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는 크게 두 무리로 나뉘어있다. 병과 간부다. 간부란 부사관, 장교들이다. 직업군인들. 왜 세 무리가 아니고, 또는 하나가 아니고 나뉘어 있을까. 병들은 기본적으로 간부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 그래서 포항, 김포, 강화, 백령도, 연평도어느 부대 할 것 없이 있는 말이 ‘간부는 적이다’.
간부란 부사관과 장교다. 장교는 지휘관(대대장, 중대장, 소대장)과 참모(작전, 인사, 정보, 통신, 병기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부사관은 이를 보좌하며 병들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행동하는 행동대장이다. 그런데 왜 병들은 간부를 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어차피 훈련도 같이 하고, 전쟁이 나면 명을 받아 함께 싸우는 입장 아닌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간부는 적이라는 걸까. 전역한 지금, 충분히 그럴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안다. 간부들은 이병들에게는 천사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분명해진다. 간부들은 병을 도구 내지는 진급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처음부터 학군단 출신이라 군생활 조금 하고 나갈 사람들이거나 짬도 가득하고 병을 정말 이해해주는 극소수의 간부들. 군생활 하며 딱 3명 봤다. 그리고 금세 전역해 버리더라.
이걸 느끼게 된 몇 가지 경험이 있는데 그전에 병이 간부를 어떻게 선을 긋고 대하는지부터 쓰고 싶다. 지난 글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지난 글에서는 ‘이빨교육’을 썼다. 말과 관련된 부분이다.
우선 식사 때 쓰는 말이 다르다. 두 가지가 있다. ‘식사 많이 하십시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많이와 맛있게의 차이다. 병에게는 많이 먹으라 하고, 간부에게는 맛있게 먹으라한다. 이건 먼 옛날의 해병대까지 올라간다.
먹을 게 부족하던 시절, 배식을 받을 때 간부 먼저 받고 병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맛있는 건 간부들이 죄다 쓸어담고, 그 다음 남은 걸 병들이 먹었다고. 그래서 병들 사이에서는 짬이 높은 선임에게는 더 많이 드시라고 하며, 간부에게는 맛있게 처먹으라고 한 것이다. 이게 쭉 내려와 나 군생활 할 당시까지도 많이와 맛있게를 구별했다. 이것 역시 밝은병영 만든다고 맛있게로 통일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잘 고쳐지지 않다가 나 병장 달 때쯤 통일되었다.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는데 그 옛날 병들이 먹을 게 없던 시절에 간부는 계급대로 밥을 가져갔지만 병들은 이병부터 병장 순으로 거꾸로 받았다고 한다. 후달리는 애들 많이 먹으라고. 나름 감동적인 부분이다. 허나 여기서 그치면 해병대가 아니다.
나 군생활 하던 때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요즘 밥 모자라는 일이 있나, 많이 버려서 문제지. 이병들은 산밥을 먹어야 한다. 산, 그 산 맞다. 고봉밥을 뛰어넘는 산밥이다. 밥을 어마무시하게 많이 받고, 반찬도 빠짐없이 다 받아야 한다. 그리고 매끼마다 이걸 다 먹어야 한다. 밥 한 톨, 국물 한 방울, 김치 한 쪼가리도 남기면 안 된다. 이병은 그렇다. 많이 먹고 일 많이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기운 빠져서 비실거리지 말라는 것. 또 얼마나 기합이 빠져서 밥을 남기나. 그렇게 여유 부리는건 참 건방져 보이는 것이다.
나처럼 긍정적인 사람은 이것도 역시 좋아했다. 일을 하도 많이 하고, 맨날 뛰고, 긴장하고, 축구를 매일 두 시간씩, 주말에는 5-6시간도 하다 보니 몸이 좋아졌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몸 많이 쓰고 밥도 많이 먹으니 건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일 많이 시켜서 힘들고 하지만 사람은 뭐든지 익숙해진다.
