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게 식은 카레 덕에 남편을 만났네 4


그런데 이 사람은 스킨쉽이고 뭐고 전혀 없었다.


뭐지 이거. 나는 무지하게 답답했다.


그때 '그는 너에게 반하지 않았다'라는 책이 전국의 서점을 강타했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 제목만 보고도 울컥했다.

내가 알던 남자새끼들은 전혀 이렇지가 않았다. 어떻게든 해 보려는 것들 뿐이었는데 이 남자는 그러지 않으니까 오히려 내가 전전긍긍했다.


언제든 기회가 되면 기쁘게 내어보일 생각으로 눈처럼 하얀 속옷을 입고,  '너도 역시 나와 자고 싶겠지' 같은 유혹의 눈빛도 은근슬쩍 보냈는데 만날 그냥 밥만 먹이고 집에 보내기 일쑤였다.(도대체 왜!!!)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연애인듯 연애아닌 관계가 굉장히 오래 지속되었다.

심지어는 연락도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징징거리지 않은 게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털린 멘탈 회복하려고 다른 남자들을 광범위하게 후리고 다니지 않았으면 나도 모르게 질질거렸을 거다.


그러다 연말이 되었다. 동료들과 공연을 한다며 그는 나를 초대했다. 눈알이 빠질 정도로 바쁜 가운데 공연까지 준비하느라 그동안 죽을 뻔 했다고 했다.

그리고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사이에 예전관계는 정리했다고 했다. 뭐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이 양다리를 걸쳤을 수도 있지.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뭐가 되었든 나에 비하면 양반이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인생 통틀어 제일 아찔했던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물론 빌미는 내가 제공했다.

나는 몸에 잔근육이 많은 남자를 좋아했는데 '마침' 그런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운동을 하는 애였다. 바에서 맥주 한 잔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걔가 내 전화기를 열어 보게 되었다.

사실은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끝간 데 없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눈이 휙 뒤집히더니만 대책 없이 바로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길이 날뛰는 걸 보니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하다간 신문 사회면에 작게나마 몸을 싣겠다 싶었다. 뜬금없는 전화에 충격 받은 그 사람이 달려왔다. 뭐 이렇게 된 마당에 그 사람하고는 끝났구나 싶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무슨 소리를 해도 나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놈은 나랑 뭐 엄청나게 사랑한 사이도 아니면서 누굴 택할거냐고 난리를 쳐댔다.

'씨발 이 상황에서 너를 택하겠냐 병신 새끼야?'

어지간하면 내가 말려 보려고도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놈은 이죽거리면서 자꾸 사람을 툭툭 쳐댔다. 그 사람은 화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무책임한건 알지만 나는 원래 책임감따위 없는 인간이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그냥 이 자리를 뜨고만 싶었다. 그래서 둘다 싫다고, 그냥 나는 들어 간다고 하면서 돌아섰다.

씨박!!! 그때였다!!! 순식간에 남자 둘이 개처럼 머리 끄덩이를 잡고 싸우는데 정신이 번쩍 났다. 경찰서에 불려가는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날따라 비도 추절추절 내렸다. 그 사람은 안그래도 머리털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비를 맞아서 그의 머리털은 자기들끼리 첩첩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흡사 골룸같았다.

그놈은 개코원숭이처럼 날뛰고 있었다. 개망신이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비에 젖은 세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었다. 어차피 당한 망신, 난 이 동네 뜨면 그만이야. 어디서 그런 깡이 생겼는진 모르겠지만 잡아죽일듯이 노려보면서 그놈에게 소리를 꿱 질렀다.

"야이 씨발놈아 그거 안놔! 가중처벌!!!!  돈!!!!!!!!!!!

오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이란. 급해서 아무 소리나 지껄였는데 이 씨발놈의 새끼가 식식대면서도 잡은 머리를 슬며시 놓았다. 뭣 때문에 거기서 멈췄는진 모르겠지만 더 달려들진 않았다. 여전히 아무 말도 없는 그 사람의 손을 잡아 끌었다. 나는 이제 그만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 놈이 아직도 분이 안풀렸는지 또 쫓아왔다. 

 그 놈은 등 뒤에서 그 사람을 밀치면서 이죽거렸다. 그러면서 나랑 잔 얘기를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내가 병신 짓 한 건 맞지만 그래도 오만 사람 다 왕래하는 길가에서 정말 쪽팔려 뒈질 뻔 했다. 나는 그 개새끼가 더 이상 나에 대해 미련일랑 없어서, 못 먹는 감 찌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터트려 버리려고 그 지랄을 떨어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그 놈은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집까지 뒤를 밟아 온 거였다. 그 사람과 내 뒤를 따라와서는, 이야기 좀 하자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어두운 방과 이불이 반가울 뿐이었다. 나는 곧바로 잠들어버렸다. 그래도 그 사람에게 데려다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했던 거 같다. 

