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이야기 1

1932년 7월 20일. 종로 서린동에서 백남준이 태어났다. 백남준의 집안은 포목(비단)사업을 하고 있었다. 청나라 비단을 독점거래 했다. 백남준의 아버지는 해외와 무역까지 하면서 집안이 아주 잘 살았다. 일제강점 아래 큼직한 사건들을 잘 헤쳐나갔다. 백남준은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았다. 얼마나 부족함이 없었냐면 당시 조선반도에 2대밖에 없던 자동차를 타고 학교를 통학했다. 차고 넘치는 어린시절이었다. 

 

 

어린 백남준은 고등교육을 잘 받으며 자랐다. 조선시대 훈장님 교육이나 유교서적 달달 외우기가 아니라 현대적인 교육 시스템을 배웠다. 이때부터 영특함을 보였다고 한다. 언어를 배우는데 종종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냈다. 어떤 어린 아이들이 그러지 않겠냐만, 가족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완전히 상상의 언어를 썼다고 한다. 또 당시 조선에 라디오 방송국이 열렸는데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과학기술 쪽에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들도 좋아했다. 사실 백남준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아버지 사업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고, 아버지는 사내자식이 무슨 피아노냐며, 방구석에서 피아노나 뚜들기는 백남준을 혼냈다고 한다.

 

 

몸이 병약하여 항상 집안에만 있었는데 집에서 여러가지를 접하기도 한다. 책은 당연히 좋아했다. 다독가였다고 한다. 백남준의 누나는 전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아주 좋아했고, 글도 못 읽을 때에도 음반을 보고 가수와 제목을 술술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글은 몰라도 음반의 흠집이나 특징을 보고 읽은 것이다. 백남준은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음악에 큰 관심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백남준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과서에 나오는 백남준은 TV로 예술을 했다고 하고, 어른들은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예술가로는 알고 있다. 사실 백남준은 상술한 것처럼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으로 대학을 갔고, 유학도 떠났다. 그리고 처음 TV로 한 작업도 음악이었다. 작곡도 했다. 퍼포먼스(행위예술)의 악보다. 

 

 

백남준의 곡 중 하나를 먼저 소개해 본다. 

 

 

 

 

 

 

“젊은 자지를 위한 교향곡”

 

 

막이 오른다

관객에게는 무대 앞 설치된 거대한 흰 종이만 보인다. ... 무대를 완전히 가리고 있다. 

이 종이 뒤에는 10명의 청년이 서있다. . . . 준비

 

 

잠시후

 

 

첫번째 사람이 자지로 종이를 뚫어 관객에게 보인다. 

두번째 사람이 자지로 종이를 뚫어 관객에게 보인다.

세번째 사람이 자지로 종이를 뚫어 관객에게 보인다.

네번째 사람이 자지로 종이를 뚫어 관객에게 보인다.

다섯번째 사람이 자지로 종이를 뚫어 관객에게 보인다.

여섯번째 사람이 자지로 종이를 뚫어 관객에게 보인다.

일곱번째 사람이 자지로 종이를 뚫어 관객에게 보인다.

여덟번째 사람이 자지로 종이를 뚫어 관객에게 보인다.

아홉번째 사람이 자지로 종이를 뚫어 관객에게 보인다.

열번째 사람이 자지로 종이를 뚫어 관객에게 보인다.

 

 

기원후 1984년 무렵 예정된 세계 최초의 교향곡

 

 

 

 

 

 

이 곡은 가장 연상하기 쉽고 알아보기 쉬운 곡이다. 다른 곡들에는 다양한 소품(전구 같은)도 나오고, 더 기괴한 행위들이 등장한다. 시간을 정확히 정하기도 하고, 몇 년씩 걸리기도 하고, 추상적인 표현들도 등장한다. 

 

 

사실 백남준은 세계적으로 퍼포먼스가 아주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백남준의 퍼포먼스는 바이올린을 내려치는 것이다. 몇 분동안 서서히 들어올린 다음, 한 순간에 책상으로 내려쳐 박살을 내버린다. 음악계가 내려놓지 못하는 고상함, 우아함, 그 권위를 박살내는 것이다. 미술도, 영화도, 문학도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음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은 모두에게 있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 음악은 언제까지 고고하고 자기들만의 귀족적인 위치를 고수할 것인가. 

