은 커다란 태블릿 화면을 꺼내더니, 천벌받을 이완용이 자랑스런 독립투사의 식칼에 몇 회나 몸을 찔렸으며, ‘나쁜 일본놈들’이 그를 얼마나 열심히 살려 냈는지 열변을 토했다. 또한 종국에는 이완용의 무덤자리에 든 그의 시체가 나무 뿌리에 뒤엉켜 웅크린 자세를 하고 있다면서 사실을 가장한 괴담을 늘어놓더니, 그 시체의 자세로 미루어 보아 하늘에서 벌을 내린 것이 분명하다며 의기양양해했다.

사실 이는 인문학이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역사세뇌 프로그램에 가깝다. (물론 책 읽기를 싫어하며 단순하고 감정적인 단어에만 반응하는 현대인들을 고려해 정보의 질을 일부러 떨어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왜 이렇게까지 일본에 악에 받친 듯한 프로그램을 진행할까, 하다가 이를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 이런 정치적 색채를 띤 레퍼런스를 최대한 많이 남겨서, 반일을 아젠다로 삼는 정부의 눈에 들 수만 있다면, 앞으로 있을 대형 스포츠 경기의 공식 스폰서가 되기 위한 밑작업에 도움이 되리라는 계산을 한 것이 분명하다.

단언컨대 이 프로그램을 경험한 후 불쾌감을 느낄 사람들은 다음과 같으니, 아래에 해당하는 분들은 나처럼 시간낭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후기를 정성스럽게 적었다: 당신이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들, 인문학이 무엇인지 알며 또한 좋아하는 사람들, 퇴근 후 그저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도심 속 산 위에 오르길 원하는 사람들에 속한다면, 이 프로그램을 절대로 신청해서는 안 되며, 코오롱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치 처녀들이 늙은 난봉꾼을 피하듯 유난을 떨며 피해 다녀야 한다.

하지만 다음의 사람들은 어쩌면 이 프로그램을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덮어놓고 일본이 싫은 사람들, 정치인을 정책이 아닌 감정에 따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 웬만한 것은 모두 흑백 논리로 쉽고 간편하게 이해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삶이 평소에 불행하여 후드려 팰 대상을 찾는 사람들.

처녀들이 늙은 난봉꾼 피하듯ㅋㅋㅋㅋ 코오롱 미쳤노 왜 기업이 그렇게까지 참내ㅋㅋㅋ 별로라 언니 바쁘게 산다. 캠핑장 쿠폰은 받았느뇨?
sy*****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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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다들 시커먼 회색빛의 등산복을 입은 반면에 나는 아무생각 없이 개나리색 스웨터를 입었고 지인은 아래 위 새빨간 추리닝을 입었으니, 딸기바나나가 응당 포토제닉 상을 탔다 이기야 ㅋㅋ 캠핑 다 하고 와서 맘놓고 욕하는 글을 싸지름
★Laura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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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잼다
of***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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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재밋다ㅋㅋㅋㅋㅋ
ch*****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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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여기 가볼까 했었는ㄷㅔ 고마워....욕봤네
pr*******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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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프로그램 신청할뻔 했는데 후기 감사 글 재밋어서 달러드림
vl*******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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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라 언니랑 참맛 주자 언니랑 말투 비슷하다ㅎㅎ
qw******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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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온 기행문 수필 읽은느낌이야 ㅋㅋㅋ
ap*********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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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진짜 잘쓴다 ㅎㅎ
al*****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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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았어 ㅠ
벌꿀오소리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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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재밌다ㅋㅋㅋ이정도면 20년 뒤 교과서에 기행문으로 실려야돼
rk*****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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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랏
bl*****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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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진짜 잘쓴다 재밌어
ji******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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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다읽고 작가가 어디 잡지 기고한 글인가 했음 진짜 글잘쓰고 재밌다 ㄷ ㄷ
Bm***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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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 왜이렇게 다들 못후드려 패서 안달이야... 샌드백못잃어
대륙횡단열차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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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아 웃겨 염병도 정성이다이기
jj****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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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리네ㅋㄲㅋㄲㅋㅋ 괴담이라고 검색했는데 이게 나옴 근데 괴담맞네ㅋㅋㅋ
장코* 20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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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문학 트래킹 마무리로 '대한독립 만세!!' 삼창 부르는 단체사진을 찍을 예정이었으나 기획 마지막 단계에서 탈락되었다고 한다..는 내 뇌피셜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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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재밌다 상품타서다행이네
ta*****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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