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읽는) 결혼일기 3편 -完-
"그냥 올해 안에 결혼할래요?"

나는 그날 (예비)남편의 프러포즈 아닌 프러포즈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다. 내 마음이 오랜 고독과, 연애의 내상과, 하필 그날의 감정 때문에 한창 약해져 있을 때 그는 확 밀어붙인 것이다.


이거 다 무효야 무효!

그 다음날 남편은 웨딩 박람회 신청을 했고, 코딱지만한 내 원룸에 캠핑용 테이블을 하나 갖고 들어와 살림을 차렸다. 

남편은 내 자취방에 처음 발을 들인 날 '이런 데서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살던 곳은 혼자 지내기에도 열악한 4평 원룸이었다.

그리고, 그날까지 불을 붙여본 적도 없던 내 방 가스레인지는 그의 손 아래 정말 다양한 코스요리를 뱉어내기 시작한다... (수육 갈비 뼈찜 곰탕 등등 메뉴도 다양하다.)

갑자기 결혼하겠다는 남편의 말을 처음엔 그의 친구들과 가족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남편: 야 나 결혼할거다.
친구 1: 여자친구도 없던 놈이 갑자기 결혼? 구라 좀 작작 쳐라 ㅋ 
(사귄지 너무 얼마 안 돼서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음)
남편: 구라면 헬스장 안 간다.
친구 2: ...야 이 ㅅㅋ 진짠가 본데?
남편: 너 내년에 결혼하지? 결혼이란 거 어떻게 하는 거냐.
친구 3: (당시 결혼 준비 중) 아니 너 진심이야???

결과적으로 우리는 당시 3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을 준비 중이었던 그의 친구 3보다 일찍 결혼식을 올렸다. (사실 그 때 결혼을 앞뒀던 주변 지인 커플 그 누구보다 빠르게 결혼)

우리 결혼은 남편의 추진력과 시댁의 자금력으로 진행됐다. 남편은 한번 결정한 일은 무조건 고 하고 보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다소 철딱서니 없는 남편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시댁 어르신들이었던 것 같다.

결혼을 준비하며 남편과 나의 다른 점을 더 많이 알게 됐다. 나는 원가족에게 어른아이였고, 그는 아이어른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 인생에 터치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입시부터 취업, 그 밖의 모든 자질구레한 문제, 금전적인 문제(학원비나 통학에 드는 교통비까지)모두 내가 알아서 해결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사고뭉치였다. 중학생 떄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술담배를 했고, 어느 어버이날엔 패싸움을 하다가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부모님의 뒷바라지, 지원에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외국에 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그의 뒤엔 늘 점잖은 으르신들인 부모님이 있었다. 부모님은 아들이 못미더웠다. 아들은 그런 부모님의 간섭이 귀찮고 싫었다. 그래서 나를 처음 부모님에게 보여줬을 때도 부모님은 꽤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부모가 따라다니며 챙겨줬지만, 정작 부모에게 인정받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가게를 내고 요리도 해 봤지만 쓰잘데없는 짓을 한다는 반응 뿐이었다. 결국 지금은 얌전히 아버지 사업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 분야에서 아버지를 넘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그의 친구들이 언젠가 "왜 형수님이랑 두 달만에, 그렇게 급하게 결혼을 결정했냐?"고 물었다고 한다. 남편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여자들한테 들었던 말 중 가장 설레는 말을 지금 우리 와이프가 해 줬어. 철인씨는 뭐든 열심히 한다고, 그래서 당신 믿는다고."

남편은 결국 얌전히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 정도면 내가 누군가를 먹여 살릴수도 있지 않을까? 나이가 차 감에 따라 누군가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던 그는, 그 타이밍에 나를 만났다.

그가 나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아마 이게 거의 다일 것이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타이밍 문제였다고 지금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의 이유를 더 대자면 내가 맨 처음 그의 앞에서 예스걸이었다는 점이 컸던 것 같다. 순순히 그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해 주고, 별 거부감 없이 '그래라' '믿는다'고 말해준 사람이어서.

