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일기장

 대학 동기가 죽었다. 행방불명된지 5일만에 인근 야산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나는 7월 8일 저녁에 그 소식을 들었다. 당시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었다. 두어 달 후 첫 출근을 앞두고 있었고 매일매일 여기저기에서 즐겁게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죽음처럼 무거운 소식은 매우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럼 11일에 장례식장에서 뵙겠습니다."
 "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박지현..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과 동기라서 핸드폰 주소록에 저장은 되어있지만 근 10년 동안 누를 일은 없었다. 졸업하고 뭘 하고 지내는지, 아니 졸업은 했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소식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게 상대는 고작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아마 나 역시도 상대방에게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유서에 나를 언급한 걸까.'
 풀리지 않는 의문을 치워두고 술을 마저 마셨다. 어쨌든 아는 사람이 죽었다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더 마실 마음이 들지 않았다. 도수가 세지 않은 칵테일만 한 잔 시켜서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강남의 밤 거리는 매우 번쩍거리고 화려했다.

 

 빗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7시였다. 문상 가는 것이 오랜만이라 인터넷에 장례식장 예절을 검색했다.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간에 도착하도록 출발했다.
 1층 복도에 들어서자 사망자의 이름과 빈소가 뜬 커다란 모니터가 보였다. 위치를 확인하고 지하로 향했다. 방명록에 이름을 쓰면서 자리를 지키고 선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수요일에 전화주셨는데요."
 "김이연씨인가요?"
 "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동생이 정말 기뻐할 거에요."
 "..."
 과연 그럴까요, 떨떠름하게 속으로 의문을 표하며 분향을 하러 갔다. 아직 앳되보이는 영정사진을 보자 그제야 그동안 어렴풋이 떠오를락 말락하던 얼굴이 생각났다.
 '웃고 있네.'
 입학하고 처음 봤을 때 그 애는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다. 입꼬리는 밑으로 축 쳐지고 표정은 항상 굳어있어서 늘 음울해보였다.
 '한참 좋은 나이에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은거니.'
 닿지 않는 말을 몇마디 건네다가 분향을 끝내고 나왔다. 박지현의 오빠는 괜찮다면 식사를 하고 가시라고 권했다. 반사적으로 사양하려다가 전화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아서 그러겠다고 했다. 의외로 맛이 좋았다.
 "유서에 김이연씨가 유품 중에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가져가게 해달라고 써있어서요. 장례식이 끝나면 목요일부터 유품 정리를 시작할 예정인데 전 날 한 번 들르셔서 가져갈 것이 있나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나는 떨떠름하게 생각해보겠노라고 말했다. 그는 고맙다고 하고 명함을 건넨 뒤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집에 가는 내내 고민에 빠졌다. 애초에 왜 하필 나에게 그런 유언을 남긴 건지도 모르겠고, 죽은 사람 물건을 가지고 있어 봤자 불길하기만 할 것 같기도 해서 머리가 복잡했다.

 

 조문 가던 날에 오던 비가 장맛비였는지 며칠이 지나도록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슴푸레한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꿈에는 박지현이 나왔다. 입학 전에 동기들끼리 단톡을 하다가 2월에 먼저 다 같이 모인 날에 처음 보고 매우 우울해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장면, 학기 초에 낯가리고 사람 대하는 것이 어려워서 어색한 행동을 하던 장면, 수업 시간마다 늘 사탕 등을 꺼내서 동기들에게 건네주던 장면 등.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3학기째에 어느날 불쑥 연락을 하더니 자기가 쓴 단편 소설을 읽고 피드백을 부탁했던 장면이었다. 자살하려는 인물이 주인공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박지현 본인이었다. 지나치게 우울하고 자학하는 내용이라 읽기 괴로워서 그만 읽겠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고보니 방명록에 우리과 다른 사람들 이름은 없었지.'
 아마도 박지현은 나름 나를 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연락처에 우리과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수도 있고. 그럼 나라도 다른 사람들한테 알렸어야 했던 건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다가 명함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오늘 들르겠습니다. 곧 알겠다는 말과 함께 주소가 적힌 답장이 왔다. 낯이 익은 주소였다. 지도 앱에 입력해보니 학교 후문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었다.
 '학교 근처에 살았는데도 행적이 묘연했던 건가?'
 3학기를 마친 이후로 박지현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휴학을 오래 해서 동기들과 진급차이 때문에 마주칠 일이 없었다기에는 군대 다녀온 남자애들하고 비슷하게 공백이 있던 셈이다.
 '뭐 어쨌든.. 아는 곳이니까 길 찾기 수월할테니 좀 더 자다가 1시까지 가면 되겠네.'
 몇시에 가겠다고 문자를 보내고 다시 잠에 들었다.

