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쉭씨 2

" 기억나니. 두쉭씨?"
" 뭐??"
" 우정의 맹세 "
" .. 알아.. 안다고! 이제 그만 말해! "

 

두쉭씨가 잊고 살까 봐 잊을 만하면 이야기해준다.

머시기와의 불꽃같은 소개팅 이후로 두쉭씨와 나는 절친한 친구가 되기로 했다. 

맨입으로 친구해줄 순 없고  

그의 우정을 시험할 겸 한 가지를 부탁했다.

 

긴 바지를 입고 오라는 것.

때는 7월 말이고 더럽게 더웠다.
사실 별 뜻 없이 해본 소리다.
백날 천날 반바지만 입고 다니길래.
원래 별거 아닌 거에 의미 부여 하는 게 내 특기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학원을 그만뒀다.
더이상 핫도그를 먹는 두쉭씨를 볼 수 없게되고,
집에서 가까운 독서실을 다니며 수험 공부를 했다.

 

어느 날 12시 넘어서 독서실을 나오니
어디서 많이 본 짐승 같은 남자가
홈쇼핑에서 주야장천 팔아대는 면바지를 입고 서 있었다.

 

" 두쉭씨. 그때 엄청 더웠는데. 그지? "

 

두쉭씨는 조그마한 눈으로 나를 째려봤다.

 

" 땀 엄청 흘리면서 나 기다렸잖아. 왜 그랬어? "
" 몇 번 말해! 네가 말없이 학원을 그만두고 어쩌고저쩌고.."


열대야의 밤.
우리 둘은 서로의 팔이 닿을 듯 말 듯 어색하게 걸었다.
두쉭씨는 그때 이미 키가 180이 넘는 거구였다.
비만은 아닌데 졸라 잘 처먹고 잘 자는 스타일이라 쑥쑥 성장했다.


" 두쉭씨, 내가 여기서 공부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
" 너희 학교 애한테 물어물어.."


면바지에 끼인 허벅지가 터질 듯 빨개진 얼굴도 터져버릴 것 같은 두쉭씨는
그날 나를 집에 데려다줬고,
그 후로 매일 긴 바지를 입고 나타나 독서실 앞에서 기다리고 집에 바래다줬다.


" 두쉭씨 옛날에 줄 달린 안경 썼지? "

 

과거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치매 걸린 사람처럼 똑같은 질문을 또 물어봤다.

 

" .. 야! 아니라고 몇 번 말해.. 너는 왜 이렇게 기억을 왜곡해?? "
" 두쉭씨 그때 빤스 같은 반바지만 입고 양말은 무릎까지 오고 맨날 축구화만 신고  안경에 줄 달렸잖아? 나 기억력 엄청 좋거든? 내가 2살 때도 아직까지 기억하는 사람이야!"

" 내가 무슨 팬티 같은 반바지를 입었어! 그리고 미친놈이냐! 무릎까지 오는 양말 신게!! 맞는 건 축구화 밖에 없어! "

 

이상하다.
분명히 줄 달린 안경도 쓰고 있었는데.
아무튼 두쉭씨는 아니라지만 내 기억에는 그랬는데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이젠 뭐가 진실인지 나도 모르겠다.


" 두쉭씨. 나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날 거야."
" .. 남자로 사는 게 편하니까 그런다고 말하는 거지? "
" 아니."
" 어쨌든 여자로 사는게 힘들다는 거잖아? "
" 나는 남자로 태어나서 가슴속에 총 하나만 품고 세계 여행을 갈래."
" 갑자기 웬 총이야?? 그리고 세계여행은 지금도 갈 수 있잖아."
" 위험하잖아. 두쉭씨는 나 혼자 아프리카에 가게 둘 거야? "

" 물론! 위험하지만. 너는 너무 어쩌고저쩌고.."
" 암튼, 남자도 위험하겠지. 그래서 총이 필요해. 그리고 난 남자로 태어나서 지구촌 여자들이랑 골고루 섹스할 거야.
남자로 태어나면 이런 포부 정도는 있어야지."
" ... 너 같은 남자는.. 에휴.. 말을 말자.. "

 

" 두쉭씨. 두쉭씨는 여자로 태어나줘."
" 왜!?"
" 나랑 만나야지."
" .. 됐어! 다음 생에는 너랑 안 만나, 그리고 난 남자로 태어날 거야."
" 역시.. 남자들이란.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했어.."
"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그게 네가 생각하는 어쩌고저쩌고.."
" 암튼, 나도 남자로 태어나고 두쉭씨도 남자로 태어나고 우리 게이 커플 되나."
" 왜 넌 항상 이야기가 극단적으로 흘러.."
" 남자로 태어난 우리가 딱 만난 거야! 근데.. 운명.. 데스티니.. 알지?  눈만 봐도 전생에 억 겹의 시간이 촤르르 흐르면서 팍 각성 돼가지고.  그때부터 금단의 사랑이 시작되는 거지.. 내가 공, 두쉭씨가 수! 알지?"
" .. 작가님.. 그만 말하고 이거나 드세요.."

 

두쉭씨는 방금 나온 스테이크를 썰어 내 입에 넣어줬다.
다행히 두쉭씨는 공수가 뭔지 몰라서 잔소리거리가 하나 줄었다. 

 

나는 생리전에는 기가막히게 두툼한 고기가 먹고 싶어졌고
그럴 때마다 두쉭씨는 먼저 알아채고 스테이크를 사줬다.

우리는 아주 오래 알고 지냈지만 사귄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작품 등록일 : 2019-05-14

▶ 두쉭씨 3

▶ 두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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