내가 결혼을 준비하며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나 당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그러자 남편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로 알게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뭘 벌써 어떻게 사랑해요? 결혼하고 앞으로 해 나가면 되지."

남편에게는 어쩌면 사랑보다 가족으로서 함께하는 것, 믿고 따라가 주는 것 그 자체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자, 결혼식 준비에 거창한 수고가 들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남편의 추진력과 시댁의 자금력으로 결혼 준비는 착착 진행됐다. 


이렇게 잘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나의 실무력(비용 계산이나 자잘한 것들 제작 등)을 약간 더한 정도였다. 나랑 친정은 숟가락만 얹은 수준인 것 같다.

작년 9월 첫째주에 결혼을 결정해서, 정확히 3주 뒤에 예식장 계약금을 넣었다. 본식 날짜는 그해 12월 첫째주로 정했다. 7월에 만나 사귀기 시작해 9월에 결단을 내리고 12월에 식을 올린 것이다.

결혼을 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통과해야 할 관문이 두 가지 있다. 당연히 더 많겠지만, 정말 필수적인 것만 우선 말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결혼식, 두 번째는 신혼집이다.

먼저 결혼식은 축의금으로 커버를 칠 수가 있다. 물론 식장 대관료를 제외하고, 식 당일까지 들어가는 결혼비용은 선불이기에 어떻게든 땡겨써야 한다. 평균보다 저렴하게 잡아도 (신혼여행비 제외) 본식에만 2~3,000 정도가 드는 것 같다. 


~ K-웨딩 본식 필수 코스 ~

예식장 계약금/잔금/식대
결혼반지
본식 헤어메이크업
본식 드레스 대여
드레스 피팅비/헬퍼비
본식 예복 구입
본식 2부 드레스/소품
야외스냅 의상/소품/헤메
웨딩슈즈
부케, 부토니에, 양가 혼주 코사지
웨딩네일
상견례 식당 예약/떡케이크
혼주 한복/정장
양가 혼주 헤메
야외 스냅사진 촬영
본식 영상 촬영
본식 아이폰 스냅
청첩장/모바일 청첩장
청첩장 모임


여기까지 비용은 전부 남편의 수입과 시댁의 입금으로 해결했다. 참고로 우리는 스.드.메 패키지를 생략했다. 

다음은 신혼집인데 나랏돈으로 신혼부부 전세 대출을 받고, 자기부담 보증금은 남편쪽이 대부분을 해결하고 나의 코딱지만한 자취방 보증금을 얹었다. (시부모님은 내심 시댁 명의의 집에 들어가길 바랐는데 남편이 거긴 들어가기 싫다고 빢빡 우김)

우리의 결혼 준비는 "어? 이게 돼? 이게... 되네?"의 연속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되는구나? 워딩 그대로 '결혼' 자체는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 뒤가 문제라서 그렇지.

우리는 남들 1~2년씩 걸리는 결혼 준비를 두 달 안에 매우 집중해서 끝냈는데 역시 인생은 시간보다 집중력이 진리인 것 같다. 우리는 남들보다 훨씬 결혼 준비를 잘했다고 자부한다.

그를 뒷받침하는 것은 부장 롤을 맡은 남편의 추진력과, 대리 롤을 맡은 나의 실무력이다.

남편: 식장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 앞에 붙이는 안내 포스터를 우리가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좀 예쁘게.
나: 넵, 이 사진을 써서 폰트 컬러는 이렇게 하면 될까요?
남편: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게 더 버건디스러운 느낌을 줄 순 없을까? 지금은 너무 쌩 레드인데.
나: 넵, 그럼 이건요?
남편: 이건 너무 퍼플.
나: 그럼 이건...
남편: 오, 좋아, 좋은데, 자간을 더 벌려보면 어떨까?
나: 넵, 지금 간격 3 정도인데 어때요?
남편: 너무 넓은 것 같은...
나: 넵, 1.5로 줄였습니다.
남편: 좋아, 딱이다! 이걸로 가자!

넵 알겠습니다~!


