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지희에게

의사가 말했다.

 

적어주신 것을 보았는데, 글씨도 아주 작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적혀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신다는 거지요?”

 

내가 말했다.

 

말 그대로예요. 소리가 들려요.”

 

의사가 말했다.

 

환청이 들린다는 말인가요?”

 

환청. 그것은 환청이었을까. 그것은 어지러운 소리였다. 내 마음이 어지러운 소리들. 문득 지난 밤이 떠올랐다. 고층 아파트에는 커다란 창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 사람의 형태가 아닌 것들이 내게 들리도록 야유의 소리를 퍼붓는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당신, 저기 바깥에 사람들이 안보여?”

 

남편이 말했다.

 

어디 말하는 건데? 왜 여기서 바깥에 사람들을 찾아? 누구 찾는 사람 있어?”

 

내가 말했다.

 

아니, 바깥에 사람들이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고 있잖아.”

 

남편이 말했다.

 

어디서 도대체? 지금 바람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아.”

 

그것은 바람 소리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것을 바람 소리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분명 사람들의 웅성임 소리였다. 나에 대한 나쁜 소문들. 저 사람들도 그 날 사고의 소식을 알고 있었다. 잃어버린 다섯째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그 날 내가 잃어버렸던 것이 비단 손가락 뿐만이 아니었다면. 누군가 자꾸만 사고 당일로 화면을 돌리는 것이었다. 제대로 보라고, 네가 잃어버렸던 것이 그 손가락 뿐이었냐고.

 

의사가 말했다.

 

지금 검사 결과를 보니, 남편 분도 정신이 완전히 건강하지 않아요. 아내 분은 잠시 바깥 복도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정신이 완전히 건강한 사람이 존재할까. 학교를 다닐 때, 전공 서적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모든 불건강함이 나에게도 일정 부분은 해당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의사는 말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얘기를 들려주시겠어요?”

 

나는 말했다.

 

그날 사고에 관한 이야기요?”

 

의사가 말했다.

 

사고라. 그것이 시작인가 봅니다.”

 

내가 말했다.

 

, 사고가 시작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저 불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고 이후로 계속적인 불운에 시달려야 했어요. 가끔 헷갈립니다. 그 때 내가 손가락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것을 잃어버린 것이었는지요.”

 

의사가 말했다.

 

손가락을 다치셨나요?”

 

내가 말했다.

 

, 손가락 한쪽을 절단하여야 했습니다. 직업 재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나름대로 이겨내보려고 노력도 했고요.”

 

의사가 말했다.

 

직업이 무엇인가요?”

 

내가 말했다.

 

간호사 입니다. 이제는 아닐 수도 있지만요.”

 

그 날 내가 잃어버렸던 것, 그것은 나의 정체성이었을까.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대로 살려는 관성이 있다. 모든게 안정적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안정 궤도에 접어든 것은 별다른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변화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대로도 충분히 좋다는 생각. 그 생각이 굳어져 버렸었는지도. 그러나 그것은 별로 좋지 못한 생각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제껏과는 다른 생산성이 필요했다. 나의 생산성을 어떻게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 남편은 로봇 수술에 성공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극복에 실패했다. 왜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할까. 인생에서 달성해야 할 정확한 기준은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왜 이제와 삶을 방황하고 있는가. 왜 그 날의 사고는 내게 일어난 것이었을까.

 


2018820

작품 등록일 : 2026-04-01
최종 수정일 : 2026-04-01

▶ 사랑하는 지희에게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