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매력남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방법
애초에 사랑하지 않거나
버리고 떠나는 것뿐이다.
많고많은 20세기
십새기중
이기심은 20mm 헤밍웨이가
으뜸인데
어찌된 일인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앞에선
올무에 걸려 허둥댈 뿐이다.
그에 엮여 인생을 조지지 않고
살아나온 두사람이 있었으니
세번째 부인이었던 마사 겔혼과
베니스 최고미녀 아드리아나 이반치치였다.
헤밍웨이는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늘 결혼생활 중에 바람을 피웠는데
마사 겔혼과도 마찬가지였다.
돈많은 두번째 부인이 돈싸발라 매달리고
취향저격 성형수술, 금발염색
난리쳐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헤밍웨이는 겔혼과 스페인 내전 특파원으로 만났는데
탐사보도 꿈나무 겔혼에게 헤밍웨이는 전쟁의 신이나 다름없었다.
무시해도 되는 총소리와 피해야 하는 총소리 구별법부터
살아남는데 필요한 모든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헤밍웨이는
겔혼에게 결혼해달라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그녀에게 바쳤다.
그렇게 세기의 기자 커플이 되어
쿠바 농장에 살림도 차렸는데
웬걸, 겔혼은
다른 부인들과 달리
헤밍웨이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겔혼에게 중요한 건
결혼보다 자기 커리어였다.
헤밍웨이는 유치하게
겔혼이 전쟁터로 나가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하고
다른 여자를 침대에 끌어들여서 모욕을 주기도 하지만
(겔혼의 성기를 오래된 보온병 주름에 빗대서 조롱하기도 함)
겔혼 성님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냄새난다, 돼지같다며
그를 구박하고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
냄새나고 버릇없다며 (헤밍웨이 대신) 그의 고양이들을 거세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헤밍웨이가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자
먼저 떠나버린다(그렇게
한 부인은 겔혼이 유일함)
심지어 쿠바에 있는 재산도 다 주고 떠났다ㅋㅋㅋㅋㅋㅋ
(쿠바법에 따르면 그러하다함)
겔혼은 그 후에도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여든아홉에 아파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 전까지
탐사보도 종군여신으로 길이길이 남았다.
1999년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언론인 상도 생겼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헤밍웨이는 어린 여자들에게만 친절했는데
베니스에서 만난 아드리아나 이반치치(19세)에게 유독 정성을 쏟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년 공백을 깨고 쓴 소설
‘강을 건너 숲 속으로’여주인공이 바로 아드리아나다.
안타깝게도 흥행에는 참패했다.
헤밍웨이와 아드리아나는 네번째 부인이 해주는 밥을 먹고
두번째 부인의 이름을 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다녔다.
천하의 글쟁이가 이렇게 끝나나 싶을 무렵
헤밍웨이는‘노인과
바다’로 부활한다.
아드리아나 역시 야심가였다.
‘강을 건너’와 ‘노인과
바다’초판본 표지는
유독 개성이 넘치는데
그녀가 표지디자인을 해서 그렇다.
출판업자가 주저하며 만류했지만 헤밍웨이는 노빠꾸였다.
파파 소리 들으려면 이정도는 해줘야지,
아드리아나는 그렇게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녀는 ‘쌀쌀맞은
속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만 봐도 얼마나 똘똘하게 처신했는지 알 수 있다.
헤밍웨이는 그녀와 어떻게든 잘해보고 싶었지만
옆에 서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녀는 쿠바에 몇 달간 놀러갔을때도
‘무서운 매부리코 엄마’를 대동하고 갈 정도로 용의주도했다.
(보스턴 JFK 도서관에는
헤밍웨이가 아드리아나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진과 편지가 남아있다)
혹자는 아드리아나가 헤밍웨이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행동패턴은 절대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헤밍웨이는 그 이후에도 기회만 되면
다른 19살
귀염둥이를 자동차 조수석에 태우고 다녔다.
살아있는 보살 네번째 부인 메리 웰시는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점점 망가져가는 헤밍웨이가
1961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엄마도 하지못한 엄마역할을 해주며
헤밍웨이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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