하드웨어가 필요한 일, 현장 조사/투입, 전반적인 큰 결정 등은 모두 남편이 도맡았고, 그 밖의 브레인이 필요한 모든 일, 소프트웨어적인 것, 자료 서치, 시트 정리나 음원/이미지 파일 제작 등은 내가 담당했다. 나중엔 서로를 이부장 김대리라고 부를 정도였다...

(남편은 담당 일진이 자기 찐따 찾은 거라고도 했다...)


우리의 본식을 보고 다들 준비 많이 한 티가 팍팍 난다고, 너무 잘 했다고, 청첩장이나 본식, 피로연, 모두 이런 건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감상평을 남겨주었으니 뭐 이만하면 잘했지 싶다. 

개인적으로 인스타 너낌 낭낭한 이벤트 웨딩은 또 싫어서 그런 느낌은 피하고자 하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사실 본식 준비하면서도 런할 생각을 많이 했다. 시발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이래도 되는 걸까?? 그런 나를 남편이 매번 어르고 달래고 하면서 식장까지 질질 끌고 갔다. 

전반적으로 섬세하기 짝이 없는 홍대병 걸린 예술충을 뇌까지 근육인 헬창이 줘패가며 끌고가는 그림을 상상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본식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준비해둔 신혼집에 입주하면 되는데.. 되는 거였는데... 남편은 또 인테리어에서 무시무시한 주관을 발휘한다. 

화장실 세탁기 배수관도 뜯어서 방 마룻바닥 뿌시고 거기로 위치 변경하고, 타일 바르고 변기도 뜯고 대면식 뭐시기 주방을 만들고 침대 헤드, 아일랜드 식탁, 뭐시기 서랍장도 다 직접 짜서 넣고, 아일랜드 식탁 위 다이닝 분위기 나는 조명도 달았다. 

물론 난 이때도 무조건 예스에스걸이었다. ^^7 내가 바란 건 딱 하나, 집에 내 작업실(나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어차피 내 돈은 1도 안 나감

냉장고와 선반 사이 틈새를 재서 거기에 어떤 트롤리를 넣을지, 퇴근하면 양파부터 소분해서 진공팩에 넣어놓을지 아니면 고기를 한 덩이 사서 작업할 지 고민하는 그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이 정도면 나 주부 만들어주려고 결혼한 게 아니라 지가 주부하려고 결혼한 거 아님?

이 과정을 들은 내 친구는 남편을 '가친놈 (가정에 미친 놈)'이라고 했다. 아니, 가정적인 거 좋지. 근데 그걸 넘어서 그냥 가정에 '미친 놈'이라고... 하긴 4평 원룸에서 12첩 반상 차려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로판 제목 아님

솔직히 남편은 딱히 '좋은 남편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와 깊은 애정을 느끼기도 전에 부부라는 팀을 맺고 여러 퀘스트를 깬 경험은 (지금까지 봤을 때는) 나름 독특하고 가치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서로 보완되는 점도 많았다.

지금까지 그랬듯, 내 선택이 최악은 아니었기를 바란다. 안 좋은 선택이었다고 해도 내일 더 나은 형태로 변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나와 우리의 생활이 대체로 즐겁거나 별 일 없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별 거 아닌 글을 재밌다며 읽어 준 독자분들에게 감사한다. 여러분이 보내는 나날도, 완벽하진 않더라도, 대체로 좋았던 날들로 뭉뚱그려질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호다닥 달려와 글을 쓰겠다.

