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짜파게티. by보패(48)
보패 2020-02-03
얼마 전에 짜파게티를 오랜만에 먹었다.

최소 10년만의 일이었다. 달걀후라이 얹은 짜파게티+언니의 시모가 보내준 총각김치, 이렇게 차려서 저녁으로 먹었다. 갑자기 왜 짜파게티를 먹었냐면, 이날 뜬금없이 고등학생 때 엄마가 해 줬던 아침밥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지금과 달리, 그때의 나는 아침밥을 먹느니 10분이라도 더 자겠다고 하는 청소년이었다. 엄마가 억지로 밥상 앞에 앉혀도 몇 술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0교시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면 입이 깔깔해서 밥알이 안 넘어갔다.

엄마는 나를 위해 정성 들인 컨셉의 아침밥을 차리던 것을 고심 끝에 포기했다. 밥, 반찬, 국으로 구성한 한식 상차림 말이다. 뭐라도 좋으니 내가 다 먹어주기만을 바란 것 같다. 그렇게 영양 밸런스와 맛의 조화를 추구하던 사람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아침상에 올리기 시작했다. 오직 나만을 위해.

동네 떡집에다 아무 고명도 묻히지 않은 찹쌀 100%짜리 찰떡을 주문해서 소분냉동해둔 걸 노릇하게 구워 꿀을 뿌린 것이라든지.
짜파게티에 달걀후라이를 올린 것이라든지.
아무리 졸라도 이 썩는다고 좀체 사주지 않던 설탕범벅 시리얼이라든지.
식빵에 계란물 묻혀 굽고 딸기잼 얹은 것 등등.
나는 그제야 비로소 아침밥 먹고 다니는 습관이 들었다.

근데 문득 그때 먹던 짜파게티가 떠오른 것이다.
저녁의 추운 골목길을 입김 호호 뿜으며 걷는 와중에.
뇌는 참 요사스럽다. 아주 작은 감각의 자극만으로도 멋대로 기억 서랍의 엉뚱한 칸을 연다. 너 이 생각 나지 않니? 하고 불쑥 디밀면, 어어어, 하고 따르게 된다.
홀린 듯 편의점에 들어가 짜파게티 한 봉지를 샀다.


절절 끓는 뚝배기로 짜파게티를 만들어 주던 엄마.
먹는 동안에 식지 말라고, 끝까지 따뜻하게 먹이려고 그런 거겠지?
국물 걸쭉하게 끓인 촉촉한 짜파게티 면발을 달걀 노른자 터트려 비벼먹는 것이 어찌나 꿀맛이었는지. 너무 뜨거워서 입천장이 델까봐 개처럼 헥헥거리며 천천히 씹어먹었다. 바닥에 남은 후레이크의 잔해들까지 한 점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을 만큼 맛있었다. 겨울 새벽에 그거 한 그릇 먹고 등교길에 나서면 뱃속 뜨뜻하고 든든했는데.

사랑이 뭘까, 곰곰 생각해보면
역시 그 사람 입 속에 맛있는 걸 넣어주고 배부르게 해 주고픈 마음 아닐까 싶다.
그 때의 엄마는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한 것 같다.
(아침부터 애한테 라면을 먹이다니, 라고 훈계하고 꾸짖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인데 엄마는 개썅마이웨이 노선을 택했다.)
그게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나 사랑했는데 어떻게 결국 나를 두고 한국땅을 떠 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손으로 짜파게티를 끓여먹으니 예전 그 맛이 안 난다.
곧 엄마를 만나러 갈 거다. 그때 비결을 물어봐야겠다.

끝.


집밥 아ㅡ트 (13)탄, <19년아듀>편 업뎃.
오늘 업뎃한 신상. 19년도의 남은 집밥 사진을 모두 털었다. 문학관으로 보러 오세요들.
https://m.idpaper.co.kr/book/view.html?workSeq=4214



요리는 사랑이지
Berebere36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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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눈물날 것 같다
me*******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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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니 글도 잘쓰네.. 문학이다ㅜㅜ
wi******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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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복숭아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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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울엄마도 나 고삼때 아침에 라면끓여줬다는 따뜻하게~~~~~~~~~~~
su********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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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될거같아..
모냐모냐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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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해지고싶다
yj**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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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다 보패언니 이 사연들로 에세이 책 내
ja***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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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반숙 노른자에 짜파게티에다가 파김치 얹어서 먹고싶다아아아ㅏㅏㅏㅏㅏㅏ
he********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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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 언니
울엄마 돈 벌러 한국땅 뜨고 타국에 눌러앉은지 15년째.
-사생활 관련된 얘기라 중요한 부분 삭제함-
보패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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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어머님 행복하세요
바질칼국수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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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다 글
clover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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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찌찌파티로 보이냐 왜
nu******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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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울엄마 반성해라
부동산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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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 돌고 마음 따뜻해지고 완벽한 글이다
je********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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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요리하고 나오는 설겆이까지 기꺼이 사랑하는거지?ㅠ 정말 굉장한 집밥이다
ss****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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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어머니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문소리 같아! 대학 보냈으니 그걸로 내 할일은 끝났다 생각하셨는지도
ho******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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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언니

설거지는 어쩔 수 없으니 하는 거다ㅋㅋ. 똥 싸면 물 내리는 것처럼.

