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의 안마기

반짝이는 거라곤 때 되면 꿈뻑거리는 신호등과 침침하게 간신히 눈 뜬 가로등이 전부인, 식료품 배달아저씨도 한참을 발길을 끊은 어느 날이었다.

이따금 멈췄다 다시 좌로 우로 사라지는 자동차들과 바람에 날려가는 비닐봉지라던지 일수 명함은 간혹 꿈인가 싶었다. 몹시 지루한 꿈.

 

- 딸랑

 

가게문 열리는 소리에 용수철 처럼 튀어 올라 내다보니 꽃모자를 쓴 엄마가 서 있었다.

 

- 요새 힘들제. 오는 길에 보니까 다른 가게도 다 조용하드라.

 

엄마는 밭에서 막 뽑아 왔다며 다 꼬부라진 파 몇대와 지난 명절에 얼려둔 전 뭉치를 들고 왔다.

그러고 보니 박스 하나도 손에 쥐고 있는데 '김수자 안마기'라고 적혀있다.

 

- 엄마 뭐 타고 왔노. 안 춥드나.

- 엄마 ? 삼천리 그랜저(엄마의 녹슨 자전거) 타고왔지. 날 마이 풀렸드라.

- 맞나. 조심해라 그래도. .요새는 감기 걸리면 병원도 함부로 못가는데.

 

왠 안마기냐고 짐을 받아드니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 하나를 빼서 비스듬히 앉았다.

 

 

엄마는 시골의 수도검침원이었다. 수도가 들어온 집은 몇 채 없는 깜깜 시골이지만 드문드문 수용가가 있어서 진종일 걷고 걸어 검침을 해야했다. 어느 날에는 계량기 보호통을 열면 까꿍 하고 반기는 뱀에 식겁했고, 계량기가 얼까봐 칭칭 감아놓은 죽은 영감의 내복들을 한참이나 끌렀다가 할매 마음에 들 때까지 또 한참을 칭칭 감아줘야했다. 비가 오면 진흙탕에 발이 푹푹 빠져 씨름을 하고 눈이 오면 미끄러져 논두렁이 처박히기 일쑤였지만 엄마는 퇴직할 때 까지 15년 가까이 성실하게 일했다.

 

집에서야 어쨌든 엄마는 본래 심성이 고운여자였다. 시장에 생선 한 마리를 사러갔다가도 길가에 나물파는 앉은뱅이 할매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그걸 다 사들고 이고 지고 오느라 밤새 곡소리를 내며 온 집에 파스냄새를 풍기던 여자다.

아빠는 그런 엄마에게 니가 예수냐 부처냐 돈이 썩어나냐고 타박을 놓았다. 내내 풀만 처먹다가 토끼똥만 싼다고 밥상머리 투정을 해댔다. 옛날 같았으면 밥상이 열두번도 더 엎어졌겠지만 유리상판이 얹어진 식탁이라는게 생기고 나니 뒷 감당이 귀찮은지 그러지는 않았다.

 

시골에는 사연없는 노인이 없다. 기구한 사연이 있는 노인들만 모아서 흩뿌려 놓은거 마냥 띄엄띄엄 박힌 노인들의 집에 오는이라고는 아침 나절 울어제끼는 새 떼나 뉘집서 사는지 모르는 똥개들, 고지서 주러온 집배원 그리고 엄마가 전부였다. 노인들은 엄마를 새댁이라고 불렀고 더러는 달력에 새댁이 오는날을 적어두고 기다리기도 했다.

 

엄마는 수용가는 물론이고 아직 지하수를 쓰는 노인들의 집도 매번 방문했다. 검침기간이 아닐 때도 엄마는 노인들의 집을 들러 냉장고에 썩은 음식을 정리하고 다마(전구)를 갈아주고 테레비를 고쳐주고 뭐라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상담원들과 대신 통화를 해주었다. 그야말로 시종일관 매운만두 물만두(매우만족 불만족)을 찾는다는 서비스센터의 전화 같은 것 말이다.

 

노인들은 고마움의 표시로 머리카락 고춧가루가 둥둥 뜬 감주(식혜)를 국그릇에 담아 내주었고 엄마는 후후 불어 마셨다. 집에 애기들 주라며 유통기한이 20년은 족히 넘은 두유라던지 쥬스 같은 것을 싸주기도 했다. 가끔 집에 럭키치약이 있는 것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럭키는 엘지생활건강의 전신이다. 럭키와 금성이 합병하며 첫 글자를 딴 엘지가 되었다.) 가끔 깨타작을 도와준 노인에게 소줏병에 담긴 참기름을 받기도 했는데 국산 참깨 백프로의 것은 굉장히 귀한 것이라 그간의 노고치하로 꽤 쏠쏠한 것이다. 아들네 주려다 '매늘년(며느리년)이 하도 미까시러버서(너무 못마땅해서 또는 얄미워서) 니준다' 하더란다.

