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이야기

1. 주리틀기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다. 

여느 고딩이 그렇듯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재밌게 놀았다.

 

어느 날 집에서 사극을 보는데 주리를 틀고 있었다.

이게 정말 아플까? 싶어서 

혼자 발목 테이프로 묶고 기다란 막대기로 혼자 주리를 트는데

진짜 미칠듯이 아팠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주리를 틀자고 했다.

평소 눈빛이 멍하고 약간 맹한 친구를 데려왔다.

재밌는 놀이를 하자고 했다.

죄인놀이라 하며 너는 뱃살이 점점 동그래지는 죄를 지었다고 했다.

 

꿇어 앉아 발목을 팔로 감싸 안아 꽝꽝 묶고, 

빗자루 두 개를 가져와 주리를 틀었다.

허벅지가 너무 똥똥해서 빗자루를 꽉 누르는 게 제법 힘겨웠다.

그래도 효과가 좋았는지 비명을 마구 질렀다.

 

그리고 주리를 튼 친구 한 명은 친구 주리를 튼 죄로 주리를 틀었다.

엄청 아프다고 그랬다.

뭔가 뿌듯했다.

 

2. 너를 위한 성벽

절대 주변에 휩쓸리지 않는 친구 ‘정’이 있었다.

덩치가 왜소하고 말수도 적은 아이였지만

그래도 조용하게 어울릴 땐 어울리고 웃을 때 같이 웃는 친구였다.

 

다 같이 신나게 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책상에 앉아 홀로 책을 보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배려를 해주기로 했다.

‘정’을 위해 우리 조용한 공간을 마련해주자.

우리가 옆에서 시끄럽게 놀면 책을 제대로 못 볼 것이다.

 

‘정’의 주위로 책상을 가득 쌓아 올렸다.

이렇게 하면 쓰러질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공간이 남는다, 

열띤 토론을 하며 천장까지 책상을 가득 쌓아 올렸고, 

우리는 ‘정’을 위한 완벽한 성채를 만들었다.

 

‘정’은 이게 뭐냐고 웃으면서 다시 책을 읽었고,

우리는 뿌듯했다.

 

3. 네 발로 걷는 국어선생님

고딩 때였다.

급식시간에 밥을 먹고 몇몇 친구들과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곤 했다.

소화도 시킬 겸 이것저것 장난도 치고 말도 많이 하고 토론도 하고 그랬다.

 

하루는 친구 한 명과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이족보행과 사족보행에 대한 토론을 하다가 

직접 사족보행을 했다. 왜냐하면 이족보행은 맨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네 발로 오 분쯤 걷고 있었을까,

당시 29? 30? 밖에 안 된 젊은 여자 국어선생님이 다가왔다. 

너희들 대체 뭐하는 거냐면서 멀뚱히 쳐다봤다.

우리는 아무 신경 안 쓰고, 대답도 안 하고 계속 네 발로 걸었다. 

 

그렇게 약간 시간이 흐르니 그 선생님도 우리를 따라 사족보행을 했다.

혼자서 뭐라 뭐라 말했다.

우리는 일어나서 멀뚱히 바라봤다. 

선생님은 혼자서 사족보행을 좀 하다가 우리가 일어서서 쳐다보고 있는 걸 눈치챘다. 

굉장히 민망해 하면서 뭐라뭐라 하길래 

그냥 돌아서서 계단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며 보란듯이 멋지게 사족보행을 했다. 

팔이 짧으니 네 발 걸음은 계단 같은 오르막길에 적합했다.

 

4.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던 국어선생님

국어선생님은 우리와 친해지고 싶어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많이 했다.

 

하루는 자기가 고등학생일 때 썰을 풀었다. 

한 남자애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애가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자기를 좋아하던 다른 남자애가 있었는데 

그 둘이 싸움이 났다.

그런데 만나던 남자애의 여자친구가 

자기 남자친구와 다른 남자애가 싸우고 있으니 못 참겠나 보더란다.

그 여자애는 일진이었는데 

일진들을 잔뜩 데리고 와서 다른 남자애를 다구리 까려고 했다더라. 

그런데 그 남자애도 자기 패거리가 있어서 

서로 패싸움이 벌어졌다.

그래서 자기 때문에 두 남자가 싸우고, 패싸움이 벌어진 썰을 푸는데 

 

대체 왜 우리에게 이런 썰을 푼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최’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미친, 무슨 개소리야 ㅋㅋㅋ 하며 쪼갰다.

 

그래도 우리는 이 선생님을 좋아했다. 

속으로 꽤나 무시하긴 했지만 말이다.

 

5. 교단을 짓밟은 난감한 학생

고딩 때 이야기다.

하루는 쉬는시간에 장난을 치는데 

교탁 위에 올라가는 장난을 쳤다. 

 

다들 한 번씩 올라가 짧은 연설을 외쳤다. 

가히 웅변의 현장이었다.

그러다 쉬는시간이 끝나갔다.

 

한 학생이 마지막 연사로 올라섰다.

그런데 덩치가 큰 ‘훈’이 그 학생 발목을 꽉 붙잡았다.

얼마나 컸냐면 기억하기로 키가 한 3미터 20센티미터 정도 되고, 몸무게는 540킬로그램에 육박했다.

