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서 몸이 녹아내리는데 이와중에 생리도 하고 땀으로 젖은 꿉꿉한 이불위에 누워
휴대폰으로 이드페이퍼나 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두쉭씨가 연락온다.
" 오예야 밥 안 먹었지? "
" 응 수박주스가 먹고 싶네."
" 내가 퇴근하고 갈때니까 저녁이라도 먹자 "
두쉭씨는 내가 걱정되서 매일 퇴근하고
저녁사주러 온다. 그럼 그게 내 유일한 한끼다.
의도치 않게 단식해서 살이 3키로나 빠졌다.
저녁먹기 전에 굳이 수박주스 한잔 손에 쥐어서는 두쉭씨가 맨날 그런거나 먹으면서 체력없다고 아프다 한다고 잔소리를 잔소리를 ..
해대지만 일단은 사주고 잔소리해서 참는다.
" 요즘 왜 글 안써??"
" 더운데 생리하고 그래서 "
" 그럼 ..생리 안 할때는 왜 안써 "
" 야. 너가 생리를 알아?
생리하기 전에 피엠에스와서 허구언날 졸리고
가슴을 누가 쥐어짠듯 아푸다고.
니가 이 날씨에 생리 해봤냐!
머드축제가서 신나게 놀고 샤워해도 안씻긴듯
거시기가 계속 진흙으로 축축한 기분이
최소 7일 간다. "
" 화..내지 말고 일단 먹어 "
기분이 상해서 와구와구 먹어주고 싶지만
정말 밥맛이 없다. 그 좋아하는 연어스시도
몇개 먹으면 헛배가 부른다.
" 왜 이렇게 못 먹어..? "
" 나라가 걱정되네.. 두쉭씨 대한민국 망해?"
깨시민이었던 중산층 좌파 두쉭씨는
요즘 문제인 이야기를 꺼린다.
사실 나는 더워서 밥맛없을 뿐이고.
" 나도 열심히 일하고 국민들도 열심히 사니까
걱정마. 망하지 않아. 오예 너는 글이나 열심히 써."
두쉭씨는 자기 나름대로 늘 낙관적이다.
나는 그런 두쉭씨가 좋다.
" 나는 열심히 같은 거 못해.
두쉭씨나 열심히 해."
얄밉게 늘 톡 쏘아 붙여도 두쉭씨는 하나도 안 웃긴데 허허허허허 웃어넘긴다.
" 수박주스 한 잔 더 먹을래?"
" 웅.. 그러는 게 좋겠어.."
두쉭씨는 내가 글을 안쓰는 줄 알지만.
사실 나는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다.
내 입으로 매일 쓰고 있다고 말하기는 무지 창피하고 특히 두쉭씨한테는 그런말 하고 싶지 않다.
" 요즘 읽고 싶은 책 있어?
서점 가서 볼래? 내가 다 사줄게."
서점은 시원해서 좋다.
두쉭씨는 이런책 저런책 고르는데
내 관심사는 귀여운 팬시 문구류다.
고양이 스티커랑 고양이 캐릭터 펜 같은거
몇개 골랐는데
두쉭씨는 현대문학상. 뭔 놈의 문학상들
시나리오 플롯 잘 쓰는 법 이런거 들고 있었다.
" 너가 읽어보면 좋을 거 같아서 "
" 필요 없어. 두쉭씨가 읽던지. 나는 문구류나 사줘 "
" 이런거 읽다보면 영감도 받고 글도 잘 써지지 않아? "
" 두쉭씨."
" 응??"
" 책은 어렸을 때 다 읽었다. "
" 다 ?? "
" 우리 엄마가 잠자리에서 구연동화 많이 해줬어. 그걸로 됐다."
" ...? 진짜..? "
" 그래."
" ...너 작법서 같은거는 읽어 봤어??"
" 응 맥기 "
" 아효. 읽어보긴 했구나. "
" 앞에 세장. "
" ... 그건 읽었다고 할 수 없잖아.."
" 두쉭씨. 나는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는 게 아니야. 내가 안쓰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 "
두쉭씨는 어차피 나를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책들을 되돌려놨다.
덕분에 고양이 스티커를 더 살 수 있었다.
그래도 오늘밤은 바람이 살랑 불어서
두쉭씨랑 가볍게 산책했다.
고양이가 다리사이를 열심히 그루밍 하는 스티커는 두쉭씨의 휴대폰 뒤에다 붙여줬다.
꼭 두쉭씨를 닮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