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쿨했다.
나는 밥이 목에 콱 걸려도 꾸역꾸역 먹으며 엄마 눈치를 보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동생은 그냥 안 먹어 버렸다. 그렇다고 엄마가 우쭈쭈하면서 떠먹여 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내 지레짐작(저러다 두들겨 맞을텐데...!)과는 달리 엄마는 동생을 거의 혼내지 않았다.
오히려 동생은 주변에서 소소하게 떨어지는 떡고물의 풍요로움을 만끽했다. 주인집 아주머니도 그렇고 시장통 아지매들도 동생이 안쓰럽다며(아니, 나는, 나는...!!!) 막 뽑아낸 뜨끈한 가래떡을 뚝 떼서 챙겨주었다.
어딜 가든 동생은 환영 받았다.
이상하리만치 동생이 들어온 가게는 곧 꾸역꾸역 사람들로 넘쳐났다.
어렸을 때만 그런게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어서 한접시에 이백원 하던 밀가루 떡볶이를 사먹을 때도, 고등학생이 되어 아무 보세 옷집에나 쑥 들어 갔을 때도 동생이 들어가면 거기는 곧 사람들로 붐볐다.
동생의 목소리는 또르르 굴러가는 까만 구슬 같았다. 노래도 무지하게 잘했다. 어찌나 잘했는지 노래방 싸이키등 우러러 한점 삑사리 없이 소찬휘 노래를 완벽하게 불러 제낄 정도였다. 그러면 앞방, 옆방을 가리지 않고 하여간 온갖 것들이 여름 저녁 하루살이 마냥 다닥다닥 유리창에 붙어서 도대체 누가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르나 궁금해 했다.
애새끼들 중에선 가끔 쿨피스 따위를 넣어주며 작업을 걸어보려는 지질한 새끼들도 있었다. 똥싼 청바지를 입고 어울리지도 않는 목걸이를 걸고, 쭈뼛거리며 남자친구 있냐고 말을 거는 새끼들도 있었다.
동네가 조금만 괜찮은 동네였어도 재미삼아 만나봤을텐데, 답이 안나오는 실개천 뚝방라인이라 그 안에선 연애질 따위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동생은 사실 깡도 머리도 좋았다. 겁쟁이었던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무슨 일로 그랬는진 모르지만 우리 둘만 남겨놓고 어른들이 아침이 되도록 들어 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언니가 되어 가지고 심약하게 호랑이 할매귀신이 이빨 빼가는 괴담이 떠올라 덜덜 떨고 있었는데, 동생이 갑자기 그러는 거였다.
"언니, 귀신은 빨간색을 싫어한대. 이거 손에 들고 있으면 괜찮을거야."
이러면서 빨간색으로 색칠한 종이쪼가리를 쥐어 주었다. 빨간 종이를 손에 쥐고 있어서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또 존나 부끄러웠다.
동생이 그런 사소한(?)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렸을때 살았던 동네는 정말 후지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변변한 놀이터 하나 없었다. 그러다 한 교회에서 부설유치원을 증축하기 시작했다. 그 앞에 알록달록 삐까번쩍한 구름 사다리를 세우고 난리도 아니었다. 동네 애들은 모두 그 놀이터에 한번이라도 들어가보고 싶어서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하지만 원복 입고 노란 모자 쓴 애들 외엔 아무도 그 놀이터에서 놀지 못했다. 코파던 새까만 손으로 초록색 철조망을 부여잡고는 미끄럼틀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고딕양식으로 하늘 높이 솟아 있던 철조망은 너무나도 뾰족해서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이 몰래 넘어가서 놀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멀리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르게 가까이 가면 갈 수록 위압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영미가 동생 영호도 같이 왔다며, 한번 그 철조망을 넘어가 보자고 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랑 동생도 거기 끼어서 같이 넘어 갔다. 겁도 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짜릿해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처음으로 롯데월드에서 후룸라이드를 타 본 촌놈들 같았다. 나는 구름사다리를 건너가 미끄럼을 타 제끼면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염불처럼 외워대던 '하나님의 이름'으로 감사기도를 드렸다.
한참 그렇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유치원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거대한 덩치의 목사님(심지어 머리도 어깨까지 오는 단발이었다)이 무서운 얼굴로 뛰어 나왔다. 발이 느렸던 나와 동생이 그만 덜미를 잡혔다. 나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빡 소리가 나게 일단 뒷통수부터 한 대 얻어맞았고, 동생은 다른 손에 대롱대롱 붙들렸다.
이 병신같은 언니는 어쩔 줄을 몰라서 발을 당당당 구르고 있는데,
동생은 갑자기 "사람살려!!! 목사님이 목조른다!!!" 라고 있는 대로 소리 질렀다. 동생이 소리를 막 지르니까 나도 정신이 번쩍 났다.
시발 목사님 존함 석자를 존나 하늘에 대고 악을 썼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오예스랑 땅콩 캬라멜 세개씩 얻어먹으려고 그 교회를 기웃거렸다. 그때 담임목사 OOO라는 글자를 눈여겨 보았는데 그게 날 살렸다.
목사님은 우리를 잡아챘던 왁살스런 손에서 힘을 풀었다. 뒷통수에 치덕치덕, 우리가 뚝방으로 내뺄 때까지 쌍욕이 따라왔다. 이 정도로 마무리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 어두운 유치원 사무실로 끌려가 혼날 생각을 하니 어휴.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도가니가 덜덜 떨린다.