다시 마주친 두사람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는지 다는 모르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는 그 사람에게 겨우 알아낸 게 이정도다. 그 놈은 나를 사랑한다며, 그 사람에게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자고 했다. 아이고 미친 새끼 포기를 모르는 대단한 스뽀오츠 정신 나셨다야. 그렇게 앞뒤 안가리고 흥분지랄 떨어대는 모습을 내가 봤는데 너 같으면 너를 선택하겠냐 병신새끼야.  나는 경찰서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생각없이 입으로 가져갔던 불량식품에 체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났다.  가끔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가 오기도 했지만 걔말고도 그럴 사람은 많았다.

그 놈은 나를 진짜 사랑하는 것처럼 굴었다. 자기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그런 자기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았다고 개지랄을 떨어댔다. 섹스한 얘기까지 아주 구구절절 다 한 모양이었다. 그 사람은 그 얘기를 다 듣고 결심이 섰다고 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쟤한테 만큼은 뺏길 수 없다고.

그 새끼가 주둥이로만 나를 사랑한다고 털고 가버린 사이에 그 사람은 분명히 내가 굶고 있을거라 생각해서 죽을 사왔다. 아무 말없이 죽을 데워주고 집에 돌아갔다. 그 다음에도 말없이 내가 좋아하던 맛밤을 사가지고 왔다. 어느 날은 집에만 처박혀 있고 싶어하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한강으로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했다.

싫어. “

왜 싫은데.”

쪽팔려. 썬글라스도 없고.”

그 사람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부드럽고 커다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이 자식아, 썬글라스 사줄께. 가자. 일어나. “

어두운 방에만 처박혀 있다가 백화점에 가니 살 것 같았다.

나는 오드리 헵번꺼랑 똑 같은 걸 사달라고 했다. 그는 썬글라스도 사고 화장품도 사라고 했다.

 

나중에, 무당벌레처럼 똑같이 생긴 애 둘을 낳은 다음에 그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자기는 그날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내가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미웠다고 했다.

나는 상황을 회피하려고만 했다. 그래도 첫날은 좀 미안해 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는 원래 그런 애다. 그거 모르고 사귄거 아니지 않느냐(그 사람은 모르고 사귄게 맞다) 개소리 주절거리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 정말 못됐어. 그거 알아?"

"야 임마, 미운 놈 떡하나 더 준다는데 내가 그 심정이었다. 어휴 맛밤이 그렇게 맛있었냐? 그 많은 걸 다 먹었더라?"

사실 그때는 잘 몰랐다.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게 된 건, 그 날 이후였다. 그 사람은 말이 아니라 그저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들었을 때 기분은 좋아지는 사탕발림 따위는 전혀 하지 못했다. 아니 못한 게 아니라 지키지도 못할 말장난은 애초에 하기가 싫었던 거다.

수많은 빛좋은 개살구들이  나를 대학원에 보내 준다는 둥 박사 딸 수 있게 해준다는 둥(아니 지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자기가 나를 뒷바라지 해준다고 지랄이여 지랄이?) 입에 발린 소리들을 지껄여 댈 때, 그 사람은 말없이 돈을 모았다. 월급의 3분의1을 꼬박꼬박 저축했다가 결혼할 때 나에게 줬다. 실은 그걸로 냉장고 사고 텔레비전도 사고 몰디브도 갔다.

남편은 내가 조금이라도 자유 시간을 가지라고 퇴근 하자마자 애들을 씻기고 책을 읽어준다. 요즘은 요리도 한다.(원래 요리는 남자가 더 잘하는 거 같다) 음악을 틀어놓고 생선을 굽고 이제 자기도 불맛을 내는 요령을 알았다며 중화풍의 볶음요리를 뚝딱 해 낸다. 그러고 보면 각종 요리예능 프로그램의 수혜자는 사실 나다. 애들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이제는 내가 아니라 아빠에게 말한다.  

