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드. 내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진 잘 모르겠어
그냥 내 의식인지 본능인지 '현존'하고 있다고 깨닫게 된 것이 언제부터일까.
불과 며칠인지..
아님 몇 백년인지 모르겠어
그냥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단 것만 알아.
그리고 나는 나를 강하게 염원하고 부르는 여성에게 자석처럼 끌려가
그러다 그녀들을 지켜보고 필요한 순간 빙의해.
존나 뻔한 소재지.
지금 내가 와 있는 곳은 연려 대학교란 곳임.
존나 명문대임 ㅋ
섹스섹스 파워존나 섹스!!!!!!!!하는 혈기왕성 불끈불끈이들이 많은 곳이기도 해.
늬들 그거 알아?
명문대 다니는 머리 좋은 놈들이 전두엽이 조온나 발달해서 섹스도 더 밝히는 거?
여긴 경영학과인 듯 해
각설하고,
오늘 나를 끌려게오게 한 20살 모쏠 아다녀를 지켜보고 있어.
이름은 김지영.
161cm 음 아담한 키에 제법 마른 듯한 팔다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제 얼굴을 반 이상 가린 안경을 끼고 있어
대학 입학 했는데 라식이나 라섹도 안 했나? 싶은데 워낙 성격이 조용하고 내가 볼 땐
음침 하기도 하고.... 스타일도 좇나 구리고 존재감 제로인 것을 보니, 그냥 안경이
제 몸이 된 지 오래된 인간이라 가리는게 편하다고 생각하는 듯 해.
학창시절에 공부만 오지게 한데다, 살면서 한 번도 눈에 띄어본 적이 없는,
어쩌면 평범하디 평범한 여자앤데,
결정적으로 얘, 여자들이 환장하는 '좁은 흉통'에 D컵을 가진 소유자야.
그러나 스무살이란.... 자신의 성적 매력을 알지도 못하고 활용도 못하는
순박하기 그지 없는 나이이기에, 늘 펑퍼짐한 후드에 청바지 차림이야.
얼굴도 꾸미면 제법 예쁠 이목구비에 무엇보다 잡티 없는 하얀 피부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환장할만한 요소들 다 갖추고 있음에도 제 가치를 전혀 모르지.
너무나도 빙의하고 싶은 육체인 것!!!!!!!
얜 지금 같은 과 24살 복학생 오빠를 짝사랑하고 있어.
같은 동아리 회장.
모쏠 아다여도 에스트로겐의 본능인지 뭔지, 훤칠한 키에 얼굴도 상당히 대물상인,
흔히들 축구부 주장할 것 같이 생긴 파워 인싸 OF 인싸 스타일이야.
실제로 축구부를 하고 있기도 하고.
난 개인적으로 이런 학생회장 스타일들 넘나 별로지만,
남자 경험 많이 없는 시기엔 또 이런 놈들이 미친듯이 꼴리잖아?
작은 매너나 배려에도 '어멋...두근두근! 이 선배가 혹시 ....나를....??'
하게 되는 매력도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말고도 주위 다른 여자들에게도 친절한 것을 보고, 그 착각은
지우게 되더라도, 좇찐따인 나와는 달리 주위에 사람도 바글바글 하고
항상 미백 치료 받은 듯한 새하얀 건치를 드러내며 핫핫하!! 나만 믿으라구!! 하는 모습이
이 세상의 온 빛을 저 새끼만 흡수하는 것 같아 보이는.
태생부터 주인공 같은 저 새끼를 '동경'하게 되는 마음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기 쉬우니 말야.
여튼 저 회장새끼는 섹스매력녀 의식이자 본성 그 잡채인 나, '이드'가 봤을 땐
오백프로 대물이다.
지영아, 너 남자 보는 눈 있구나. 저 새끼가 좋은 새끼인지 아닌지까진 잘 모르겠지만
이 언니가 볼 때 강직하고 우람한, 매우 쓸만한 물건을 갖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야 김지영! 오늘 점심은 혼자 먹지 말고 우리랑 같이 먹어!!
