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면 의외의 곳에 들어가는 돈이 생기게 된다. +- 0이던 내 통장에 0 몇 개 정도 더 붙은 날이 있었다. 저번 달 번역일로 벌었던 돈에서 남은 금액이었다. 이 돈으로 무얼 할까 궁리를 했다. 속에서 신남이 차오르던 때. 나는 달려오는 차에 부딪쳐 병원으로 실려갔다. 심한 건 아니고. 그냥 약간의 피. 몇 번 꼬매고. 파상풍 주사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영수증에는 아주 정확하게 그날에 여윳돈의 금액이 나왔다. 눙물 한 방울 찔끔. 그래도 이 돈 없으면 꽤나 곤란할 뻔 했다고 셀프 위로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셀프 위로는 위로고. 기분이 아주 좆같았다.
돈. 돈. 돈. 고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해서 떠오른 게 회사였다. 대학을 다니며 회사 생활을 하고 싶었다. 동기들 중 제일 먼저 취업한 놈은 내가 될 것이다 생각하며. 전에 함께 일을 했던, 혹은 관심 가던 회사에 연락을 넣어 면접을 보러 다녔다. 물론 대학생은 안 된다고 거절당했지만.
해서 꾸준하게 돈이 들어오는 일이 필요했던 나는 다시 아르바이트로 눈을 돌렸다. 그래서 그때 주로 했던 일이 식당, 마트 알바였다.
내가 일을 했던 시간은 저녁 7시부터 1시. 어린 동양애가 타지에 나와서 일을 하는게 퍽 가엾게 보였는지 마트 계산을 하며 간식거리를 하나 둘 놓고 가는 손님들이 있었다. ‘오 개꿀이군.’ 이라 생각하며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학교 과제를 했다. Cctv로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마트 사장이 가게로 전화해서 “공부하지 말라.” 하면 책을 덮고 일어나 가게 물건을 정리 하는 시간을 몇 달 정도 보냈다.
마트 알바를 하며 이상해서 기억에 남은 손님을 몇 명 적어보겠다.
미친 소주녀. 노란 탈색모에 집에서 자른 것이 분명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마르고, 눈이 심하게 반짝거리고, 이 세상을 붕 떠서 다니는 여자가 들어와 “여기 일본 사케 같은 한국 술 있지 않아?” 라며 소주를 사갔다.
온 몸을 타투로 휘감은 남자. 늘 단정한 머리에 정장을 입고 회사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음.. 회사에서는 저런 남자를 쓰기도 하는 가 보군.’ 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히피. 늘 정확하게 맥주 여섯캔을 사서 돌아갔다. 이 남자는 후에 내가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몇 번 마주치게 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적겠다.
그리고 대망의, 남미 조폭같은 놈. 노인을 위한 나라의 쁘띠단발역을 맡은 하비에르 바르뎀을 실제로 보면 저런 느낌일까? 아니면 다세포소녀의 왕칼언니 역을 한 이원종을 실제로 보면 저런 느낌일까. (배우 이원종은 나중에 어떻게 하다 보게 되었는데. 아주 거대한 짐승. 혹은 멧돼지가 사람으로 변하면 저러한 모습일 것이다.) 엄청난 위압감을 가진 남자가 가게로 들어왔을 때, 나는 몸이 얼어붙었다. 해.. 핸드폰이..? 손을 주섬주섬 움직였던 것은 물론이다.
남자는 가게를 어슬렁 거리며 돌다가 음료 코너로 다가가 콜라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콜라를 가져와 나에게 하는 말.
“이거 왜 이렇게 비싼거야? 여기 코카인이 들었지?”
“모르겠는데요.”
“코카인 들은 거 맞지?”
“몰라요.”
“코카인이야?”
“모른다니까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남자 쪽에서 농담을 던진 듯 한데 나는 왜 모른다고만 대답했을까.
남자가 무엇을 사고 나왔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폭풍우처럼 들어왔다가 떠난 남자는 내가 이곳에서 일을 그만둘 때 까지 가게를 다시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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