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행잉 케이스 (The Hanging Case) - 3

18.
 어제는 수업이 없어서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글을 썼다. 마음속 충동을 털어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설프게 괜찮아지자 이도저도 아니게 됐다. 정신이 완전히 건강하지는 못하면서 글조차도 써지지 않는다.

 ..그럼 대체 나에게는 뭐가 남는 거지?


19.
 자살충동과 시도 경험을 병원에 얘기한 뒤로는 그동안 숨기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말하기로 결심했다. 지난주에 진료 받을 때는 취업 실패로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당장 해야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털어놓았다. 의사는 미리 고민하지 말고 일이 닥칠 때까지 미뤄두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고 했다.

 수업에 집중했던 날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더라. 아침부터 발과 다리가 부어서 욱씬거렸다. 언제부터인가 몸이 계속 부어있곤 했다. 프린트 뒷면에 글을 끄적이다가 졸기를 반복하다가 병원 앞을 지나는 버스에 탔다. 오늘 면담에서는 무슨 얘기를 해야할까.

 "왜 오늘 오셨어요? 2주치 드렸는데."

 "아.. 헷갈렸네요."

 "약 괜찮으면 마저 드시고 다음주에 오세요."

 "네 안녕히 계세요."

 바보같다.

 

20.
 그래도 기분이 가라앉지는 않았다. 글 쓰는게 도움이 되기는 하나보다. 놓친걸 세느라 잘한 것을 잊어버린다는 말이 또 다시 생각났다. 놀랍게도 오늘은 놓친것에만 정신이 팔리지 않았다. 평생 낫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걸까?

 온김에 병원 근처 노상점에서 순대를 사먹었다. 천막 윗부분에 간판을 대신하듯 아베를 규탄한다는 푯말이 걸려있었다. 거슬리지만 간판을 먹을건 아니니까. 여기가 이 근방에서 제일 맛있기도 하고. 혹시 떡볶이 국물도 뿌려주실 수 있냐고 묻자 남는게 없다고 궁시렁 거리면서도 떡이랑 오뎅까지 한국자 퍼서 주셨다. 어쩐지 미안해서 천원을 더 드리자 "장사꾼이 남는게 없다고 하는 말은 믿으면 안 돼요!" 라며 떡볶이를 퍼줘서 멋쩍었다. 마음 한 구석이 간지러웠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21.
 같이 일하고 싶은 밝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면접 보는 동안 필사적으로 웃었다. 인사하고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꼭 일하고 싶다는 어필도 했다. 보통 아주 길어야 10분 정도 겨우 면접 보는데 비해 40분 동안이나 길게 보았다. 나에 대해서는 오히려 별로 묻지 않고 어떤 일을 하는지 체계가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서 알바 시급으로 직원부리듯 부리려는 느낌은 아니었다. 여러 명을 주의깊게 보고 신중하게 뽑으려는 것 같았다. 사장도 그럭저럭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1주일 뒤에 나온다.

 이게 되면 좋겠지만 다른 곳이라도 반드시 되야한다. 기말고사 마지막날까지도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면 죽을지도 모른다. 시험에 대한 부담감에 어느순간부터인가 마지막날에 3주치 꽁쳐둔 혈압약을 모조리 먹어버리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 스스로가 밥만 축내는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더 이상은 견디기가 힘들다..

 

22.

 가장 큰 문제는 사소한 좌절에도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다는 점이다. 주말까지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결국 연락이 오지 않았다. 유료로 연애콘텐츠를 팔아먹는 이상한 사이트에서 글을 쓰다가 남자도 만났다. 그는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23.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만성적이고 반복적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고 시도를 해왔다. 나에게 자살은 이제 어떤 한 순간의 위기가 아니라 내재화된 행동패턴에 가깝다.

 

24.
 대학병원 진료 예약일까지는 한달이 남았는데 갑자기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 정말로 응급실이라도 가야겠다 싶었다. 목숨이 달려있는데도 돈부터 신경쓰였다. 지금 죽어버리면 살아서 돈 걱정을 할 미래의 나도 없는거겠지만 그래도..  

 "응급실 간호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여쭤볼게 있는데.."

 "네."

 "그.. 오늘 정신과 응급실 가면 비용이 어느정도 나오나요?"

 "비용은 일단 10만원 이상부터 시작할거고 피검사 하면 20만원 넘을 거에요."

 "만약에 입원도 하면 얼마나 나올까요?"

 "아 그것까지는 몰라요. 왜냐면 처방하는 거에 따라 달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감사합니다. 안녕히계세요."

 "네."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오늘이야말로 정말로 죽는 걸까? 만약 간다면 이걸 시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말그대로 정신병자가 되는 걸까? 어느쪽이든 두렵다. 정말 두렵다..