후문에 새로 생긴 스시집 분위기도 괜찮고, 사장 존나 잘~생김!!"
21살. 재수 후 김지영과는 과 동기인 스타일 좋은 '최은별'과 그 무리들.
"응? 으응..언니 알았어~"
사실 김지영은 회장이 자주 가는 건물 2층의 학식에서 혼밥을 하고 싶었으나,
거절을 할 용기가 없다.
최은별은 제법 남자 경험이 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도 잘 알고, 여자들을 휘어 잡는 포스도 어느 정도 있다.
웨이브 진 긴 생머리에 살짝 파인 하얀색 블라우스에 딱 붙는 짧은 치마, 쫙 달라 붙는 SW부츠
청순한 듯 하지만 눈만큼은 화려하게 칠한 화장이 이목구비와 조화도 잘 이루고,
장점인 길쭉하고 잘 빠진 다리를 과감 없이 드러내
부랄 달린 것들이라면 한 번쯤 고개 돌릴 법한 미인(처럼 보이는) 스타일
...그런데 좀 좇찐따다 싶은 여자애들 보면 한 번씩 꼽주고, 과에서 예쁘다 소문난 여자 선배들
한 번씩 후려치는 발언을 하는데다, 남자가 끼는 모임에선 무조건 자신이 주목 받아야 하며
딱 김지영 정도의, 너무 못생기지도, 제보다 눈에 띄지도 않는 여자애들을 주위에 두고
시녀처럼 부리는 여왕벌 기질을 갖고 있달까.
어쨌든, 애매~ 하지만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는 최고로 많은 것 같은,
'내가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여자 중 가장 예쁜 스타일인' 그래 그 7의 여자쯤 되는 것 같다.
웬만하면 같은 영혼(!)인 여자들 평가는 안 하고 싶은데!!!!
좇찐따지만 착한 거유 우리 지영이 몇 번 챙겨주는 척 하면서, 화장품 심부름 시키고!
물 좋은 클럽 라운지 급 약속 생겼다며, 무거운 전공 서적 턱턱 맡기는게 너무 괘씸했어.
안 그래도 구부정한 우리 지영이 더 구부정해졌잖아!
그리고 너 헐렁한 옷 위로 탱탱하게 솟아오른 우리 지영이 가슴 라인 보고
"야 근데 요즘 남자들은 가슴 큰 여자들 별로 안 좋아하지 않냐?
솔직히 가슴 크면 둔해 보이긴 해"
라고 말한 거 내가 존나 다 기억한다.
어쨌든 우리 맹탕 좇찐따 지영이는 좇찐따 병신이지만.....
착하다.
요즘은 착한게 착한게 아니고 병신이고 호구라고들 하지만,
지영이는 남한테 피해 끼친 적 한 번 없고, 제 할 일 착실하게 잘 하고,
동물들도 아끼고 사랑하는 순수한 영혼이라구.
어쨌든 우리 지영이는 최한별 무리에 오늘도 어거지로 끼어서 스시를 찹찹하는 중이야...
여기...꽤 비싸다.....
과외로 알바하며 학비 대는 우리 지영이에겐 다소 빡센 런치 가격
"야 그런데 우리 동아리 회장...."
최한별의 말에 같은 동아리인 지영이 귀가 커진다.
"괜찮지 않아? 있는 집 자식이란 소문 있던데."
스마트폰 SNS를 활발히 해서 온갖 가십을 다 아는 정보통인 한별의 추종자가 답했다.
"어 근데 꼴에 눈 오지게 높대요. 예대 여신 홍보모델 언니가 들이대다 까였다던데
그 언니 팔로워 20만~"
"아, 그 선배 좀 성괴 아냐? 원래 금수저들이 성괴 싫어하잖아~
내가 이번 학기 중으로 자빠뜨려볼까 하는데"
"켁"
사례 들린 지영이 물을 들이키며 쿨럭쿨럭 하고 있을 동안 최한별의 친구들(이라 쓰고 시녀라 읽는다)이 대답한다.
