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단편] 레드 아이스

2022.01.27.목/ 썰 by 스티븐킹 발닦개


(무료상담) 썰을 주면 단편 소설로 써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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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소리야."

 

유진은 황당함에 입을 벌렸다. 기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말했다.

 

"밴드 나간다고."

"그러니까 왜?"

 

유진의 물음에 기태가 불만스럽게 대답했다.

 

"밴드 가입하면 여친 생기는 줄 알았는데 안 생겨서."

"……."

 

예상을 벗어나는 한심한 대답에 유진는 입을 벙긋거리다가 다물었다.

 

"3주 뒤에 공연인데?"

 

겨우 입을 떼자 기태는 귀를 후비며 말했다.

 

"내가 알 바야?"

 

유진은 충격에 머리가 굳어버렸다. 책임감 없는 새끼인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무책임할 줄이야.

 

"암튼 그렇게 알고 나는 간다."

", 김기태!"

 

유진이 기태를 따라나섰지만 기태는 단호했다. 밴드 실로 돌아온 유진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공연은 망했다……."

 

이미 홍보 전단지 뿌리고 공연장 대관도 마쳤는데. 유진이 회장을 맡은 이번 기수는 유독 개판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막장일 줄은 몰랐다. 내가 왜 회장을 했을까, 유진은 51번째 후회를 했다.

 

2주 뒤로 다가온 여름 방학 공연을 앞두고 골머리를 앓으며 유진은 간신히 기말고사를 치렀다. 기진맥진한 채로 밴드 실로 돌아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인원을 여유롭게 뽑았어야 했는데.'

 

유진이 속해있는 밴드 '레드아이스'는 소수 정예로 운영되고 있었다. 한 학번마다 보컬과 베이스, 드럼 한 명씩과 기타 두 명을 뽑아 활동했다. 1, 2학년 2년 동안만 활발히 활동하면서 학점을 말아먹고 3학년부터는 대부분 군입대를 하는 루트였다.

 

'아무래도 땜빵하려면 선배 중에 도와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는데.'

 

다 군대 가서 없나……. 울적해진 유진이 연락처를 뒤졌다. 희수 선배 안 되고 성진 선배 안 되고……. 시간이 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선배들한테 이런 이유로 연락하기 창피했다. 마치 자신이 무능한 회장이라는 것을 이실직고하는 것만 같았다.

 

'…… 어떡하지.'

 

정말 아무도 없는 건가. 시무룩하게 스크롤을 내리던 유진의 눈에 연락처 하나가 들어왔다.

 

[레드아이스 15기 이현성 선배]

 

'현성 선배는 베이스인데…….'

 

하지만 3기수 위까지는 다 군대에 들어가 있거나 취업 준비로 바빴고 그 윗기수는 향수를 갖고 공연을 감상하러 오는 것이기 때문에 부탁하기 난감했다. 다행히 현성은 베이스 외에 다른 악기들도 잘 다루긴 하니까.

 

'어쩔 수 없다. 현성 선배밖에 없어.'

 

유진은 무거운 손가락을 움직여 메세지를 보냈다.

 

-: 선배 혹시 통화 가능하세요?

 

답장은 금방 왔다. 역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구나. 현성은 종종 밴드 실에 올 때마다 항상 무표정으로 핸드폰 게임을 하고는 했다.

 

-상대: 지금

-상대: 내가 걸게.

 

메시지가 오기 무섭게 손에서 진동이 울렸다. 유진은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켜고 전화를 받았다.

 

", 선배.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야?]

"혹시 다다음주 토요일에 시간 괜찮으세요?"

[괜찮긴 한데, ?]

 

현성의 물음에 유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 사실 기태가 지난주에 밴드를 나갔어요. 정기 공연해야 하는데 기타 칠 사람이 없어서, 부탁드릴 사람이 선배 밖에 없어서 연락드렸어요."

 

문장 끝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몇 초 동안의 시간이 하루처럼 느껴졌다.

 

[그래. 내가 할게.]

"감사합니다!"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말에 유진은 허공에 허리 숙여서 인사했다.

 

[애들 모아서 오늘부터 합주 연습 시작하자.]

", 제가 연락 돌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 그래. 이따 보자.]

 

통화를 마치고 긴장이 풀린 유진이 소파 위에 털썩 기대 누웠다. 기태가 나간 16기 단톡에 저녁 연습 공지를 하고 핸드폰을 든 손을 다리 옆으로 툭 내려놓았다.

 

'다행이다.'

 

형광등이 눈이 부셔서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순식간에 수마가 몰려들었다.

 

잠에서 깬 것은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 때문이었다. 문가를 돌아보자 막대 사탕을 입에 문 현성이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 유진아."

"선배 안녕하세요."