 

 

이는 고전음악에 대한 도전이었다. 바이올린이 부숴지는 이미지는 많은 음악계 인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관객은 물론이다. 백남준은 바이올린에 그치지 않고,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도 한다. 그냥 부순 것도 아니고 아예 도끼로 내려찍어버린다. 바이올린보다 크고 더 부드러운 소리의 검은 피아노가 굉음을 냈다. 이는 백남준 하면 떠오르는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다.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한 백남준은 휠체어를 타고 피아노를 계속해서 쓰러뜨리는 퍼포먼스를 한다. 

 

 

이뿐 아니라 음악에 섹스를 집어넣는다. 미술에도 문학에도 섹스가 있는데 음악에는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라고 하는 작업을 한다. 행위예술인데 샬롯 무어먼이라는 첼로 연주가와 함께 한 것이다. 샬롯 무어먼은 옷을 벗고 연주를 하거나, 나체가 상영되는 TV로 만들어진 첼로를 연주한다. 또는 노골적으로 나체의 백남준이 등쪽으로 들고 있는 현을 연주하기도 한다. (https://goo.gl/images/Q77evv)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공연을 하다가 NYPD,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당대 여러 예술계 거장들의 항의로 풀려난 적이 있다. 음악에 섹스를 넣기 위한 작업들이었다. 음악의 권위 파괴. 모든 사람을 위한 음악. 일상의 예술. 이러한 맥락은 백남준과 친구들(오노 요코, 요셉 보이스 등)이 뉴욕에서 했던 플럭서스 운동의 하나다.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오면, 이러한 반항기 넘치는 기질은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조선명문 경기보통중학교에 진학한다. 그러면서 피아니스트 신재덕, 작곡가 이건우를 만난다. 또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닥뜨린다. 스스로 그 순간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아놀드 쇤베르크의 음악을 접한 것이다. 

https://youtu.be/JEY9lmCZbIc

아놀드 쇤베르크의 음악이다. 기괴한 음악이다. 극도로 반항적이다. 백남준은 쇤베르크에 빠져들었다. 유사한 음악가로, 그가 좋아했던 또 다른 음악가는 벨라 바르톡. https://youtu.be/pb37dJFPoFg

공포영화에 싸이코가 칼 집어들 때나 나올 법한 이런 음악들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부터 싹수가 노랬던 것이다. 바흐, 베토벤, 모짜르트나 좋아하지 저런 작곡가를 좋아했다. 

 

 

그래서 이 작곡자들의 음반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또 백남준은 스스로 조선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가장 빨리 아놀드 쇤베르크를 접할 수 있었다며 자랑처럼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자신이 어린 시절 받은 행운이 있다면 집이 잘 살아서 아놀드 쇤베르크를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아놀드 쇤베르크의 반항성을 좋아했던 만큼, 백남준은 몸은 약하지만 아주 거친 열정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마르크스를 좋아했다. 당시 일제 아래 마르크시스트는 반역자와 같았다. 

 

 

백남준은 17살에 홍콩으로 간다. 1949년, 그의 부친이 홍콩으로 보냈다. 이승만이 백남준 아버지 보고 홍콩이랑 무기 거래 좀 하라고 보냈다는 설이 있는데 그냥 설일 뿐이다. 그곳에서 학교 생활을 하며 영어와 중국어를 배운다. 20살이 되기 전에 백남준은 조선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를 썼다. 총 4개국어다. 백남준은 살면서 6개국어를 하게 된다. 독일어와 불어도 한다. 이 6개국어가 짬뽕이 된 글들을 많이 쓴다. 이 말을 쓰다가 저 말을 쓰다가, 마음에 안 들거나 바라는 단어가 없으면 여러 말을 섞은 자기만의 말을 쓰기도 한다. 그와 대화 해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고 한다. 여러 개 언어가 톡톡 튀어 다니고, 생각도 톡톡 튀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1950년에 다시 돌아오지만 625가 터져버린다. 부산에 피난을 갔다가 일본으로 간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졸업하고 대학에 갔다. 백남준은 그 당시 스파르타 식으로 진짜 죽을만큼 공부를 했다고 한다. 두 번 다시 그렇게 못할 것이라 했다. 전해지는 소문으로는 입시 준비가 3개월밖에 안 걸렸다고 한다. 소문일 뿐이다. (그러나 사실 백남준은 TV로 예술을 하기 위해 이 시기처럼 3년간을 물리학 공부를 했다.) 

