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어쨌든 언젠가 말해야하는 것은 틀림없다. 10년 전에 만성적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하던 것이, 5년 전부터는 어떻게 죽을수 있는지 방법을 찾는 것으로 발전했고, 3년 전부터는 이따금 손목을 가위로 자르고 약물 남용을 하고 가볍게 목을 조르는 등 치사율이 낮은 자살 시도와 자해를 하는 것으로, 1년 전부터는 새벽에 달리는 차량에 몸을 산산조각내러 나가서 그러지 못하고 무서워서 마냥 울다가 들어오거나 집 주변 높은 건물들 옥상이 열리는지 확인하기를 반복할 정도로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예기치 않게)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 죽어서 더 이상 괴로움을 느끼지 않고 편안해지고 싶지만 막상 시도할 마음을 먹으면 정말 슬펐다. 죽고 싶어서 내 의지로 죽으려는 건지 병에 먹혀서 어떻게 보면 사고로 죽는 지경인건지 모르겠다.
10.
더 이상 정신을 좀먹는 쓰레기장 같은 집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청소업체를 불렀다. 2년 반만에 방 바닥이 보이자 기분이 좋아져서 치킨과 함께 술을 마셨다. 한달 만에 마시는 술맛은 참 좋아서 자꾸 헤실헤실 웃음이 나왔다. 굉장히 즐거워서 노래방에 가서 춤을 추며 두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자 남은건 빈 지갑과 숙취뿐이었다. 기분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11.
기분이야 어쨌든 학교는 갔다. 다음주부터는 또 다시 시험기간이다. 해야하는, 일상의 일들을 기계적으로 하다보니 그냥저냥 딱히 기분이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졌다.
12.
그날은 좀 이상했다. 최근들어 수면 습관이 어느정도 교정되면서 그동안 전혀 관리가 안 되던 생활 습관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고 얼마전에 대청소도 해서 방 안에 있을 때 느끼는 어수선함과 답답함도 줄어들었다. 날씨도 시원하고 햇살이 쨍해서 낮에 쉬는 시간에 잔디밭에 누워서 햇빛이나 쬘까 하면서 강의실에 들어섰었다.
'근데 왜 죽으려고 하는 걸까?'
오전 수업을 듣다가 불현듯 줄로 목을 휘감아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목을 매달아 죽는 다는 방법도 최근 몇년 동안 전혀 고려하지 않던 것이라 당혹스러웠다. 정말 당혹스럽다. 죽고 싶지 않은데 왜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의문과는 별개로 몸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분명 공강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려고 했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몸은 당연한것처럼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잡화점에 들러 적당한 끈을 사고 마트에도 들러서 저녁에 먹을 두부도 샀다. 죽지 않을 생각인건가.. 모순된 행동들에 갈피를 못 잡겠는 와중에도 몸은 정말 착실히 움직였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정리하고 문고리에 매듭을 묶고 문을 위아래로 둘둘 감아 고정하고 닫았다. 목에 몇번 감고 매듭을 묶고 그대로 힘을 빼서 체중을 실었다.
얇은 끈인데도 의외로 단단하게 조여서 안정감이 있었다. 몸의 힘을 빼고 체중을 싣는건 잘 되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3.
나중에 술의 도움을 받아서 필름 끊긴채로 축 늘어져서 온 몸의 무게를 거는 방식으로 시도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도 죽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어서 그 뒤로 몇번 더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누웠다. 역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끈은 매듭이 잘 풀리지 않아 여전히 목에 휘감고 있었다. 가위로 자르면 되지만 지금이 적당한 길이니까 또 쓰려면 손으로 풀어야 한다.. 얼굴에 피가 몰리는게 느껴질 정도의 약한 압박감이 묘하게 안정감을 주었다. 오후 수업은 가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치명적이지 않은 자살 시도를 반복하면서 사는 걸까?
14.
집에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무작정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 운좋게도 평일 오후에 수업이 끝난 직후부터 밤 늦게까지 시간대 아르바이트 공고가 떠서 면접을 봤다. 재학중인 학생은 잘 뽑지 않기도 하고 지원자가 굉장히 많다고 해서 안 될줄 알았는데 다음주부터 출근할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 살았다.
15.
손님을 계속 응대하고 간단한 작은 일들이 쉴새없이 있어서 몸이 피곤해서 전혀 죽고싶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다음날 늦잠을 자버렸다. 근무시간이 좀 길기는 해도 1~2주 후 익숙해지면 무리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문제는 바로 며칠 후가 시험이었다. 적응할 때까지는 학교-알바-잠-학교-알바-잠을 반복하느라 전혀 공부할 시간과 체력이 없을 것 같았다. 낙제 받으면 안 되는데..
출근하기 직전까지 계속 고민을 하다가 결국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발 뺄지 말지 고민하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일을 하는건 서로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았다.
16.
