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일본에 다녀올 일이 생겨 도쿄과 교토 중 어딜 다녀올까 고민하다가, 도쿄는 너무 비싸서 교토를 택했다. 매화가 슬슬 피어나고 벚꽃이 피기까지는 아직도 2주나 남은, 살짝 따스해진 3월의 일주일간 다녀온 교토여행기.
사실 일본을 자주 다니는 편이라 유명한 도시를 선호하지 않는데, 생각해보니 정작 교토는 8년전 쯤 첫해외여행으로 잠깐 다녀온 게 다였다. 문화재와 관광객이 미어터지는, 오래된 도시라는 편견이 있어서(이거는 솔찍히 소장의 교토외가냐가지매러라를 봐서 그럴 수도) 교토를 가더라도 교토시를 가지 않고 교토현의 다른 작은 소도시들을 돌았다. 그러다보니 기억 속의 교토여행은 동양정 스테이크랑, 유카타체험을 했던 후시미이나리 빨간 도리이랑, 사무라이들이 할복해 나온 피가 바닥을 물들였다고 설명해주시던 호센인의 주지스님 정도…
아무튼 출발 2일 전쯤에야 겨우 비행기표를 샀기 때문에, 내게 선택권 따위는 별로 없었다. 최소한 시끄럽고 더럽고 사람 많은 ‘도시’인 오사카보다는, 최소한 똑같이 사람이 많아도 ‘시골’인 교토가 낫겠다 싶었다. 일본에서 작은 가게들, 그러니까 ‘엥, 이런 걸로도 장사가 되나??? 돈이 안 될 거 같은데???’ 싶은데 용케도 장사가 유지되고 있는 곳들을 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먼 소리냐고?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암튼 교토엔 디테일이 오지는 아주 오래된 가게들과, 살짝 불편하지만 힙하고 좋은 공간들이 꽤 많았다. 예쁘고 쿨한 언니들과, 귀엽고 세련된 남자들도 많은 곳이었다. 나는 봄의 교토가 마음에 들었다.
굉장히 애매한 시간대의 비행기를 타서 한 오후 6시쯤 간사이 공항에 내렸다. 다행히 나는 수화물도 없고, 혼자라 재빠르게 이동해 20분만에 입국심사를 끝내고 교토 직행 하루카를 탑승했다. 헬로키티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럭키—
그리고 타자마자 돼지코를 안 챙겨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일날 오전에 짐을 쌌기 때문에… 살짝 좆됐음을 인지했으나 아직 풀충전된 보조배터리가 있어서 견뎌보기로 했다. 힘을 내주렴, 아이폰아..
간사이공항에서 교토역까지 하루카 급행을 타면 1시간 15분 정도 걸린다더니, 15분 정도 더 걸려서 8:15분쯤 교토역 도착.
관광할 건 아니라 특별히 패스나 티켓 같은 걸 수령할 필요도 없어서 바로 버스를 탔다. 얼마 전에 삿포로를 다녀오면서 애플워치에 교통카드를 등록해뒀더니 좋았다, 요새 교토 버스는 환승할인까지 해주더라!
길가다가 고속터미널 발견함; 확실히 한국관련 매장이 많아졌다.
숙소는 밀레니얼즈 도쿄. 공홈사진 퍼옴.
게스트하우스는 아니고 캡슐호텔같은 느낌인데 워킹 라운지도 따로 있는데다, 객실 내부에 모션 베드가 있고, 심지어 이 모션베드의 움직임과 조명 온오프 등등을 체크인 하면 주는 아이팟으로 조정할 수 있다(!) 개짱이잔아!!! 물론 잃어버리면 20만원인가 그래서 소중히 모시고 다님.
젤 좋았던 건 알람기능이었는데, 아이팟에 알람을 맞춰두고 해당 시간이 되면 모션베드가 올라오고, 조명이 켜져서 안 일어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교토에서 내내 6시에 일어날 수 있었다. 알람 기능이 있는 모션베드를 사는 꿈이 추가되었다.
라운지는 꽤 넓고 부엌도 있어서 요리할 수도 있고, 일하기도 괜찮다. 별개로 운영중인 코워킹 스페이스도 있고, 일하는 사람도 꽤 많아서 분위기도 좋다. 서양인, 일본인 고루고루 섞여 있고 한국인은 못 봤다. 라운지에선 자전거도 빌려주고, 오후 5~6시 사이엔 무료 맥주도 무제한 제공한다. 난 술 안 마셔서 안 먹어봤지만.
밤에는 푸딩 하나 까먹고 일찍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가모가와 강변을 따라 3km 정도를 뛰었다. 내가 갔을 때는 다행히 교토 공기가 아주 맑고(한국은 개씹창났을 때) 날씨도 온화해서 반팔을 입고 뛰는 사람도 꽤 있었다.
유독 이르게 핀 매화. 사람들이 죄다 이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실은 졸라 휑함ㅎ

아침 먹으러 가는 길. 돼지꼬리는 대체 무슨 가게일까. 부로꼬리가 생각남.

