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여태 없었으니까 상관없다.
호리병 여자애랑 말도 못 하는 사이가 되다니.
지금까지 그랬듯이 아무렇지 않게 지낼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하고 속이 타들어갔다.
그녀는 벌써 다른 여자애들이랑 어울려서 화장실도 가고
급식실도 이동수업도 가더라.
스토커처럼 내 눈길은 걔만 쫓아간다.
나쁜 년아.
내 성격 알면서, 자존심 더럽게 세서 먼저 사과 못해
늘 그렇듯 굽히고 들어와달란 말이야.
구제불능인 나는 니가 없으면 안 된다고.
계속 화가 솟구쳐서 분풀이하고 다녔다.
뒷문을 막고 떠드는 여자애들한테
" 뒷문 전세 냈냐? 졸라 시끄럽네."
시비 털고 한바탕 싸웠다.
반 여자애들은 날 쓰레기 취급했다.
수업 도중 보지를 기다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고통에 기절했다. 눈 떠보니 응급실이었다.
지긋지긋한 생리통, 이번에는 죽을 거 같이 아프다 못해 혼절까지 했다.
"괜찮아?"
꿈인 줄 알았다. 호리병 여자애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그녀의 뺨에 손을 댔다.
"때린 거 진짜 미안해."
자궁 드러내고 싶을 정도로 싫은 생리였는데,
덕분에 호리병 여자애랑 화해했다.
고3이 되고
호리병 여자애와 나는 이과라서 또 같은 반이 되었다.
무려 3년을 같은 반, 무척 기뻤다.
인서울 하겠다며 공부 의욕이 불타는
그녀를 따라 독서실도 학원도 같이 다녔다.
휴대폰을 정지시켜버렸다.
집에서 잠자는 시간 빼고는 온종일 호리병 여자애랑 함께였으니까 필요 없었다.
이제 A의 날씨 문자도 안 봐도 되고.
그게 화근이었을까.
평화로운 둘만의 시간은 얼마 안 갔다.
한 달에 한 번 문자나 보내던 B가 같은 독서실을 다니게 됐다.
" 핸드폰 없앴어..? 연락이 안 돼서.."
왜 이렇게 하나같이 끈질긴지, 남자들은 좋겠다.
자기들 기분 밖에 모른다.
싫다고 밀쳐내고 모진 말을 해도.
독서실에서 나오면 12시가 넘었다.
나는 호리병 여자애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B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녀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B와 나를 보고
다 안다는 듯이 얄밉게 웃었다.
한 번도 B한테 설레어 본적 없다.
난 가슴 큰 거랑 예쁘고 잘생긴 아름다운 것만 좋으니까.
B는 가슴도 없고 남자답게 못생겼다.
" B가 왜 싫은 거야? "
" 싫지도 좋지도 않아."
" B는 키도 크지 운동도 잘해서 몸도 좋지 벌써 3년 동안 너만 바라보지..
난 니가 좀.. 남자랑 진지하게 사귀봤으면 좋겠어 "
호리병 여자애는 진짜 무신경하다.
B가 나를 원한다면 나도 내가 원하는 게 따로 있을 뿐인데.
그쯤 고민이 많이 되었다.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결심했다.
수능이 끝나면 고백해야겠다고.