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앗싸 센빠이 4
- 선배 거기 많이 추워요? 
- 씨발 존나 추워. 재작년에 산 패딩입음. 집에서 빨았더니 안 따뜻해.
  내년에 한국가면 발목까지 오는걸로 사와야겠다.
- 스타일 죽으셨네. 발목까지 오는 롱패딩이라니ㅋㅋ
- 스탈이고 나발이고 나이드니까 추운거 질색이다.

아중선배는 6년 전 검은머리 외국인과 결혼해서 따뜻한 엘에이에서 헐거벗고 살다가
얼마 전에 세인트루이스로 이사갔다.

결혼식날 한사코 부케는 안 받겠다는 내게,
그녀는 장난기 가득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부케를 멀찍이 뒷줄에 서 있던 내게 던졌다. 받을 생각도 없었는데도 나는 타고난 순발력으로 부케를 손에 쥐고 말았고,

신부가 다리 벌리고 투수마냥 부케를 던지기는 사진사도 난생 처음이라,
겨우 순간포착했다.
나중에 사진을 받아보니, 배꼽이 찢어질 듯 활짝 웃는 그녀를 빼고는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고 양손으로 전력을 다해 부케를 잡은 바보같은 내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 내년 언제쯤 들어오실거에요?
- 유월? 이번에 가면 오예 작가님 책 받아볼 수 있나? 
- 요즘 종이출간 안해요. 웹소설은 다 이북인데.
- 미친. 나 눈 아파서 이북 못 읽어.
- 줘도 안 읽을거면서.
- 이년이.. 재수없어. 날 너무 잘 알아.ㅎㅎ


그녀가 보고싶다.
이렇게 가끔 카톡을 주고 받다보면
단둘이 이불덮고 누워서 옛날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며 밤을 새던 날들이 그립다.
지루하지도 지치도 않고 영영 끝나지 않을거 같은 수다,

고기파티에서 서로 첫인상이 어쨌네 저쨌네. 순정남 A선배의 고백 사건,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 재밌는 일이 셀수 없이 많았다. 
그 중에서 제일 형편없는 이야기는 영화과 최고의 사랑꾼 T에 관한거다.

T는 내 동기고 나보다 3살이 많고 3센티 더 컸다. 
얼빠인 나로서는, 키가 170도 안되고 그 흔한 한남 평균에도 못치는 못생긴 불량감자같은 외모인 그가 여자들에게 꽤 인기가 많았다는 것을 여전히 부정하고 싶다.

아중선배가 T를 보고 말했다.

" 바퀴벌레 같은 새끼."
" ...T?? 왜요? "
" 크게 사고 칠 놈이다."

T...? 사고나 칠 수 있을까..?
그에 대해서는 매우 못생겼다는 것과 자칭 개그맨 정도 입력되어 있었다.


" 어딜봐서요? " 
" 오예야. 너는 느낌이 없니? 느낌 좀 키우렴.
  나중에 쓰레기 만나서 질질짜지 말고."

동물적인 감각을 소유한 아중선배.
어떻게 느껴지는지, 느낌을 키우는 법이라도 알려나 주던지.
그냥 딱 봐도 안단다. 
난 딱 봐서는 모르겠던데.
아중선배는 남자랑 어디까지 가봤을까? 그런 궁금증이 피어오를 무렵,
워크샵 때문에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아중선배 덕분에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다른 선배들 졸업작품들을 전전하며 
제작부 미술부 연출부.. 등등 잡스러운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었다.
경험을 무시한건 아닌데. 
경험을 해보지 않으니, 아니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 없으니,
괜히 경험을 등한시 하게 된다.
자존심이 쎈 편이라 그랬던 거 같다. 

작은 촬영 현장이라도 잘 굴러가든 아수라장이든 가서 직접 참여해보니 일개 영화과 학생으로서는 보고 배울점은 있었다.
스스로 단편을 연출해보는 것만큼 큰 소득은 아닐지라도,
아무생각없이 더운데서 추운데서 구르며 점점 마음속에서 스토리가 선명해졌다.


" 선배, 제 시나리오 좀 읽어주세요. "

마침내 나는 일주일동안 집안에 틀혀박혀서 단편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가장 먼저 보여준 건 아중선배였다.