아침은 신신도의 푸렌치 토스트를 조지러갔다. 이드에서 플렉언니가 추천해줬었나…? 암튼 누가 추천해줬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졸라 맛있었다… 아침 8시쯤 갔는데도 브런치 줄이 웨이팅이 있어서 기다려서 먹었다. 바게트로 프렌치토스트?? 싶었는데 부드럽게 찢어지는 빵을 크림에 적셔 먹으면 오르가즘이 왔다. 커피는 좆나 써서 물을 존나 타마셨으니 참고…
바닥까지 긁어먹고 숙소로 돌아와 오전에는 일을 했다. 평소엔 뛰지도 않는데 뛰고 와서 그런가 집중이 존나 잘 돼서 빨리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은 디앤디파트먼트 교토의 디식당. 교토 디앤디는 특이하게 절 안에 위치해있다. 규모는 작지만 예쁘긴 예쁨. 음식메뉴는 실내에서 먹을 수 있고, 디저트/음료는 실외의 벤치에서 먹고갈 수 있게 되어있었다.

분명히 영어 메뉴판이 있댔는데 괜한 객기로 일본어 메뉴판으로 주문하려고 하이하이, 이러고 듣고 있으니 일본어로 메뉴 설명을 굉장히 해주셨다. 아무리 슬램덩크를 10번 봤다지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건 우루세랑 칙쇼랑 뚜아호 뿐…


젤 비싸고 젤 위에 있는 메뉴가 맛있겠지 하고 시킨 결과. 교토에서 많이 먹는 오반자이 정식으로, 이게 만칠천원? 개오바야 했지만 반찬 하나하나가 모조리 감칠맛이 입 안에서 터지는 경험을 하고 조용히 싹 긁어먹었다. 맛있었다…
한정메뉴인 딸기 모나카까지 야무지게 먹어주고 나옴


밥을 먹었으니 디앤디를 구경해야지. 매장이 크진 않은데 외관이 졸라 예쁨.

귀여운 우산꽂이


나무박스 넘 예뻐서 훔쳐오고 싶었다
디앤디 교토점은 교토대학교와 협업해서 학생들이 직접 큐레이션에 참여한 제품들을 판다고 해서 흥미로와서 와봤다. 디앤디는 진열이 심플하고 물건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서 좋기는 한데, 막상 사려고 하면 살 게 없다. 왠만하면 한개쯤 사려고 했는데 영 안 땡겨서 빈손으루 나옴.
다음은 교토에 새로 생겼다는 에이스 호텔 방문. 호텔 로비에 있는 스텀프타운 카페에서 커피를 사면 로비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갈 수 있다. 알바생이 잘생겼다.
코르타도를 시켰는데 걍 그랬다. 시발 여기 커피 맛잇다매ㅠ 블로거 시발넘들아
에이스호텔은 교토중앙전화국을 개조한 구관+유우명한 일본인 건축가가 만든 신관으로 만들어진 부티크인지 라이프스타일인지 머시기 호텔인데, 에이스호텔 자체가 미국에서 시작한 힙스터의 상징이라 졸라 유명하다. 아시아 최초로 교토에 오픈한데다, 로컬 문화를 담은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며 졸라 멋진 정원과 각종 핫하고 힙한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고 유명하다).
주말이면 팝업이나 행사도 하고 실제로 내가 갔을 때 농구선수 사인회도 하고, 재즈공연도 열렸지만… 내부에 있는 비건 레스토랑 하나를 빼고는 사실 좋은지 모르겠음. 별 감흥이 없었다. 다운타우너랑 노티드랑 젠몬있는 도산공원이랑 모가 다른지 존나 모르겠달까…? 정원은 좀 멋졌다.
암튼 로비에 앉아서 맛없는 커피를 마시며 일을 했는데, 좌석은 좁고 사람은 가득 차있고, 옆에서 찌린내나는 양키놈들이 졸라 시끄럽게 떠들어서 기분이 우울해져서 얼른 때려치고 나왔다. 에이스호텔 나는 졸라비추. 햇빛도 잘 안 들어!!! 개지마뤄라!!!
큐쿄도를 갔다. 전통종이를 판매하는 아주 아름답고 고요한 곳이다. 넘 조용해서 사진을 못 찍고 구글에서 쌔벼옴.
무려 360년이 된 종이 문구점. 코로나 시즌에 무려 106년 만의 리뉴얼을 감행했다고 한다. 예전 인테리어는 못봐서 모르지만 나무벽과 천장, 조명까지 존나 아름다우니 꼭 가봐라. 다양한 엽서와 일본 전통종이, 인센스와 붓 등 문구류를 다루는데 아름다운 것들이 참말루 많다.
결제하려고 가면 정장을 빼입은 점잖은 직원들이 엄청나게 정중한 접객과 함께, 섬세한 손놀림으로 세심하게 종이를 포장해준다. 100엔짜리 엽서 3장 샀는데 포장이 넘 아름다워서 아직도 못 뜯고 있다ㅠ


큐쿄도보고 상점가 돌다가 당 떨어져서 급하게 붕어빵으로 수혈함.
일본에도 붕어빵이 꽤 생겼던데 개당 2~3천원이라 살짝 고민했으나 벚꽃붕어빵은 한국에 없을 것 같아서 먹어봄. 붕어빵 장식이 매우 귀여웠고 비싸서 그런가 붕어빵 틀이 1개만 구울 수 있는 단일틀이라 싱기했다. 맛은 걍 붕어모양에 일본 팥+벚꽃향 첨가임ㅎ 빵이 기름지지 않고 담백해서 나뿌진 않았지만 두 번은 안 사먹어~!



그리고 새마을 식당을 봤고, 거대 오므라이스를 봤고, 햄버거세트를 먹고 들어와서 일하고 잤다.
교토 1~2일차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