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지만갑이 재밌다.
토이스토리4를 보고 펑펑 울었다.
" 따님. 왜 이렇게 울어? "
" 우디랑 버즈랑 헤어지면 안되는 데 흑흑.."
" 오머나...고작 만화보고 그리 펑펑 우냐..참내.."
엄마는 그리 내키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니까 같이 토이스토리를 봤다. 무슨 영화인지 중요하지 않고 관심도 없고 엄마한테는 그냥 영화관 나들이 정도 뿐이다.
엄마는 볼때는 같이 실컷 웃어놓고
집에 오자마자 지만갑을 보면서
토이스토리는 재미없다 한다.
지만갑은 북한남녀들과 한국 연예인 패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북한남녀가 북한에서 고생하고 중국에서 고생하고 겨우 한국에 왔다는 이야기 뿐이다.
" 이런거 뭐하러 봐. 수박이나 먹자."
엄마가 수박을 썰면서도 도무지 눈을 떼지 못하니까 괜히 옆에 앉아본다. 뭐가 그리 재밌길래.
북한녀가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중국 감옥에 갇힌 사촌 여동생이 나도 데려가소 나도 살고 싶소 언니야 나도 데려가소 하고 읍소하는데 데려올 수 없어 혼자 가야해서 너무 슬펐다고 닭똥같은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그런데 그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사촌 여동생이었다. 생각보다 월남하기 쉬운가??
그 사촌 여동생은 엄마가 먼저 월남해서 살고 있었다. 한국에 와서 뭐가 그리 좋으냐.
엄마가 해준 밥 먹어서 좋다고 베시시 웃었다.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 남자연예인 패널이 아주 서럽게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담담히 말하고 있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이야기.
나는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았다.
엄마를 보니 토이스토리를 볼때와 다르지 않은표정인데 뭐가 그리 재밌다는 거지.
하나도 재밌지가 않다.
" 엄마, 우리나라가 북한처럼되면 어떡해??"
" 갑자기 무슨 재수없는 소리야. 수박이나 먹어"
" 나는 감옥가면 엄마랑 영화보고 수박먹은거
떠올리다가 죽을거 같아."
엄마는 내 말은 무시하고 지만갑에 집중했다.
" 하나도 안 불쌍해!! 다시 북한으로 가라 그래!!"
나이 삼십되서는 엄마가 안 봐준다고 못된 어린아이처럼 포효했다.
엄마는 잠깐 미친 딸아이를 보듯이 안쓰러운 눈빛 한번 쏘아주고 다시 지만갑에 집중했다.
" 남자새끼가 질질짜고 자빠진거 봐라. 저 여자들 동정할 필요 하나도 없다. 쟤네들은 특권층이네 그러니 한국까지 오지. 진짜 우리같은 서민들은 다 굶어죽었지.위선적이고 가식이야 진짜 파렴치해 "
엄마는 꿈척도 안하고 마치 온 몸으로
너는 만화영화보고 질질 짜잖아.라고 말하는 듯 했다.
" 토이스토리는 재밌기라도 하지 지만갑은 하나도 안 재밌다고!!!"
" 아이.. 시끄러. 진짜 저리가."
엄마가 나를 슬쩍 밀쳐내자 갑자기 서러웠다.
북한녀보다 더 굵직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 엄마도 똑같은 상황에서 쟤네 엄마처럼 나만 두고 월남할거야? "
" .. 아이고.. 정말. 엄마가 너 두고 가겠냐. "
" 저 상황되면 부모도 자식도 없다잖아! "
" 너야말로 엄마 두고 가겠지."
나는 엄마를 와락 껴안았다.
" 나는 엄마 안 두고가. 절대 "
흡사, 전생에 6.25를 겪어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절절함이 흘러내렸다.
" 우리 딸은 진짜 웃겨. 연기나하지 왜 글쓰냐."
" 뭐가 웃겨. 나 진지해!! 나는 앞으로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놓고 엄마 옆에 있을 거야."
" 그래라. 너만 건강하고 잘 살면 된다."
그래라, 하지만 마치 그럴일 없다는 듯
엄마는 말하지만.
미숙하고 어리석은 나는
솔직히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지만갑이 보기 싫어 조용히 내 방으로 와서 글을 쓴다.
발광하지 말고 글이나 쓰지. 나는 늘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