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개월차 새댁이 되었다.

원래 '집'에 관심이 많았던 남편은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아 보였다.

유럽식 미장, 대면식 주방, 아일랜드장 뭐시기, 욕실 컬러 줄눈, 실링팬 설치, 어쩌고저쩌고...

나는 신혼집 꾸미기에 환장한진심인 남편에게 무조건 예스걸이 되어주기로 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내가 쓸 작업실(프리랜서 에디터임) 을 꼭 별도로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혼을 해도 내게는 나만의 방이 필요했다.

그렇게 우리집에서 가장 햇살이 잘 들고 따뜻한 방을 작업실로 얻게 되었다.

다른 곳 인테리어는 같이 사는 분에게 다 맡기고 작업실 인테리어만 내가 했다. 다만 평소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나를 위해 남편이 작업실 안에 홈카페를 만들어 주었다.

근데 사실 홈카페 아니다. 그냥 카페다.

어쨌거나 오늘은 우리집에서 내 작업실을 소개해 보겠다. (저번에 예전 작업실 사진을 올렸었는데, 이게 이사 후임.)

한밤중 거실에서 빼꼼 보이는 작업실. 

꽃은 내가 조합해서 꽂았고 야식은 남편이 만들었다.

우리는 고쳐 쓸 수 있는 구옥 단독주택을 원해서 그런 집을 구했다. 처음에는 체리몰딩을 다 밀어버릴 생각이었는데, 남편은 문득 그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체리몰딩을 살려 아예 K-빈티지로 가기로 한다.

낮에 찍어보았다. 방에 딱 들어가면 보이는 공간. 분명 처음 콘셉트는 쇼와 레트로였는데.



이제는 그냥 빈티지 에스닉 보헤미안 짬뽕이 되었다. 음... 쇼와 레트로긴 한데, 한창 그 시절 미국 히피 감성에 취한 쇼와 대학생의 방 같은 느낌? (방 주인은 아마 이 방 구석에서 장발하고 이마에 히피 머리띠 두르고 나팔바지 입은 채 기타 치고 있을 거다.)

안쪽으로 들어가보자.


 

벽에는 결혼식장에 입구에 붙여놨던, 내가 한땀한땀 제작한 포스터가 보인다. 좌식 의자와 쿠션, 홈카페 테이블도 있다.

좌식의자는 이렇게 생겼다. 쇼와콘셉트 이자카야 사장님이 당근에 내놓은 거 사왔다. 쿠션도 어울리는 걸로 구해봤다. 소반도 놓고.

홈카페에 빠질 수 없는 테이블. 테이블은 흔한 홈카페 콘셉트 반원 테이블을 구했다. 큐브 스툴도 무슨 스튜디오 사장님한테서 받아옴. 그림은 남편 친구이 선물해 준 작품이다.

예, 그렇다네요.

이제 반대쪽을 보자. 

조명은 쿠팡에서 산 레일조명 뚝딱뚝딱 달았다.

중앙에 홈카페의 핵심인 머신들이 보인다.

1. 원두분쇄형 커피머신

2. 라떼 등 우유음료 제조용 우유 냉장고 (멸균우유를 넣어둔다)

3. 컵 씻는 피처린서 (저기 보이는 동그란 부분에 컵을 올려서 누르면 컵 씻기는 그거)

4. 가운데 보이는 파란 꼭지 달린 관에서 나오는 물로 바로 물을 받거나 커피머신에 물을 채우거나 빨대를 씻을 수 있다. 

5. 아래에는 업소용 제빙기가 있다.

 

역광이 있어서 밤에 찍어봄.



여긴 원래 그냥 방이었고, 수도는 다른 집들처럼 주방이랑 욕실에만 연결돼 있었다. 바닥 깨고 벽에 구멍내서 수도관 끌어와 직수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피처린서, 업소용 제빙기 등 모두 직수형. 필터도 설치해서 정수된 물이 나온다.

제빙기가 딱 들어가게 맞춘 이 가구는 재료비 5만원+제작비 4만원으로 우리가(남편이) 설계해서 짰다. 도색은 남편이 했다. 그냥 생 나무라 칠해서 코팅을 안 해주면 얼룩 등 변색이 생긴다.



수압이 좋은 피처린서. 컵이 시원하게 잘 씻긴다.



아래 수납장에는 말린 컵을 정리해뒀다.


 

얼음이 펑펑 나오는 제빙기.

우측 카페장 밑을 열어보면 원두, 티백, 간식거리, 청소도구, 또 이렇게 테이크아웃용 일회용품들이 있다.

작업실 책상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시계가 포인트입니다. 70~80년대산으로 추측되는 구일 세이코 시계.





책상 쪽을 바라보면 이런 느낌.

벽면 확대샷.

요즘 이 가챠 시리즈에 빠짐. (요시토쿠 누이구루미 시리즈 피규어)



책상 위. 귀여운 것들에 진심임. 저 고슴도치는 안경거치대임.

귀여운 이끼 테라리움.

책상 옆 벽면에 세워둔 나무 행거. 가정주부 코스프레용 앞치마를 걸어뒀다.


 

그냥 한번 더 보고 가자. (맨 왼쪽에 보이는 핑크색 기계는 젖병소독기인데 가끔 컵 넣어둠)

점점 더 진화해가는 집을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다.

봐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