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 되고,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에 들어갔다.
성인이 된만큼 용돈 정도는 내 손으로 벌고 싶었다.
학교 근처의 편의점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그리 외진 곳은 아니지만 주변이 좋은 곳도 아니었다.
좋은 곳이 아니라는 말은 근처에 유흥업소, 도박장이 여럿 있었다는 뜻이다.
노래방, 마사지, 모텔, 여관, 사설 도박장.
학창시절 야자를 빼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던 학생이었다.
가끔 땡땡이 치고 피시방이라도 가는 날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서 게임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공부를 하면 성적이 나오고, 그래야 좋은 대학 가서 인생이 무난할 줄만 알았다.
그러니까 온실 속의 화초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첫 알바이기도 하고, 성격이 원래 그랬던 건지 나는 꽤 친절한 알바였다.
뜨내기들은 모르겠고, 종종 오는 손님들은 나를 기억했다.
종종 오는 손님들은 당연하게도 주변에서 일을 하는 분들이었다.
편의점 맞은 편의 나이트에서 일하는 기도 형님들, 근처 도박장에서 담배 심부름을 오는 아저씨,
또는 하루하루 노가다를 뛰며 도박에 꼬라박는 냄새 나는 아저씨,
어울리지 않는 요란한 화장과 호피무늬를 항상 걸치는 할줌마.
이런 분들은 캐릭터는 확실한데 너무나 전형적이었다.
기억은 나지만 인상이 깊지는 않다.
정말 인상 깊었던 아줌마가 있다.
그 아줌마는 그저 평범한 아줌마 같았다. 한 40대 중후반 되어 보이는.
머리도 수수하고, 화장도 잘 안 하는데 항상 입술만 칠하고 왔다.
슬리퍼를 끌고 밤 늦기 직전, 소주 한 병과 핫바, 버지니아 레드 담배 두 갑을 사갔다.
매일 같은 시간, 여덟 시 반에 같은 물건을 사가다 보니 바보라도 알 수 있다.
그 시간이 되면 미리 카운터에 챙겨놨다.
아줌마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루이틀 해주다가
내가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담배 하나 같이 피우자고 했다.
골목을 돌면 바로 보이는 허름한 이발소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간판 불이 항상 꺼져있고 삼색등만 어두컴컴하게 돌아가는 허름한 지하 이발소였다.
장사를 하는지 몰랐다고, 망한 곳인 줄 알았다고 하니 그래야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 저기서 머리 깎아주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시간 괜찮으면 다음에 와보라고만 했다.
시시콜콜하게 대학을 다니고 있고, 무슨 전공이며, 어떤 공부를 한다, 여자친구는 없다,
이런 식의 이야기나 나누다가 담배를 다 피우고, 손님이 오는 바람에 먼저 들어갔다.
아줌마는 사뿐사뿐 걸어서 골목으로 향했다.
계산을 하면서도 생각이 났다.
이발소는 유치원 다닐 때 한 번 가보고, 그 후로는 가본 적이 없다.
머리를 깎으려면 미용실에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본 이발소는 피시방 의자보다 더 두툼한 쿠션의 의자에 눕듯이 앉아
칼로 머리를 깎고, 면도도 하는 곳이었다.
늘어진 카키색 원피스 잠옷을 입고 다니는 아줌마가 거기서 일한다는 것이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이발소는 모름지기 의사 가운을 입고 무스 잔뜩 바른 아저씨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머리 깎을 때도 안 됐고 하여 가지 않았다.
아줌마도 와보라는 이야기를 다시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담배를 한 대씩 피웠다.
—
하루는 아줌마가 밖에 오래 있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손님이 올지도 모르고 누가 보면 안 된다고 했다.
아줌마는 하루 24시간을 그 안에서 지내고, 밥도 거기서 시켜먹고, 씻기도 거기서 씻는다고 했다.
햇빛을 쬔 지가 아주 오래 됐다고, 세상 돌아가는 일도 잘 모른다고.
말을 적어두고 보면 하소연이나 뭔가 슬픈 분위기로 자기 처지를 털어놓는 것 같은데
아줌마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다음 날은 나이트 기도 형님과 담배를 피웠다.