다만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치우기 위해서 신나는 댄스음악 위주로 설거지BGM 플레이리스트를 항시 여러 버전 구비해둔다. 요즘엔 신화 노래 들으면서 설거지함.

식기세척기 놔둘 자리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코딱지만한 주방은 힘드러. 흑흑.
보패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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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글써줄때마다 고맙다 막
ji*******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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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패언니 엄마닮았지? 매력녀이실것같앵♡
as******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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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어렸을 땐 아빠 판박이라는 소리만 들었는데 30 넘으니까 엄마 판박이라고들 한다. 오랜만에 친척 어른들 만나면 다들 깜짝 놀란다. 얘가 이젠 지 엄마 빼다 박았네, 라고.
성격이랑 취향도 많이 닮았다. 이제 같이 살지도 않는데. 유전자가 참 무섭다. 나이 들수록 엄마 유전자가 더 크게 발현되는 느낌이다.

엄마는 확실히 매력녀인데 나는 그점을 안 닮았다.
남자를 좋아해야 뭐라도 껀수가 생기는데
난 남자 아니 인간을 안 좋아한다.
나이 먹을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큰일났다.
ㅋㅋㅋㅋㅋㅜ
보패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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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어마어마.ㅜㅜb
월천씩 갖다바칠게. 언니랑 결혼하고싶다.
mo******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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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월천? 콜.

자기야 우리 식은 생략하자.
프러포즈는 다이아몬드 링 말고 스메그 오븐으로 해죠.
보패 20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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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거 보고 참꼬 참다가 짜왕먹움
ch***** 20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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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방법이네. 아침에 무조건 입맛나는걸로!
wk***** 20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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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함...울엄마도 그랬는데 ... 빨리 취직해서 효도해야지
Sa**** 20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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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나.. 아니다.
보패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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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검색 키워드 알려달라 할라했는데 한방에 찾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R2**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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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그냥 달아줘 찾아가기힘둘옹
ooweas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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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오 나도 바로찾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ooweas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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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쉬운갑다 하고 보패라고 검색해봤네 ㅋㅋㅋㅋ
못찾겠다 ㅠ

+찾았다!!!ㅋㅋㅋㅋ
we**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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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언니랑 친구 하고 싶다 요리 친구 말동무. 나 홈레스토랑 쓴 친구 ㅋㅋ
ny**** 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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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제대로 차린 밥 한끼 얻어먹는게 소원일 정도로 방치당하고 커서.. 저런 엄마의 사랑을 받는 기분은 어떨까.. 정말 궁금하다...
엄마가 날위해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 한번 받아보고 죽고 싶지만,, 이미 이룰수없는 꿈. 우리엄만 전업주부면서도 집안일이면 치를 떨면서 싫어하는 ㅋㅋ

시어머니 싸주신 반찬 처음 얻어먹었던날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qp**** 202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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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찾게 힌트 좀 줘
보패 요리 팁들 보고 싶어
ha***** 202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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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문학글로 가야되지않겄소 돈드림
키위** 202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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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구먼..
5문단에 감각 부분 진짜 신기해
춥거나 따갑거나 그런 감각이 기억을 불러내는거
특히 어릴때 기억은 떠오르면 하루가 행복해져
jj**** 202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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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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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다 ㅎㅎ
de*******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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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혹시 한달에 식비 어느정도 나와?
po******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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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요샌 20-25 (외식비 제외, 장바구니 식비만)
*요즘엔 쌀은 시골에서 보내주는 거 먹고 있어서 쌀값은 0원
보패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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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몰라 ㅠㅜ 언니글은 아몰라 돈주기로 답할께 ㅠㅜ
bo*****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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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사랑이야 눈물난다
en*** 202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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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 202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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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
202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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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아침부터 찡하다.... 너무 좋은 글이네
김철* 2021-08-29
답글쓴이 돈주기   
이글 보고 나도 뚝배기 짜파게티 해먹었다.
불 쓰고싶었는데 엄마가 싫어해서 전자렌지에다 했다...
날계란은 꼭 넣는 게 포인트.
판리자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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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패언니 안녕하시죠? 어디서든 잘 계세요
ha******* 2024-08-18
답글쓴이 돈주기   
ㄴ2222 언니 더운데 항상 건강하세요
추천꾼 2024-08-18
답글쓴이 돈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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