그러다가 꼭 술 취한 사람마냥 큰 애에게

"00야, 나는 네 엄마가 진짜 좋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늘은 엄마 공부 좀 하시게 아빠랑 자자" 이러면서 애들 둘을 다 데리고 들어간다. 너무 피곤했는지 애들보다 먼저 드르렁 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바닥에 머리만 닿으면 혼절 할 때도 있다. 애들은 아빠 옆에서 아빠 배를 타 넘어 다니며 뒹굴뒹굴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고 나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나 맥주를 한잔 하면서 인터넷도 하고 글도 쓰고 영화도 보고 그런다.

그런 날은 이상하게 맥주 한잔에도 마음이 달뜬다.

 

그렇게 나의 여름 밤은 깊어 갔다.

작품 등록일 : 2018-08-23

▶ 차게 식은 카레 덕에 남편을 만났네 3

ㅠ.ㅠ 언니 글은 언제봐도 넘 좋다. 문학적이야
어화둥둥   
소장이 좋남은 바람펴도 눈감아준다할때 뭔말인가 싶엇는데 이런거임...? 모야... 카레언니 매강그잡채..
yu******   
❤️
ch******   
좋더
warm   
언니 존나 이뿌겟지??ㅠㅠ 행쇼!!!
apple123   
행복하세요 끝까지!
al*******   
현실감 제로... 소설 같아.. 좋다
ra*******   
너무나 훈훈하다 ㅠㅠ
부엉이   
좋겠다
유나   
또 읽으러 왔어
좋은 남편 이뿐 애기들 매력녀 언니 넘 좋쟈네
Asher...   
감동했어ㅠㅠ 언니의 매력과 언니 남편의 부양본능… 와
Asher...   
아잇 흡입력 무엇?? 미간에 힘주고 심각하게 읽다가 머리숱이랑 돈!!! 때문에 터졌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띵작을 이제서야 보다니ㅠㅠ
시진핑 사생팬   
언니 사랑해 글남겨줘서 고맙규 오래오래 행복해라.. 가끔 글도좀써줘
im*******   
나도 이런 마력으로 삶을 살아보겠소
Gekko   
남편 쩐다
jm********   
눈물나ㅠㅠㅠ행복하겠지만 더더행복해라온니
절정   
언니 행복해라
ch**********   
눈물나네 카레언니
bl*******   
하.. 여운쩌네
em*******   
잘읽었어요 행복하세요
맑은눈   
그저 부럽읍니다……
조이   
너무 좋다 ㅠㅠㅠㅠ
고양이좋아   
헹텐언니랑 동일인물아녀? 아닌가
lo***...   
세상에 이언니가 진미오징어였ㄴㅏ!!!
아침 잠이...   
이 글에 매강이 다 있네
jj****   
와 거의 뭐 브리짓존스의일기 실사판이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와... 실화야 이거? ㅠㅠㅠㅠ
한겨울   
대단한분
푸드덕   
이런 남자 만나고싶다 ㅜㅜ...
Bambibaby   
나는 언니한테 사랑을 느끼는 중
I love you. 글 많이 써줘
프롤레의 딸   
재밋당..
Omomg   
단숨에 읽었네
se******   
언니 거지라서 미안해용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능...
im*******   
글 너무 좋다.. 해피엔딩
Life ...   
흑흑흑흑흑 홀렸따리
키위**   
와 너무좋다.... 진짜 후루룩읽었다
멍멍   
너무 재밌어
gk********   
끝임? 또또또 써주시오
ho*****   
감동적이고 언니 진짜 본투비매력녀
멋진 남편까지 부럽다
같은 공간...   
허윽.. 너무 감동적이야
sa*****   
ㅠㅠ
ma****   
돈줬소..부럽소
sa*****   
언니 행복하길 바래
몰라도 된...   
남자의 사랑 ㅜ♥
오예   
돈드림 빨리 다음편써줘요
As*******   
형님 ~~ 저도분발할래요
As*******   
흥미진진하다 나도 분발해야겠어
so*******   
이 언니 이거 소설이었어? 실환줄 알았는데
********   
넘나 빠져들며읽었다 꿀잼
lo******   
이거 실화야?픽션이야? 어떡해 넘 눈물나ㅜㅜ
baby   
넘 행복해 읽는데
라 돌체 ...   
그 새끼가 와 그 사람은 의 차이란... 단어부터 확 와닿네 언니 맛있는거 많이먹고 행복해^^
fa****   
재밌쩌!!!
이지라이프   
아 썅 인생 재미나게도 산다
부롭다 옛다
깜지애미   
ㅠㅣㄹ력 오지구여
감자튀김 맛있어   
ㅠㅣㄹ력....오져
dd*****   
매력녀일세 이 언니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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