항상 깔끔한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온다.
가끔 후다닥 뛰어와 담배를 잔뜩 사가기도 했다. 심부름이다.
가뜩이나 덩치도 엄청 크고, 목도 아주 두꺼운 험상궂은 인상인 형님인데
심부름을 올 때면 아주 빠르게 뛰는 바람에 얼굴이 상기되고, 표정도 안 좋아서
무서운 사람이구나 싶었다.
담배를 피우자길래 조금 떨렸다.
뭐 잘못한 게 있나, 한 대 맞으면 어떻게 대처하지.
폰을 주머니에 넣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나와버렸다.
형님은 별 이야기를 안 했다.
그냥 자기는 체대 나와서 할 것도 없고, 돈 많이 주길래 기도 하는 거라면서
편의점 일하는 거 봤는데 참 밝고 친절해서 보기가 좋다고,
담배 한 갑 사주고 싶었다고.
그러다 아줌마 이야기를 묻는다.
그 아줌마가 누군지 아냐는 것이었다.
저쪽 이발소에서 일하는 것만 안다고 했다.
기도 형님은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봤다.
계속 눈을 마주치면 한 대 맞을 것 같아 괜히 담뱃재 터는 척 시선을 돌렸다.
나이가 몇 살이냐고 한다. 20살이라 했다. 그래서 모르는구나 했다.
그러고 허리를 쭉 펴더니 다시 나이트로 가버렸다.
상남자가 따로 없는 형님이었다.
일이 끝나고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 때마다 담배도 한 대씩 피우고, 한 번씩 음료수 마시라고 주기도 하는데
한 번쯤 가줘야 하는 것 아닌가 했다.
성인이니까 사회생활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네 어른들부터 시작하는 거지 하고.
사실은 이런 것들은 명분 좋은 핑계였다.
남중 남고를 나오고,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런 중에 아주머니 한 분이 친하게 대해주니 괜히 좋았던 것이다.
연애나 사랑까지는 모르겠지만 친한 아줌마 한 명 알면 이쁜 여자애 소개도 시켜주지 않을까.
골목을 돌아 들어가는데 아주 컴컴했다.
주황색 가로등 하나와 그 아래 반짝이는 검은 쓰레기 봉지더미.
그 옆의 이발소 간판, 지하로 들어가는 컴컴한 입구.
까매도 너무 까맸다. 그런 어둠은 살면서 본 적이 없었다.
괜히 무서웠다. 그래도 들어가자,
원래 이런 곳이라고 했으니까.
계단을 내려가는데 ‘띵-똥’ 하는 소리가 울렸다.
화들짝 놀라 둘러보니 천장에 CCTV가 하나 있다.
출입문 앞에 서서 잠깐 기다리니 문이 슬쩍 열린다.
아줌마가 아니었다. 웬 아저씨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골프복 반팔 차림이다.
어려보인다며 신분증을 보자고 한다.
왜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건지 의아했다.
이발소는 아저씨들만 가는 곳이라서 그런 걸까,
보니까 이발소에는 여자 누드 사진이 있는 달력이 꼭 있던데 그것 때문인가.
그냥 돌아갈까 싶다가 아저씨가 기다리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신분증을 줘버렸다.
문을 닫고 들어가 확인을 한다. 신분증 도난 맞은 건가? 오만 생각을 하는데
다시 문이 열리고 7만 원을 달라고 한다.
아줌마 이야기를 해볼까, 아니면 그냥 돌아갈까,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지? 일단 들어가서 아줌마한테 말을 해볼까,
아니면 아줌마가 여기서 일하지 않는 건가?
지갑을 보니 5만 원밖에 없었고, 아저씨는 휙 빼가더니
“처음이지? 처음이니까 5만 원에 해줄게, 들어와라” 한다.
이발소 내부는 아주 어두컴컴했다.
불이 온통 꺼지고, 옆에 있는 작은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 불빛만 새어나왔다.
두툼한 이발소 의자가 3개 있었고, 커다란 거울이 있고, 아무도 없었다.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그 옆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복도가 있고 좌우로 커튼이 쳐진 방이 몇 개 있었다.
