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

유진이를 만난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같은 반 친구였지만 많이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집 방향도 전혀 달라서 학교 끝나고 같이 하교하거나 놀 일도 없었고 비슷한 점도 없었다. 여자애들이 흔히 친하다고 말하는,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 그런 친구는 전혀 아니었다.

 

유진이는 나랑 성격도 많이 달랐고 딱히 공통점이 있지도 않았다. 딱히 친해질 만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유진이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별거 없는 평범한 애였는데 왜 그랬을까.

 

유진이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초딩같았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아주 쌍욕을 잘했고 평소에도 입이 매우 거칠었다. 숙제도 잘 안 해오고 수업 태도도 안 좋고 선생님 말을 안 들어서 많이 혼났었던 것 같다. 사실 믿음직한 애는 아니었다. 내가 학부모라도 그런 애랑 놀지 말라고 했을 것 같다.

성격도 까칠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한테는 되게 호의적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몇 개 있다.

 

학교에서 조별로 떡볶이를 만든 날, 선생님이 뽑은 떡볶이 베스트 3에 우리 조 떡볶이가 뽑히지 않아서 풀이 죽었는데 다른 조였던 유진이가 우리 조에 와서 난 이게 제일 맛있어.” 라며 떡볶이를 끝까지 다 먹었다. 우리 조 남자애들도 우리 입맛에 맞으면 됐지.” 라고 하고 다같이 맛있게 먹어서 나도 기분이 풀어졌다.

 

또 빼빼로데이 때 다른 애들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캐릭터 그림이 있는 왕빼빼로를 사서 친구들한테 돌렸는데 나는 아싸라서 그런 걸 잘 몰라서 슈퍼에서 파는 롯데 빼빼로를 사서 이쁜 선물 포장지에 직접 포장해서 친구들 몇몇한테 선물했다. 원래 유진이한테는 줄 생각도 못했는데 뒤늦게 그러고보니 얘가 요즘 나한테 많이 친하게 구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드리려던 것을 유진이한테 줬다. 유진이는 많이 기뻐했고 오늘 받은 빼빼로 중에 쓰니가 준게 제일 좋아. 정성스럽게 포장했잖아.” 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유진이가 평소에 나한테 호감을 보이니까 나도 유진이한테 냉정하지 못했다. 우리반에서는 욕하는게 금지였고 욕하는 애는 바로 신고하는게 룰이었는데 유진이는 욕쟁이였기 때문에 많이 걸려서 혼났다. 나는 유진이가 혼날까봐 욕하는 걸 말리기는 해도 신고는 안 했다.

 

유진이는 가정환경도 특이했다. 부모님과 오빠는 다른 시에 살고 있고 유진이는 할머니랑 작은아버지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은 이사를 했다고 놀러 오라고 했는데 옆 구라서 초딩이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너무 멀어서 가기 부담스러웠지만 하도 오라고 해서 다른 친구와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먼 길을 갔다.

유진이는 우리를 많이 반겼다. 유진이는 핑크색 벽지로 장식된 자기 방이 있었다. 우리는 유진이 방에 잠깐 있다가 놀이터로 나갔다. 유진이는 작은엄마에게 밖에서 놀아 오겠다고 말을 했는데, 엄마가 아닌 작은엄마를 부르는 유진이를 보니 되게 묘하고 이상했다. 작은엄마랑 살면 되게 불편할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같이 놀다가 어느덧 가야할 시간이 됐다. 우리는 이제 가보겠다고 하자 유진이는 더 놀다 가라고 했다. 4시까지 집에 가기로 약속했다고 가야 된다고 해도 거짓말하지 말라며 가지말라고 했다. 더 실랑이를 하다가 겨우 놓아주었고 우리는 약속보다 늦은 4시 반에 우리 동네로 왔다. 같이 놀러갔던 친구는 돌아오는 버스에서 불평을 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종업식 날에 생일 파티를 했는데 유진이도 초대했다. 유진이는 온다고 했다가 종업식 당일에 갑자기 못 온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리가 하나 비니까 할 수 없이 다른 애를 초대했다. 유진이 대신 오게 된 애는 반에서 인기있는 여자애였는데 찐따인 나랑은 전혀 친하지 않았다. 안 친하니까 안 불렀는데 자꾸 내 생일파티에 오고 싶은 티를 내서 빈자리에 끼워 넣어줬다. 걔도 이상했다.

