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게 식은 카레 덕에 남편을 만났네 2

남편은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입원해 있을 때 알게 되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이없이 한방에 훅 가는 일이 생기는데 교통 사고 같은 거, 그게 그랬다.

그날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평소엔 잘 타지도 않던 택시를 잡아탔다.

뒷 좌석에 몸을 기댄 채로 잠시 눈을 감았다. 요즘은 전 좌석 안전 벨트 캠페인도 하지만 예전엔 그런 게 없었다. 택시 그것도 뒷 좌석에 앉아서 안전 벨트 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한 삼십 여분 지났으려나...?

갑자기 몸이 앞으로 확 고꾸라졌다.

내 얼굴이 전속력으로 날아가 조수석 의자에 쑤셔 박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어어...?

나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잇몸을 뚫고 뭐가 아주 뾰족뾰족한게 막 튀어나와 있었는데 그게 손으로 만져졌다. 소름이 끼쳐서 꿱하고 소리 지를 뻔 했다. 치조골이 골절 되어 앞니뿌리가 잇몸을 뚫고 나온 거였다. 피가 고이다 못해 철철 흘러나왔다.

당황한 택시기사가 어버버버 하면서 피 좀 닦으라고 어버버버 시퍼런 걸레 같은 걸 내밀었다. 이 망할 놈의 기사가 걸레를 줄게 아니라 당장 119같은데 전화를 해야지,

아이고 이빨이 성치 않아 발음도 새는 내가 부들부들 떨며 전화를 했다. 그런데 구급차는 생각보다 빨리 오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가 입에서 피를 질질 뿜어 대니까 파출소에 전화를 해줬고 생전 처음 나는 경찰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갔다.

민중의 지팡이가 나를 응급실까지 인도하긴 했는데, 뭐 내가 재벌집 상속녀나 사회지도층 인사의 딸도 아니고 시루짝에 가득 담긴 콩나물 같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인데 병원에서 나를 특별대우 해줄 리 없었다. 정신도 오락가락해서는 의자 사이사이에 놓인 누런 나무 틀을 의자로 착각하고 앉아있었다. 입으로는 연신 피를 푸푸 뿜어 대며 짐짝처럼 내 순서를 기다렸다.

입천장과 터진 잇몸에 아픈 주사를 두 대나 맞았다. 한번 빠졌던 앞니를 으드드득 소리 나게 끼워 넣더니 끝이었다.

응급실에선 그게 다였다.

피를 많이 흘려서 몰골은 흉측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응급 상황은 아니었다. 코뼈도 골절되었는데 그냥 두면 이상하게 붙는다고 해서 무섭고 아팠지만 맞췄다. 코뼈를 맞춘 첫 날은 숨도 잘 쉴 수 없었다. 코 안을 솜으로 단단하게 채워 막아 놓았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울렁거려서 쓴 물까지 토했다.

 진짜 웃긴 것이 그 다음 날부터는 좀 견딜 만 했다. 내 얼굴을 보니 좀 웃기기도 했다. 그 얼굴 가지고 농담할거리도 떠올랐다. 지금은 남편이 된, 주치의 선생님이 식사는 잘하고 계시냐고 물어봤는데 활짝 웃으면서(실제로 보면 좀 무섭지 않았을까 싶다) 흰 죽도 맛있어서 큰일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중에 들은건데 내가 짐승처럼 빨리 회복 한 거였다고 했다. 얼굴도 그 정도면 괜찮았다. (입주위가 붓는 바람에 실제로 팔자 주름이 펴져서 귀티도 났다!!!)

엄마는 내가 해해거리면서 죽도 열심히 먹어 대니까 사실은 내가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은 입원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괜찮은 거 같으니까 퇴원을 시켜버렸다. 별로 아파 보이지도 않는 내가 2인실에 누워 있는 것을 불편해 했다. 6인실 자리가 없어서 2인실에 들어갔는데, 무슨 입원비가 호텔 값보다 더 비싸나며(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퇴원을 종용했다.