"쉿! 언니, 아까부터 여기 사장이 언니 계속 쳐다봐요"
"오늘은 한별이한테 번호 물어볼 것 같은데?"
"야야 조용히 해봐. 이따 저녁 고세대 의대 애들이랑 미팅 픽스~"
구릿빛 피부에 30대 초반쯤 되보이는 팔뚝이 우람해 보이는 갈색머리 스시집 사장이
자꾸 흘끔흘끔 최한별을 쳐다보며 얼굴을 붉힌다. 대학가 후문에 자리한 스시집 치고는
웬만한 미들급 스시야보다 퀄리티도, 분위기도 좋다.
분명 사장은 돈 꽤나 있고 감각도 있는 자일 거다.
그런 사장에게 소리 없이 하~~이~~~ 입모양만 뻐끔 거리며 아이컨택 후,
2초 정도 지긋이 날려주는 눈웃음에 황홀해 하는 스시집 사장. 야 걔 너랑 띠동갑 차이나.....
아무리 최한별이 비호감이어도 저런 양심 없는 고추새끼들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오는
나, 섹스매력녀영혼☆이드.....
화제는 금방 미팅 이야기로 전환 됐고.
당연히 이번 미팅에도 자신은 부르지 않을 것임을 자각하고 있는 김지영은 조용히
물만 꿀떡꿀떡 마셔댔다.
한별이 언니가 작정하고 선배를 꼬시면......
둘이 잘 되면...... 어쩌지...
그런데 둘이 무척 잘 어울리긴 해... 둘 다 길쭉길쭉 키도 크고, 인기도 많고....
같이 서 있는 모습 보면 정말 잘 어울릴 거야..................
선배를 맘에 품은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뭐.... 내 짝사랑일 뿐이고...........
왜 좇진따들 사고회로는 다 이 모양인진 모르겠지만,
당당해져라 지영아! 회장은 길쭉한 다리보다 너의 하얀 거유를 더 좋아할 확률이 커........
그 새끼 관상이 그래..............
오후 수업이 모두 끝나고 지영은 혼자 동아리 방에서 도서 정리를 하고 있다.
지영아.....오늘 불금이야.
너도 최한별 무리 따라가진 못하더라도 제발 좀 꾸미고 밖에 나가서
젊음을 누려야지...!! ㅠㅠ
왜 좇찐따들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만 정리를 하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영은 오늘 스시집에서 최한별의 이야기가 신경이 쓰여 자꾸만 생각이 난다.
한별 언니가 점찍은 남자들은 웬만하면 다 넘어간다.
언니가 마음 먹었는데 자빠뜨리지 못한 남자는...............내가 알기론.... 없다.
이래저래 상념들로 머리가 복잡한 우리 지영이.
동아리방 창 너머로 뉘엿뉘엿 해가 진다.
근처 운동장에선 젊은 혈기의 청년들의 고성이 점차 잦아진다.
"아 뛰었더니 덥네!"
벌컥
갑자기 문이 열리고 대물 아니 회장이 들어왔다.
"어? 지영이네! 안녕! ^^"
"앗, 네 선배님 안 안녕하세요!"
회장은 특유의 건치를 자랑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축구부에서의 경기를 한 탕 하고 왔는지 땀을 꽤 흘리고 있었다.
"왜 너 혼자야? 그그 부츠언니들은?"
부츠 언니들?
아
"아, 한별 언니네는 오늘 저녁 약속이 있어서..~~~"
"그렇구나. 걔넨 동아리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더라, 항상 보이지 않아~"
회장이 동아리실에 비치된 작은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목에 둘러진 타월에 회장의 체액향이 물씬 풍겼다.
음 수컷 냄새
이런 상황에 익숙지 않은 지영은 큰 안경 뒤로 눈알만 굴려댔다.