한 곳에 나를 들여보내더니 옷 벗고 저 가운 입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가운데 침대가 있고, 옆에는 목욕탕 사물함 같은 것이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장기매매 이런 건지, 생전 처음 경험하는 공포였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바로 죽을 것 같았다.
일단은 가운을 입고 침대에 앉았다.
곧 발걸음 소리가 난다.
또각또각 하는 구두 소리였다.
내 방쪽으로 오고 있었다.
커튼이 열리고, 희뿌연 조명을 등지고 나온 얼굴은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호피무늬 속옷을 걸치고, 팬티 같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고, 진짜 왔냐고 그런다.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안심이 됐다.
아줌마는 일단 엎드리라고 했다.
침대에 엎드리니 아줌마가 올라와서 마사지를 해준다.
어깨를 주무르고, 등을 꾹꾹 눌러준다.
마사지를 처음 받아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시원하긴 한데 아프기도 했다.
아줌마는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정말 올 줄 몰랐다고, 어떻게 왔냐고.
기도 아저씨 이야기는 쏙 빼고 한 번 와봐야 할 것 같아서 왔다고 했다.
아줌마는 여기서 일하냐고 실없이 물었다. 여기서 하루종일 지내는 거냐고.
그렇게 한 삼십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아줌마는 아들이 둘 있고, 고등학생, 대학생이라고 했다.
돈을 벌어야 해서 여기서 일을 한다며 자식들은 할머니집에 보냈다고 그런다.
남편은 없는지 묻고 싶었는데 실례가 될까봐 못 물었다.
눈치를 챘는지 먼저 대답을 한다. 남편은 없고, 어디 도망 갔다고.
기분이 안 좋았다.
매일 보며 담배 한 대 같이 피우던 아줌마가 속옷 같은 옷만 입고
내 등에 올라타서 몸을 주물러주고 있었다.
그리고 들려주는 이야기는 온실 속의 화초는 꿈도 못 꿨던 이야기였다.
몇 없는 친구들은 다들 공부도 잘하고, 좋은 부모님 밑에서, 좋은 학원 다니던 애들이었는데
이 아줌마의 자식들은 엄마가 24시간 어두운 지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줌마는 젊었을 때 미용실 일을 했다고 했다.
가정이 아주 불우했고, 집을 나와 미용실 일을 하며 쫓겨나거나 망하거나.
그렇게 여기저기 도시를 떠돌다가 자식을 낳았다.
둘째를 낳고 며칠 후, 애 아버지는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알지도 못하고, 찾을 생각도 없다고 했다.
돈을 조금 더 준다는 말에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그랬다.
그렇게 일한 지 6년이 됐다고 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등을 탁 탁 두드린다.
돌아 누우라고 한다.
부끄러웠지만 조명이 어두워서 나름 괜찮았다.
아줌마는 가슴 근육, 허벅지 근육을 주무르다가 괜찮지? 하며 손을 고추에 갖다댔다.
화들짝 놀랐다.
뭐가 괜찮냐고 물어보니 한 번 빼준다고 그랬다.
징그럽고 무서웠다.
안 괜찮다고 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옷을 후다닥 입고 나와버렸다.
—
그 후로도 아줌마는 편의점에 왔다.
담배를 피우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인사는 했다.
기도 형님이 담배를 피우자고 했을 때 이야기를 털어놨다.
형님은 거기 원래 성매매 하는 곳이라고 말해줬다.
나이 6070먹은 할아버지들 가는 곳인데 혼자 어떻게 갈 생각을 했냐고 그랬다.
껄껄 웃으며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래서 했냐 안 했냐 물었다.
안 했다고 답했다.
형님은 잘했다고, 잊어버리라고 해줬다.
웃으면서 혹시 나이트도 한 번 와보고 싶으면 오라고 했다.
이 형님이 맥주 정도는 마음껏 꺼내줄 수 있으니까,
아줌마 좋아하면 와보라고, 나이도 속여주겠다고.
나이트에는 가지 않았다.
그 다음 주 편의점을 그만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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