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예의 기록장

2020.02.21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따뜻한 우롱차를 마신다.
친구가 12월에 다녀온 대만에서 사온 차다.
노트북을 켜고 몇 글자 끄적이다가 집 근처에 있는 필라테스를 다녀온다. 조금 달라진 점은 나만 마스크를 쓰고 운동한다는 것.다른 사람들은 평상시와 다를바 없다. 1월1일부터 시작된 감기가 기관지염이 되서 아직도 기침이 끊이지 않는다. 기침도 겸사 마스크를 쓰지만 내가 기침을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다행이다, 싶다가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보통은 운동이 끝나고 다시 집에 가지만 최근에는 친구일을 돕는다. 1시쯤 가서 친구가 해주는 점심을 느즈막이 먹는다. 그녀의 요리실력은 원래도 좋았지만 최근에 더 일취월장했다. 내가 좋아하는 파스타들, 오일파스타 미트볼 파스타..
뿐만아니라 짬뽕 탕수육 떡볶이 볶음밥 심지어 어제는 시금치가 짱짱하게 들어간 김밥을 만들어줬다.
우리는 후식으로 늘 커피나 티를 마신다. 나만큼 차를 좋아하는 친구는 티를 종류별로 구비해뒀다. 덕분에 맛있는 차 한잔과 케이크나 티라미슈를 함께 곁들어 먹는다. 그러다 어제는 왜인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었다. 그럴줄 알았다며 친구가 새로산 유리잔을 내밀었다. 이건 내가 딱 찾던 크기의 유리잔이잖아! 나는 웃으며 냉장고로 달려가 얼음을 담았다. 이 겨울에도 얼음을 얼려놓는 부지런한 친구, 나는 디카페인으로 먹고 친구는 투샷 라떼로 마셨다. 네스프레소를 너무 많이 내려먹으면 안돼는데, 왜? 알루미늄이 치매를 유발한다나. 아 그전에 우한폐렴에 걸릴지도. 집밖에 안나가는 우리가 걸리면 대한민국 국민 다 걸리겠네.
웃지못할 농담을 나누며 친구는 딸기를 씻었다.
비타민을 많이 섭취해야지. 뜨거운물을 자주 마셔야지. 그치만 오늘은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다고.
이십년을 넘는 세월동안 거의 매일보는 친구사이면서 아직도 새롭게 할말이 많다. 수다가 한풀 꺽일때쯤 친구방으로 건너가서 작업을 시작한다. 그녀는 작가로서도 재능이 있지만 수완도 좋다. 자신의 작품과 관련된 상품을 만들어 팬들에게 판매한다. 나는 그런 수완이 조금 부럽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팬들의 덕후심을 충족시켜주는 면에서. 여러모로 친구는 좋은 창작자다. 한참을 작업하다보면 그녀의 샴고양이 두 마리, 야옹나옹이가 관심 좀 가져달라고 칭얼거린다. 한번은 나옹이가 캣타워에 앉아서 계속 나를 노려보는 것이다. 그 뜻을 곧바로 알아챌 수밖에 . 놀아달라고. 내가 친구보다는 고양이놀이 만렙이기에. 그 맛을 알아버린거 같다. 처음엔 나옹만 노려보더니 이제는 야옹도 자꾸 노려본다. 야옹나옹 한창 놀아주고는 다시 작업에 재개한다.우리는 SES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렸다. 초딩시절에 나온 노래들. 익숙한 설레임에 몸을 들썩이며 노동에 집중한다. 공장다니는 기분이 이런 기분인가. 끊임없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들. 하지만 그게 누군가에게 밥벌이고 일상.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감에 침대 위에서 잘 자고 있던 나옹을 끌어안았다. 나옹은 작년 여름쯤 길바닥에서 아사직전이었고 나와 친구가 우연히 구할수 있었다. 그때 집나간 야옹 때문에 속상해하던 친구가 거두어 키운것. 같은 샴이라 더 눈에 밟힌것이다. 그때는 1.6키로였는데 지금 보리는 3키로가 넘어간다. 나옹아. 도대체 왜 길바닥에 그러고 있었어? 나옹뺨에 뽀뽀세례를 퍼부으며 물어도 대답이 없다. 나옹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참 못난이로 비춰지네. 본의 아니게 나옹 안구에 테러만 가한다. 하지만 나는 나옹이 좋아. 나옹 냄새 너무 좋아. 비단결같은 털, 잘보면 비듬 보여도, 그래도 좋아. 고양이는 보기만 해도 안기만 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열한시쯤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간다. 사장님 내일은 하루 쉬겠습니다. 너스레를 떨며 대문밖을 나선다. 친구는 잠옷차림으로 나와서는 오예 잘가! 우렁차게 인사한다. 그 모습이 어릴적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서 피식 웃음이 난다. 너무나 귀여운 내친구. 난 아무래도 귀여움에 약한거 같다. 추위가 끝나는 듯 하더니 다시 밤공기가 차가워졌다. 힘껏 가슴을 부풀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신다. 마스크 때문에 턱 하고 막히지만 시원하다. 보잘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 더 없이 소중한 때다.