학교 앞 벤치에 우리 둘은 나란히 앉았다.
옆에서 그녀가 종이를 넘길때마다 심장이 조여오고 침이 말랐다.
그렇게 삼십분동안 선배가 내 시나리오를 읽는 동안,
괜히 보여줬다. 아니야 피드백을 받자. 하며 마음속이 오락가락해서 미칠 거 같았다.
손 끝을 깨물거리고 다리를 꼬았다 피며 부산스럽게 하는데도
아중선배는 손을 턱을 괴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꼼꼼히도 읽었다.
마지막장의 종이를 넘기를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혼자 마라톤이라도 뛰고 온듯 심장소리가 쿵쿵거리며 주체없이 뛰기 시작했다.

" 오예는... " 
" .. 네..? "
" 오예는 작가가 되라."

그녀는 무심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라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 왜..요? "

왜..? 
살면서 내게 작가가 되라고 한 사람은 10살때 담임선생님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중선배 둘 뿐이다.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제야 그녀는 딱딱한 표정을 풀고는 눈웃음을 쳤다.

" 재밌으니까! "

그 말을 들이니까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기진맥진해졌다.
곧이어 영화가 굉장히 성공할거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이제 찍기만 하면 된다! 

그때부터 나는 자신감이 넘쳐서 일사천리로 촬영을 진행했다.
자연스럽게 내 촬영을 도와주는 동기들이, 선배들이 생겨나고,
품앗이 해준다고, 내 시나리오가 재밌을 거 같다고,  
물론 아중선배는 발 벗고 나서서 가장 중요한 조연출을 해줬다.

하지만 나는,
촬영이 끝나고 편집에 손도 대지 못했다.
다시 집에 틀혀밖혀서 옛날 영화를 보며 불성실한 가장처럼 굴었다.
학교도 나가지 않고 밥도 먹는둥 마느둥 잘 씻지도 않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랑도 심지어 아중선배랑도 연락하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 
어째서 내가 찍은 영화는 구린걸까?
나는 무얼 찍었나?
왜 내가 상상했던대로 되지 않았지? 
전생에 히치콕인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누구의 잘못이지? 
전문성없고 미숙한 스텝들?
연기 못하는 아마추어 배우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내 시나리오는 완벽했어.
근데 구리잖아. 역시 내가 구린거야. 그런거야.
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그런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을 봤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야?
하면서 나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책장에서 레포트용으로 쓰고 묵혀두었던 '봉인된 시간'을 꺼내 읽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고 
정해지지 않은 누군가를 향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볼펜이 닳도록 쓰고 또 쓰며 살아가고 있는데
아중선배가 내게 영화 DVD 하나를 보냈다.

로베르 브레송 '사형수 탈옥하다'

편지쓰기를 멈추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아중선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 선배, 편집실에 자리가 있을까요? 


오랜만에 본 아중선배는 조금 지쳐보였다.
나를 보자마자 꽉 끌어안고 내 등을 쓰다듬었다.
내 심장에 그녀의 말랑하고 물컹거리는 왕가슴이 닿자  
눈물이 주륵 흘렀다.

나는 편집실의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아서 
차분히 영상들을 변환하고 김밥 한 줄을 꾸역꾸역 먹었다.
다들 처음에는 귀신보듯 하며 뭐했냐고 왜 학교 안왔냐고 말 걸더니
시종일관 영혼없이 보이니까 더 이상 관심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미쳐 있는 관심은 따로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갖자, 본인들이 더 흥분해서는 앞다투어 말했다.

" 너 안나온지 한 한달 다 되가나?? 그러니 모르지! "  

일부러 얼마나 학교를 안 나왔는지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기분 나빴다.

" 뭔데, 난리죠? "
" 야. T가. 영화과 여자애들 3명을 그.."
" .. 섹스했다고요? "
" 야.. 너.. 좀 말이 쎄다.. "

하면서 내 귀에 속삭이길,
T가 영화과 여자애들 3명을 임신시켰다는 것.

순간 나는 지쳐보이는 아중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떠벌리기 좋아하는 그들이 말해준 여자애들 이름에 아중선배 이름은 없었다.
아중선배가 그 여자애들의 하소연에 시달리고 있다고, 

내가 찌그러져서 편지를 쓰는 동안 T는 번식했구나.
갑자기 내 오장육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작품 등록일 : 2019-11-24

▶ 핵앗싸 센빠이 3

흑흑 다음편 ㅜㅜ 다음편 제발요 성님 오예님 ㅜㅜㅜㅜㅜ
신지로   
기다리고 있었! t 특징 더 보여주지 궁금해지게스리~
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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