아무튼 동생은 누구라도 개같이 굴면 똑같이 응수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짠지를 안주 삼아 깡소주를 들이 붓고 있었다. 중간중간 이가 빠진 개다리 소반에 젓가락을 탕. 소리가 나게 던지듯 내려놓았다. '오늘의 주정'이 시작될 찰나였다.
골백번도 더 들었던 주정시리즈 제2편 '학창시절 집구석이 망했어요' 파트를 토씨하나 빼놓지 않고 재생하면서, 눈에 보이는 가족마다 괴롭히고 있었다.
하필이면 동생이 걸렸다. 동생이 잘못한건 아무것도 없었다. 밑도 끝도 없이 쓰레기 같은 년이라는 둥 욕을 하면서 기껏 미용실에 취직한 동생을 인생 실패자 취급을 하는 거였다.
동생은 안그래도 손에 물마를 날이 없어서 손끝이 다 갈라지고 튼 상태였다. 눈이 별안간 시퍼렇게 번뜩이더니 동생은 바람처럼 부엌 싱크대로 달려갔다.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칼이나 번쩍 움켜 쥐고 아버지를 쑤시듯 쏘아봤다.
나는 그렇게 술이 확 깨는 표정의 아버지를 처음 봤다. 누구의 피든지 간에 정말 피를 볼까봐 아버지는 그거 내려놓고 얘기하라고, 눈이 평소보다 일쩜오배는 더 커진 상태로 말을 간신히 이어갔다. 아버지는 그날 아무도 발로 차지 않았다. 그날 개다리 소반은 또 유명을 달리할 줄 알았는데 별 일 없이 이 년을 더 살다 갔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어지간하면 동생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동생과 나는 무지하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심하게 싸우거나 미워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동생과 나는 서로의 인생에 대해 깊은 관심은 없었다.
같은 냉장고 안에 살고 있고, 태생이 우유로 서로 같긴 하지만, 치즈가 요플레에게 "너는 꿈이 뭐니?" 이딴 질문을 하지 않듯 나는 동생의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해 하지 않았던 적이 훨씬 많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좀 특이한 사이이긴 했다. 동생 좀 끌어주라고 엄마가 노상 하는 잔소리가 나는 그렇게도 싫었다. 예전에 내가 한번 크게 데여서 그렇기도 했다. 딱 한번 동생에게 조언을 빙자한 병신같은 훈계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언니 니가 뭔데 그러냐며 동생은 눈을 까뒤집고 화답했다. 그때 동생 기에 확 눌려서 나는 그냥 그 애와의 관계에 있어서 을이기를 자청했다.
물론 동생이 코흘리개였을때는 내가 어른이라도 된 척 그 애 앞에서 거들먹거린 적도 많았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버스 탈 때 학생 요금을 내면 '양심없는 대학생' 취급을 받을 정도로 나에게선 노안의 향기가 났는데, 그게 어른 코스프레를 하는 나에겐 큰 재산이었다. 얼굴만 들이 밀면 동네 애새끼들 누구도 쉽게 빌릴 수 없었던 19금 책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빌릴 수가 있었다. 누군가 만화방에서 내 얼굴을 알아보고 "OO야!" 라고 아는 척만 하지 않으면 되었다.
야설 좋아하던 언니 덕분에 동생은 '성'에 대해 꽤나 일찍 알게 되었다. 집에 굴러다니던 김홍신의 '인간시장 제5권'이 우리 자매의 주 교재였는데, 나는 존나 급박할때 그 부분만 읽으려고 주인공 장총찬이 일본 여자와 만나는 장면만 강아지 귀처럼 접어놓았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장총찬이만 만나면 일본 여자는 아주 자지러졌었다. 그 여자는 다 큰 장총찬이가 씻는데까지 발가벗고 따라 들어와서 옆에서 비누질을 해주려고 했는데 상남자답게 장총찬이 확 마 귀찮아하는 내용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나에게 동생 공부 좀 시키라고 다그쳤지만 그때마다 내가 시켰던 공부는 죄다 이런 거였다. 동생은 가만히 앉아 천재 수학이나 수학의 정석 따위를 풀 체질이 아니었고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진지하게 뭘 가르칠 물건이 아니었다. 엄마만 그걸 모르고 있었다.
동생의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먼저 얘기하지 않는 한 거의 물어보지 않았다. 아예 궁금하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동생은 밤에 낄낄거리면서 통화를 하다 슬쩍 나가기도 했고 그 담날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말간 얼굴로 쇼파에 앉아서 양말을 신었다. 사실 모르는 척 하는 편이 나는 편했다. 동생의 인생과 고민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것이 버거웠다.
(계속)
작가 돈주기 |
뒷얘기 너무 궁그매요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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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er... | ||
이거 후편 앙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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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er... | ||
어머 좋네요. 훅 빨려들어가듯이 읽었어요
알고싶지만 누군가의 고민이 버거운 심정 이해합니다 역쉬 말이 안 통하는 자(술취한 짐승)에게는 충격요법이 지대로 군요. 쓰바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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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살 돋는즁 | ||
후속은 우디에있나요 너무 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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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 | ||
2편 없는거야? 내가 못찾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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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 ||
나 이 글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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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 | ||
뒤통수에 치덕치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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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za | ||
담편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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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 ||
재밌어요 묵직하고
다음편도 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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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 ||
더 써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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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튀김 맛있어 | ||
동생의 인생과 고민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것이 버거웠다.
이 문장 띵문 나도 그랬던 순간들이 많았지 아니 지금도 그렇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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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총총총 | ||
와... 진짜 글 잘쓰는사람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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컹 | ||
재미있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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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튀김 맛있어 | ||
조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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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2 | ||
잘쓰시네요 빨려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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뭏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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