안뇽!
작품 등록일 : 2025-02-11
최종 수정일 : 2025-04-25

▶ (재미로 읽는) 결혼일기 2편

단숨에 다 읽었어요!!! 환상의 팀웍으로 앞으로도 재밌고 행복하게 살 거란 예감이 드는 커플 ㅋㅋㅋㅋ
am*****   
드라마한편 뚝딱.. 아니 나는 왜 이걸 이제 본거야!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꺼같다.
살려줘   
언니같은 여자랑 저런 남자랑 ㅅㅅ는 어케하는지 궁금해 ㅋㅋㅋㅋㅋㅋ
mm*****   
진짜 행복하게.잘 살것 같닼ㅋㅋㅋㅋㅋ
문학필명   
언니글들 보고 감동받았어! 행복하게 잘 살듯!!
알레이본   
언니 멋있다! 잘 살아!
dr******   
언니 행복해라!
hon   
달러 탈탈 털었다
축의금 남긴다
언니 행복해 잘 살아!
___   
같은 찐따 건어물녀. 글 잘 읽고 감동받고 갑니다
sh****   
잘살어라
Cisse   
언니 글 읽었는데 뭔가 뭉클하다..
응원해~!!
sm*****   
귀여운 부부다 잘살어 언니!!!!!!
핫소스   
귀엽놐ㅋ
마지막씹새   
잘 읽었어
행복하세요!
co******   
행복하씨오
  
재밌는 글 고마워
신혼일기도 써줘
아침 잠이...   
언니 너무 귀엽고 아름다눈 커플이야 ㅎㅎ 백년해로하고 행복해!!!!!!
queenb   
언니 감동적이야
백년해로 하길!
가마니   
남편이 결혼 결심했던 모먼트 감동적
cr*****   
재밌엉!!
하응   
꿀잼ㅋㅋㅋㅋ
fu   
요새 나는솔로 24기 영철같은 남자인데 더 와일드한 캐릭터일까 싶음 ㅋㅋ 언니 글 재밌게 잘 읽었어 행복하게 지내!!
ㅈ같이굴지...   
글 잘 쓴다 재밌어 행복하게 잘살어
treasure   
햐 너무 좋다
지지고볶고 잘살아!!!
an****   
백년해로하세요❤️❤️❤️
Mim   
부럽다. 보통 남편들이 결혼준비 엄청 무관심한데 하드캐리했네!
ANGE   
마지막 내용이 너무 좋다

내 선택이 최악은 아니었기를 바란다
안 좋은 선택이었다고 해도 내일 더 나은 형태로 변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나와 우리의 생활이 대체로 즐겁거나 별 일 없기를 희망한다
  
잘 살어라 언니!!!!! 잘 살거같다 ㅋㅋㅋㅋㅋ
살쾡이   
넘 재밌어! 언니 잘살아요
h****   
글 더 써 ㅜㅜㅜ
  
두사람 이쁘네^^ 행복해!!♡♡♡♡♡♡
냐냐   
언니 잘 살어

건강하세요
백색담즙   
잘살아요!!
ca47   
상호보완되는 사이네 이제 잘 사는 것만 남았따!
as****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어!!
as****   
세상에 행복하게 잘살아 언냐 행복을 빈다
문학필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재밋넹 ㅋㅋㅋㅋㅋ
ku키   
피힝! 존잼 ㅋㅋㅋ
깡패남x얌전녀 완벽크한 반대형질
게다가 믿어준다니까 뿅 가버렸농
시댁간섭도 컷 해주고 여러모로 완벽크햇
행복해보영 ❤️
삐약   
완결이라니 아쉬워ㅋㅋㅋㅋ근데 언니 잘 살 것 같아ㅎㅎ 대체로 좋았던 날들로 뭉뚱그려지길 바란다는 말이 와닿네 행복하게 살아!! 글 또 써줘!!
^^   
역시 결혼은 남자가 추진해야 후딱후딱 되는구나.
서로 반대니까 보완하면서 잘 살거 같아.
결혼 축하해
알록달록 ...   
추진력 미쳐따리 반대형질은 사이언스인가봐
두루미   
잘 읽었어요 언니!! 앞으로도 희로애락 생활 종종 이야기 들려줘 ㅎㅎ 그래도 언니가 든든한(?) 남편분을 만난 거같아서 너무 좋아보여...
to******   
정반대의 두 사람이구만ㅋㅋㅋ
행복하게 잘 살아!
ya****   
재밌게 잘 읽었어 언니!
호빵맨   
잘살아! 그럴거같아!! 기받아갈란다 ㅎㅎ
Deep   
남편 실행력 좋으니까 언니가 좋은 남편감으로 만들 수 있겠다
ha********   
예전 문학글 부터 잘 봤어
행복하게 잘 지내!
뱁새   
너무 재밌게
잘읽었어 언니
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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