그러나 해병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조리 가득하다고 했다. 다른 부대도 그러할 건데, 식사도 훈련의 일종이다. 해병대는 일과라는 말 대신 과업이라는 말을 썼다. 일본식 표현이다. 식사도 훈련, 식사 과업이다. 때문에 분대 단위로 이동했다. 약 8명 이내로 한 생활실을 쓰는데 이게 분대다. (분대가 모여서 소대가 되고, 소대가 모여서 중대가 되고, 중대가 모여서 대대가 되고, 대대가 모여서 연대가 되고, 연대가 모여서 사단이 되고, 사단이 모여서 해병대가 된다.)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으러 가는데 기수가 다 차이난다. 일이병들은 선임이 먹는 속도에 맞춰서 먹어야 한다. 너무 늦게 먹어서 선임을 기다리게 할 수 없고, 너무 빨리 먹어서 선임에게 눈치를 줄 수 없다. 적당히 맞춰서 먹다가 선임보다 한 숟가락 정도 빨리 다 먹어야 한다. 왜냐, 훈련이니까 다 먹고 다같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병은 산밥을 먹는다고 했다. 반면 병장들은 활동량도 적고 군것질도 많이 하다 보니 밥이 좀 별로면 거의 안 먹어버린다. 식사시간 조금 아껴서 노는 게 더 중요하기도 하다. 그러니 이병은 아주 빨리 음식을 먹어치워야 한다. 거의 씹지도 않고. 밥을 국에 말아 먹을 수도 없다. 이건 알상(상병 5호봉을 칭하는 말) 때부터 가능하다.
이렇게 몇 달 지내면 자연스레 먹는 속도가 빨라진다. 얘네가 병장이 되면 먹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많이 안 먹는다. 그럼 이때 들어온 이병들은 더 빨리 먹어야 한다. 이렇게 계속 반복 반복, 더 빨리 먹고 더 빨리 먹고.
이게 해병대 식사 과업이다. 말이 조금 샜는데, 아무튼 많이 먹으라는 말과 맛있게 먹으라는 말이 병과 간부 사이에 다르게 쓰였다는 것이다. 식사시간이 되면 경쟁이 붙는다. 무슨 깡패새끼들 모여서 밥 먹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우렁차게 ‘식사 많이 하십시오!!!’ 하는 소리가 울린다. 목소리가 작다? 완전 기합이 빠진 거다. 다른 분대보다 목소리가 작으면 안 된다. 이병이 있는 분대는 그렇다. 신병이 안 들어와 짬이 좀 높은 분대는 그런 거 없다. 간부들에게는 지나가면서 그냥 툭 ‘식사 맛있게 하십쇼’ 한다.
식사 많이 하십시오 외에 하나 더 있다. ‘그렇습니다’와 ‘맞습니다’의 구별이다. 이건 부대마다 달랐는데 우리 부대는 병에게 그렇습니다, 간부에게 맞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어떨 때 쓰냐면 ‘예’ ‘알겠습니다’ 같은 긍정의 대답 대신 쓰는 말이다.
일단 예 라는 말은 절대 금지다. 훈련단에서는 예 라고 대답하도록 배우지만 실무는 다르다. 단답형이기 때문이다. 너무 싸가지 없는 단답형. 윗사람이 이래저래 말했는데 예. 뿐만 아니라 이런 단답형이 습관 되면 다른 말도 짧아질 수 있고, 복명복창을 잘 안 할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다. 이 대답은 좀 띠거워보이기 쉬운 말이다. 어어 알겠어 알겠다고 하는 뉘앙스. 또 허락/승인의 의미가 된다. 뭐라뭐라 했을 때 알겠다고 받아들여’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렇습니다와 맞습니다를 쓴다.
그런데 이게 왜 간부와 병 사이에 다른가. 해병은 모르는 게 없다. 그래서 선임이 말했을 때 오 그렇습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하는 의미. 바로 그렇습니다! 하는 거다. 또는 내가 몰랐던 이야기를 알려줄 때도 그렇습니다 하는데 해병은 모르는 게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거다. 허세 가득.
반면 간부에게는 맞습니다 한다. 아 네 말이 맞다 하고 대답하는 거다. 추가로 그렇습니다는 5글자임에 비해 맞습니다는 4글자라 병을 더 존중한다는 의미도 되고.
말장난 맞다.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어떤 부대는 반대로 한다. 간부에게는 그렇다고 하고 병에게는 맞습니다 하고 맞장구를 친다. 뭐가 됐든 간에 병이든 간부에게든 예, 알겠습니다 하는 말은 금지. 그래서 대화를 들어보면 아주 우스꽝스럽다.
‘야 너 이번에 에이핑크 신곡 나온 거 아냐?’ ‘그렇습니다’
‘여친이 정은지 친구라 씨디에 사인 받아준다던데?’ ‘그렇습니다’
‘너도 하나 줄까?’ ‘그렇습니다!! 꼭 받고 싶습니다!!’
