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가 뭔지 몰랐다. 그저 방 책상 위에 동그라니 놓여있는 흰 종이 위에 크게 써져 있었다. 미안해 내 딸.. 그렇지만 엄마가 없는 편이 나을거야. 동네가 떠들썩했다. 빌라 계단 위 천장에 불빛이 빤짝거렸다. 오르락 내리락.
나는 할머니가 키우게 되었다.
동그랗게 모인 너의 작은 손가락.
손 등. 손 발.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엄마가 왜 그렇게 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 같은 것도 잊어버렸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을 때 그 애들이 보는 풍경의 색은 나와 다를까?
그 애들이 뜀박질 하고 있다는 것과 나는 그걸 바라보고 있다는 차이.
누군가를 기다릴 수 없고 끝이 아득하게만 보였다.
누군가에겐 분명할 도착점이 나에게는 흐릿해서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멍하니 있는 날이 많았다.
떠들썩한 것을 동경하면서도 막상 곁에 서면 입이 말랐다.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속이 내 눈에만 보였다.
분홍색으로 칠해야 했다.
차오르는 슬픔 마저 따뜻하게 감싸줄 것 같은 그 색으로.
모두가 슬펐을 거라고,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는 분노가 말했다.
분홍색을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애초에 착한 사람도, 못된 사람도 될 수 없는 사람인데
분노를 누르기 위한 분홍색이 나를 자꾸 착하게 덧칠했다.
그런 내가 싫어 나에게 욕을 한 아이가 생겼다.
그 아이는 껌을 씹고 교정장치를 낀 아이였는데
나를 바라보는 눈 속에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그 말을 하자 니 눈에는 분노가 보인다고 했다.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길목에 막혀있는데
살인마가 쫓아오는 꿈을 자주 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나인 것 같다.
자꾸 착해지는 나에게 칼을 쥐어줄 수 없었기에
내가 분장을 하고 나를 쫓아온 것 같다.
과장된 분노, 억눌린 슬픔.
그 사이에서 역시 나는 도착점을 보지 못한다.
20대가 된 지금도 내면을 조율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새벽에 문득 깨어 잘 조율되지 못한 쇳소리가 귀에 윙윙 울린다.
나는 꼼짝없이 관 속에 들어가 그 시간을 견디다
흙이 들어차면 또 다시 죽은 내가 걸어나와 화장실을 간다.
정수기로 냉수와 온수를 섞어 마시고, 별 것 아닌거야. 라고
생각한다. 죽고 싶지 않아, 라고도 생각한다.
시를 보면 왜 항상 끝이 어두운지.
내 안의 분홍색이 꿈틀거렸다.
이게 아닐 수도 있잖아, 다른 결말일 수 있잖아
그렇게 버둥거릴 수록 끝도 없는 구멍이 나를 끌어당겼다.
슬픔은 구멍, 버둥거림은 분노.
아예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알고있는데
슬퍼하지 않고 버둥거리지 않고 잘 살 수 있는데.
자꾸만 구멍을 들여다보는 나는 진실이라는 강박에 목이 메여 있다.
엄마와 똑같은 방식으로, 목을 메어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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