일주일 전에도 자해 시도를 했는데 또 자살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긋지긋하다. 스스로를 미워하면 안 되는데 문제 상황에서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고 무력화되서 아무것도 못하는 모습에 자꾸 화가 난다. 당장 시험이 코앞인데 전혀 집중이 되지 않으니 자살 생각을 한다니.. 6년이 지나도 변한게 없다.
17.
"요즘 죽고 싶은 마음이 너무 많으실까요?"
"어떻게 말할지.. 요즘에 심해지기는 했는데 원래 만성적으로 죽고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한 10년 전에 중학교 막 올라갔을 때 친구가 죽고 싶단 말좀 하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있네요.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반복될 때 자살 충동이 드는 편이에요."
"지난주에는 입원을 하고 싶을 정도로 굉장히 괴로우셨어요?"
"차라리 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전화드렸었어요. 입원실이 없다고 하니까 다시 또 말하는걸 망설이긴 했지만.."
"최근에는 시험이 언제였어요?"
"2주 전에 몇개 봤고 모레에 또 있어요."
"이번에 보는 시험은 어떤 시험이에요?"
"전공시험이에요."
"본인이 가진 생각들을 객관적으로 보면 내가 진짜 죽고 싶은 거는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데 이런 시험이나 그런 스트레스가 있으면 이런 생각들이 몰아치고 교정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드네요."
"네."
"지금보다 수면시간을 더 길게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지금 치료제에는 우울을 잡아주는 건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렇게 죽고싶다는 부정적인 충동이 갑자기 확 생길 때 그걸 잡아주는 약이 아주 명확하게 있지는 않아서 그 부분을 조금 보완을 해서 처방을 드릴게요. 드시면서 경과가 어떤지 좀 봐야겠네요."
"네."
"아무리 의사지만 얘기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얘기 잘 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제가 약을 조금 조정을 해서 처방해드릴게요."
"네. 근데 무조건 보호자 연락가고 입원해야하는지 알고 그동안 숨겼는데 아니네요."
"외래에서 치료 못하는게 아니에요. 죽고싶다는 생각이 간헐적으로 드는 모든 분들이 다 입원치료를 하는건 아니거든요. 외래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느꼈던 이런 상황들도 얘기를 해주셔야 되요. 왜냐면 본인도 내가 어떨 때는 괜찮은데 어떤 때는 또 안 그러고 그러다보니까 안 좋을 때는 정말 입원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한 2~3일 있다가 조금 괜찮을 때는 아 그럴필요까지는 없었나가 또 반복이 될 수 있어요. 그런 경우에는 일단 외래에서 치료를 하는 것을 먼저 시도를 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얘기해주신게 너무너무 중요해요. 여기는 입원실이 없기 때문에 다른 대책을 못 세워주시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잘 얘기해주셨구요 제가 그거를 좀 도와드릴 수 있는 처방을 드리도록 할게요."
"네.. 성인되고 나서부터는 괜찮다가도 투신 같은것처럼 치명적이고 위험한 방법 말고 혈압약을 과다복용하거나 손목 피부를 가위로 자르거나 하는 것 같은 덜 위험한 시도들을 반복하고 있어요. 강도를 낮추거나 치명적이지 않은 시도를 했었는데 지난주 화요일 오후랑 수요일 새벽에 목을 맸을 때는 힘을 빼서 체중을 실으면 진짜로 죽겠다 싶었는데.. 죽고싶지 않았어요."
"상담을 좀 해보면 정말 죽고싶어서 그런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마술적인 사고라고 표현을 하거든요. 내가 지금 너무 힘든거를 마술부리듯이 갑자기 훅 없어지게 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내가 지금 힘든 상황들을 중단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런부분들을 생각을 하다보면 죽는게 낫겠다, 자살생각이 들수도 있는데 말씀하신대로 사실 내가 지금 너무 힘들다고 하는 내 감정의 표현이지 정말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되게되게 많아요. 너무너무 죄송한 일이지만 사망한 경우들을 보면 약간 그런 제스쳐를 하다가 사고로 잃는 경우들이 되게 많거든요."
"네. 저도 사고로 죽겠다 싶어서 입원하려고 했었어요. 이런 감정상태일 때 내리는 선택들은 자꾸 궁지로 몰고가는 거 같아서요."
"지금 말씀하시는 부분이 맞아요. 그럴때는 조금 내 마음을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 놓는것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어려운 얘기 잘 해주셨고 대학병원 가실때는 외래진료 바로 보시는게 가장 좋은데 그게 안 될 때는 응급실로 바로 가시는게 좋겠네요."
"네 그럴게요. 안녕히계세요."
작가 돈주기
|
▶ 더 행잉 케이스 (The Hanging Case) - 1
사업자번호: 783-81-00031
통신판매업신고번호: 2023-서울서초-0851
서울 서초구 청계산로 193 메트하임 512호
(주) 이드페이퍼 | 대표자: 이종운 | 070-8648-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