 

그런 학생이 발목을 꽉 붙잡고 있으니

마지막 연사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내려오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마침 그 연사는 간땡이가 작은 학생이었다. 

 

얼굴이 시뻘개지고 선생들이 하나둘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훈’은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고 있다가 쌩하니 자리로 돌아갔다.

곧장 문이 열리고 

들어온 수학선생님은 아주 당황한 눈빛이었다. 

 

수업에 딱 들어오니 웬 학생이 교탁을 짓밟고 우뚝 서있는데 

얼굴은 시뻘개져있고

이것이 교권에 대한 도전인지, 집단괴롭힘인지 알 수가 없었을 것 같다.

 

수학선생님은 화를 내기로 결정하셨던 것 같다.

 

6. 병호 이야기

운동장을 같이 돌던 친구 중에 ‘병호’라는 친구가 있었다.

사실 그 친구의 이름은 ‘병진’이었다.

아니, 이름이 병진인지 병호인지 헷갈린다.

 

같이 돌던 친구 중 ‘윤’이 있었다. 

어느 날 ‘윤’이 병진이를 다시금 소개하며 

‘얘는 병호라고 해’라고 했다.

그래서 ‘안녕 병호야’라고 했다. 

물론 우리는 이미 서로 다 아는 사이였다. 

 

내막은 이랬다. 

어느 날 ‘병진’이 ‘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자기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제법 성숙한 편이라서 이름이 ‘병진’이라 해서 ‘병신’이라고 놀리거나 

그러지도 않는데 괜히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무튼 고민을 털며 그래서 자기 이름을 ‘병호’라고 하고 싶다 했다는 것이다.

 

‘윤’은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며 앞으로는 우리 ‘병호’라고 불러줘야 한다 했다.

그런데 ‘병호’는 당황하며 

‘아니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겠다며’ 하고 성을 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는 이미 ‘병호’가 되었다.

 

며칠 후, ‘병호’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며 잡아뗐다.

자기는 ‘병진’이고, ‘병호’가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전부 ‘윤’이 지어낸 이야기고, 자기 이름은 ‘병진’이며, 그런 고민 상담 같은 건 한 적도 없다고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병호’로 부르고 있었다.

 

사실 그의 이름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다. 

사람의 이름이란 것은 단지 기표에 불과한 것이고 

그 학생의 존재 자체는 변함이 없으니까.

따라서 우리의 결론은 ‘병진’이든 ‘병호’든 아무 상관 없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그의 본래 이름이 ‘병진’인지 ‘병호’인지 알지 못한다.

 

7. 씨융하고 지나가는 자동차

수업 시간에 장난을 자주 쳤다.

 

하루는 혼자 Z발음을 내고 있는데 그게 자동차 소리 같았다.

그래서 멀리서 달려오다 쌩하고 지나서 저 멀리 가버리는 자동차 소리를 냈다.

제법 그럴싸 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 씨이이이이~~~~이융~~~~~~~~~~

하는 소리였다. 입으로 내면 다들 할 수 있을 것이다. 

크레센도에서 데크레센도로 이어지는 그런 것이다. 

 

수학시간에 이 소리를 내기로 작정했다. 

이 선생님은 칠판에 판서할 때 몸을 완전히 칠판 쪽으로 돌리고 글씨를 썼다.

그래서 몸을 돌렸을 때, 이때다 싶어서

씨~~~~~유웅~~~~~~~~ 하고 자동차를 지나보냈다.

 

선생님은 슥 고개를 돌리며 

‘이게 무슨 소리야?’ 하셨다.

그래서 ‘복도에 자동차 한 대 지나갔어요’라고 했다.

 

‘형’이라는 친구는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걸걸했다. 

그 친구도 재밌었는지 나를 따라 자동차를 출발시켰다.

그런데 목소리가 엄청 굵고 허스키하고 걸걸하다 보니 

무슨 덤프트럭 한 대가 비포장도로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은 ‘이건 또 무슨 소리야’라며 당황하셨다.

 

이후 다른 과학 시간에도, 국어 시간에도, 사회 시간에도 

자동차를 몇 대 발진시켰다.

레이싱장을 방불케 하는, 수십 대의 자동차가 끊임없이 지나가는 교실이었다.

 

8. 한국의 네오나찌

‘임’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미쳐버린 천재’로 통했다.

 

암기력이 아주 좋고, 공부도 꽤 하는 편이었는데 

어떤 소통도 되지 않는 학생이었다. 

아이들이 하도 놀리고, 발로 엉덩이 걷어 차고 도망가고 

그러다 보니 속으로 억압 받는다는 생각을 했는지 

자기 자신을 독립운동가에 비유하곤 했다. 

 

고구려를 좋아했고,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에 대해 물어보면 

어디서 공부했는지 혼자서 20분 30분은 늘어 놓는 학생이었다.

 

지금 나가야 돼서 다음 시간에 ‘임’의 이야기를 더 하기로.

작품 등록일 : 2021-01-1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병호 얘기가 젤웃김
치오*   
재밌다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기린   
ㅋㅋㅋㅋ
글 잘쓴다
작가해도 되겠다
treasure   
오 재미썽
ni****   
이야기를 참 물흐르듯이 잘 한다. 근데 지장보살 2탄 언제나옴?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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