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오늘 일기.
계획한 하루에서 뭐 하나 어긋난 것 없는, 따져보면 행복한 일만 가득했는데 어쩐지 너무 울적한 날이다.
좀처럼 아침에 눈을 잘 뜨지 못하는 내가 조조영화를 보겠다며 아침부터 일어났다.
머리는 감지 못했지만 ㅎㅎ 모자 하나 눌러쓰고, 어차피 얼굴의 절반은 마스크가 가려줄테니 가벼운 차림으로 나선 바깥은 나름 선선했다. 아직은 봄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조금은 남아있나보다.
코로나의 여파라기엔, 친구들하고 노는데에 정신 팔려 영화관 가기를 등한시 했던 것이 1년 정도 되었으니 할 말은 없다만, 코로나 때문에 아예 발길을 끊었던 영화관도 오랜만에 찾았다.
오늘은 소문의 그 영화, <패왕별희>를 봤다. 사실 얻그제 소장 추천으로 <마이 페어 레이디>도 봤다. 영화관에서 살고 싶을 만큼 재개봉 영화중에 보고싶은 영화들이 참 많다.
대체 4월 1일만 되면, 장국영이라는 사람이 뭐기에, 죽은지 몇 십년이나 지난 사람의 추모가 이어지는가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조금은 알 것 같다.
청데이는 장국영 그 자체였고, 예술가였다. 무서운 시대 속에서 참 아리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나는 혼자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고, 다들 짠 것 마냥 막이 완전히 오를 때까지 가만히 앉아 여운을 느끼는 듯 했다.
그리고 과외를 하기위해 가는 버스 안에서도 여운이 가시질 않아 계속 눈가가 시큰했다. 한 편으로는 무섭다. 먼 나라 이야기는 아닌듯 해서.
긴 연휴가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학생은 다시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해줬다.
나를 좋아하는 학생과 마주앉아 교류하는 것은 생각보다 즐겁고 뿌듯한 일이다.
의외로 나는 좋은 선생님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내가 좋은 학생들을 만난 것이 가장 크기 때문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운동도 하고 어렸을 때 엄마가 해줬던 레시피를 흉내내며 카레도 만들었고,
밥 짓는 사이에 씻고 나와서 약간은 덜 마른 머리카락에 흘러오는 시원한 여름밤의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오늘따라 밥이 달게 지어져서 행복했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맛잇게 먹었다.
빌어먹을 코로나로 많은 시간이 날아갔지만, 평소라면 허투루 낭비할 법한 시간을 나에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도 했다.
게을러 터진 내 인생 처음으로 운동을 시작했고, 정말로 한국을 탈출해야지 살 수 있겠다는 위기감에 늘 미루던 영어 공부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래도, 아무리 욕하고 혐오하던 나라지만 실제로 망해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는 건 꽤나 무력감이 들고 우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이 많아 끊어내지 못하던 멍청이들도 싹 끊어내고, 쓸데없이 많은 약속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던 몇 개월 전과는 다르게,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비중이 훨씬 커졌다.
이런 식으로 강제로 주어진 휴식 같은 시간들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것도 운이 참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소식들을 눌러보다 떠나간 설리와 종현을 추모하는 아이유의 신곡 뮤비를 보면서 또 눈물이 났다.
바깥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면, 나름 잔잔하고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면서
오늘따라 눈물 흘릴 일이 많아서 괜히 우울한건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먼저 떠난 이들이 많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규칙과는 거리가 멀고, 정돈되지 않고, 활기만 넘치던 불과 몇 개월전의 내가, 늘 엉망으로 살고 있다고 후회하던 날들이 조금은 그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