 

유진이 황급히 눈가를 비비며 그를 맞이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벌써 720분이었다. 유진은 당황했다.

 

"다른 애들은?"

", , 그게……."

 

안 왔나 봐요. 유진이 어쩔 줄 모르면서 대답했다. 연습 시간으로 공지한 게 7시였는데 아무도 없다니. 유진은 다급히 단톡방을 열었다.

 

-씹새끼2: 나 오늘 여친이랑 데이트

-씹새끼2: ㅅㄱ

-개새끼1: 예쁘냐?

-개새끼2: 오 준서기 여친 생김?

-씹새끼2: ㅇㅇ 그래서 바쁨 ㅅㄱ

 

씹새끼1인 기태 다음으로 유진을 괴롭히는 씹새끼2의 데이트 선언을 시작으로 신변잡기를 얘기하더니 나머지는 온다 안 온다는 말조차도 없었다. 유진은 망연자실한 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아니야. 어차피 각자 파트 연습해야 하니까 우리끼리 먼저 연습하자."

"……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 현성이 웃으면서 거듭 사과하는 유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현성은 마치 현역으로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익숙하게 보관함으로 다가가 케이스를 열고 기타를 꺼냈다. 케이스에 먼지가 조금 쌓여있어서 민망했다. 둘은 기타를 하나씩 손에 들고 자리 잡았다.

 

"톤부터 조절해볼까?"

"."

 

현성이 초크를 잡고 줄을 튕겼다. 능숙하게 이펙터를 조절하는 모습에 유진은 잠시 넋을 놓았다.

 

'정신 차려.'

 

유진이 양 뺨을 찰싹찰싹 쳤다. 마음을 다잡고 줄을 튕겼다. 소리를 듣던 현성이 말했다.

 

"톤을 좀만 몽글몽글하게 해봐."

 

몽글몽글? 유진이 그게 뭘까 생각하며 이펙터를 조작했다.

 

"이렇게요? 아니면 이렇게요?"

 

몽글몽글에 가까운 것 같은 후보군 몇 개를 추려서 현성에게 들려주었다.

 

"이거 좋네. 너 진짜 톤 잘 잡는다."

 

현성이 미소지으며 유진의 머리를 헝클었다. 유진은 귀가 빨개진 채로 바닥만 보며 못 들은 척 했다.

 

"이만 갈까?"

 

현성의 말에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잠깐 연습한 것 같은데. 이래서야 남은 2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았다.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밴드 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왔다. 학교 후문을 나서면서 유진이 거듭 인사했다.

 

"선배님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고마우면 같이 야식 먹을래? 배고프다."

 

현성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 , 좋아요. 제가 사드릴게요."

"아니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선배인 내가 사줘야지."

"괜찮은데……."

 

현성이 앞장서서 근처 선술집으로 향했다. 여름밤은 습하고 더웠다. 유진은 티셔츠를 붙잡고 팔랑거렸다. 둘은 자리에 앉으며 꼬치구이와 생맥주를 시켰다.

 

"맥주 먼저 주세요."

 

현성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유진도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함이 온몸에 퍼져가자 이제서야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꼬치구이가 나왔고 지글지글 익을수록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났다. 유진은 그제서야 자신도 배가 고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현성이 눈꼬리를 접으면서 집게로 꼬치를 집어 유진의 접시에 내려놓았다. 소주도 시켜서 술을 말아 유진에게 건넸다. 알코올과 잘 어울리는 맛이어서 유진은 저도 모르게 홀짝거리다 보니 꽤 많이 마셨다. 시야가 점점 기울어지자 마음속에 담아둔 말들이 입 밖으로 나왔다.

 

"제가 회장 일을 잘 못 해서 그런 걸까요?"

 

유진이 자책과 푸념을 담아 말했다. 술기운에 상체가 자꾸만 기울었다.

 

"맨날 과제 있다고 합주 빠지려고 하고 데이트한다고 안 오고 연습도 안 해오고 너무 힘들어요."

 

아예 탁상에 엎드린 유진이 한탄했다.

 

"아니야, 잘하고 있어. 애들이 책임감이 없어서 그래."

"그치만 이정도로 비협조적인 건 제 책임인 것 같아요."

"…… 내일 내가 연락해볼까?"

"그럼 감사하죠."

 

선배가 말하면 좀 듣지 않을까. 고맙긴 했지만 유진은 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선배의 권위에 기대야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 그럼 내가 연습 공지할게. 2주 동안 잘해보자."

"감사해요, 선배……."

 

유진이 가물가물한 눈을 끔벅이며 웅얼거렸다.

 

"."

"?"

"형이라고 불러."

 

수줍은 듯 현성의 볼에 보조개가 패었다. 유진은 멍하니 현성의 뺨을 응시했다.

 

"대답."

"? . . 현성 형."

