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10번 퇴사한 이야기, 세번째
읽어주고 댓글 달아주시는 언니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을 내어 쓰게 되어요.

-

나는 그렇게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고, 가족에게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친구들과도 거의 만나지 않은 채 거의 도망치듯 캐리어 하나, 배낭 하나만을 가지고 제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성산읍 고성리. 편의점도 9시에 닫고, 카페는 단 하나도 없는 깡촌이었다.

생각했던 대로 처음 약속했던 차량이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았다. 그냥 월세나 식비같은 것들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도 이 정도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니까. 이쯤 되면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 약속만 했던 내 잘못 아닐까 싶기도 한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마케팅 일이 아니라 예약실 일을 하게 됐고, 손이 부족하면 청소도 하고, 식당에 가서 서빙도 하는 등 별 일을 다 해야 했지만 금세 무뎌졌다. 모든 일이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나와 같은 기숙사를 썼던 중국인 메이드는 두 살 많은 언니였는데, 베이징에 아이가 둘 있어서 돈을 벌러 한국에 왔다고 했다. 불법체류자라서 월급을 현금으로 백오십만원을 받았는데, 그게 정말 정말 큰 돈이라고 환하게 웃으며 전부 자기 가족에게 보낸다고 말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언니는 매일 아무런 재료도 안 들어간 밀가루 부침을 기름에 튀겨서 저녁밥 대신 먹고, 매일 밤 베이징의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어느 날 일하던 중 문에 손이 끼어서 다쳤는데, 자꾸만 괜찮다고만 하고 병원엘 안 가서 내가 억지로 불법체류자들도 받아주는 동네의원엘 데려갔다. 의사는 치료를 바로 안 받아서 손가락이 휜 채로 굳었다고, 이대로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언니는 그런 건 상관 없다고, 혹시 손 때문에 일을 못 하게 될까봐 그것만 걱정했다. 진료비 내는 것도 걱정해서 내가 대표님 카드를 가져다가 긁었다. 언니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불행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거라고, 내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냐고, 나는 운이 나쁘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근데 내가 언니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저렇게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고 행복해하고 잘 웃는 사람일 수 있었을까.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거, 어떤 일이 있어도 결국에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걸어가야 한다는 걸 그 때 약간이나마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언니가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언니는 조금 더 일하다가 가족들이 있는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나도 잘 먹고 잘 자고 여유가 생기면서 기운이 생기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카페를 다니면서 블로그에 리뷰를 적고, 다양한 기자단에 지원을 해서 제주 여행 콘텐츠를 만들고, 직접 찍은 사진들로 달력과 메모지를 만들어서 텀블벅에 올려 판매도 해보고, 친해진 가게 사장님들의 SNS 마케팅을 대신 해주기도 했다. 호텔 일은 여전히 즐겁지는 않았지만, 퇴근하고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늘리려고 노력했다. 나는 무언가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돕고, 내가 좋아하는 존재를 알리는 일을 좀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런 걸 느리지만 천천히,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년쯤 됐을 때 문제가 터졌다. 호텔 매출이 부진해서 내가 서울로 돌아가 다른 일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직원 두 명을 잘라야 한다고 했다.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지? 같이 일하는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한 명이 먼저 그만두겠다고 했고, 남은 사람들은 당장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그럼 내가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호텔의 대표는 내가 처음 면접을 봤던 인플루언서와 부부였는데, 원래 건축을 했던 사람이라 경영을 전혀 몰랐다. 제법 큰 규모의 호텔이었는데도 월 매출을 수기로 보고 받았다. 자기 취미인 드론은 중국에서 백 개씩 사오면서 직원식인 김치찌개에 고기를 아껴 넣으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대표 부부의 딸들은 제주 국제학교에 다니고, 대표의 차는 벤츠였지만, 겨울에 난방도 잘 못 틀게 했고, 직원에게 퇴직금을 주기 싫어서 1년이 되기 전에 자르곤 했다. 

이후로 나는 벤츠를 모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좀 생겼고, 돈을 많이 벌면 다 치사하게 바뀌는 걸까? 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돈을 벌게 돼도 저렇게 안 될 것 같은데, 지금까지 본 대표들은 다 그랬어서 혹시나 나도 저 위치가 되면 저렇게 바뀔까? 고민도 했었다. 물론 아직까지 그렇게 돈을 많이 벌거나 대표가 되지는 못해서 검증은 안 됐지만, 앞으로도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6

그렇게 퇴사를 하자 또 막막해졌다. 제주에 남아야 하나?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나? 원래대로라면 제주에서 돈을 모아서 사진을 배우러 외국으로 나가고 싶었다. 서울에 가는 것이 아직은 좀 두렵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서울에서의 적응을 실패하고 도망치듯 내려온 것이었으니까. 다시 올라간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싶기도 해서 한 달 정도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기로 했다. 결국 제주에 남기로 결심했던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은 엄마의 한 마디였다. 

너는 사주에 물이 없어서, 제주도에 살아야 좋다더라. 지금은 올라오지 말어라! 

태어나서 사주를 단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왠지 저 말은 마음에 들었다. 나랑 잘 맞는 섬이라니, 멋지잖아? 마침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도 육지에서 제주로 내려와 일을 시작했기에 조금 더 제주에 있어보기로 결정했다. 

작품 등록일 : 2025-02-02

▶ 10년간 10번 퇴사한 이야기, 네번째

▶ 10년간 10번 퇴사한 이야기, 두번째

잼써 다음얘기 궁금하고
namyhs   
역시 전문가 글 존잼
문학필명   
대단해
  
글 재밌게 잘 읽혀.
10번이나 도전하다니 대단함!
Kelly   
진짜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글만 읽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게 느껴진다 다음편도 기다릴개
to******   
잘 읽고있습니다. 되게 잘 읽혀요. 또 써주세요. 화이팅.
ch*****   
10년간 10번 퇴사했다는건 10년간 10번 도전했다는말과 같다!
  
쓰니 진짜 열심히 살았다. 글도 잘쓰고!
다음 얘기도 기대할게요!
먹는게제일...   
진짜 열심히 살았구나
하루하루   
제주도에서도 열심히 살았네. 일하면서 기자단도하고 마케팅에 텀블벅까지. 다음 글도 기대할게.
연다   
재밌어
달라진사람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문의: idpaper.kr@gmail.com

도움말 페이지 |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이용약관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