역시 선배님도 한별 언니를 마음에 품은 걸까?
그래서 나한테 언니 무리들을 찾는걸까?
"음, 그럼 넌 지금 혼자인 거야?"
회장이 입가에 묻은 물기를 스윽 닦으며 지영에게 묻는다.
짜식 아래 입술이 꽤 통통한게 섹스럽군
"??
앗, 아...아ㅏㅏ 네ㅔ..에...."
"잘 됐다. 나 너한테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거든"
???
"괜찮다면 나랑 같이 저녁 먹을래?"
에ㅔㅔㅔㅔㅔㅔㅔㅔㅔㅔㅔㅔㅔㅅ....?????? 지영아 일본 오타쿠 반응 그만...
"어....어어언제요? 한별 언니네한테도 물어볼까요?"
좇찐따의 사고회로는 늘 이렇다.
남자가 단둘이 저녁 먹자는 신호도 나랑 같이 단둘이 먹을 리가 없잖아.
한별 언니랑 같이 먹고 싶어서 내 핑계를 대는 걸거야! 라고 생각을 한다.
회장이 씨익 웃는다.
"바보야, 지금 같이 저녁 먹자구.
오늘, 너랑 나랑. 단 둘이."
ㅇㅂㅇ
2000년대 초반 인소에나 자주 등장할법한 이모티콘에 어울리는 지영의 고장이 한동안 이어지다,
"어.... 저기 부담스러우면...
같이 안 먹어도 돼. 하려던 말도 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당황한 회장 아니 대물이 머쓱하게 둘러댄다.
오호라. 이건 명확한 그린라이트 아닌가?
역시 회장 너 이 새끼. 우리 지영이의 가치를 알아본 거지?
"아...아니요! 먹어요 저녁 지금, 그러니까 같이."
오오 우리 좇찐따 거유 지영이 !!! 웬일이야. 내가 도와주지 않았는데도 대답을 했잖아?
"그래?^^
그럼 후문에 새로 생긴 스시집 있던데 거기"
"아아뇨. 스시집 말구 딴데요"
오늘 한별 언니와 갔던 곳에 선배와 단둘이 가고 싶지 않다.......
"아, 스시 안 좋아해? 미안.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혹시 뭐 좋아해?"
"아아뇨, 스시는 좋아하는데, 저기, 그러니까 음 밥 말고..술! 술이요! 술 먹어요 우리"
좇찐따녀들은 이렇게 뭔가 위급의 상황일 땐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횡설수설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때떄로 매우 바람직한 효과를 불러 오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날 부르는 영혼들 중, 내가 빙의를 굳이 하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혹은 우연으로 남녀간의 합일을 끌어당길 때가 있는 것이다.
회장은 술이란 말에 잠깐 당황한 듯 멈칫 했지만,
"술? 술은 좀 이른 것 같지만....
그럼 좀 걷긴 해야 하는데, 역 근처에 괜찮은 와인 바 있거든. 와인 괜찮아?"
"네 좋아요 와인 좋아요"
김지영은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얼버무린 것 같지만,
어쨌든 건장한 대물(임이 확실한) 수컷과, 뽀얀 거유 암컷 우리 지영이는 그렇게
불금에 일찍 오픈해 한적한 와인바에 오게 되었다.
지영은 동경하던,
오랜기간 좋아하고 생각해오던 센빠이 회장과 단둘이
있단 것만으로도 떨려서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자신의 헛소리로 밥도 아닌 술을 먹으러 오게 되었단 것을 의식하자마자 영혼이 가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이럴 때 틈을 봐서 내가 들어가야 하는거다.
아직까지 지영의 영혼은 나의 빙의를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 상태지만.
"혹시 좋아하는 와인 있어? 레드? 화이트?
빈 속이니까 우선 배 좀 먼저 채울까?"
