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골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 내가 지금 사는 곳이다. 

100키로가 넘으려고 하는 몸무게여서 생활은 전보다도 더 비활동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프리카 방송을 보거나 웹서핑, 

게임을 하는 게 하루의 다였다.

 

술 먹고 발 헛딛으면 바로 저세상으로 갈만큼 깊은 지하 자취방에서 나름대로 편안했다. 별로 불행하진 않았다. 단지 외롭고 심심하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뿐.

 

 

 

어느날 누워있다가 위험하지만 신박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용주골에 가보는 것이다. 지금 나는 마침 혼자 살고있고 외박도 자유롭다.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이 문화유적지도 아니고 핫플레이스도 아니므로 택시를 무작정 잡아타고 "파주 용주골로 가주세요.."라고 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잠입취재(?)를 하기로 했다.

구글에 "파주 유흥업소", "파주 여성일자리"등을 검색했더니 가게가 8개 정도 주르륵 뜨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를 받자마자 통성명도 하기 전에 내 키와 몸무게를 물어봤다. 

마음 같아선 160cm에 45kg정도의 연예인 프로필로 이빨을 까고 싶었으나 양심상 그럴 수 없어서 66사이즈 이상이라고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66사이즈까지밖에 준비된 옷이 없어서요..66만 되셔도 되는데;ㅋ"

"66 안되는데 어쩌죠?"

"(?진짜 어쩌란건지)죄송합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내가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내 스펙을 더 돌려서 말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엔 다음 가게로 전화를 걸기 전에 사이트에 남겨져있던 톡으로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문자나 톡, 전화 모두 가능하고 전화를 못하는 상황이면 수신자부담전화도 가능하고 그거조차 안되면 실시간으로 1:1대화를 사이트에서 요청해주기까지 한다. 일할 사람이 항상 부족한 실정인 걸 알 수 있었다. 

 

용주골이 망하긴 망했구나. 그래도 아직까지 공고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김성모 만화의 <용주골>이 연재된 것도 한참 오래 전인데 말이다. 그때도 망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미 오피스텔이나 키스방,대딸방 등등 각종 변종퇴폐업소들로 인해 주류에서 밀려났지만 꾸준히 집창촌을 찾는 매니아층이 있기에 유지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카톡으로 대화가 잘 진행되었다. 외모에 자신이 없고 몸무게도 많이 나간다고 했는데도 내 사진(과거사진)을 보고 가능성(??)을 봐줬는지 일하면서 살을 빼는 조건이면 가능할 거 같다고 했다. 나는 끝까지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정말 일이 간절하다는 감성팔이를 해서 포주를 구워삶는데 성공하였다. 그 사람은 놀랍게도 내가 전국 어디에 있던간에 지금 바로 데리러 올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이 밤 12시가 넘은 새벽이라 안될 줄 알았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검은색 승용차가 1시간 안에 도착했다. 우리집 바로 앞까지 말이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애써 숨기고 연기를 해야 했다. 구글에서 눈팅을 많이 했지만 면접(?)에 별 도움이 되는 정보는 없었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남자는 통통하고 키가 작았다. 그냥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프로그래머나 연예인 로드매니저를 할 거 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아.. 얼굴은 예쁘신데 살 많이 빼셔야 할 거 같은데요."

여기까지 힘들게 운전해서 왔으니 바로 안되겠다는 말은 못하겠지. 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들이댔다.

"우선 가보면 안될까요?"

 

 

"아..(당황)제가 담당이 아니고 저는 오늘 운전만 하러 온거라서요. 면접보는 누나가 따로 있어요."

 

 

내가 이미 차에 타있었기 때문에 내리라고 하기도 뭐했을 것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새벽 드라이브를 즐겼다. 운전하는 사람의 안색은 어두웠지만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4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청소년 절대 출입금지" "미성년자 출입금지지역".빨간 표지판들에 검은 스프레이로 써진 글씨를 보자 드디어 용주골에 다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여기까지 오니까 아무리 나라도 조금 무섭긴 했다. 

 

 

하지만 이곳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아니겠는가. 나는 내가 무사히 돌아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과감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차에서 내렸더니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허리까지 올만큼 긴 머리를 큰 집게핀으로 틀어올렸고 얇고 긴 가디건을 입고 있었다. 편한 차림이었지만 자다 나온 거 같진 않았다. 나를 보더니 우선 가게로 들어가자고 했다.

 

 

 

 

그곳의 풍경은 뭐라고 해야할까. 내가 상상한 번잡한 홍등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선 불이 켜져있는 가게가 별로 없었고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큰 건물도 전혀 없고 낮은 건물만 있었다. 