‘근데 나 여친 없는데?’ ‘똑바로 하겠습니다..’ (유감의 의미)
그렇습니다와 맞습니다 역시 해병대 밝은병영문화 만들기의 표적이 되었다. 훈련단에서 배우는 대로 ‘예, 어쩌고저쩌고’를 쓰라고 했다. 간부들도 그렇게 하라고는 했다. 허나 ‘예’라는 대답은 해병이라면 누구나 거슬리는 대답. 내가 짬 좀 찼을 때 이렇게 바꾸라고 했다. 난 꼰티 부린다고 엿 같은 간부 한두 명에게 일부러 예 라고 대답했다. 그 간부 한두 명은 짜증이 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냥 대답이 짧네?^^ 하는데 죄송합니다 ㅋㅋ 할 뿐. 왜냐, 예. 하는 게 fm이니까 별 수 있나. 하라는 대로 하는 거지 뭐.
해병대는 행동을 중시한다. 말로만 이렇게 구분 짓는 것이 아니다. ‘해병은 병이다’ 라는 말이 있다. 간부는 적이다와 일맥상통한다. 전투하는 것도 병이고, 일을 하는 것도 모두 병이 한다. 그런 만큼 모든 병은 자기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한다. 간부가 끼어들 틈이 없도록, 왈가왈부 절대 못하도록 병들끼리 모든 일을 처리한다. 물론 간부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고는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만약 후달이 뭔가를 못해서 간부에게 한 소리 듣는다? 그날로 그놈은 뒤지게 혼나는 거다. (후달이란? 짬이 후달리는 애들을 칭하는 말. 일이병들을 말한다. 후달쓰라고도 했다.) 이런 정신이 꽤나 멋진 건 분명했다. 맡은 임무를, 실수 하나 없이 완벽하게 해내려는 것. 신속정확, 원샷원킬이다. 해병대에서 느리면 뒤진다.
병장쯤 되면, 군대 모든 일이 틀에 박히고 간단하기 때문에 간부가 없어도 다 처리할 수 있다. 오히려 유도리가 있어서 더 잘하는 경우도 있다. 간부가 없더라도 다 할 수 있고, 간부의 존재는 그저 보고받이 정도. 그러니까 왕따를 시키는 거랑 같다. 물론 짬이 차면서 친한 간부들도 생기고, 간부들도 짬대우 해주고 그렇긴 하지만 어쨌건 친하더라도 간부는 간부고, 간부는 적이다.
알상쯤 되면, 나보다 후달리는 간부들도 제법 생긴다. 하사, 소위들이 그렇다. 얘네를 먹는다. 먹는다는 게 무슨 말이냐면 나한테 맞게 길들인다는 것이다. 하사든 소위든 아무리 훈련단에서 몇 달을 교육 받았다 하더라도 실무는 전혀 다른 세상이고, fm대로만 돌아가지 않는 게 실무다. 그러니 알상, 병장들보다 업무를 못하고 물어봐야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사실 거의 전부를 물어봐야 한다. 그때 약간의 무시도 들어가고, 채찍과 당근도 주고, 자기 맞춤형으로 길들이기 시작한다. 특히 하사들의 경우 일정 기간 생활실에서 같이 지낸다. 먹기 딱 좋은 조건. 친구처럼 지내기도 하고, 상관이긴 하지만 야루기도 하면서 말이다. 재밌게 지낼 수 있다. 잘못 알려주기도 하고. 허나 얘네도 짬이 차기 때문에 좀 지나면 자기들이 먹혔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 정신차리고 가오를 부리기 시작한다. 그게 좀 꼴사납게 우습다.
아무튼 간부는 적이라고 했는데 왜 적이냐.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 간부라는 인간들 대부분은 양아치스러운 마인드가 있다. 병을 자기 부하,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전쟁통에 서로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라는 생각이 전혀 없다. 그저 도구로만 취급한다. 자기 진급을 위한 도구, 업무처리를 위한 도구. 무리한 업무를 시키거나 괜한 걸로 트집 잡고, 아무 쓸데없는 걸로 계속 매달리는 인간들. 그 과정에서 미안한 눈치란 전혀 없다. 어차피 몇 달 있으면 전역할 새끼들이고, 어차피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부대 내에만 짱박혀 있어야 하는 새끼들이니 시키는 거나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거다. 정말 사람이 아니라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들 한다. 그러니 정나미가 뚝 떨어지고 답답하기도 하다.
