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간부는 적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질문이 들어왔다. 악명이 자자한 해병대에 왜 들어간 것인가. 친구 따라서 간 건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재밌어 보여서 들어갔다. 그러고 해병대를 나와 보니 친구들 중에도 해병대 나온 애들이 종종 있고, 만나는 대학 선배들도 해병대 갔다온 사람이 많았다. 끼리끼리 유유상종이 정말 인생의 오묘한 이치가 아닌가 싶다. 해병대는 전군의 5%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은 것 같다.
재밌어 보여서 들어갔다고 했다. 해병대에 이런 말이 있다. ‘아무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해병대 훈련 중 낙오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고, 일단 들어가기까지가 고된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힘들고, 폭력이 난무한 곳, 또한 사회의 해병전우회 이미지를 생각하면 무슨 하룻밤 지낼 모텔 고르듯이 쉽사리 지원하기는 힘든 것 아닌가. 모든 해병대원은 자원해서 들어간다. 해군과 공군도 자원이지만, 유독 선택한다는 의미가 크다. 공군 병은 막말로 학벌 좋은 애들이 복무기간 좀 길더라도 몸 편하고 마음 편하게 다녀오기 위해서 간다.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서 나오고. 해군 병은 잘 모르겠다. 배를 타고 싶은 건가. 아무튼 해병대는 직접 지원해서 여러 절차를 거친다.
해병대 지원 절차는 다음과 같다. 우선 서류전형을 본다. 고등학교 출결, 기타 가산점(외국어, 무술 단증, 체육경력, 중장비 등의 기술자격증, 국가유공자 자녀, 봉사경험 등)을 점수로 매기는 것이다. 그런 다음 체력검정과 면접을 본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측정하고, 계급이 높으신 분들 앞에서 면접을 본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는 그리 어렵지 않으나 운동 한 번 제대로 안 해본 사람은 거르겠다는 그런 의미 같았다. 면접이 나름 중요한데 연평도 포격전, 천안함 사건, 애국가, 해병대 상징(팔각모, 빨간명찰 등의 의미)를 외우고 가는 건 기본이고, 패기와 의지를 잘 보여줘야 한다. 여기까지 내가 지원할 때의 상황이고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다.
고작 군대 가는데 뭐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복잡하진 않다. 그냥 넣어서 체력검정이랑 면접 한 번에 보면 되니까. 하지만 이것도 경쟁률이 아주 셌다. 나 들어갈 때 10:1? 12:1? 정도 되었다고 한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것 같은 기준인데 생각보다 삐리한 놈들이 참 많다. 해병대 지원한다면서 팔굽혀펴기도 제대로 못하거나, 면접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댄다거나. 처음부터 이상한 놈들이 지원하는데 그 중에 더 이상한 놈들을 거른다는 것 같았다. 이렇게 걸러진 애들을 막상 실무에서 보면 참 다양한 애들이 많다.
양궁 국가대표도 있고, 태국에서 무에타이 배우던 놈도 있고, 필리핀에서 갱단 생활 하던 놈도 있고, 미국 유명 의대생도 있고, 잠실에 수십 억 아파트에 지내는 의사 아들 금수저놈도 있고, 고등학생 때부터 지게차, 굴삭기 모는 놈, 아마추어 복싱선수, 서울대부터 고졸앰생까지. 어느 군대에 가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많이 만나겠지만 해병대라면 뭔가 피가 더 끓는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더 친해지기도 하고 서로를 더 잘 알기도 하고, 고생 끝에 하나가 되는 경험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유독 전우애를 강조하는 만큼 누가 가더라도 전우애 하나는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그래서 해병대에 나는 왜 지원을 했나. 다시 말하자면 재밌어 보여서. 뻔한 육군은 가기 싫었다. 가서 별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공군은 진짜 지루할 것 같았고, 해군은 2개월이 길었다. 해병대, 육군, 의경은 21개월, 해군은 23개월, 공군은 24개월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난 20살이 될 때까지 힘들다는 느낌을 잘 몰랐다. 빡시게 놀거나, 빡시게 공부하거나, 엄청 더운 날에도 엄청 추운 날에도 뭘 하더라도 할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이 온실 속의 화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몸도 쓰고, 조금 더 빡센 즐거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힘들어 보고 싶었다. 좀 특별해 보이는 것도 괜찮았고.