 

 

높아봐야 3층 정도. 인터넷에서 봤을 땐 컨테이너박스처럼 보이는 허접한 건물이었는데 그래도 그거보다는 훨씬 튼튼해보이고 컸다. 불빛도 빨간 등이 아닌 백열등이었다. 그런 똑같이 생긴 건물들이 줄지어 이웃하며 서있었다. 불은 꺼져있었지만 간판은 읽을 수 있었다. 

 

 

"붙임머리 전문", "홀복 대여", "편의점(프렌차이즈는 당연히 아니고.)"같은 작은 가게들이 그 거리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는데 내부도 (생각보다는) 넓고 깔끔해서 놀랐다. 원래같으면 아가씨들이 전시되어 앉아있어야 할 높은 바의 의자와 쇼윈도가 조금 쓸쓸해보였다. 

 

 

1층 입구 바로 안쪽에 자리한 방에 셋이서 들어갔다. 그 방은 노래방이랑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80키로도 넘을 거 같은데.."

 

 

여자 실장은 좀 당황한 거 같았다. 나는 불쌍한 척 하면서 지금 당장 일하는 건 무리인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청소라도 할 수 있고 내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있어보였음.) 거기 살면서 다른 아가씨들 심부름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 뭐라뭐라 떠들었는데 갑자기 실장이 말을 잘랐다.

 

 

 

"(여실장)어휴, 요즘 애들은 책을 많이 읽나봐~ 뭐라고 하는지를 잘 모르겠네. 그치?"
"(남자)응. 나도 잘 모르겠다. 근데 내가 들었는데 누나, 조건하는 애들 있잖어. 그 중에 90키로가 넘는데도 하고 다니는 애들이 있대. 몇만원 주고~"

 


"(여실장)야,그게 다 힘들게 돈벌기 싫고 놀고만 싶으니까 그런거야~ 근데 이름이 뭐에요?"

"가명이요.^^"
"그래, 가명아. 너 언니랑 한약부터 하러 가자. 내가 다니는 데가 있어~ 너 오기 전에도 뚱뚱한 애 하나 내가 데리고 있었다? 걔랑 다니던 데야. 걔 거기 다니면서 살 존나 많이 뺐어. 맨날 여기 두바퀴씩 돌면서 운동하구. 여기 두바퀴 돌아봤자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참나. 하여튼 걔가 그렇게 15키로 넘게 뺐는데 나중에 일 시켜놓고 돈벌게 해줬더니 통수를 까더라? 너는 안 그럴거지? 요즘 누가 나처럼 사람 좋게 뚱뚱한 아가씨를 데리고 있어줘~?"
"(가명이)네...맞아요. 너무 감사해요 언니."

 


"그년이 일도 나중엔 안하고 맨날 애들이랑 같이 호빠 놀러다니고 도박이나 하고 그러다가 돈 다 날린거야. 근데 내가 다시 받아줄 줄 알았나보지? 그래서 꺼지라고 했어~ 내가 알 바야? 몰라, 그 돼지같은 년,,ㅠㅠ"
"(가명이)헐....ㅠㅠ"

이런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2층을 올라왔다. 남자는 어딘가로 또 차를 운전하러 갔다. 하지만 누군가를 또 데리러 가는 거 같진 않고 그냥 자러 가는 거 같았다.

 

 

"너 오늘은 우선 여기서 자. 너 여기서 할 일 없으니까 일단 그냥 쉬어. 이제부터 뭐 먹지도 못할 테니까."

 

 

2층은 예상대로 방이 여러개 있었는데 대충 어림잡아 2층에만 5~6개 정도 있는 거 같았다. 방마다 구조는 다 달랐는데 화려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세련된 느낌으로 예쁘게 꾸며진 건 아니고 좀 키치하고 조잡스런 느낌이긴 했다만. 어쨌든 방은 예뻤다. 

 

 

내가 들어간 방은 8평 정도 되는 공간이고 안에 작은 화장실이 딸려있었다. 여기서 과거에 수많은 정사가 벌어졌을 거라 생각하면 좀 찝찝할 법도 한데 나는 둔감한 성격이기 때문에 그냥 침대에 누워서 편하게 쉬었다. 