"어...아무거나요오. "
지영은 저녁놀이 하늘을 뒤덮고,
차분한 재즈가 흘러 나오는 제법 고급진 분위기가 풍기는 와인 바에서
헐렁한 후드티에 펑퍼짐한 청바지를 입은 채,
화장기 없는 얼굴에 커다란 안경을 쓴 자신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안돼 이년아 자의식 가지지마! 넌 존나 D컵 말랑뽀얀 거유녀라고!
힘내! 용기를 가져!
"음. 그럼 내가 추천해봐줄게. 여기요!"
역시 저 대물(확신) 회장은 노련미가 풀풀 풍긴다. 좋남일까? 나남일까?
저 정도면 분명 여자 경험이 꽤 있을 거다.
그리고 본인이 어떤 여자를 선호하는지, 또 어떤 여자를 못 참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겠지.
김지영에 대한 마음은 어떨까?
난 일단 나를 간절하게 원하는 여자들의 영혼의 이야기는 들을 수 있지만,
남자들 속마음에 대한 건 파악하기 어려우니 일단 찬찬히 살펴볼 수 밖에 없다.
화이트 와인과 자작한 모시조개찜, 트러플 파스타 등이 첫 안주로 나왔다.
메인 대화 없이 술 몇 모금을 마시는 시간이 얼마간 있었고,
살짝 취기에 오른 상태가 되었을 때 회장이 입을 열었다.
"내가 지영이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꿀꺽
"사실 내가 제대하고 복한한 지 1년이나 됐는데도 좀 어설퍼.
이걸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 네에..."
침묵
뭔데 이 대물아 얼른 말 해 나도 궁금해
"아무래도 지영아,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때였다.
내가 지영의 몸에 끌려 들어가 빙의가 된 것이.
지영의 몸에 빙의되자마자, 지영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우수수수 내게로 입력되었다.
지영이 새내기로 입학한 3월, 동아리 가입 후
복학하자마자 회장직을 맡은 선배와의 첫 만남.
최한별과 함께 있는 지영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회장.
지영은 한별을 보고 있는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다. 회장은 김지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큰 안경 너머로 쑥스럽게 내리깔고 있던 길고 긴 속눈썹을,
작은 얼굴에 잡티 하나 없이 말갛던 얼굴에 수줍은 듯 어색한 표정에 떠오르던 홍조를.
펑퍼짐한 옷 사이로 살짝씩 보이던 얇은 손목이라던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라던가.
이건 거의 첫눈에 반한 정도의 눈빛 아닌가?
그 후로 몇 번의 만남. 동아리 뒤풀이에서 술이 약한 지영을 챙겨주고
흑기사를 자처했던 회장. (뭐야 존나 그린라이트였잖아)
그러나 회장 특유의 밝은 에너지와 스스럼 없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 때문에
지영은 단순한 호의라고만 여겼던 것이다.
지영이 최한별 무리들과 늘 함께 있었기 때문에, 단 둘이 대화를 할 기회를 찾던 회장.
항상 수업이 끝난 후 늦은 저녁까지 홀로 동아리 방에 있던 걸 눈치 챘기 때문에,
늘 축구부 활동을 마친 다음 동아리 방을 찾았던 회장.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항상 다른 축구부 동기 녀석이 눈치 채기도 전에 뒤따라 붙거나,
평소엔 코빼기도 안 보이던 최한별 무리들이 불쑥 나타났다거나,
좀처럼 둘이 대화를 해볼 기회가 없었다.
동아리 일을 핑계로 1:1 개인 깨톡 연락을 해본 적도 있었지만, 지영은 단순히 공적인 일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이상의 진전 역시 없었다.
거기다 최한별! 이 썅년!
이 년은 지영의 기억으로 미루어 봤을 때, 회장이 지영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오백퍼
눈치 챘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회장 비롯 동아리 남자 선배들이 있는 곳에서 지영이는 남자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헛소리를 한 적도 있고, 회장이 지영이 혼자 있는 동아리방을 찾는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일부러 불쑥불쑥 동아리방에서 지영을 낚아채는 짓거리들을 해왔다.
