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괴식. by보패(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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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패 | 2019-09-25 |
나의 할머니는 요리를 엄청 못 한다. 솥뚜껑 운전 60년 이상인데 할머니가 만든 음식은 대체로 맛이 없다. 아니 그냥 “맛이 없다”고 표현하기엔 파격적이다. 할머니의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웠다. 어떻게 저런 걸 생각해 낼 수가 있지...? 싶은 메뉴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요리를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외국인 새댁처럼. 기억 속에서 애써 지워낸 괴식 메뉴 중 하나 떠오르는 건 양배추 찌개. 볶음인지, 조림인지, 스튜인지 모를 이상한 모양새였는데 할머니는 찌개라고 주장했다. 양배추가 몸에 그렇게 좋단다. 할머니는 내가 진절머리를 내며 안 먹는다고 할 때까지 권했다. 한 솥의 양배추찌개는 결국 할머니가 혼자 다 먹었다. 그렇다. 나의 할머니는 언제나 특정 식재료에 꽂혀서 한동안 모든 음식에 그걸 때려넣어 만드는 버릇이 있다. 빌어먹을 아침 정보방송..! 저주받을 방송국 놈들..! 기억력이 감퇴해 “돌아서면 까먹는다”고 자기 입으로 하루 열댓번도 더 말하는 할머니. 어째 방송국 놈들이 뭐 하나 몸에 좋다고 특집방송으로 떠들면 요거 하나만큼은 귀신같이 기억한다. 그리고 맛과 향과 모양새의 조화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모든 음식에 그 재료를 때려넣는 것이다. 예를 들어... 된장찌개에 매실청 넣는 사람 봤냐? 있더라. 응. 있어. 매실청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더라구. 내가 그때 그거 특집방송 테마로 제안한 놈 잡아다가 올드보이 사설감옥에 가둬서 아주 그냥 묶어 놓고 입에다 깔대기 꽂아 매실청만 먹이고 싶었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괴식 요리사로 논란을 일으켰던 맹기용 (자칭)쉐프를 기억하는가? 그의 괴식 퍼레이드를 보면서 나는 아아 내 할머니 같은 괴식 요리사가 세상에 또 있구나, 어쩌면 저 이가 내 할머니의 손주로 태어났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와 내가 실수로 집이 바뀌어 태어난 걸까, 하는 헛생각을 3초쯤 했다. 그러고보니 요새 맹기용은 뭐 하고 살까? 되게 웃겼는데. 아무튼. 나의 할머니는 어떤 의미에서 존경스럽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자기가 먹을 음식은 스스로 요리하고, 차려먹고, 설거지를 한다. 재작년에 할머니가 담석이 생겨서 생애 첫 입원을 했을 때의 일이다. 끼니를 절대 거르지 않는 할머니가 애처럼 어찌나 밥 투정을 부리는지, 할머니 제발 한 숟가락만 더 먹자 하고 어르고 달래며 떠먹여 줘야 했다. 그때 나는 할머니가 낳은 세 명의 자식들보다 더 많이 병상을 지켰다(별로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입원한 지 일주일쯤 된 날, 점심 몇 술 억지로 넘기고 잠든 할머니가 슬픈 얼굴로 깨어나서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할머니, 무슨 꿈이었는데? 밥 하는 꿈... 꿈에서 밥을 했다고? 으응, 집 가서 밥 하는 꿈... 된장찌개 끓이고 밥 지어서... 쟁반에 다 담아가지구 테레비 앞에 놓고 먹을라는데...깼어. 그 말을 듣고나니 이상하게 가슴이 짠ㅡ해지면서, 아, 이 사람한테는 지금 하루 세 끼 자기 손으로 밥 해서 챙겨먹는 게 삶의 낙이자 이유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食에 대한 강한 애착. 그거 하나만큼은 내가 아무래도 할머니 닮은 것 같다. 할머니, 피는 못 속이나 봐요. 그렇지만 내가 양배추 찌개를 끓이는 일은 영원히 없을껴. -끝- 뒷이야기: <할머니의 요리 은퇴>편. https://m.idpaper.co.kr/counsel/item/item_view.html?cnslSeq=589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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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꿈 이야기 너무 귀여우시다 ㅠ | ||
벌꿀오소리 | 2019-0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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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잘쓰구 집밥아트 사진 보면 기분까지 좋아져 항상 잘보구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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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읗 | 2019-0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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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에 치킨 넣고 끓이는 사람도 있음.왜 넣었냐고 물어보니 고기니깐 넣었데.진지했음 그나저나 맹기용은 뭐하나.아직도 요리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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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 | 2019-0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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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친은 요리도 못하는데 애들 밥은 먹여야하니 라면에 온갖 잡탕을 넣어 꿀꿀이 꾹밥 끓여주곤 했었지.. 언제나 예술적인 집밥사진과 글솜씨 항상 감사하게 잘 보고 있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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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j**** | 2019-0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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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먹먹하네 | ||
뿌아아앙구 | 2019-0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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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혹시라도 집밥아트 모아모아서 출판이라도 하면 좋겠다 그럼 나 꼭 소장할테야 요리사진인데 뭔가 치유받는 느낌이 든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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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읗 | 2019-0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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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글 너무 찰져 ㅜㅜ | ||
na***** | 2019-0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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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언니 하루종일 집에서 진짜 요리만 하는겨..? 한끼 만들고 걍 아무 그릇에나 담아 먹고 설거지하고 정리만 하는데도 바로 다음 식사 준비해야 되던데..시간이 엄청 소요될텐데 열정 대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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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 2019-0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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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이 언니도 너무 좋지만 할무니 너무 실험정신 오지시네 귀여우시다... | ||
as*** | 2019-0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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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안줄수가읎군.. 얼마안되는 돈이지만 이걸 써.... | ||