 

 

이 결과로 백남준은 대학에 들어간다. 그냥 대학이 아니라 동경제국대학에 들어간다. 그것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백남준은 공학부와 교양학부 문과에 지원, 합격했다. 그때 입학처 직원은 왜 이렇게 우수한 성적으로 법학과에 진학하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백남준의 가족들도 법학과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백남준은 조까라고 동경제대 미학과에 입학한다. 그는 미학과에서 음악미학을 공부한다. 아놀드 쇤베르크에 여전히 빠져있었다. 1954년, 22살의 일이다.

 

 

그의 대학시절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그냥 별짓 안 하고 그냥저냥 잘 지낸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 백남준이 당시 짝사랑 했던 여학생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소심해서 들이대지도 못하고, 대쉬는 전혀 꿈도 못 꿔서 그냥 몰래 뒤를 졸졸 쫓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하루는 마음을 먹고 집까지 쫓아가 고백을 했는데 차였다고 그런다. 이것 말고는 스스로도 대학시절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야말로 무난한 대학시절을 보낸 것 같다. 연애는 없었던 것으로. 

 

 

대학시절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 아놀드 쇤베르크에 대한 사랑이 죽지를 않았다. 그는 아놀드 쇤베르크에 관한 학사 논문을 쓰고 졸업한다. 그리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로 한다. 1956년, 24살 때의 일이다. 독일 뮌헨 대학교 철학과로 떠난다. 이제부터 백남준의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알 수 있겠듯이, 백남준은 TV예술만 한 것이 아니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이지만, 행위예술의 대가이기도 하고, 음악가이기도 하다. 또 기술자다. 언어학자이기도 하다. 역사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수많은 글을 쓴 사상가이기도 하다. 한 가지로 정해서 말할 수 없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현대 예술가다.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고 깊게 알았다. 백남준은 청년시절부터 변기에 앉아 신문을 5개, 잡지를 3개씩 읽고는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다리에 쥐가 많이 나서 늙어서 휠체어를 탔나 싶다. 

 

 

백남준은 독일로 떠나면서 본격적인 예술가 생활을 시작한다. 마냥 공부벌레, 그냥 한 명의 음악미학자로 남을 수 있었지만 직접 예술가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세계 판도를 바꿔버렸다. 지금까지 쓴 이야기는 그야말로 서론에 불과하다. 어린 시절과 대학까지는 찾을 수 있는 자료가 그렇게 많지 않다. 일단 국내에 나온 백남준 관련 도서나 인터뷰, 다큐가 별로 없다. 그래서 그것들을 보며 스스로, 주변인이 말한 말을 모으는 것이 전부다. 

 

 

백남준에 관한 책을 몇 가지 추천 해보겠다. 

‘나의 사랑 백남준’ 구보타 시게코, 

‘백남준을 말하다’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 백남준이 쓴 글 모음, 백남준 총서

이 세 권만 추천한다. 나머지 잡다한 책은 그야말로 백남준 팔이다. 

그 중 가장 최악은 ‘백남준, 나의 유치원 친구’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유치원 때 잠깐 만났다가 다 늙어서 만난 이야기밖에 없는데 책은 드럽게 비싸다. 

 

아무튼 여기까지 해서 일단 서론을 마무리하겠다. 본격적인 독일 생활의 시작과 작품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다음 글 예고]

1. 백남준의 작품세계 - 작품 소개와 설명

2. 백남준의 독일 생활

3. 백남준의 명언

작품 등록일 : 2018-11-09

▶ 백남준 이야기 2

다른 건 몰라도
고전음악에 대한 견해 만큼은 전적으로 동감 ㅋㅋㅋㅋㅋ
bu*****   
백남준 웃기고 재밋는 양반이었음 근데 시게코한테는 되게 못됐었어 ㅎㅎㅎ
ge*****   
스크랩
사과*****   
오 잘읽었어. 달러드림! 또 볼게
yj*******   
오 흥미롭군요
ge********   
나도 백남준을 참 좋아한다.
un**********   
재밌다
휴먼   
돈 드렷음
viank...   
wow 돈 주었음
라 돌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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