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기에 걸렸고
콧물을 주르륵 흘리며 벽을 바라봤다.
반복되는 패턴이 일그러지며 누군가의 얼굴이 되고
뭉크의 절규에 가까운 형상인데
"각인" 이 얼마나 무서운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절규 외에 볼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지만
내 손가락은 그릴 줄 모르고
손 끝에 거스러미나 뜯으며
초조하게 그림을 아주 잘 그리고 싶다고 계속 되뇌었다.
늘 먹던 아이스 바닐라 엑스트라 소이 라떼가 지겨워진다.
너는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나잖아?
입술만 달싹이고 다른 선택은 하지 않는다.
옷걸이에 여름옷들이 차갑게 늘어서있다.
양 손으로 두 팔을 감싸며 고개를 처박고는
어쩐지 그 자세로 있었다.
중년의 여성들이 허전했던 목에 스카프 등을 둘러맸다.
그리고 열심히 열심히 나를 치고 지나간다.
누우면 바로 잠들 것 같은 그 표정이 너무나 부러웠다.
올려다 보면 빛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인데
문질러 놓은 듯 번져있다.
아무도 그에 대해선 불만이 없는 듯 하다.
우에노 모리 미술관 고흐전을 보고 왔다.
고흐 말고도 다른 작가 작품들이 있었다.
노인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감탄하고는 돌아서서 잊어버렸다.
다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고흐가 살아있는 나무 한그루를 두고 갔는데
청록색으로 타들어가고 있었다.
내 사주가 열매를 맺는 가을 나무라는 말이 떠올랐다.
겨울이 오기전에 제 할일을 해야하지 않겠나.
겨울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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