ju***** | 2019-0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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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언니. 요리를 효율적으로 시간 단축해서 하려고 궁리를 많이 함. 소분냉동 적극 활용하고. 짬짬이 다음날 식단 계획하고. 조리는 효율적으로, 플레이팅은 색과 모양을 고려해서. 쉬는 날엔 마음껏 공들인 요리를 하지만 대부분은 1분이라도 단축하려고 애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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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패 | 2019-0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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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무니.. ㅠㅠ | ||
김씨 | 2019-09-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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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리스펙! | ||
ne******* | 2019-09-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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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도 되겠다 이런 에피소드 쓰고 요리 사진 올려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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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 | 2019-09-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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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해 글 잘 쓴다 또 써줘 돈 드렸으 | ||
ei****** | 2019-09-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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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책으로 보고 싶다 글 넘 좋아 사진도 | ||
co****** | 2019-09-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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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 ||
no***** | 2019-09-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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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다 | ||
bi****** | 2019-09-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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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글도 너무 아름다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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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오징어 | 2019-09-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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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라는 언니들아 고마워. 기분 조타. 출판은 제안 오는 곳 없으면 자비출판이라도 할게 내 맘이 내킨다면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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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패 | 2019-09-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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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행복은 뭘까하고 생각하게되네.. | ||
sh****** | 2020-0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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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그래서 양배추 찌개 어찌만들어? 옛날에 임성한 드라마에 양배추고추장찌개 있었는데 빨갛게 끓이는 거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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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 2020-0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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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 방송국놈들 존나 공감ㅋㅋㅋ | ||
이드페퍼 | 2020-04-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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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아직 건강하시지?ㅜㅜ | ||
fu****** | 2020-04-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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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식ㅋㅋㅋㅋ그것은 바로 우리 엄맠ㅋㅋㅋㅋㅋㅋ몸에 좋다면 자꾸 그걸 집어넣음 | ||
Toffl | 2020-04-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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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아니. 안 건강하셔. 요리도 은퇴하셨어.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어하고. 저 글 쓴 이후로 일이 좀 있었어. 난 바보처럼 할머니가 몇 년은 더 건강할 거라고 믿고 있었나봐. 무섭도록 짧은 시간에 시들어버렸어. 아 저러다 돌아가시는 건가? 싶게. 조만간 할머니 이야기 글 또 써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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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패 | 2020-04-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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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패는 글도 잘쓴다. 팔방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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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 2020-04-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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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 생각나서 눈물났다 | ||
im******** | 2020-04-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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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뒷이야기 썼음 <할머니의 요리 은퇴> https://m.idpaper.co.kr/counsel/item/item_view.html?cnslSeq=589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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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패 | 2020-04-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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