2020.02.22

두 달이 넘도록 기침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괜찮아지는 듯하여 드디어 사라지나 하고 좋아했는데 다시 추워지니까 여지없이 목이 간질간질하다.
우한폐렴 의심도 해봤다. 한달 동안 약도 안 먹었는데 발열없이 그냥 목이 간지러우면서 기침만 했다. 애초에 발열이 없었다. 의사선생님은 염증이 있어서 그렇다고. 진짜로 목구멍이 따끔거리고 그랬는데 약을 복용하고 그런 아픔은 사라졌지만 기침은 계속된다.
이렇게 기침이 오래간적이 없는데. 미세먼지 마셔대도 목이 칼칼하고 말았는데, 요즘처럼 미세먼지 심하면 기침이 더 심해지는 거 같다. 만성기침... 불안감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우한폐렴이면 우리 가족들 중 진작에 아팠겠지. 매일 보는 내 친구도... 근데 잠복기간이 길면 어쩌지?
이런 의심을 안 하고 살던 때가 그립다.
출근하는 가족들을 보면 마음이 울렁거린다.
마스크 쓰고 손 잘 씻으라는 문자를 가족들에게 하루에도 여러 번 보내고는 기침이 멈추지 않는 내가 한탄스럽다. 틈틈히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마스크랑 소독제를 사다 나르면서 내가 뭐하는 짓인가.
근데 마스크도 소독제도 없단다.
집 현관마다 택배는 쌓여가고.
공포는 회피가 되지 않는다.


2020.02.23

확진자 600여명 의심환자는 2만명이 넘고
현재 사망자 6명.

곧 외출금지령이 내려지지 않을까.

사적인 글은 원래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이므로.
몇 주전 읽은 우한판 안네의 일기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하지만 죽을지도 몰라서 써내려가는 글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려야하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면
나는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일 뿐.

2007년에 시간이 멈춘 한 블로그가 있다.
그는 6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창작자였다.
사람들에게 꽤 오래도록 사랑받고 여전히 기억되는 블로거였는데, 그 이유를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양이 사진을 찍는 블로거 '

그가 찍은 고양이 사진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말이다.

사랑은 아무리 꼭꼭 숨기려해도 드러나게 되니까.
그의 사진속에 담긴 고양이들의 표정을 보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매번 그 순간을 가슴에도 찍었을게 분명하다. 목숨보다도 소중했을. 그리고 눈을 감는 와중에도 떠올렸을. 사랑하는 존재.

그는 암이었고. 고양이들은 모두 지인과 본가에 보냈다.
마지막 포스팅은 덩그러니 홀로 놓인 빈 소파.
제목은 END.

그 소파에서 언제나 고양이들과 함께였고.
그래서 다 비우고 가신것 같다.

어떤 순간이 오든 비우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2020.02.24

 

확진자 800여명 의심환자 3만명

현재 사망자 8명

사실상 대구 봉쇄

 

 

눈을 뜨자마자 대충 씻고 옷을 챙겨입고는 

약국에 가서 상비약을 구비했다.

