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생활 - 적응기 - 구베이라이프

 

 

맨날 무슨 얘기를 써볼까 생각만 했다.

 

뭔가 재밌고 거창한 얘기를 쓰고 싶은 욕심이 앞서니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이런저런 구상만 하다가 손을 내려놓곤 했다. 마음속에는 상하이의 이모저모! 중국인과 한국인! 상해레스토랑 10선! 이런 거창한 내용의 글들이 둥둥 떠다니지만 자꾸 마음속에서만 거창해져서 손이 나가지가 않는다.

 

오늘 집에 있는데, 발이 너무 시려워서 이 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상하이는 한국보다 기온이 5~6도 많게는 10도씩 높다. 게다가 제주도보다 더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처음 상하이에 왔을 땐, 너무 따뜻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집에 있으면 너무나 발이 시렵다. 새벽에 발목이 시려워서 깨서 앉아서 찜질팩을 갖다대고 발이 따뜻해질때까지 기다리다가 도로 눕기도 한다. 특히 발등이랑 정강이까지, 다리에 싸늘한 냉기가 돈다. 다리 뿐만 아니라 잔등도 시려워서, 한국에서는 입어본 적도 없는 경량패딩 조끼를 집안에서 껴 입고 있고, 입어본 적도 없는 내복을 벗지 못한다.

 

여기는 늘 공기에 스산한 음기가 돈다. 기온은 10도 15도라서 더운느낌도 들때가 있는데, 어느 순간 으스스하게 냉기가 뼛속으로 스며든다. 한국에서는 도대체가 느껴본 적이 없는 추위다. 한국은 쨍하니 춥고 피부를 찌르듯이 추위가 몰려와서 롱패딩을 하나 걸치면 푹하니 따뜻한 느낌이 드는데, 여기는 나가면 따뜻한 거 같은데 어느 순간 뼈마디로 찬기가 스며든다.

 

특히 건물 안에 있으면 뼈마디가 시렵고, 밖에  나가서 마구 돌아다니고 있으면 땀이 난다. 나가서도 가만히 있으면 추워서 나무늘보재질인 내가 미친듯이 구석구석 쏘다니게 된다.

 

대체 이 음기의 정체는 뭘까? 

 

내 생각에는 일단 

 

1. 단열기술이 떨어진다. 한국 섀시는 거의 완전밀폐일 정도로 외부 찬공기를 차단하는데 여기는 겉모습은 한국 섀시랑 비슷한데 단열이 거의 안 되는 것 같다.

 

2. 공기 중 습도가 너무 높다. 한국은 기온이 낮아서 수분이 다 얼어버리니까 습기로 인해서 추위를 느낄 일은 없는데, 여기는 물이 얼지 않으니 내내 습기가 뼈를 시리게 하는 것 같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독일에 사는 사람들도 기온도 별로 안 낮은데 춥다는 얘기 많이 했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추위가 거기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기온은 많이 안 내려가지만 스산한 회색추위. 이 곳이 식민지 시절에 영국조계지로 제일 먼저 선택받은 건, 위치 상의 이점도 있지만 기후가 너무 비슷해서 적응이 쉬웠던 건 아닐까 잠시 생각해본다.

 

3. 터 자체가 음기가 넘친다. 왠지 기분탓이지만 상하이는 엄청 음기가 강한 땅 같다. 음, 음습하고 어두운 음기가 아니고 청량하고 맑은 음기가 아주 활성화된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여성적인 기운이 엄청 센 느낌이다. 여자들이 몸이 가늘고 활동적이면서 기가 세다. 우리나라 여자들에게서 나는 조심스럽고 수줍은 느낌이 별로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꾸안꾸느낌? 라벨안붙은 브랜드의 고급스러움을 선호한다면 여기 여자들은 에르메스 똬악, 샤넬빔 똭똭, 루이비통 팍팍팍! 이렇게 돈자랑할때도 약간의 겸손도 없이 대놓고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속눈썹도 티 안나게 붙이고 그런 거 없음. 걍 이센티가즈아~~~~ 길에서 보이는 평범한 여자들도 걸음이 빠르고 행동이 거침없다. 화려하게 꾸미고 속눈썹 퐉 붙이고는 신발은 뜬금없이 운동화신어버려, 오토바이 핸들에 프라다호보백 걸어버리고 쓰개치마 뒤집어 쓰고 부우웅 달려가 버린다.

(쓰개치마는 내가 붙인 이름인데 오토바이에 솜치마? 같은 걸 붙여놓고 손부터 발까지 뒤집어쓰고 다님)

 

아침에 단지 발끝이랑 발목이 시렵다는 이유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사람을 참 별 일도 아닌 일들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거 같다. 

 

사실, 추위와, 오토바이, 교통안전을 제외하면 나는 여기 생활에 꽤 만족하고 있다. 단지 가끔 뼈에 사무치게 불편한 기분이 들 뿐이다. 

 






 

나는 뼈가 시려서 미치겠는데, 하늘은 파랗고, 이미 오래전부터 꽃이 피고 있다. 오리들이 물 위를 떠다니고 짝짓기를 하고, 아기 고양이들이 잔뜩 공원을 돌아다닌다. 

 

12년 전쯤에 가족들이랑 패키지로 상해에 여행왔던 걸 제외하면 중국의 다른 지역에는 가보지 않았다. 아마 내 생각에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중국의 다른 곳과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구베이는 음... 한국으로 치면 음... 판교 정도 되려나? 공항이 가깝고 주변에 국제학교가 많아서 해외에서 파견온 주재원들이 자녀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거주하는 곳이다. 또, 중국인이지만 이중국적을 유지하면서 자녀들을 국제학교에 보내는 사람들도 많이 산다. 유럽인들, 백인들, 흑인들, 일본인들, 그리고 한국인들, 굉장히 부유해보이는 중국인들로 채워져있다.