그냥 이 이유로 지원했다. 사실 잘 모르고 지원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냥 재밌어 보여서. 때리고 맞고 한다는 것도 얼핏 알긴 했는데 때리면 맞지 뭐, 내가 잘하면 안 맞지 않을까? 맞으면 얼마나 맞는다고. 욕하고 갈구면 듣지 뭐, 잘하면 별소리 안 듣겠지. 그런 건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와닿지도 않았고, 재미. 뻔한 거 말고 고된 재미. 난 뭐 친구도 별로 없어서 별 얘기 안 하고 그냥 혼자 생각해서 혼자 넣었다. 그때 뭐 하고 있어서 아주 바쁘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서류 딱 넣어두고 해병대를 알아 보니 정말 재밌는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공수부대가 되어 낙하산을 탈 수도 있고, 기습부대가 되어 고무보트 타고 침투하는 훈련도 가능하고, 미 해병대와도 훈련이 가능하기도 하고. 잘은 몰랐지만 그런 걸 보니 더더욱 재밌어 보였다. 잘 넣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해병대 지원 과정에 대해 이런 글(링크)을 찾았다. 대충 이걸 보면 해병대에 들어가려는 과정에서 어떤 걸 준비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지원했는데, 그럼 다른 해병들은 왜 지원해서 해병대에 왔나. 사실 반 이상은 다들 똑같다. 강해지고 싶어서 왔다고 한다. 강함에 대한 욕구들이 다들 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주 간단한 이유로 지원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누구나 하는 건 아니다. 안 하는 사람은 이해 자체를 잘 하지 못한다. 어차피 하는 거 편하고 쉽게 가지, 왜 굳이 힘들고 어려운 걸 하려고 하는지. 사서 고생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해병대가 굴러간다. 그리고 지원율이 10:1까지도 올라간다. 대부분 지원 면접에서 강해지고 싶다는 말을 할 것이다. 나도 재밌어 보여서 갔다고 했지만 강해지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열에 둘셋 정도는 아버지가 해병대라서, 할아버지가 해병대라서 해병대에 온다. 가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본인들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영향. 꼭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삼촌이나, 형이 해병대에 가서 자기도 왔다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의 영향으로 온 경우.
그리고 열에 하나둘 정도는 복무기간이 21개월로 제일 짧고, 지원해서 통과하면 입대가 가능해서 들어온다. 요새는 모르겠지만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경우가 참 많았다. 영장 날아와서 대뜸 가는 경우가 없다. 가고 싶은 사람이 잔뜩 밀려서 육군 같은 곳은 몇 달씩 기다리곤 한다. 언제 갈지도 모른다. 그러면 대학생들은 복학시기가 애매해지기도 한다. 3월 전역에 딱 맞춰 12월, 1월, 2월에 전역하는 게 나름 전략이다. 또는 9월 개학에 맞추거나. 그래서 해병대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나머지는 상근(출퇴근하는 애들), 부모가 해병대 캠프 쯤 생각하고 막무가내로 지원, 또는 도저히 이새끼는 왜 해병대에 왔는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병신 같은 새끼들.
해병대 들어가면서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나는 일단 아버지나 친지 쪽에 해병대 갔다온 분이 한 분도 안 계신다. 외가쪽으로 두세 분 계시긴 한데 어릴 때부터 잘 만나본 적은 없다. 지원하면서 떠올렸던 것도 아니고. 이렇게 되면 부모님 억장이 무너진다. 흔히 해병대 간다 하면 ‘헉, 그 고생하는 데를 굳이 왜 가’ 하겠다. 허나 부모님 입장은 다른 법이다. 자식이 해병대 간다면 무슨 죽으러 간다, 엄청나게 처맞고, 반병신 돼서 나오겠거니 생각한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하신다.