 

 골목이 거미줄 같이 엉켜있어서 오거리 앞까지 마중나왔다. 안내를 따라 들어간 곳은 14평 가량의 원룸이었다. 문을 열자 바로 주방이 보였다. 인덕션 위에는 맥주캔들이 쭉 늘어서 있었고 콜라를 좋아했는지 페트병이 많이 있었다. 들어서서 왼쪽으로 돌면 안쪽으로 이어지는데 책이 굉장히 많았다. 책장 가득 전공서적과 소설책들이 들어있었다. 책장 위에도 스탠드로 양 옆을 막아 책을 늘어놓았고 책상 위에도 책들이 세워져있었다.
 그 외에는 평범했다. 나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죽은 사람이 살던 집이라고 해서 어딘가 많이 다르고 이상할줄 알았는데 똑같았다. 잠시 멈춰서 둘러보고 있자 그가 입을 열었다.
 "사실.. 지난번에 전화 통화할 때도 그렇고 장례식장에서 뵀을 때도 그렇고 이연씨도 왜 동생이 본인을 언급했는지 몰라하시는 것 같았어요."
 정확했다.
 "저희도 동생에게 들은 바가 전혀 없어서 연락 드리면서도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부끄럽지만 저도 동생하고 별다른 얘기를 해본적이 없어서 왜 죽었는지 모르겠어요."
 뭔가 더 말할 것 같아서 기다렸는데 입을 계속 다물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책상 위에 놓은 작은 책장으로 시선이 갔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파는 다이어리가 꽂혀있었다. 유족조차 자살 동기를 모른다고 했는데 어쩌면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을 가져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굳혔다.
 "이거로 할게요."
 "그러실래요? 고생하셨어요."
 역까지 배웅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다. 월간 달력에는 별 내용이 없었지만 조금 더 넘기자 죽기 직전까지 며칠 간격으로 꼬박꼬박 일기가 써져있었다. 버스에서 몇 개 읽다가 글에서 덕지덕지 묻어나는 외로움과 슬픔에 피곤해져서 집에 가서 읽기로 했다.

 

 

 

 

 =후기=

 2020.07.13.월

 기빨려서 이번에도 미완인데 일단 올리고 본다..

 대학동기 박원순 아님!

작품 등록일 : 2020-07-13
우와 일본소설같아 머릿속에서 그려져
di******   
줬다.
ab*****   
재미썽 돈드림
사노라면   
다음 내용 궁금
lu****   
잼따
두루미   
재밌다. 죽은 사람이 살던 집이니까 어딘지 다를줄 알았는데 똑같고 평범해서 조금 당혹스러웠다는 부분이 좋았다. '웃고 있네.'
H2*******   
오 재밌어!
과일뿌셔   
재미나다 다음 이야기 얼른 써줘!!
ge*****   
재밌습니다
bl******   
재밌고만. 뭔가 문체가 좀 달라져서 읽다가 언니인거 알고 어엇? 이랬다. 왠지는 몰러. 여튼 재밌어서 한번에 바로 쭉 읽었엉 하트하트.
체체   
다이어리 내용이 궁금해지네
뭏낙   
궁금햇
카레   
힘내라힘 더 읽고싶다
도망가고 ...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