그렇게 회장은 지영이 남친이 있거나,
혹은 자신에게 별다른 호감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을 넘지 못한 채
빙빙 돌기만 하다 오늘 우연히 기회를 잡고야 만 것이다.
아..아아.... 지영아..너는 정말....정말 눈치까지 좇찐따였구나.....
"사실 이건 나 혼자만 생각해온 거기 때문에 지영이 너가 대답을 할 필요는 없어"
회장이 꿀꺽 와인 한 모금을 삼키고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꼴깍 넘어가며 불쑥 튀어나온 대물의 울대가 참 섹시하다.
"그냥 내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너에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좀처럼 기회가 닿질 않아서......"
또렷한 눈빛으로 지영을 쳐다보다가 눈을 내리깐다.
"그러니까 부담 갖지 않아도 돼.
말하지 않고는 내가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아서"
......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눈 앞의 남자는 떨고 있었다. 평소 유쾌하고 호탕하며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지금 이 순간 제 자신에게 누구보다도 강자인 지영에게 칼을 쥐어주고 처단을 기다리는
가녀린 약자가 되어 입술을,넓은 어깨를 떨고 있었다.
무슨 대답이 나오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
이미 나에게 마음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은 수도 없이 했다.
그저 고백 하나만 하는 것, 오래도록 애타게 끓여온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단 것에 만족하자
수십번 수백번 스스로를 확신 시켰지만
막상 저지르고 나니 칼을 쥔 상대의 반응이 너무도 두렵고 무서웠던 것이다.
좋아하는 남자가 따로 있어요, 라던가
남자친구가 있어요 라던가, 혹은 그 누구냐 부츠 무리 중 하나가 했던 말처럼
전 남자에게 관심이 없어요 라던가
그 어떤 말도 다 받아들이리라
남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선배"
지영의 목소리 톤이 사뭇 달라진 듯 하다.
늘 수줍어 하고 안절부절했던 모습과 달리, 술기운 탓인지 또렷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다.
"한 번 안아봐도 돼요?"
깜짝 놀라 남자는 지영을 쳐다봤다.
" 저 지금 되게 선배 안아주고 싶거든요.
그래도 돼요?"
이게 꿈인가?
??
빙의된 내가 지껄이자, 그 옆에서 같이 관전(?) 중이던 지영의 영혼이
앜 언니 왜 이래욬 미쳤어욬!!!!!!! !@%@$&#%&@#%!^@^$ 소리 지른다. (물론 밖엔 안 들림)
"어........."
회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지영은 안경을 벗고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를 푼 다음, 과감한 팔 동작으로
긴 머리를 풀어헤쳤다.
"그럼, 실례할게요?"
회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다음 씨익 웃고는 자리에 일어나
맞은 편에 멀대같이 앉아 있는 커다란 남자를 스윽, 끌어안았다.
남자는 얼어붙은 듯 했고,
지영은, 아니, 빙의된 나는 두꺼운 회장의 몸에 내 몸을 더욱 밀착시켜 꽉 끌어 안았다.
물론 지영의 매력인 탱글탱글 우윳빛 거유를 더욱 신경 써가며 밀착시켰지롱롱이다.
이 육체를 함께 공유하며 느끼는 지영은 소리 없는 !#^@$&@$^!!$&@&$ 아우성을 질러댔고
어쨌든 니가 허락한 이상 지금은 내 맘대로 할거야 이기 때문에
나는 껴안은 남자의 몸을 한껏 음미하기 시작했다.
타고나길 뼈대가 굵은 체형이다.
거기다 운동선수라 해도 좋을만큼 탄탄하고 다부진 몸이다.
조각같이 잘생긴 미남은 아니어도, 높은 콧대와 선이 굵은 턱.
으음 역시 대물이 확실해
아마 이 몸하고의 궁합도 죽여줄 것이다.
다만 이 몸의 체형이 제법 작고 모쏠 아다인 것을 감안 한다면...