 

유진이 계속해서 현성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만 가자. 현성은 만족한 듯이 유진을 일으켜 세워 부축했다.

 

숙취에 눈을 떴을 때는 한낮이었다. 씻고 해장국을 먹고 누워서 조금 빈둥거리다가 시간이 되자 밴드 실로 향했다.

 

'선배 말은 듣겠지.'

 

과연 망나니 부원들이 와있을까 긴장하며 부실 문을 열었다. 다행히 세 명 모두 와 있었다. 표정은 뚱해 보였지만.

 

'무려 정각에 오다니.'

 

유진이 감격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유진이 왔구나. 여기 앉아."

"."

"유진이도 왔으니까 본론을 말할게. 남은 2주 동안 여기서 먹고 자면서 합주 연습할 거야. 이의는 안 받아."

 

아연실색한 멤버들 앞에서 현성이 해사하게 웃었다. 지옥의 합주의 시작이었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는 사람들을 최대한 동원하기도 했지만 선배들이 공연해온 가닥이 있어서 입소문을 타고도 많이 왔고, 분위기도 좋았다. 대기실로 돌아온 다섯은 지인들의 꽃다발 세례에 파묻혔다.

 

"드디어 끝이다!"

 

망나니 삼인조 중 누군가가 감격에 차서 외쳤다. 유진은 시간 내서 찾아와준 선배들과 지인들을 데리고, 통째로 빌려둔 술집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지옥 같은 2주였어."

"맞아. 다시는 못 하겠다."

 

개새끼 1, 2가 대화를 주고받으며 술을 들이켰다.

 

"고생했어."

 

유진이 나직이 말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유진의 속을 썩였지만 그래도 최근 2주 동안 따라와 준 게 고마웠다. 유진이 지난 시간 동안 겪은 수난을 떠올리는 사이 선배들이 술잔을 들고 유진에게 다가왔다.

 

"유진이, 고생했어."

"그러니까 마셔야지?"

"아하하……"

"마셔라, 마셔라, ~셔라!"

 

순식간에 유진에게 술을 먹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주량을 한참 넘어서는 만큼 마셨고 나중에는 옆에 있던 현성이 대신 마셔주었다.

 

"…… 죽을 거 같아요."

 

술에 온몸이 절여진 유진이 현성의 어깨에 기댔다. 현성은 자신도 취한 와중에도 유진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손깍지를 끼고 홍대의 밤거리를 걸으며 바람을 쐬다가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현성의 눈에 하얀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핥는 유진의 빨간 혀가 들어왔다.

 

"입에 묻었다."

 

현성이 유진의 입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유진의 순한 눈매가 멍하니 현성을 향했다. 현성은 입가에서 손을 내리다가 유진의 볼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으음……."

 

현성은 갈증에 눈을 떴다. 술을 마셔서 바짝 마른 목에서 신음이 나왔다. 현성은 물을 마시기 위해 뒤에서 껴안고 있던 유진을 놓았다.

 

'……유진이?'

 

왜 유진이가…….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벽지가 보였다.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현성에게 유진이 말했다.

 

"으으, , 알람 좀 꺼주세요."

", 그래."

 

핸드폰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현성이 삐그덕 거리면서 일어났다. 이불이 내려가면서 나신이 드러났다. 군데군데 말라붙은 체액으로 봐서는 100% 사고친 게 분명했다. 현성의 볼이 홧홧해졌다.

알람을 끄고 나니 정적이 찾아왔다. 현성은 차마 유진을 쳐다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현성 앞에 그림자가 졌다.

 

", 저 좀 봐요."

", ?"

 

유진이 현성에게 눈을 맞췄다. 분명하고도 단호한 눈빛이었다.

 

", 어제 기억 안 나요?"

"…… 저기, …… 그게,"

"저는 다 기억나는데."

 

현성의 눈이 커졌다. 유진이 그런 현성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옷 입고 해장하러 가요."

", ."

"다음에는 맨정신에 해요."

"?"

"사귀자고요."

 

갑자기 들어온 펀치에 현성은 눈 앞에 별이 보이는 것 같았다.

 

"대답."

"? , 그래, 사귀자."

 

사귀자, 그래 사귀는 거야……. 고장 난 라디오마냥 사귄다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현성을 보며 유진이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캐릭터 안 잡고 썰 보고 즉흥적으로 쓰다보니까 유진이랑 현성이 성격이 좀 모호하고 왔다갔다 하는 거 같긴 하다 


작품 등록일 :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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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간질하고 재밌다 ㅋㅋㅋ '대답' 이러는 거 넘나 로맨스 재질입니더
둘이 키스하는 게 좀 급전개인 것 같은데 재밌었음

둘이 스킨십 하기 전에 서로 심리묘사를 더 많이 넣으면 좋았을 듯
그래도 재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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