 

엄마 나이 60넘어서 시청에서는 엄마에게 꽃다발과 무슨 명패를 주며 이제는 검침원 노릇을 그만두게 했다. 일하던 사람이 쉬면 병이 난다더니 엄마는 친구들도 실컷 만나고 성당에도 나날이 나갔지만 어쩐지 시원찮았다. 며칠 자리보전하고 누워 아픈가 싶더니 새로 생긴 메디컬센터 계단청소를 하러 다녔다.

계단에는 피다가 두고간 담배곽들이 종종 있었는데, 출소하고 내내 집에만 있는 아들에게 준다고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아들은 그 각종 담배곽을 한손에 움켜쥔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며 #불효자 #효도하자 같은 해시태그를 붙여 타임라인을 장식했다. 좋아요가 꽤 눌러졌고, ㅠㅠ 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엄마는 퇴직후에도 시골의 노인들을 들여다 보았다. 엄마를 이어 일하는 검침원은 노인들이 엄마에 대해 별뜻없는 혹은 별뜻있는 이야기를 하는게 못마땅했다. 밤 늦게 전화를 걸어와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그렇게 까지 못하니 더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고. 불편하다고.

엄마는 노인들에게 갈 때마다 손가락을 입에 가로대고 비밀로 할 것을 부탁했고 노인들은 한 쪽 눈을 질끈 감으며 알겠다고 표하며 이가 다 빠진 입을 벌려 헤헤 웃었다.

 

며칠 전 부터 잇몸이 아파 죽겠다고 곧 죽는 사람 시늉을 내던 아빠가 생각나 엄마는 퇴근길에 약국에 들렀다. 인사돌은 생각보다 비쌌다. '영감쟁이 뭐가 이쁘다고!' 속에서 천불이 났다. 돈되는 일은 때려 죽여도 안하는 망할 영감쟁이. 계단을 얼마나 닦아야 이 돈을 버는데... 카드 승인이 떨어질 때 까지 머쓱한 눈을 돌리다가 저 쪽 귀퉁이에 김수자 안마기가 특별할인가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엄마는 며칠 뒤에 노인들에게 갈 생각이었고 유독 사연많은 할매의 얼금얼금 다 빠진 이가 생각났다. 동그랗게 참 곱게도 등이 굽은 그 할매가 안마기를 얹고 테레비를 보는 장면을 떠올렸다. 인사돌 만한 값을 치르고 엄마는 김수자 안마기를 들고 약국을 나섰다.

 

- 할매 잘 지냈능교?

 

엄마는 살갑게 인사를 건네며 바싹 비틀어진 걸레를 빨아서 바닥을 훔쳤다. 이따 할매가 얼마나 기뻐 할까 어쩌면 콧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른다. 마루를 다 닦고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엄마 눈에 커다란 아주 거대한 낯선 물건이 들어왔다.

 

 

바디프렌드였다.

 

 

자신도 모르게 우두커니 선 엄마의 등 뒤에서 꼬부라진 할머니는 볕을 쬐다 말고 말했다.

 

- 어 그거. 우리 아들이 사줬다. 윽시로 시원하드라. 새댁아 니도 함 해바라. 근데 저게 그래 비싸다메?

  

 

해지기 전에 가봐야겠다며 신발을 신는 엄마에게 할매가 말했다.

 

- 니 손에 그거 안마기 아이가? 내 줄라고 샀드나! 우야꼬!

 

- 아이라예. 우리 큰딸래미 줄라고 샀는거시더.

 

 

 

석연찮은 안마기가 생겼다.

 

 

 

 

 

(오타 수정하려다가 삭제해부러서 뒤로가기 눌러서 캡쳐한다음 다시 옮겨 썼음. 댓글단 이드야 미안하다.)

작품 등록일 : 2020-03-13

▶ 나는 기백이로소이다

▶ 내가 보이나요?

눈물날뻔
Le****   
악ㅋㅋㅋ바디프렌드...ㅋㅋㅋ 할매아들 돈 잘버네
잠을 너무...   
이글 너모좋아
쿨찐   
캬 문학이다 정말
과일뿌셔   
문학이다.. 넘 좋아.
보패   
이렇게 잘 읽히는 깊이있고 감각적인 글. 은희경 아내의상자 이후 처음이다.
et********   
#불효자 #효도하자 ㅋㅋㅋㅋㅋㅋ
de****   
술술읽힌다 ㅋㅋ 있는 이드머니 다 드렸어요..
키위**   
ㅋㅋㅋㅋ 어머나 반전이 있었어
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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