첫 경험 때는 아마...
죽겠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옆에서 읽고 있는 지영의 영혼은
미쳤어요? 난 바로 성관계 할 맘 없어요! 선배 고백도 제정신으로 인정하기 힘든 판국에!!!
나 남자랑 손도 안 잡아봤단 말이에요!!!!!
그러거나 말거나.
내 영혼이 현재 쫓겨나고 있지 않고 이 육체에 여전히 머물고 있단 것은,
지영의 무의식이,
지영의 본능(ID, 이드)이 나를 잡아두고 있기 때문이지.
걱정마 언니 믿어!!!
내가 꼬옥 껴안고 있는 와중에도 회장은 얼음이 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몸이 엄청 뜨거워진 것을 봐서 얼어붙은 불덩이라고 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
분명 지금의 포옹으로 지영의 육체를 한껏 느끼고 있을테다.
상대는 20대 중반의 복학생.
약 1년여간 짝사랑 해왔다 믿고 있는 첫눈에 반한 여자의 몸이 밀착되어
그 형태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을테니, 흥분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일테지.
다행인 건 이 좌석은 파티션이 깊게 쳐져 있어 다른 사람들의 시야에서도 안전하다.
"지영아....."
"선배, 정말 고마워요."
지영이 선배의 귀 가까이에 대고 속삭였다.
"나도 선배를 오랫동안 좋아해왔어요.
그리고 이런 순간을 늘 꿈꿔 왔어요"
&*#@#$@$&%&^^@$%^&!!!!!!!!!!!
지영의 영혼은 소리 없는 괴성을 질렀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몸을 살포시 떼어 선배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선배 얼굴을 지긋이, 눈꼬리에 살짝 힘을 주어 웃는 낯으로 아이 컨택을 했다.
"저.... 남자를 좋아해본 건 선배가 처음이거든요.
경험도 없고....."
남자는 동공이 크게 흔들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차마 마주하고 있는 눈 앞의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눈을 살짝 내리 깔며 긴장을 풀어주듯 했다가, 다시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성적 긴장감을 조였다 풀어냈다를 반복했다.
"제 처음을.........
선배가 가르쳐 주면 안돼요?"
지영의 영혼은 거품을 문 듯 기절을 한 것 같았고,
나는 본게임에 들어갈 때쯤 영혼을 깨우면 되겠다 판단했다.
어쨌든 처음을 함께 하는 순간엔 영혼의 주인이 오롯이 경험해야 하니까.
눈 앞의 남자는 귀까지 얼굴이 벌게져 있어 꼴이 가관이었다.
"하 지영아......
너 나 미치게 하려고 작정한 거야?"
나는 빙긋 웃어보였다.
"난 고백 받아주는 것도 바란 적 없었거든....
지금 그 말, 나랑 사귀어도 좋단 뜻이야?"
이 남자, 생각보다 순정 대물이다. 지영아, 합격이다, 합격이야. 아 너 기절했구나 참
"그럼요 선배. 우리 사겨야죠.
찐~~하게! ^^"
남자는 눈빛이 잠깐 이래저래 흔들리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엥 뭐지 이 반응은.
요즘 20대 초반에게는 내 섹드립이 먹히지 않는 것인가 잠시 좌절하고 있을 동안
남자가 고개를 살짝 들어 보였는데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얘 일어나봐 얘 찐이다. 찐으로 너 좋아하나봐 어머, 얘. 이건 봐야지.
여기서 눈물이 또르르 아래로 떨어졌음 불합격인데
아주 살짝 물을 머금은 정도라 남자다움을 크게 잃지 않고 무척 귀여워보이는군
"아 진짜 나 너무 행복하다.....
나 전생에 지구를 구했나봐..........."
난 오늘 잡빠뜨리고 챱챱 꼬춘쿠키를 선보이고 싶었으나,
어째 생각보다 더 순진한 놈인 듯 하여 살짝 맥이 풀렸다.