 

황진청따오루라고 아파트 단지 가운데에 공원겸 산책로가 있는데 거기있는 부동산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155m2가 우리나라 30평후반 정도되는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2250w는 무슨 뜻일까요? 네! 정답입니다.

 

2250만 RMB라는 뜻이지요! 오늘 환율로 42억 5047만 5천원..... 

.....

.......

 

그래서 여기 살면서 느끼는 건, 내가 이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거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회사에서 대주는 월세로 부촌 끄트머리에서 간신히 살고 있을 뿐, 이 지역에 살면서 자녀를 1년에 5~6천만원 하는 국제학교에 보내는 로컬 중국인들의 라이프와 나를 비교하면 초라하기가 그지없다.

 

그래서 주재원들은 자식한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말을 한다. 괜히 학교가서 중국애들이랑 싸우지 말라고. 걔들이 뉘집 자식인지 모르니까. 

다행히도 중국아이들은 자기네끼리 몰려다닐 뿐, 한국애들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 여기에 있을수록 동북아시아 3국의 국민성이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뭐라해야되나? 중국인들은 큰소리 치고 막 나대고 막 약올려도 막상 싸움은 회피하는 느낌? 일본사람들은 굉장히 조용하고 예의바른데 막상 붙으면 호전적인 느낌? 그리고 한국인들은 그 중간의 어디에 있는 것 같다. 목소리 크지만 중국인보다는 작고, 나대고 몰려다니기 좋아하지만 남의 눈치 많이 보고, 막상 붙으면 잔인하게 잘 싸운다고 해야되나?

하여튼 좀 뭔가 다르지만 크게 걱정되진 않는다.

 

원래 상하이의 한인타운은 홍췐루라는 곳인데, 홍췐루 한인타운 옆에 구베이 일본인 타운이 커지면서 홍췐루 구베이 1기, 구베이 2기 이렇게 한국인들이 몰려서 살게 됐다고 한다. 홍췐루에 가면 간판 다 한글이야. 이바돔도 있구 간장게장 선지해장국 삼겹살 목살 장어 이런거 다 판다. 

심지어 반찬도 한식반찬 매일 새 메뉴로 위챗으로 신청가능. 코스트코 쇼핑 대행도 잘 되어 있어서 아주 적은 수수료만 받고 코스트코 쇼핑도 대행해주는 사람이 있다.

 

말이 좀 잘 안 통하고, 오토바이수백대가 미친놈들처럼 달리고, 도로교통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약간 사기꾼처럼 보이든 장사치들 많은 거랑 뼈가 시린 추위만 아니면, 여기는 해외생활 적응 난이도 최하인 곳 같다.

 

곧 비자도 풀리고 비행기도 증편되니까, 상하이 여행 많이들 하구, 다들 건강하길 바람. 

한국에 엄마한테 고양이 맡기고 온 이야기랑, 다시 데리러 가려다 실패한 이야기도 곧 써 볼까 함ㅠㅠ 사실 고양이를 데려오고 나서 반려동물과 함께 해외가기 꿀팁에 대한 글을 길게 써 보고 싶었는데, 어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비행기를 못하게 되어서, 막상 내가 실패해버렸다. 다시 반려동물항공권을 구할 때까지 가족 상봉이 미뤄졌고, 다시 항공사마다 전화를 돌려서 항공권을 구해야 한다.

 

상하이 항공 증편을 간절히 비나이다비나이다. ㅠㅠ

 

그럼 다음 글로 만나요.

작품 등록일 : 2023-03-03
나도 상해아파트 살때 LG하우시스 샷시 수입해서 가져오고싶더라 ㄷㄷ 단열 넘나 후진거
li****   
재밌고 흥미로웠어요 호호 또써줘요
섹스킹   
어후 언니 글을 너무 잘써서 읽을때 나도 모르게 맨날 신음소리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글 너무 재밌옹 자주 써주라
go********   
ㅋㅋㅋ 오 난 칭다오 살고 요즘 2주에 한번꼴로 상해 출장 다니는디 반갑네
난 중국생활 고인물이고 중국어도 되서 처음 온 사람들 글이나 블로그 보면 너무 신선하고 잼씀 ㅋㅋㅋㅋㅋ
상해에도 비싼집은 온돌 있어서 한국이랑 똑같음 ㅋㅋㅋ... 돈으로 해결 안되는게 업쥬? ㅠ
글구 음기 맞을껄? 예전부터 중국은 음기 때매 한국 여자애들은 중국오면 살찌고 한국 남자애들은 살 빠진다는 카더라가 있음 ㅋㅋ
RMB 버...   
글 재밌어서 쭈욱 읽음
흰둥이   
죠아
wunderbar   
좋은 글.
관리자   
상해의 겨울은 냉장고 야채칸 같은거지 으슬으슬으슬 온도는 영상인데 살속을 파고들어

집 창문 단열 그런것도 겨울을 고려 안해서 더그랴
gu******   
우와 그동네 여자들 되게 맘에 든다.
Tap   
ㅁㅈㅁㅈ 상해는 언니가 묘사한대로 추운 반면에 북경은 칼바람이 귓싸닥션 날리는 추위임 어흑 첫번째 사진이 너뮤 예뻐서 좋다 상해 대련 북경 곤명 등등 다 넘 가고시픔 L비자 내놔라 이노무쉐키들아ㅏㅏㅏㅏ
꺼삐딴 리언년   
구베이 ㅋㅋ 주재원이야? 상해 그립다. 글 자주 써줘. 특히 먹는거 ㅋㅋㅋ 중국 닭발 먹고프다 ㅋㅋ
핫춋쿗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