그때 내가 들었던 사보험에서는 6인실 입원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2인실에 입원할 경우 추가비용은 본인 부담이었다. 오래 입원하면 입원할수록 손해라고 말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그랬다. 발음도 성치 않은 내가 더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운전기사의 불법행위가 명백했기 때문에 분쟁의 여지는 전혀 없었다. 다만 배상 금액이 문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이만 먹었지 세상물정 모르는 애였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조합에서 사람을 보내 다친 사람을 살펴보고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엄마는 담당자에게 무슨 불편이라도 끼친 것처럼 송구스러워했다. 왔다갔다 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그를 배웅했다. 나는 울화통이 치밀었다. 하지만 몸이 비리비리하니 싸울 힘이 나지 않았다. 터진 입술을 앙다물고 거듭 결심했다.

이 집을 떠나야겠다.

무조건 떠난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운이 없을 땐 남자를 만나야 한다.

그래 나에게 식사는 잘 하시냐고 물어보던 그 물렁물렁한 선생!!! 별로 잘생기지 않은 데다가 여우같이 보이지도 않으니 이건 거저먹는 게임이다. 그때는 쉽게만 생각했다.

통원치료 하러 가면서 우연을 가장해서 몇 번 마주쳤는데 성과가 별로 없었다.

그 잠깐의 우연을 위해서 나는 엄청 꾸미고 갔다. 병원 복도에서 의미 없는 시선은 많이 받았지만 영양가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다. 아 뭐 그 선생 아니면 선생이 없나? 이렇게 꾸미고 가도 못 만날 수 있는거고, 까짓거 못 만나면 선배 만나러 가면 되지. 치마입고 화장한게 아까웠다. 선생이고 선배고 간에 치맛자락이라도 한번 보여주고 왔으면 그때부터 시작인거다.

몇 번 마주치지도 못했지만 진전이라곤 병아리 눈물 만치도 없어서 나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호사 샘들 중에서 호호아줌마 같은 분이 있었는데 나는 그 분께 눈도장을 찍었다. 무조건 인사가 최고였다. 그러면서 살짝 여쭤봤다. ooo샘 먹는거 뭐 좋아하시냐고, 그랬더니 커피라고 답이 돌아왔다. 옳다쿠나. 커피 좋다.

사실 나는 커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모를때는 모름지기 백화점이다. 지하1층에서 좀 그럴듯 해 보이는 걸로 샀다. 안 받으면 내가 마시지 뭐, 이런 마음이었다. 우연을 가장해서 또 마주쳤는데 막상 뭘 건네려니까 처음엔 좀 떨렸다. 그래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동네 꼬마에게 사탕 하나 주는 것처럼 "선생님, 커피요" 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 사람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나를 보고 반색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보더니 얼굴이 환해졌다. 그 사람은 정말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커피라면 그 어떤 것도 사양하지 않는 진정한 커피애호가였다.

하지만 아주 잠시 안경너머 흔들리던 그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 이후로도 아무런 사건이 없었다. 지지부진한 난관에 봉착한 나는 방에서 뒹굴 거리면서 공책에 여자 눈깔이나 그려 대고 맛동산이랑 조생귤을 씹어 먹으면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작품 등록일 : 201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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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게 식은 카레 덕에 남편을 만났네 1

언니 화이팅!!
al*******   
커피매니아ㅋㅋㅋㅋㅋ
휴먼   
담편어서ㅜㅜ
원더랜   
커피ㅋㅋ 언니 매력있당
ham   
재밌어요~~~ 빨리쎠쥬삼
As*******   
또또...
********   
다음편 기다립니다~~
rb****   
다음편 언제 나와욬ㅋㅋㅋㅋㅋㅋ 재밌어
al******   
재밌다!
stran...   
담탄!!!!!!!!!!!!!!!!!!!!!!!!!!!!!!!!!
to***...   
재밌쩌!!
이지라이프   
재밌어요 달러 약소하나마 놓고감
SE*********   
카레언니 빨리써주세염 ㅠㅠ 폭풍때문에 집안에만 있으니 넘모 심심
빨간맛   
ㅋㅋㅋㅋㅋㅋㅋ
빡빡2   
ㅋㅋㅋㅋㅋ다쳤는데 의사꼬실생각ㅋㅋ
n*****   
악 잼나
깜지애미   
그라취! 짜란다 짜란다
순둥순둥 ...   
우왕 이거 계속 연재되는건가요? >-<
깜찍이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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