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놀이
어떤 사악한 마법사가 내가 가진 것을 하나씩 빼앗는다고 상상해보자. 사악한 마법사가 나의 시각과 청각을 빼앗아 갔다. 나는 완전한 암흑, 완전한 침묵 속에 있다. 두려움이 일어난다. 오만 생각이 다 난다.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지?' '이 상황은 언제 끝나지?' 그리고 다른 감각들, 땅을 딛고 있는 발의 느낌, 쉼쉬는 느낌, 심장 뛰는 느낌 등이 더 예민하게 느껴진다.
마법사는 이제 촉각, 후각, 미각, 내장 감각, 균형 감각을 포함한 나의 모든 신체의 감각마저도 빼앗는다. 나는 이제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다. 심장 뛰는 느낌도, 숨쉬는 느낌도, 혀와 이가 닫는 느낌도, 옷과 몸이 닿는 느낌도, 내 몸의 균형 감각도 느낄 수 없다. 나에게는 생각과 감정만이 남아있다. 두려운 감정은 더욱 커져 폭풍우가 된다. 미칠 지경이 된다.
이제 마법사는 그 두려운 감정도 빼앗아 간다. 슬픔, 즐거움 등도 다 빼앗는다. 나는 이제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두려움의 폭풍 속에 휩쓸리던 내 마음은 이제 고요해졌다. 그럼 무엇이 남는가? 생각만이 남는다.
마법사는 이제 생각도 빼앗아갔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생각, 감정, 오감이 없는 나는 무엇인가?
나는 있는 나이다. 나의 있음은 사악한 마법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힌두교에서는 '우주는 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1백 브라흐마 년이 지난 뒤면 그는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 속에 빠려 버릴 것'이라는 오묘하고 흥미있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주도 이 신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다시 1백 브라흐마 년이 지난 뒤 신은 눈을 뜨고 스스로 일어나 또 다시 위대한 우주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보르헤스
시간이라는 재료로 나는 만들어져 있다. 시간은 나를 쓸어가는 강이다, 그러나 내가 그 강이다; 시간은 나를 잡아먹는 호랑이다, 그러나 내가 그 호랑이다; 시간은 나를 태우는 불이다, 그러나 내가 그 불이다.
마음은 꿈을 꾸고있다. 세계는 마음의 꿈이다.
융
신을 지금 믿으시나요?
지금요?
음... 대답하기 어렵네요.
나는 (신을) 알아요.
믿을 필요가 없어요,
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