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오르가즘

2019.04.14

 

오늘도 남편과 섹스 한 판 했다. 진짜 징그럽다.

 

섹스하고 꼭 다정한 척하면서 좋았냐고 물어보는데 정말 최악이다.

 

내가 어쩌다 이런 남자와 결혼했는지 모르겠다. 돈도 괜찮게 벌고, 직장이 잘나가기도 했고, 나 좋다고 그렇게 따라다니길래 그냥 같이 살아도 괜찮겠지 싶었다. 그래도 이렇게 싫은데.

 

집에서 엄마도 결혼하라고 등쌀, 주변 친구들도 결혼했다고 다들 유세나 떨고. 나이 30 넘어가니 좀 불안하기도 했다. 더 많아지면 애기 낳기도 힘들어질 텐데, 지금이라도 안 만나면 안 될 것 같았다.

 

20대 때만 해도 이런 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런 애들은 나를 숱하게 쳐다봤지만. 그래도 제법 동안이라 어디 가면 꽤 괜찮은 대접 받기도 했는데 마냥 그러자니 어린 애들이 좀 질렸다. 너무 철없기도 하고.

 

눈가에 주름이 하나씩 패이고, 얼굴은 속여도 목이랑 손은 숨길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결혼을 하자.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진영이랑 영원히 함께 놀자고 약속했는데 그 나쁜 년, 대기업 다니는 남자 물었다고 바로 결혼해버렸다. 해보니까 참 좋다고 나보고도 하라는데 진짜 뺨을 갈기고 싶었다. 결혼하지 말고 같이 놀러다니면서 재밌게 놀자면서.

 

그래도 괜찮은 점도 몇 개 있다. 말했지만 돈도 괜찮게 번다. 매달 가방 하나 살 정도로 벌어오기도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여유롭기도 하고. 애도 낳지 말자고 했다. 막상 결혼해 보니 애는 낳고 싶지가 않았다.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자기가 아쉽지 내가 아쉽나. 요즘은 40 다 돼서도 애 낳기도 한다는데,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지.

 

결정적으로 괜찮은 건 자기 회사 요번에 상장한다고 장외주식 쌓아둔 게 대박이 났다. 그동안에도 괜찮게 벌었는데, 이제는 수십억대 자산가가 된다. 이사가면 집도 내 명의로 해준다 하니 이런 사람이 또 어딨나. 같이 살아주기만 하라는데

 

얘는 나랑 왜 사는 걸까? 

 

거의 주말에나 만나고, 나는 집안일도 잘 안 한다. 가정부 쓰자니까 또 좋다고 쓰겠단다. 얘는 나랑 왜 살까? 불쌍하기도 하다. 정말 자기 공부밖에 모르고 살았고, 지금도 일하는 것밖에 모르고 사는데 나 좋다고 이렇게 다 바치고 살면.

 

이게 미운정인가 보다. 꼴도 보기 싫으면서도 불쌍해서 살아준다.

 

좋다고 씻고 나와서 옆자리에 드러누워 잠들었다. 코는 안 골아서 다행이다. 땀은 싫지만 그래도 냄새는 안 나는 사람이다. 나이 40 돼서 냄새 안 나면 괜찮은 사람이지 뭐. 

 

 

내 남편은 대학을 다니면서 연애를 두 번 했다고 한다. 말 안 해주려고 하는 걸 억지로 뱉어내게 했다. 집요하게 물어봤다.

 

첫 여자는 같이 실험했다는 애였다. 1학년 1학기, 대학에 막 들어왔을 때. 처음 같이 뭘 하게 된 여자애랑.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래야지. 남녀가 같은 조가 돼서 한 학기 같이 노력하는데 정분이 안 날 수가 있나. 병신모지리 같아도 할 건 다 하고 살았구나, 기특하기도 하다.

 

아마 첫눈에 반하지 않았을까. 자기는 아니라고는 하는데 말하는 걸 보니 제법 예쁘장한 아이였던 것 같다. 맨날 낑낑거리다가 고민해서 문자 하나 보내고, 답장 안 온다고 울고 그랬다고. 

 

군대 가면서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어느날부터 전화를 안 받더니만 군대도 안 간 면제 동기랑 사귄다고 들었단다. 뻔한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 할 때 분한 표정이 얼핏 비쳤다. 이럴 때 귀여운 면이 있다.

 

두 번째 여자는 같은 동아리에서. 사진 찍는 동아리였는데 남편이 사진을 제법 잘 찍는 편이라서 가르쳐주다가 고백을 받았다고 한다. 자기 말로는 1년밖에 못 사귀었다고 하는데 정태씨가 3년 사귀었다고 말해줬다. 이건 비밀로 해둬야지.

 

서면 포장마차에서 얘기를 들었는데 술에 취한 얼굴로 나는 어떤 연애를 해봤냐고 물어왔다. 연애 같은 거 모르고 살았다고 해줬다. 뻥치지 말라고 고개를 푹 숙이길래 뒤통수 좀 쓰다듬어줬다.

 

 

진영이년은 괘씸하긴 해도 내 둘도 없는 친구다. 결혼 해보니 어떻냐고 맨날 물어보는데 그게 벌써 3년이나 됐다. 처음에는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이제는 살만하다고 대답해준다. 진영이는 깔깔대고 웃는다.

 

어쩌다 보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게 됐다. 그래서 자주 만난다. 오늘도 만나고 왔다. 진영이는 이제 애엄마가 돼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다. 애기는 20개월. 애기 낳아보니 좋다고 나보고도 낳아 보라는데 너무 얄미워 죽겠다.

 

그래도 애기 있는 걸 보면 꽤 좋아보이긴 한다. 애기랑 눈 마주칠 때 진영이 눈빛은 살면서 본 적이 없는 눈빛이다. 얘랑 벌써 20년지기 친구인데 처음이다.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 맨날 보는데도 그렇게 사랑스러울까. 

 

근데 좀 이쁘긴 하다. 어쩌면 그렇게 눈도 크고 콧구멍도 이쁘고 입술도 도톰한지. 애기 같지가 않다. 

 

나 결혼할 때 진영이가 정말 기뻐해줬다. 남편을 보고는 괜찮은 남자라고, 결혼하면 정말 좋을 거라고 했다.

 

좋기는 개뿔이..

 

이제는 애기를 낳으라고 하는데 그것도 좋을까 이년아.

 

 

그런데 오늘 진영이가 이상한 얘기를 했다. 자기 가족이랑 여행가자고. 그건 그럴 수 있다. 남편이랑 섹스는 잘 하냐고 묻는다. 가끔 얘기하긴 했는데 너무 뜬금없어서 평소처럼 한 달에 두세 번 한다고 그랬다. 그랬더니 그것 말고 즐겁냐는 물음이다.

 

부부 성생활 같은 건 나랑 큰 상관 없는 얘기였다. 가끔 꼴리긴 해도 문센 가고, 모임자리 나가면 금세 잊는 거니까. 징그럽긴 해도 그렇게 못하진 않아서 한 달에 두세 번으로도 충분했다.

 

자기가 좋은 걸 아는데 같이 여행가면 알려주겠단다. 괜찮대도 계속 조른다. 뭐 얼마나 좋은 거길래.

 

작품 등록일 : 2021-06-21
다음글 ㅠ
인스타저격수   
스와핑 헉
차챠   
솔직허구만
무도회장   
시발 글 개징그럽네(극찬임) 다음편엔 스와핑 나오냐
bl********   
뭐야 이 언니 글 왜케 잼나게써어어
엉셩떼   
담 글 어딧음 ㅠ
ba******   
다음글 빨리내놔.
로즈마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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