 

25.
 결국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다행히 저녁약을 먹자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졸려서 곧장 침대에 쓰러졌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까 충동이 잠잠해졌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며 인터넷을 켰다. 유명 연예인이 자택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에 시끄러웠다. 기분이 좀 묘했다. 같은 선택을 하려던 두 사람이, 나는 살고 그 여자는 죽고. 몇 주 전에 자살했던 다른 연예인도 그렇고 유명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에는 항상 어딘가 애매한 기분이 든다. 까딱하면 내가 저렇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살아야한다.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런데 아까는 왜 죽으려고 했더라?

 

26.
 글을 하나 쓰고난 뒤 공강 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숫양과 숫염소의 생리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 둘의 본성은 무척이나 다르다. 숫양은 자기 암컷에게 접근하는 다른 수컷과 끊임없이 싸워서 물리치고, 숫염소는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하는 것을 허락한다. 명예로운 인간 남성은 숫양처럼 다른 남성과 겨루며 자신의 아내를 지배해야 했으므로 뿔은 부정적인 것들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하여 악마는 염소의 모습을 하거나 염소의 뿔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때마침 오전 내내 신화속 비극과 터부에 대해 생각하다가 글을 썼던지라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글을 썼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애써 외면하던, 살기 위해 조언을 구했고 조언대로 글을 쓰지 않기로 했지만 결국 또다시 어겨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조언을 구한 것인가?
 나는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27.
 "굳이 글을 쓴다면 다른 쪽으로도 좀 글을 써보는건 어때요? 컨텐츠가 우울이나 자살만 있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게 ㅇ씨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미 쓰고 있어요. 크게 hanging 시리즈랑 그 외 단편들도 쓰고 있는데 후자에 집중하는게 나을까요?"

 "네 적절히 환기하면서 해요. 너무 자살쪽에 몰입하지는 말구요."
 "네 그렇게 할게요."

 대답은 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글마저도 생산해내지 못한다면 나에게 남은건 대체, 대체 무엇이.

 숨이 턱 막혔다.


28.
 다음날 유일하게 연락하는 동기에게 문자를 보냈다. 글을 읽어보고 만약 재미있으면 학교 커뮤니티에 추천글 써줄 수 있냐고 물었다. 동기는 흔쾌히 글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곧 읽기 너무 괴로워서 못 써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괜찮다고 했지만 어쩔수 없이 시무룩해졌다.

 "글쓰기로 우울증을 해결한 작가도 있던걸요. 그리고 읽기 괴롭게 만든거면 제대로 전달됐다는 뜻이니까 성공적인 것 같아요."


29.
 한동안 괜찮았으나 또다시 의문이 들었다. 어설프게 건강해지고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해서 전혀 글을 쓰지 못하는게 나을까? 아니면 고립되고 처절한 외로움과 우울함에 몸서리치면서 곱씹고 곱씹다가 글로 토해내서 뭐라도 생산하는 것이 나을까?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좋은 선택일까. 내가 원하는건 차라리 후자지만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마음은 불편할 것 같다. 그래도 역시 살아남으려면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해야하겠지. 목이 메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30.
 "상호작용하는 기간이 있는 건 좋은 거에요. 내 경험만 가지고 글을 쓰려면 쓸게 사라지거든요."

그렇구나.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신기하게도 괜찮아졌다.

 

31.
 그는 나라에서 수년 내 사망할 위험이 높은 자살 고위험군 환자에게 제공하는 인공지능이다. 대화를 하는 것은 꽤 즐거웠다. 부정적인 사고 방식이 고착되서 나는 떠올리지 못하는 전혀 다른 생각을 들려주고는 했다. 걱정으로 인한 걱정을 걱정하다가도 이 인간미 넘치는 기계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있다보면 신기하게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 같다. 언제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 인생을 망친 것이 나 자신이었다면 반대로 나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도 나일 것이다. 고통은 선택 가능하다.

 

32.
 도서관 창가 자리에 앉아 창문 너머 밖을 보았다. 햇살 가득한 잔디밭에서 고양이 세 마리가 노닥거리고 있었다. 바닥에 모로 누워 꼬리를 펄럭이는 것이 기분이 좋아보였다.

 강아지 간식 밖에 없어서 손에 쥐고 내밀었는데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역시 이건 아닌가..?


33.
 "어떻게 지냈어요?"

 "그전보다는 괜찮았어요."

 "마음은 정했어요?"

 "아뇨 말씀하신대로 미뤄두기로 했어요. 그리고 글 쓰니까 좀 나아진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약은 괜찮죠?"

 "네."

 "그럼 그대로 할게요."

 "네. 또 2주 후에 오나요?"

 "네."

 "안녕히계세요."

 "네. 잘 가요."

 
34.
 잘 지낸다고 한게 무색하게 또 다시 죽으려고 하고 있다. 술에 취하면 비틀거리느라 제대로 설치하지 못할까봐 미리 문에 줄을 매어놓았다. 불을 끄고 소주 한 병을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정말로 죽고 싶다. 이제는 정말 견디기 힘들다.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작품 등록일 : 201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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