사실 군대가 계급사회이다 보니 아무리 병장이라도 소위가 맘 먹고 정색빨고 뭐라 하면 듣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유대감이 없는 건 군대에서 치명적이다. 20대 초반의 남자애들은 피가 끓는다. 이런 애들은 다루기가 참 쉬운 반면 한 번 돌아서면 완전히 끝까지 토라져 버린다. 군대에서 돈 쓸 일도 없고, 유대감 하나로 즐겁고 행복한 추억도 남기고 하는데 그게 없으니 문제가 된다.
또 쉽게 팔아먹는다. 뭔가 일이 잘못 되었을 때, 감싸주는 것이 전혀 없다. 그러니까 같은 편이 아니라 적인 것이다. 일이 잘못 됐을 때, 결정적일 때 병의 잘못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게 후달리는 애들은 뭔지 모른다. 짬이 차면서 보이기 시작하는데 불합리한 부분은 모두 병의 문제로 돌린다. 본인이 잘못 지시하고, 잘못 알아서 그렇게 된 것인데 말이다. 인정을 하지 않는다. 인정하면 그 지저분한 간부 세계에서 찍히기 때문이다.
더하여 문제 해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군대식 해결방법이 문제다. 뭐냐면 문제가 있어서 해결을 하면 잘한 일이라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해결을 하고 있으면 거기에 가서 어떤 문제가 있는가 본 다음 문제가 있었으니 간부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내가 쓰고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말이다. 그러니까 해결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해결하고 있어서 잘한 게 아니라, 해결할 문제가 있었으니 해결하는 사람이 잘못했다는 것이다. 왜 미리 문제가 없도록 하지 않았냐는 거다. 뿐만 아니라 문제가 발견 됐다면 어떻게든 해결의 행동을 해야 한다. 별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뭔가 조치를 해야 한다. 그래야 보고할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병들은 별 말도 안 되는 짓거리에 따라가야만 한다. 지난 글에 썼던 포크숟가락과 젓가락 문제와 같다.
내로남불 역시 문제다. 밝은병영문화 만들기라고 하면서 병들이 130개의 악습을 자기들끼리 만들어 서로 괴롭힌다고 했지만 정작 간부들이 문제였다. 사실 병들의 인계사항은 부사관과 미 해병대의 영향을 받아 생긴 것이다. 미 해병대보다도 부사관과 간부들의 악습이 병들에게도 생겨난 것이다. 쪼인트 까는 건 기본이요, 쌍욕과 폭력, 말도 안 되는 규칙들. 내가 이병 때, 부사관실에서 중사가 하사들 모아 놓고 줄싸대기를 때리는 장면을 봤다. 밝은병영이 널리 퍼지던 상병 때도 부사관실에서 중사는 하사들의 쪼인트를 까고 있었다. 지나가다 봤는데 눈이 마주치더니 꺼지라고도 못하고 내 눈치를 봤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참으로 떳떳하고, 평생 그런 적 없다는 듯 병들이 악습인계를 만들어 서로를 괴롭히고 있다고. 장교들은 그나마 얼른 없앤 편이다. 그러나 간부들 축구할 때를 보면 공 날아갔을 때 소위가 공을 주워온다. 당연하다. 그럼 소령이 가랴. 문제는 병들이 축구를 할 때는 병장이 주워오라고 시키는 것. 지나치게 사소해 보이지만 군대는 할 게 없는 만큼 이런 것들이 크게 다가온다. 따라서 간부들의 내로남불은 더 역겹게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더 웃긴 게, 간부들은 직업군인이다. 그리고 장교는 몰라도 부사관들은 왜 그렇게 결혼들을 일찍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집에서 기다리는 와이프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는 가장들이다. 병들이야 21개월 깔짝 군생활 하고 가지만 간부들은 그럴 수가 없다. 잘리면 당장 먹을 거리도 없고, 집도 문제다. 그런 사람들을 앞에 세워놓고 폭력을 가한다. 정말 치졸하고 비열하다. 그러면서 병들 앞에 설 때는 입 싹 닦고 위계 너무 잡는다고 서로 때리고 욕하지 말라고 한다. 밝은병영에서 얼마나 과하게 언어규제가 있었냐면 후임이 못한 걸 혼내지도 못했다. 여기서 혼낸다는 것은 ‘너 이거 왜 못했냐, 가르쳐주지 않았냐, 정신 안 차리냐’는 정도다. 