여기에 더해 부모님 세대에는 해병대 악명이 그야말로 자자했다. 어느 군인들이 기차에 탔는데 해병대가 있다, 그러면 해병대가 각을 잡고 열차순검을 돈다. 무슨 말이냐면 개기면 뒈진다는 식으로 가오를 잡고, 본보기로 몇 대 치고, 돈을 걷어간다. 이유없이 삥 뜯는 거다. 술집에서 타군이 보인다, 그런데 좀 거슬린다, 바로 맥주병으로 대가리 후려친다. 옛날옛적에는 그런 일이 많았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일단 해병대 서류를 넣었다. 아무 말씀도 안 드리고 말이다. 그런 다음 서류가 된 것을 확인하고 체력테스트랑 면접을 보러 간다고 말씀드렸다. 대뜸. 그러니 부모님은 걱정이 확 밀려들었던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눈물도 흘리셨다고. 외가쪽이 경상도인데 지금은 포항에 있지만 옛날에는 진해쪽에 해병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런 장면들, 해병대 선임이 후임 때리고, 나와서 군기 잡고 깽판치는 양아치건달들을 보고 들으신 것. 아버지께서도 나에게 원망 아닌 원망을 하셨다. 왜 그런 데를 지원해서 가냐, 주변에 해병대도 없는데 왜 넣은 거냐, 체력테스트 완전 못해버리고 그냥 떨어지면 안 되겠냐, 뭐 그런 말씀도 하셨다. 친척들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나를 생각해줬다는 것이 고맙긴 한데 조금 호들갑이기도 했다. 해병대 나온 친척 몇 분은 좋으시면서도 티를 못 내셨고. 나는 열심히 했고 해병대를 나왔다. 막상 해병대를 가니까 제일 좋아하셨던 게 아버지셨다. 그래도 자랑스러우셨나 보다. 무슨 해병대 부모 카페 같은 곳도 가입하셨던 것 같은데, 이건 좀 너무 갔다는 생각도 했지만. 막상 몸 멀쩡히, 건강하게, 재밌게 군생활 하고 나왔으니 참 별거 아닌 소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해병대에 있으면서 눈물 흘린 적이 몇 번 없다. 몇 번이라도 있었다는 게 중요한 건가? 근데 그 몇 번은 모두 평생 기억할 좋은 경험이었다. 힘들어서 운 적은 없다.
위의 작은 소동으로 들어간 해병대. 해병대 훈련단 정식 명칭은 교육훈련단이다. 교육이 언젠가 붙었다고 한다. 보통 훈단이라 부른다. 육군과의 차이점이라면 육군은 훈련소라는 명칭을 쓴다. 보통 다들 말할 때도 훈련소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해병대는 무조건 훈단이다. 1사단, 2사단처럼 훈련단이 따로 있다. 모든 해병대원은 이 훈단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면 입구에 이런 문구가 있다.
예전에는 ‘해병대 장래는 이곳에서 시작된다’였는데 장래가 일본식 표현이다 보니 미래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무튼 좀 가슴 웅장해지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이 문구에서 훈련단의 사명감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사들,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곳에서 시작된다고 사명을 가진 분들 얼마나 될까. 철밥통에 애들 좋아서 하지 않나. 군대라서 가능한 거 아닐까 싶다. 실제 소대장(DI라 부른다, Drill Instructor의 줄임말)들한테도 항상 느껴지고. 훈단 이야기는 다음 글에 쓰기로 하겠다.
이곳에 들어가서 간단한 입소식과 함께 부모님께 절하고 나면 7주의 훈련기간이 시작된다. 육군 4주, 해군 5주였나. 제일 긴 훈련기간. 밥과 반찬 콩알만큼 주는 극기주도 있고. 이 훈련 기간 중 한 번 운 적이 있다. 극기주가 시작되는 날이다.