약사언니에게 추천을 받아 지사제,종합감기약,진통제,대일밴드,항생제연고 등등

넉넉히 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좀 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분명 어제 꼼꼼하게 뭘 사야하는지 품목을 휴대폰 메모장에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차분하고 침착하게 되지 않는걸까. 자꾸 뭔가를 빼먹은 기분이다.

 

친구에게 생필품과 비타민을 사야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친구는 함께 가자고 했고 우리는 가까운 대형마트로 갔다. 한달만에 마트에 온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생리대. 한 4개월 분량을 담고

두루마리 휴지도. 그리고 비누. 물티슈. 니트릴장갑

역시 마스크는 없었다. 

택배로 주문한 물품을 머릿속으로 더듬어보며 

뭐 사야하지? 하니 눈 앞에 놓인 손소독제가 보였다. 1인 2개 제한.

고민없이 2개을 바구니에 담고.

이번엔 비타민을 보니 저렴한것은 이미 다 쓸어가고 품절. 그나마 남은 메가도스 4개 고려은단 2개를 담았다. 친구도 나와 비슷하게 담고보니 우리가 마지막 쓸어간 셈이 되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들은 모두 한가득 자기만의 비상품목을 쟁이고 있었다.

월요일 오후 1시 마트의 풍경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데, 모두가 마스크를 낀 가운데 한 중년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내 옆을 지나가려는 그를 보고 나는 귀신이라도 본듯 화들짝 놀랐다.

... 그 사람이 마스크를 쓰던 안 쓰던 자기 마음인데도

왜 얄궂은 심정이 드는 걸까. 

부랴부랴 근거리배송신청을 하러가니 2시가 안된 시간인데 아슬아슬하게 우리까지 마감되었다.

하아..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돌아서서 치약,칫솔을 안 담은 게 생각났다.

그건... 내일, 내일... 나도 지쳤어. 인터넷배송은 수요일까지 마감이다... 그냥 내일 다시 오자.

하고 돌아서서 나왔다.

 

일어나서 지금까지 한끼도 안 먹어 너무나 배가 고픈데,  이주 전만 해도 아웃백도 다녀왔지만 밖에서 사먹기가 꺼려졌다.

친구와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약국에 다시 들렸다.

면 마스크를 선결제하면서 뿌려 쓸 수 있는 항바이러스탈취제를 같이 예약했다. 면마스크에 뿌리고 말려쓰면 하루정도 바이러스 소독역할을 한다고 한다. 옷이며 공간에도 뿌려도 되고 심지어 먹어도 될 정도로 안전한 성분이란다.

그니까. 지금은 뭐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다. 출근하는 우리 가족들이 혹시하도 걸리게 될까봐 전전긍긍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이야.

누구를 믿고 가만히 있으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 일회용 마스크를 사고 혹시나 몰라 면마스크를 만드려고 사두었던 천과 재료를 꺼내 마스크 모양을 대고 그린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몇주 전만 해도 내가 퇴근하고 돌아온 가족들 붙잡고 안경이며 휴대폰이며 알콜스왑으로 매일 밤 닦을때,

다들 유난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젯밤 자기전에  엄마아빠동생 모두 따라다니며 비타민을 먹으라고 권했더니.

유난이라는 말 대신 엄마가 해맑게 웃는 것이다.

딸이 챙겨주니 좋다고 웃는다.

나는 이 상황이 하나도 즐겁지도 웃음도 나지 않는데.

 

우리 가족을 지켜주세요.

 

평소에 하지 않던 기도를 올리게 된다.

 

도대체 누구에게 지켜달라고 말하나.

내가 나를 지키면 가족을 지키는 일이다.

이럴때일수록 나약함을 쓸모 없다.

 

작품 등록일 : 2020-02-24
이게 벌써 한달 지났다니!
슈가스냅쿠키   
나도 목이 자주 아픈 사람인데
1호두기름
2도라지청
3프로폴리스 액상
4잘때 스카프두르고 마스크 쓰기
5기열식 가습기 켜기
6아이허브에서 파는 아이비액이나 아님 동종요법약
한번 다 시도해봐
죽어   
그 블로그 저도 본거같아요 보고나서 마음이 광장히 아팠던..
슈가스냅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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