그러니까 군대에서 할 법한 일이다. 계급이 그래서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후임이 여기서 겁을 먹고 ‘공포분위기 조성/폭언’으로 신고한다면 그 선임은 징계를 받는다. 혼내지 않고도 가능하지 않냐, 당연히 그렇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해병대는 자원해서 온다. 아무리 학벌이 좋고, 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랐더라도 뭔가 또라이 같은 면이 있어서 악명 자자한 해병대를 온다. 굳이 힘든 곳을 선택한 인간들이다. 뭔가 피가 더 끓고, 뭔가 더 과격한 애들이다. 이런 애들을 혼내지 않고, 분위기 잡지 않고 다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변명일 수 있으나 중고딩 때 껄렁거리던 애들 전국에서 긁어 모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간부는 병을 병신취급한다. 막 대하기도 하면서, 정을 하나도 안 붙인다. 개중에 친해지고 싶은 간부도 분명 있다. 간부들은 일이병들에겐 참 친절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 일이병을 꼬셔서 고충을 들어준답시고 자리를 만든다. 일이병이 뭐라도 얘기하면 그길로 그 해병의 선임들은 징계를 받는다. 선임들 역시 간부와 친하다고 생각했지만 간부들의 ‘왜 그랬니? 착해보여서 믿었는데 실망이다’를 들으면 정신이 나가버린다. 그러니까 간부 자신이 밝은병영문화 만들기에 앞장 선다는 실적을 만들기 위해 함정을 파는 것이다. 그 다음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선임들에게 징계를 내리면서 뒤통수를 친다. 마냥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분명 악습인계는 나쁜 것이니까. 하지만 정도의 문제다. 이병이 축구 시간에 공 주우러 가는 게 힘들다 하면 병장이 이병에게 힘든 일만 시킨다며 징계를 받는다. 이병이 걸레 빠는 게 힘들다고 하면 병장이 이병에게 힘든 일만 시킨다며 징계를 받는다. 그렇다면 계급은 왜 존재하는 걸까. 이 와중에 보이는 장면은 담배도 안 피우는 소위가 소령의 재떨이를 비우고 자빠지는 것. 하사가 중사 출퇴근 셔틀짓 하고 있는 것. 불쌍한 하사, 소위들은 신고도 못한다. 워낙 해병대 사회가 좁고 좁다 보니 찌르면 바로 들킨다.
말하자면 더 할 수도 있다. 내 개인적인 경험들도 있다. 그러나 더 적기에는 글이 너무 길어지고. 해병은 병이다, 간부는 적이다 하는 것이 이번 글의 요지다. 지난 글에서는 병들의 부조리를 맛뵈기로 적었고, 이번 글에서는 썩은 간부들을 적었다.
너무 안 좋은 것만 적었다. 허나 좋은 간부들도 분명 있다. 박ㅇㅇ 행정관님, 김ㅇㅇ중대장님, 정ㅇㅇ 대대장님 등. 병의 생리를 잘 알고, 이해해주는 분들이었다. 부하를 사랑하는 간부. 정말 전쟁이 나더라도 나는 이 분들에게 목숨을 맡기고 싸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군생활 중 아주 큰 사건이 있었는데, 군장 차고 잠도 줄이고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 하며 지낸 적이 있다. 강렬하게 느꼈다. 나는 이 분들만 있으면 살아 남을 거다, 내 목숨이 위험하면 분명 구해주실 거다.
사실 계급이 높을수록 병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아직 세상은 따뜻하지 않을까, 순수함이 통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말이다. 중사하사는 열에 아홉은 개떡같지만 상사는 열에 여덟만 개떡같다. 장교 중 대대장을 거치는, 진급을 어느정도 잘한 분들은 병을 이해할 줄 아는 것 같다. 열에 여덟은 그렇지 않지만.
요악하자면 좋은 간부들이 아주 소수라는 게 문제다. 대부분의 간부에게 받는 느낌이란, 전쟁이 나면 나를 총알받이로 쓰겠구나, 내 뒤에 숨어서, 총을 잘못 쏴서 내가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겁쟁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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