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구한 일은 제주에서 스냅사진을 찍는 사람의 보조 일이었다. 반 년 정도를 일했는데 이 사람과 일하면서는 내게 생각해보지 않은 새로운 옵션이 생기는 경험을 했다. 이런 사람이 대표를 한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 일을 못 하는 사람을 많이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직 좁은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알게 해 준 경험이었다.
이 사람은 정부지원사업에 선발되었는데, 1년에 1억 2천만원을 지원받는다고 자랑하곤 했다. 최소한 내가 그 돈을 받으면 저 사람보단 더 잘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퇴사할 때엔 내가 대표에게 욕을 하거나 아니면 한 대 치거나 둘 중 하나는 무조건 곧 발생할 일이겠다, 싶어서 퇴사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충격적인 일들이 많았기에, 생각보다 회사 밖의 일에 대한 허들이 내려간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깨달음을 얻자 독립할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7
내가 할 줄 아는 일들을 정리해서, 제주도 내 커뮤니티에 글을 업로드했다.
- 제품이나 인물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영상도 간단한 건 찍고 편집할 수 있고, 제품 상세페이지나 홍보글을 쓸 수도 있고, 광고를 전공했고, 바이럴 마케팅을 해봤고, 호텔 관리툴을 사용할 줄 알고, MS오피스 및 ADOBE 앱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조회수가 고작 260이었지만, 실제로 일거리 문의가 제법 들어왔다. 심지어 3년이 지난 후에도 연락이 올 정도였다. 제일 먼저 맡아서 한 일은 방충망 설치 업체의 블로그 포스팅을 작성해주는 것과 인스타 맛집의 사진/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거기에 틈틈히 웨딩/스냅사진과 소개로 연결된 행사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등 비정기적인 일들을 했다. 이렇게도 먹고살 순 있겠구나. 일을 한만큼 돈이 벌리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최소한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마케팅을 할 여력이 없어서 나에게 일을 맡기는 작은 업체들과 함께 하는 일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걸 눈 앞에서 보는 경험, 나를 전문가로 인정해주는 경험은 상당히 보람차기도 했다.
당시 일하면서 만났던 언니는 취집(진짜 워딩이 이랬다)을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자신은 일을 오래 하고 싶지도 않고, 잘 할 자신이 없다고. 당시의 나는 으, 남자한테 취집이라니 최악이야, 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왜 결혼해서 답답하게 얽매여 살아야 하지? 물론 아무리 사회성이 부족한 나라도 이렇게 대답하진 않았고…
- 저는 일이 재밌고 잘 하고 싶던데요!
- 너야 어리고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게 많으니 그런 거야.
이후 더이상 일터에서 만나지 못하게 된 뒤로는 언니를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본 언니는 원했던 대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전업 주부로 살고 있다. 행복한지는 직접 본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최근까지도 내가 인스타에 스토리를 올리면 항상 보고 하트도 눌러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언니는 언니의 욕망을 잘 알았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나는 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던 주제에 같잖은 우월감 같은 것들에 취해있었던 미숙한 사회초년생이었고.
아무튼, 나는 매일매일 방충망 공부를 해서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방충망 사장님이 우리집 방충망도 갈아줬다), 일주일에 2~3번씩은 식당에 가서 당시 유행하던 카드뉴스 형태의 맛집 소개 같은 것들을 제작했다. 제주국제학교에 졸업식 사진을 찍으러도 갔고, 좋아하는 동네에서 스냅사진을 찍어주는 상품을 출시해서 판매도 해보고 바디프로필, 웨딩, 인테리어 사진 등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했다. 안 해본 일들도 할 수 있다고 받아서 어떻게든 해냈다. 언제 끊길지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받을 수 있는 일들은 모조리 받았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제주에 놀러와서 만나도 친구들이 노는 사이에 나는 근처 카페에서 일을 했다.
그때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이렇게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증명처럼 느껴졌다.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거보라고, 내가 틀린 게 아니라고, 내가 잘못해서 지금까지 적응을 못 한 게 아니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가 점점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8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은 확실히 기억난다. 평소와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누워서 잠들기 전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는데, 갑자기 주르륵 하고 눈물이 흘렀다. 어, 이거 뭐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 일어나니 위기감이 들었다.
나는 꽤나 체력이 좋고 튼튼하게 태어난데다, 외로움도 별로 타지 않고 무던한 스타일이라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화나고 짜증이 난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아무 일도 없는데 눈물이 나는 건 처음이었다. 갑자기 왜 이래? 처음엔 그저 당황스러웠다. 일도 하고 있고 돈도 벌고 있고 잘 먹고 잘 자고 있던 거 아니었어? 아니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처음 느꼈던 효능감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반대급부로 따라오던 불안감이 방치하던 새에 점점 커져서 내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일 외에 만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일이 바빠지며 남자친구와는 소원해져 자연스레 헤어졌고, 이사를 한 탓에 아는 사람이 근처에 하나도 없었다. 매일 일어나서 똑같은 일을 하고 집에서 밥을 먹고 다시 일을 하다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외출하는 일도 없이 다시 잠들었다. 가끔 촬영을 나갈 때도 있었지만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는 것이니 대화할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었다. 사실은 방충망에도, 인스타 핫플이며 맛집에도 관심이 없고 웨딩사진도 왜 찍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매일매일 그걸 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타박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하잖아. 세상에 누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있어? 뭐가 됐든 일은 해야 되는 거고, 심지어 재택으로 편하게 일하면서 돈도 버는데, 대체 뭐가 문젠데? 사람들을 만나면 평소처럼 웃고 대화했지만 사실은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자아가 없어진 것 같았고, 그건 몸에도 곧 이상신호를 일으켰다.
돈도 꽤 벌었고 그게 뿌듯했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효능감은 물거품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200만원을 버나 500만원을 버나 차이를 잘 못 느꼈다. 아무리 편하고 사람들이 부럽다고 해도,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니라면 일에서의 보람이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고, 그걸 유별나게 못 견디는 인간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왜 이럴까, 수도 없이 자책하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네가 못 견디는 건 네가 그냥 나약한 소릴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채근해봤자 소용없었다.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을 계속해서 쌓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작가 돈주기 ![]() |
잘 읽고 있어요
다음편 부탁드려요~ 언니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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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주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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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기계처럼 일할수없는게 가장 큰 비극이래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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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 ||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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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 ||
그래도 차근차근 알아가는 모습이 좋다. 다음편 기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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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다 | ||
잘읽고 있어 글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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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효 나랑 쌍둥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각 성향 행동 인생경로가 비슷하네
개인기업 소기업이 다 좆같은거 같아. 나도 학교가 싫어서 대기업이 성향에 안맞을거라 생각하고 재미, 꿈 좇아 일자리 구했는데 결말이 좋은 곳은 별루 없었어. 잘 읽고간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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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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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담즙 | ||
나도잘읽고있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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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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