멀쩡히 잘 자고 있는데 대뜸 싸이렌이 울리더니 밖으로 튀어 나오라고 윽박을 지른다. 호다닥 튀어나가면 또 윽박을 지른다. 왜 이렇게 늦냐, 얼른 오와열 안 맞추냐. 깜깜한 새벽, 연병장에는 목봉이 잔뜩 놓여있다. 들라고 한다.
사진처럼 저렇게 많은 인원이 붙어있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이걸 머리 위로 들었다가 어깨로 올렸다가 주저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누웠다가 앉았다가 앉아서 들어올렸다가 쪼그려앉았다가 아무튼 별 동작을 다 시킨다. 팔이 뽀사질 것 같고, 어깨가 무너져 내릴 것 같고 그렇다. 이짓을 한 시간 정도 한다. 맨몸이다 보니 팔에도 가슴팍에도 어깨에도 상처가 생긴다. 정신이 번쩍 들고, 목봉체조가 끝날 쯤 누워서 밤하늘을 보라고 한다(목봉을 들고). 아무말도 안 한다. 그러면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것 같은데 이때 제일 먼저, 끝까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부모님 생각 뿐이었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데 밤하늘의 별과 부모님 생각만 또렷이 기억난다.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눈물이 조금 나오려 하더라.
그 다음 앞에 대대장님이 나와서 극기주 시작을 선포하신다. 이때부터 잠도 몇 시간 못 자고, 훈련은 몇 배로 빡세지고, 밥반찬도 콩알만큼 주고.
이때가 처음 눈물이 나온 적. 그 다음은 7주의 훈련이 모두 끝나고 수료식.
이렇게 연병장에 선다. 우렁차게 경례도 하고, 애국가랑 군가도 부르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듣는다. 진짜 악이란 악은 다 지르면서 목이 쉬어라. 사실 뭔 얘기를 하는지 잘 안 들린다. 부모님을 만나기 때문. 저 멀리 우리 부모님은 어디에 앉아계시나, 부모님들은 우리 아들 어디에 있나.
수료식이 모두 끝나면 반대편 저 멀리서 부모님들이 우르르 뛰어오신다. 우리 부모님도 나를 찾아내고 뛰어오셨다. 정말 안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저절로 펑펑 나온다. 멀리서 오는 모습에 차렷자세를 풀어야 하나, 나도 뛰어가야 하나. 그냥 너무 반갑고 기쁘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 아직도. 엄청 눈물이 나왔다. 근데 울기 전에. 해병답게 저 오늘 수료했고, 이병이 되었다고 신고를 한다. ‘필썽!!!! 대한민국 해병대 병 ㅇㅇㅇㅇ기 누구누구는 몇 년 몇 월 며칠 부로…’ 하고. 안 우는 애들도 있고 우는 애들도 있고 한데 난 여려서 눈물이 나온 것 같다. 신고 딱 하고 어머니 안아드리는데 둘 다 눈물 펑펑, 아버지도 눈물 찔끔. 그리고 하루의 즐거움이 허락된다.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가족과 시간도 보내고. 저녁에 돌아왔다. 부모님 보니 너무 좋았다. 이런저런 거 했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다나까말투가 몸에 익어서 괜히 어색하면서도 서로 신기하게. 괜히 어른된 척 해야할 것 같고, 어리광도 피우고 싶은데 해병이라서 그런 거 안 하고 싶고.
근데 이때는 몰랐지. 다 끝난 것 같았지. 고작 ‘이등병’이 되었을 뿐인데, 이제 군생활이 시작될 뿐인데. 그래도 그때의 눈물은 잊을 수가 없다. 7주 훈련 딱 마치고 부모님 마주봤을 때 벅차오르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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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언제 올라올 예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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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
처음부터 이상한 애들이 지원하는데 더 이상한 애들을 거르는거 같다는 대목이 설득력있고 재밌어서 무릎을 탁 친다. 해병대 이야기라고 해서 입대하는 부분부터 쓴게 아니라 이빨교육, 간부 이야기로 운을 뗀것도 잘 고른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다른 눈물이 이어질까? 계급에 따라서 차곡차곡 진행할까?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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