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게 식은 카레 덕에 남편을 만났네 1

엄마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하루 종일 동생이랑 뒹굴거리며 시계 바늘이 돌아가는 걸 들여다 보았다.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다 보면 방안이 어두워져 있었다. 바깥에선 두부장수 종소리가 났다. 저녁시간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배고프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 배고파요. 라고 말하면 엄마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화가 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냉장고 문을 확 열고, 그 안에 있던 찬밥을 펄펄 끓여서 줬다.

끓인 밥은 너무 뜨거웠다. 아무리 불어도 잘 식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먹는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밥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얼추 식은 줄 알고 급하게 입에 처넣었다가 기겁을 하고 다시 밥그릇에 뱉아냈다. 한번 그러고 나면 금방 식으니까 그걸 또 그대로 얇게 떠서 삼켰다.

밥먹는게 시원찮으면 엄마는 나에게 짜증이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로 대뜸 말했다.

넌 뜨거운 것도 못 먹으니 효녀가 아니라고.

당최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놈의 효녀가 되어서 엄마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주려고 그 뜨거운 걸 꾸역꾸역 넘기다가 입안이 홀랑 벗겨지기 일쑤였다. 그런 날은 하루종일 입에서 옅은 비린내가 났다.

무국이나 콩자반 같은 반찬은 당연히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집 냉장고엔 그 흔한 김치쪼가리 하나 없었고 가끔 노란 단무지가 비닐에 돌돌 말린 채로 그 어린 날 나처럼 추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어쩌다가 정말 어쩌다가 엄마가 카레라도 해놓는 날이면 나는 좋아서 날뛰었다. 그것마저도 버거워했던 엄마가 건더기도 별로 없는 멀건 카레를 잔뜩 해 놓으면 나혼자 그걸 6일동안 먹은 적도 있었다.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카레를 조금씩 떠서 찬밥에 비벼가지고

내 입의 온기로 녹여 먹었다.

그럴땐 정말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했다.

오랫동안 씹지 않으면 명치 끝이 아팠다.

매 끼니를 그렇게 카레만 가지고 먹는데 그래도 좋았다. 아마 끓인 밥이 아니어서였을거다.

동생은 입이 짧아서 뭐든 잘 안 먹었다.

그 애는 배가 고프다며 다 먹은 백원짜리 새우깡 봉지와 검은색 바둑돌을 쪽쪽 빨기도 했다. 그 모습이 꿈에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런 날은 다 큰 어른이 되어 가지고 자다가 엉엉 운다. 일어나보면 베게가 다 젖어 있었다.

어렸을 땐 그게 더러운 건지도 모르고 남의 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고 내어 놓은 그릇에서 단무지를 주워 먹기도 했다.

언니인 내가 먼저 먹어보고 맛있으니까 동생에게,

그 어린애에게 그릇에 남은 짜장까지 묻혀서 입에 쏙 넣어주었다.

그럼 그 애는 맛있다, 언니. 이런 눈으로 해해 웃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남편은 왜 나하고 결혼하려고 했을까.

결혼전에도 우여곡절이 많아 계속 사귀네 마네 했었고, 삼십여년 평생 처음으로 나때문에 길에서 봉변도 당했던 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와 결혼할 생각을 했을까.

어느 날 밤, 야들야들한 한치를 볶아 놓고 맥주 한캔씩 나눠들고선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 왜 나하고 결혼했어?"

그 사람이 그랬다.

자기가 내 부모가 되어주고 싶었다고.

어린 시절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고는 밥먹자, 배고프다 이러면서 음식 앞에서 만큼은 한없이 복스러웠던 나를, 돌봐주고 싶었다고.

다이아 반지도 없고 시끌벅적한 프로포즈도 없었던 심심한 결혼이었지만

나는

그 날 밤 그 말을 하던 그 사람의 눈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가끔 그 사람은 자다말고 새벽에 일어나 내 얼굴을 가만가만 만져보곤 한다.


이불 다 차버리고 잔다고 에이구 이놈아 끌끌대면서 노인네처럼 이불 끌어와 덮어주는 게 너무 좋아서 자는 척, 그러다가 정말 까무룩 잠들고 만다.


 


그 사람은 사실 나에게 된통 속았다. 얼굴은 멀쩡한게 이렇게 또라이었을거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2병 반항아를 둔 부모의 마음으로 여지껏 나와 함께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사람도 자기 부모의 마음 같은 건  짐작조차 못했을거다. 알았다면 결혼할때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말을 할리가 없다!!! 노골적으로 그런 티는 안내지만 아마 결혼하고 나서 무척이나 후회했을거다ㅋㅋㅋㅋㅋㅋㅋ부모는 무슨 부모 아오 죽갔네 이러면서.


다행히 그 사람은 자기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본인이 받은 게 많아서 나에게도 나눠 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철없는 애새끼였다. 부모가 자기를 진짜 사랑하는지 아닌지 틈만 나면 시험하려고 드는, 한대 줘 패고 싶은 애새끼 그게 나였다.


이게 불안해서 그러는 거다. 버림 받을까 봐 불안해서 오히려 더 지랄을 하는 거다. 내가 이래도 너는 나 사랑할거지? ? 이러면서 깩깩댔던 나를, 그리고 배고프다고 바알간 입을 뺙뺙 벌리고 울어 제끼던 제비같은 새끼들을 그 사람은 싱글맘처럼 길러냈다. 나는 날개 한쪽의 역할을 못할 때가 많았다. 엄마로서 꽝이었다.

(계속)

 

 

 

 

작품 등록일 : 2018-08-18

▶ 차게 식은 카레 덕에 남편을 만났네 2

언니 행복하세요
al*******   
❤️
Asher...   
에이구 이놈아에 사랑이 느껴져
Asher...   
ㅠㅠ
su*****   
흐 시뱌루ㅜㅜㅜㅜ 쳐울면서 봤네
jm********   
ㅠㅠㅠㅠㅠㅠ미쳤다눈물나
절정   
졸라 좋네
mingyupapa   
온니 짱
미아미아   
약간 소장글에 맞춰 쓴 판타지소설같은디....
농담   
바둑알 ㅠㅠ
ku키   
ㅜㅜㅠㅠㅠㅠㅠ
휴먼   
ㅜㅜㅠㅠㅠㅠㅠ
휴먼   
또 생각나네. 돈준다
14******   
주기적으로 생각나는 글. 돈준다
14******   
난 이 글을 읽을때마다 눈물을....
아침 잠이...   
ㅠ 눈물나 돈드림ㅠ
커리어우먼...   
내 남편도 비슷한 말들을 많이 했는데..
ho*****   
애새끼라는 말이 확 와닿네 ㅋㅋ
ps*******   
감동 ㅠ
ma****   
#
ng*****   
나 언니글이 너무 좋아서 자주 꺼내봐
고마워
몰라도 된...   
지갑 털리네
깜지애미   
조흠
n*****   
재미있어요
감자튀김 맛있어   
조와요
빡빡2   
아이고 이드언니들이 내 돈 다가져가네
잘 읽었어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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