 

방 안에 있는 화장실은 문은 어디다 버렸는지 없었고 빨간색 작은 구슬 여러개 주렁주렁 달려있는 애기 모빌은 아닌데 길죽하고.. 그걸 뭐라하는지 모르겠는데 그걸로 대충 가려져 있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침대에서보다 오히려 기분이 더 이상했다. 음, 여기는 좁아서 정사~를 할 수가 없겠구나. 그럼 여자가 아마 씻겨주는 그런 서비스를 했겠네. 윽.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좁은 곳에서 매번 낯선 남자들을 맞닥뜨리는 그녀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래도 그냥 보통 여자일뿐이지. 하고 생각하니까 더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 험난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남자들은 그리 공감 못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보상받을만큼 그녀들은 충분한 돈을 받는걸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페이에 대한 부분은 물어볼 타이밍이 애매했고 이 부분만 잘 기억나지가 않는다.)

 

 

 

서랍 속에는 생리대 1개, 머리빗 하나가 들어있고 텅 비어있었다. 그렇게 멍을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그런데 라이터를 깜빡하고 두고 온 것이 아닌가. 여길 나가서 편의점까지 혼자 걸어가기가 무서웠다. 

 

 

누가 날 습격한다거나 그럴 거 같진 않았지만 혹시 한명이라도 "여기 왜 왔어요? 누구에요?"하면 괜히 겁이 날 거 같았다.

왜 겁을 냈냐면 아까까지는 분명 인적이 드문 골목이었는데 바깥에서 드디어 손님들로 추정되는 남자들의 인기척이 들렸기 때문이다. 여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높고 작은 창문으로 바로 내다보며 그들을 찾아봤다. 

 

 

이 골목에 비해 큰 주차장(으로 추정되는 공터)에 차가 세워져있고 두세명의 남자들이 술에 취해 떠드는 소리였다. 어둡고 멀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20대일거 같았다. 뭐라고 떠드는지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바깥에 나가는 건 포기하고 안에서 해결을 보기위해 방문을 나섰다. 복도엔 아무도 없었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계단 밑에는 어떤 젊은 남자(많아봤자 30대 정도로 추정)가 서있었는데 통화를 하는 내용이 손님으로 보이진 않았다.

"너네들 또 일 끝나고 놀러갔냐? 응, 언제 올건데? 난 지금 들어왔지. 어~알았어. 재밌게 놀아."

"저, 죄송한데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남자는 생각보다 인상이 험악하지 않았지만 키가 커서 덩치가 있어 보였다. 가죽자켓에 헐렁한 긴 바지. 자세히 보니 얼굴에는 중간크기의 흉터가. 살펴보면서 그런 위압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 남자가 라이터를 주면서 말했다.

"새로 왔어요? 언제부터 일해요?"

 

 

"맞는 사이즈의 옷도 없구요. 일도 언제 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분위기를 풀려고 웃었는데 그 남자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가씨들한테 살을 빼라고 하는 이유가요. 자신감 때문에 그래요. 손님이 안 오니까 더 움츠러들고 축 쳐지고. 그러면서 표정도 안좋아지고. 그렇게 있으면 힘들잖아요. 옷은 뭐든 본인 스타일에 맞는대로 입을 수 있어요. 내일 옷 맞춰주는 이모 출근하니까 알아보시면 될 거에요."

 

 

 

"제가 한복이라도 입고 일해야될까요?"

 

 

이건 농담은 아니었고 임권택 감독의 <노는계집:창>이라는 영화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이 하얀 소복같은 한복을 입고 방석 위에 줄지어 앉아있던 장면이 생각나서 한 말이었다. 다행히 알아들었는지 그 남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뭐든 본인한테만 맞으면 괜찮아요. 그리고 주방에 이모도 출근하니까 내일 뭐 먹고싶으면 해달라고 그러세요."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삼촌, 여기 아가씨 한명 새로 왔거든요. 음료수 올려주세요. 섞어서요."

 

 

그리고 정말 1분도 안돼서 음료수가 도착했는데 실론티(홍차), 제티(초코우유), 핫식스(에너지드링크), 야관문(이건 뭔지 잘 모르겠음), 솔의 눈 등등 다양한 음료수들이 한 상자 올라왔다. 내 방이 어딘지 물어보고 남자는 그걸 옮겨주고나서 쉬라고 한 뒤 나갔다. 아, 담배 또 피워야 하는데. 라이터 그냥 안 돌려줄걸. 그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방 밖으로 나갔는데 이번에는 복도를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여실장이 날 불러세운 것이다. 

 










 


작품 등록일 : 2020-06-12

▶ 쥐덫

ㄱ ㅐ재밋오
Fake7668   
이 글 뭐야 홀린 듯이 다 읽었어
만두   
와 이거 뭐냐 글 잘 쓰노.
관리자   
뒷편 궁금한디..
일렁이는파...   
다음편 있으면 꼭 보고 싶은데
아니****   
왜 용주골로 갔어?
myicesmile   
재밌다. 이 다음도 나오나?
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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