우리집에서 모여서 맛있는거 먹고 한창 놀고 있는데 유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밖에서 놀려고 하는데 같이 놀자는 전화였다. 나는 빈정 상해서 유진이가 밖에서 같이 놀자는데 같이 놀 사람?” 하고 애들한테 물어봤고 애들은 일제히 안 가, 안 가.” 라고 대답했다.

아무도 안 간대.” 라고 유진이에게 전하자, 유진이는 철수도 같이 놀거야.” 라고 했다. 철수는 우리반 남자애였고 나랑 접점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뭐 어쩌라고 라는 심정으로 애들한테 철수도 온다는데?” 라고 말했고 모두 안 가, 안 가.” 라고 외쳤다. “다들 안 간대.” 라고 말한 다음 통화를 마무리했고 유진이와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 이후로 유진이와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아주 가끔 학교 행사 같은 때에 먼 발치에서 몇 번 보기는 했는데 고학년이 되면서 머리도 노랗게 염색하고 표정도 항상 빡쳐 있고 아주 그냥 양아치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6학년 때 어느 토요일에 같이 하교하는 친구가 청소를 해서 조금 늦게까지 집에 안 가고 복도에서 기다리다가 심심해서 다른 친구랑 잠깐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아무도 없는 계단에 유진이가 어떤 머리채를 잡고 끌고 왔다. 유진이 친구인 듯한 애가 따라와서 하지말라고 말려도 유진이는 듣지 않았다. 머리채 잡힌 애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고 유진이는 폭풍 싸대기를 날렸다. 옆에서 친구가 말려서 조금 때리다 말았다. 와 진짜 살벌하네, 라고 생각하고 나도 자리를 피했다.

여담이지만 그때 처맞은 여자애 중학교 가서 같은 반 됐는데 음일진 중에 얘가 제일 지랄 같았다. 왠지 얘가 맞을 짓 해서 맞았을 거 같다. 유진이 화이팅.

 

아무튼 이렇게 유진이는 나와 정반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유진이는 다른 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중학교도 먼 곳으로 갔을 것이고 평생 볼 일 없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년 뒤 유진이를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학교에서 단체로 여기저기 견학을 다녔는데 어느 날은 다른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에 견학을 갔다. 고등학생 언니들과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건물 밖에서 구경을 할 때 갑자기 나한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란이 났다.

고등학교 선생님은 무슨 일이냐고 했고 가이드해주던 고등학생 언니는 선생님 눈치를 보면서 겁먹은 목소리로 아는애라서 아는척한거래요…” 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아는척을 그렇게 무섭게 해?” 라며 소리를 높였다. 그때 내 옆으로 엄청 진한 담배냄새가 스쳐갔다. 냄새가 독해서 보니 유진이었다. 화장이 학생답지 않게 엄청 진했는데 얼굴은 유진이가 확실했다. 게다가 이름표에도 유진이의 이름이 써있었다. 그 고등학교는 같은 재단의 중학교와 붙어있는 학교였고 그 중학교에 다니는 유진이가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우리 학교애한테 무섭게 아는 척을 하려다가 선생님이 제지하자 그냥 가는 상황인 것 같았다. 초딩 때도 양아치였지만 이번에는 진짜 학교 안 다니게 생긴 양아치 같은 모습이라서 놀라기도 했고 기분이 묘했다.

 

유진이는 기억에 남을 만큼 좋은 사람도 아니었고 나랑 추억을 쌓을 만큼 친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끔 유진이 생각이 난다. 하지만 만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아니 모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유진이한테 처맞았던 여자애는 중학교 때 나랑 같은 반이었는데 이유없이 나를 존나 싫어했음 

 

+) 유진이는 가명입니다


작품 등록일 : 2021-06-25
세상에 유진이 너무많음
일본의대생   
재밌어
토피넛라떼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