그래도 20대 중반만이 가지는 풋풋함, 다소 유치하지만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마음을
계산없이 풍부하게 드러내는 저 혈기왕성함이 보기 좋았다.
지영의 영혼 역시 기절한 듯 했으나 다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이쯤할까.
지영의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남자가 지영의 손을 잡고 있었다.
"기숙사 사는 건 알고 있었는데... 고향이 어디야?"
"경상도요. 선배는요? 어디 살아요?"
"나는 00동.. 가까워. 다음엔 차 끌고 올게. 좋은 곳 많이 다니자!"
지영아. 얘 있는 집 자식 맞는 것 같아. 너 듣고 있는 것 다 알아.
우리 지영이 열심히 착실하게 잘 살아서 복 받나봐.
"음 그런데...그 부추 무리 여자애들이랑은 많이 친해?
사실 항상 걔들이랑 함께 있어서 말 걸기가 힘들었거든....."
"아 한별 언니네요. 음....
이제 오빠랑 데이트 많이 많이 해야 하니까 말해둘게요 ^^
참, 오빠라 불러도 되죠?"
"어? 오빠...오빠 좋지...ㅋ... 아 진짜 좋다. 꿈만 같애......."
사랑에 빠진 남자의 눈은 전형적이지만 아름답다.
사랑에 빠진 남자의 멘트 역시 전형적이지만, 역시 질리지가 않는다.
어느덧 정신 차리고 몽롱해진 채 아무 말 없는 지영의 영혼 역시 이 감각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즐겨 이 기집애야.
"벌써 도착이네. 너무 아쉽다. 내일은 첫 수업 몇시야?
점심 같이 먹을까? 곧 방학인데 고향 내려가?"
와다다다다 질문을 내뱉는 혈기왕성한 남자의 풋풋함에 지영의 영혼은 꿈인 듯 믿기 힘들어했다.
늘 동경해오던,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는 선배가 이렇게까지 내게 관심을 갖다니
"아뇨. 과외하던 학생이 연장 요청해서 방학에도 서울 남아 있을 거에요.
그리고 오빠랑 많이 많이 '붙어' 있어야지~"
원래 단정하고 무표정일 땐 다소 차가워 보이던 회장이었는데,
이젠 좀 빠가스러운.... 흐물흐물 풀어진 표정으로 지영을 대하고 있다.
'붙어있다' 란 표현, 아주 좋은 표현이지.
여러가지를 상상하게 해주고 말이다.
"그래? 부모님께 다녀와보지 않아도 돼?"
사뭇 걱정하는 말투지만, 내심 입꼬리가 실룩거리며 올라가는 모양새를 보니
지영이 서울에 남아 있단 것이 미칠 듯이 기쁜가 보다.
음. 내 기억에 의하면 지영의 부모가 그닥 지영에게 도움되는 인간들도 아니고,
내려가봤자 K장녀 노릇이나 실컷 시키는 작자들이었으니. 굳이 내려갈 필욘 없을 듯 하다.
알겠지 지영아?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
벌써 다왔네요. 오빠 오늘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찌잉
감동이 남자의 낯을 지배했다.
"나도....나야말로! 오늘 하루 자체가 믿기지 않아
조심히 들어가! 연락할게!"
헤어지기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자제를 잘 하는 순정대물답게 이성의 끈을 붙잡고
지영을 보내주려 하기에 나는 남자의 잡은 손을 살짝 당겨
얼굴에 살짝 뽀뽀를 했다.
유치하지만 큰 한 방이지.
"조심히 들어가요, 오빠^^"
오늘 밤 지영이 생각하며 폭딸이나 해라 대물아.
아쉬운 마음으로 대물순정남을 보내고 기숙사 현관을 들어서는데,
'띠링'
깨톡이다.
최한별 언니 : 김지영 ㅇㄷ? 여기 여자 하나 비는데 강남으로 ㄱㄱ?
이썅년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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