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지희에게

오늘은 우리가 결혼한지 12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 법원에서 이혼하기로 하였다.

뉴스에서는 남편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장애를 이긴 ooo의사, 그가 집도한 로봇 수술은 성공적으로"

나는 서둘러 TV 를 껐다.

언제부터였을까.

팀장님이 내게 이제 임상 일은 끝이라고 말했을 때 부터였을까.

사실 팀장님은 내게 그런 ''을 얘기하지는 않았다.

내게 어쩌면 새로운 시작도 가능하지 않을까,

연구쪽 일은 어떻겠다며 말해주셨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내게 드디어 대대적인 '사망선고'를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쩌면 죄인이었는지도 모른다.

7년전 그 사고에서

나는 새끼 손가락 하나만을 잃었고,

남편은 손가락 하나와 다리까지 절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 이보다는 내가 더 나은 상황이라고

섣불리 그를 업신여겼던 내 마음이

지금을 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도 나와 같아야만 한다고

사람의 미래를 함부로 재단하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을 옥죄어 온 것이였다.

내가 만약 사고에서 손 하나를 통째로 잃었다면,

갑자기 내 몸이 그날의 사고에 지배되고 있었다.

 

비가 유독 많이 내리는 길이었다.

차 안의 라디오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 일을 하던 부유한 사십대 남자인 스트릭랜드. 그는 돌연히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 파리로 가서 낡은 호텔들을 전전하며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 (중략)]

 

남편은 그날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완전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살았다.

나는 지금 그를 죄인으로 재단하고 있다.

보다 날카로운 물건이 필요했다.

수많은 수술대 앞에 서며 그가 집었던 물건들.

나에게도 그런 물건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보았지만,

결국 그들을 살려내었다.

그가 과연 나조차도 살려낼 수 있을까,

불현듯 나는 그것이 궁금해졌다.

여긴 그가 있던 응급실이 아니었다.

이곳은 우리의 집이었다.

메말라가는 혀가 더이상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굽혀 앉은 다리의 저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매번 주사를 재며 느껴보려 애썼던 손끝의 감각만이

이미 육지 위로 올라와 버린 물고기처럼

간헐적으로 펄떡이고 있었다.

 

2018 8 21

작품 등록일 : 2026-04-01
최종 수정일 : 2026-04-01

▶ 사랑하는 지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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